유령이 말해주는 삶의 이야기-권누리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 >을 읽고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5-12-16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318
*:본문에 들어가기 전, 싱어게인3 1호(이바다).25호(강성희) 듀엣곡인 최백호의 <나를 떠나가는 것들>의 가사와 멜로디를 듣고 본문을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FArnw42Z2NA?si=KEO65YTtYfJuUtk_
ㅡ
책을 덮고, 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린 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맺지 않은 가지에 눈꽃 같은 얼음꽃을 피웠다. 또한 주변에 있는 학교 근처 무덤과 논밭을 이루는 토지 역시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얼어 있었다. 위 모습은 2025년 12월에 본 필자의 동네 풍경인 동시에, 겨울마다 봤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12월은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등 추위와 관련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시기가 다가오면, 몇몇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과 졸업식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12월이 지난 1월부터 우리는 한 살씩 더 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12월은 추운 겨울인 동시에 이별에 달이기도 하다. 함께 1년을 보냈던, 친구들과 교실에 이별을 고해야 하기에.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새로움을 맞이하는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되기에.
이처럼 12월은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이별에 달이다. 이러한 시간의 성격은 권누리 시인이 쓴 시집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 속 유령 같은 화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떠난 이에 대한 깊은 슬픔과 명랑한 기대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러 인간일 수도 있는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는 시집의 첫 시편 <비기너>에서부터, 마치 윤회를 기억하는 존재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ㅡ
죽지 마
명령하면 안 되니
어제는 피아노를 샀어
가끔 치려고
명랑하게
창문 너머 비행기가
밥그릇은 언제나 비어 있고
천장에
달라붙은 열기가 깔깔 웃으면
이 이상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구르기 위한
언덕을 갖고 싶어
처박힐 우물도
자랑 없이
칭찬도 없이
청소기 헤드로 빨려들어가는
정오
함께 있을까
조금만
더 울어보고
ㅡ <비기너> 전문-12~13p
Beginner 한국어 해석으로는 초심자라는 뜻이다. 이 제목처럼 위 시의 화자는 이별의 초심자처럼 묘사된다. 떠난 이, 특히 죽은 사람에게 "죽지 마"라는 말로 붙잡아 명령하고 싶지만, 화자는 결코 명령하지 못한다. 역으로 떠난 이에게 "안 되니"라고 물어본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어제 피아노를 샀"고 창문 밖을 날고 있는 "비행기"와 자신의 빈 "밥그릇"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조심스럽게 타자를 붙잡고 싶은 화자의 욕망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는 "청소기 헤드"가 이물질을 빨아들이듯, 하루 중 제일 밝은 "정오" 즉 밝음과 관련된 것들을 빨아드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삶의 에너지, 웃음 같은 것들을. 그렇기에 타자와 화자는 함께 있으면, 서로 빛을 갉아먹을 것 같았기에, 초심자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타협한다. 이런 타협은 시에서 화자가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타자에게 "함께 있"기를 청한다. 동시에 화자가 우는 모습으로 마무리 맺어진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는 마지막 연의 첫 행을 보면, 결코 그가 이 슬픔으로만 가득 차 있진 않을 거라고, 독자는 어림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화자가 초심자에서 다른 이별의 초심자가 되는, 그러면서 좀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이 될 거라고 예측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시집의 다른 시들에서도 다양한 이별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유령, 천사 같은 추상어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시어들이 반복될 때마다, 시를 읽는 독자는 이별을 맞이하는 과정 자체를 무던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깊은 슬픔이 아닌, 또 다른 이별과 만남으로. 마치 몇 번을 생을 거치는 사람처럼. 어쩌면, 아직 미련 때문에 환생하지 못한 하나의 유령처럼.
ㅡ
귀신은 실체보다 신체에 가깝다
시체보다도
속수무책으로 산책
한다
너는 살아서 너무 많은 악몽을 꿔
나에게 네가 나오는 꿈이 악몽이 아닌 줄 모르고
너희 집 대문 앞에 서 있다
편지도 전화도
선물도 이름도 없이
몸만 남은 채
고향은 남{南}으로 향한다
나에게는 할당된 묘비가 없다
너의 산책로에는 유언에 남기고 싶은 풍경이
있다
작은 주차장 구석 누군가 침을 뱉어 젖은 흔적
모두 와장창 허물어질 장소를
산책
속수무책으로
ㅡ <동티-패, 호스트는 없음> 전문-62~63p
<동티>는 시집의 정서를 가장 잘 들어낸 연작시다. 연작의 중심 제목인 '동티'는 민속신앙에서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려, 지{地}신이 분노하여 내린 재앙을 뜻한다. 제목인 '동티'는 시 속 화자 혹은 내부의 타자에게 유령 같은 정체성을 부여한다.
특히 <패, 호스트는 없음>에서 화자와 타자는 독자를 혼란하게 만든다. 마치 타자가 유령 같고, 화자가 유령 같게 보여준다. "너는 살아서 너무 많은 악몽을" 꿨고 화자에게 "나오는 꿈이 악몽이 아닌 줄 모르고"라는 부분에서는 타자는 죽은 이로 묘사가 된다. 하지만 뒤에 화자는 자신을 "몸만 남은 채 고향은 남으로 향한"다고 한다. 이는 몸이 남쪽으로 향한다는 것이며, 동시에 얼굴은 북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머리를 북쪽으로 두는 행위는 한국 민속학에서 망자의 방향을 뜻한다. 즉 화자 역시 망자의 영역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화자 본인에게는 "할당된 묘비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타자의 "산책로에는 유언에 남기고 싶은 풍경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혼란을 더 과속시킨다. 하지만, 첫 연인 "귀신은 실체보다 신체에 가깝"다는 진술이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사유로 묶는다. 유령은 수많은 타자들의 기억을 몸에 묻은 존재라고.
이후 위 시를 다시 읽으면, 시 전반의 내용이 여러 삶을 거친 한 사람이자 유령, 전생의 기억을 품은 화자의 이야기로 들린다. 즉 화자는 유령인 동시에 인간이고, 인간인 동시에 유령인 존재다. 그래서 마지막은 이런 여백으로 끝낸다. "모두 와장창 허물어진 장소를" 즉 불특정한 공간에서 "속수무책"으로 "산책"하는 것으로. 어쩌면, 유령인 화자가 다양한 삶을 걸어 다니며 보는 것처럼.
이런 유령 같은 화자는 위 시뿐 아니라, 시집 전반에서 출몰한다. 어느 때는 귀신으로 어느 때는 천사로 각종 추상적인 존재가 시를 감싼다. 이런 존재들은 화자 자신일 때도, 화자만이 "저주를 피해 가지 못" 하게 만든 것{<서로 닮은 천사의 얼굴> 52~53p} 일 때도 심지어는 "신의 모조"일 때도 있다.{<파락 테스트> 70~71p} 그러나 그들의 이미지는 한 계절에서 수렴하게 된다. 바로, 여름과 겨울.
ㅡ
기뻐하던 시절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면 같이 있다는 걸 알았다
텔레비전 너머 노래하는 가수가
조명에 얼룩진 눈으로 활짝 웃고 있을 때도
동시대의 기쁨
왜 따뜻함보다 차가움이 더 오래갈까
커피 담긴 잔을 만지며 생각하면
멀리 있는 사람을 오래 사랑하는 일도 이해됐다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 일은 인정보다 믿음에 가까웠고
그럴 수 없다
복기를 반복하며,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을 더 잘 기억하고 싶어
기쁨이 있던 계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의심이 없어
무더운 여름이 오래도록 이어졌던 날
밤이면 낮에 마신 커피 때문에 잠들지 못했지만,
ㅡ <음영> 전문-110~111p
<음영>은 위 시집에 마지막 시다. '음영'이라는 단어는 색조의 미묘한 차이를 의미하는 단어다. 그런 제목을 인지한 듯 시에서는 끝없는 대비가 이어진다. "따뜻함보다 차가움이 더 오래" 간다는 진술과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을 더 잘 기억하고 싶"다는 등의 진술이 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위 시에서도 "멀리 있는 사람을 오래 사랑하는 일"과 "기억하고 싶"다는 서정이 드러나는 것으로 볼 때, 화자는 어떤 이에 대한 이별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서정에 관한 결과는 잔혹하다는 것을 마지막 두 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의심이 없어, 무더운 여름이 오래도록 이어졌던 날. 밤이면 낮에 마신 커피 때문에 잠들지 못했지만"이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무치는 일이 결코 좋은 결말만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낮에 마신 커피 때문에 잠들지 못한 밤을 보내는 것과, 무더운 여름만이 삶을 덮고 있다는 것처럼. 위 시집 전반을 이루는 유령의 정체성을 뛰고 있는 화자들은 이야기한다.
그들은 전체적으로 이런 상처와 아픔들을 여름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여름이 쪼그라드는 쿰쿰한" 수돗물 냄새{<여름 유령 상처 장미>66~67p}와 "겨드랑이 안에"서 "축축하고 쉰내 나도록 데워지는" 여름 {<크툴루 키즈> 42~43p}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그와 반대로 봄, 가을, 겨울에 대한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덜 그려낸다.
아무리 오래 세월을 살아온 유령이라도 이별의 상흔은 365일 다 겪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거의 대다수의 시에서 "여름"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시집의 제목인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은 화자가 살았던, 여러 번의 삶과 이별을 표현하는 대목이라 이 부분이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현대 한국 시단에서 유행하는 여름의 낭만화 때문으로 보이지만, 시집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보이진 않는다. 봄의 이별은 무엇이며,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의 이별은 어떻게 다른지 독자로서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해소되고 있다. 또한 앞에서 말했듯 이별이 많아지는 시기인 연말과 겨울은 이미지적으로 잘 그려진다는 점은 약점이자 아쉬운 점이라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누리 시인의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정서와 시 세계를 보여준다. 만약 시집으로 불교의 윤회 사상이나, 떠돌아다니는 유령의 이야기를 담는다면, 위 시집과 같지 않을까 싶다. 이는 시집을 처음 열 때 볼 수 있는 시인의 말에서 알 수 있다.
ㅡ
이 산책의 끝은 모조리 계획되어 있다
가벼운 어둠에도 땅을 더듬으며 간다
나란히
유원지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지
시작으로 되돌아오면 그때는 잊을 시간
헤어지기 위해서 하는 인사는 이제 관두고 싶다
나의 유일한 비밀은 비밀 없음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ㅡ <시인의 말> 전문 5p
한 개인의 이야기가, 한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이어서 한 세대의 이야기로. 이어서 전 세대의 이야기로 퍼져나가게 하는 것. 그런 존재가 권누리 시인의 시집에 등장한다.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이별을 겪은 그저 한 명의 개인이자, 개인 같은 여려 명의 이야기. 이는 곧 시인의 철학이자, 그녀만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추상어에 경유하며, 써야 했던 현실일 수도 있다. 가벼운 어둠으로 보일지라도 시인은 그 아픔을 "더듬으며" 나아가고 있다. 이는 곧 한 시인의 용기를 낸 위로이자, 다른 유령이 위 글을 쓰고, 읽는 당신에게 건네는 조심한 손길인 것 같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추천 콘텐츠
* 걸어온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 발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발이란 무턱대고 걸어서, 땅과 마주하는 일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이걸 굳은살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천천히 무감각해지는 발의 이야기는 굳은살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괜찮지만, 당신들은 괜찮겠어요? 제 발이 지나온 이야기가 약간 아플 수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궁금하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만 눈은 조금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나는 분명, 경고했다. **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굳은살 이야기가 뭐 그렇게 듣고 싶은지, 아니면 공감받고 싶은지 눈을 크게 뜨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스쳐 지난다. 사실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걷고 있는 길에 바람이 꽤 차갑다. 강원도 산간의 겨울은 역시 눈도 많이 내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골바람이 도시의 골바람과 다른 매서움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 삼촌 내외와 가까운 강원도 산간으로 이사를 왔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현실에서 일종의 도피를 경험하고 싶었기에. 도시에서 살며, 들이마셨던 공기와 먼지를 이삿짐과 함께 털털 털어내고 시작한 산골 생활이라 우리 가족은 이사 가기 전까지 즐거운 것들을 상상했다. 엄마와 나의 건강 회복과 농촌에 들어가면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 하지만, 시골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텃세가 심하다던데.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한 식구가 주변에 사니까, 기댈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도시보다는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과 희망이 가득했다.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짐들은 언제 다 풀고 정리할까. 우린 서로 웃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누고, 가져갈 건 가져가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됐다. 이제, 이사 가기 전, 감사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학교 다녔을 때 쉼터가 되어준 친구. 내 휴대폰에는 그들의 이름을 이름으로 저장해 두지 않았다. 성과 이름을 같이 붙여 놓으면,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그들을 각각 ‘아침의 햇살’과 ‘늦 밤의 달빛’으로. 저장해 뒀다. 그들이 언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이사 가기 전에는 연락이 왔으면 좋을 것 텐데. 나는 확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할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기에. 모든 일이 ‘텐데’로 끝났다. 이번에도 그렇고, 저번에도, 그 이전에도 그렇고. 확신이 없었기에, 그들에게 만나자고 했던 카톡 메시지는 다른 광고성 문자들로 인해 내려갈 공간까지 내려갔다. 그런, 나랑 반대로 엄마는 최근까지도 동생네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에도 빠짐없이 잘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사람을 만나는데 거리감이 적었다. 다만, 그만큼 한 공간에 뭉쳐 있지 않으면 그들과의 관계가 금방 흐지부지하게 끝난다는 것. 엄마는 조동모임에는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겠지. 조동 친구들은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뒤,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유지되는 관계
- 송희찬
- 2026-01-25
가습기와 에어컨을 모두 끈 채로, 맞이하는 여름은 생각보다 더 덥고, 꿉꿉하다. 습기가 가득 찬 여름의 공기, 나무와 바람이 만약 신이라면, 지금, 이 날씨를 견디는 우리를 보며 신이 날 것 같다. 축축한 벽지와 눅눅한 얼굴과 몸, 그들이 원하는 게 인간의 벌이라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그 벌을 모두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후 그들을 만난데도 나는 떳떳하다.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 더 한 것들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대에서, 사람 한 명 한 명 더 깊은 곳으로 추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방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생각보다 차갑다. 여름인데, 이런 바람은 여름과 어울리지 않지만, 바람은 바람이다.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수능 대비 대신, 글만 쓰는 것도 결국 나지만, 책임은 언제나 두렵다. 그러니까, 노트북을 들고 재빨리 거실로 나가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은 휴대폰을 넘기고 있다. 이 쇼츠 하나만 더 보고 공부하는 거다. 그래, 딱 하나만 더 보고. 더 더워지기 전에 공부를 해야지 하면서도, 공부를 끝없이 밀어냈다. 손에 땀이 고이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앞 골목에서 집 쪽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현재 시각 14시다. 동생 희열의 하교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그때부터 기침이 나도 모르게 갈비뼈를 짓누르고 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거부 반응. 오늘도 하루의 대다수를 휴대폰에 다 썼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언제나 빨리 학교를 나간다. 그러면서도 매일 학교를 빠지고 싶다고 희열이는 이야기한다. 물론, 내가 학교를 쉬기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그러나 그에게도 지금 상황이 나쁘지마는 아닐 거다. 엄마, 아빠 출근해도 집에서 항상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그래도, 내가 미워 보일 수도 있을까. 아직 어리니까, 그런 상황은 일단 내버려두고 옷이나 껴 입자. 언제부터 녹아갔는지 모르는 벽지 위에 걸린 옷을 꺼내 입으며, 인간이면서 인간 다워 보이려고 했다. 그게 방과 후가 끝난 희열과 본인의 자식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자 안심이기에.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홀스를 입에 물고 흰색 마스크를 입가에 걸쳤다. 이제, 날 그저 학부모 같은 청소년으로 봐 줄 수 있겠지. 오늘도, 작년 여름처럼 습기가 창문을 적셨고, 도로에는 물웅덩이가 깊게 파여 있다. 인공적으로 다시 타임 루프 한 것도 아니면서. 감기기가 아닌 기침이 작년 초 학교를 다닐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나를 잡을 수 있는 타인은 없지만, 유일한 내가 나를 잡을 수 있는 것.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원조 고등학교에서 열공을 하고 있을 나를 지지한 친구들과 나를 고교에서 내 쫓은 친구와 선생님의 얼굴에 대하여 올해는 어떻게 지낼지 생각한다. 그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자체가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좋은 추억을 꺼내 되새김질
- 송희찬
- 2025-12-23
*주의: 본문에는 이물 표현이 있습니다. 식사하시면서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며칠 전,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만났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6개월 전이었지. 못 본 지 반년 동안 그와 나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는 2학년 1.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모두 마쳐 고3을 마주해 있고, 나는 검정고시와 수시 합격 그리고 수능을 치르는 등의 경험과 성취를 이루어 냈다. 그래, 우리 모두 올 한 해 수고했지. 또한 내년에도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온 힘을 다해 뒤척이겠지. 그런 뒤척임이 한 해 한 해 쌓이며, 우린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다 보니, 금세 열아홉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청소년이 유효한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일 년, 일 년 지날 때마다 몸은 매해 바뀌었다. 키와 몸무게가 늘기도 하지만, 어릴 때 좋아했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등 체질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작년에는 그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평소에 즐겨 먹던 얼큰한 찌개와 매콤한 닭발을 몇 입 먹지 않았는데, 먹은 뒤에 속이 끓거나, 변을 자주 보는 등의 행위가 심해졌고, 매운 음식을 거부하게 됐다. 그렇기에 옛날에 바라보지도 않았던, 사리곰탕과 튀김우동이 제일 좋아하는 라면으로 변했다. 계속 이러다가, 이들조차 맵다고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매운 것도 못 먹는 맵질이 어른이 되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음식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하지만, 매운 음식과 반대로 어릴 적 못 먹었던 비빔밥은 한 해가 지날수록 고추장, 다시 먹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지금 껏 비빔밥을 먹지 못한 이유는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트라우마. 평범했던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급식으로 비빔밥을 먹었던 그날 급식이 속에서 얹혀 기절했다. 나는 태권도에 들어가자마자 출입문에서 토를 내뱉고, 나도 모르게 쓰러져 버렸다. 일종의 침묵, 어쩌면 소란스러운 환경에서의 고요만이 내 몸을 짓눌렀다. 그런 짓누름에 눈은 점점 감겼다. 어둠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어둠을 참 무서워했는데, 그 당시에는 어둠이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휴식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어둠 속에서 쉬었을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구급 대원들이 있었고, 태권도 학원 원장이었던, 위층의 미술 선생님과 태권도 사범님 등 학원 관계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중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미술 선생님의 질문. "희찬아, 100까지 세어볼까?" 그녀의 질문에 몇 까지 세었을까? 한 사십까지는 말했던 것 같지만, 결국 100까지 세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모르겠어요." 사실, 내가 숫자 100까지 셀 수 있는지 궁금해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내가 다시 정신을 잃지 못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거겠지.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받은 뒤, 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태권도 사범님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러나, 이는 그 상황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이후, 각종 검사를 받았다. 뇌파와 CT 등 뇌에 문
- 송희찬
- 2025-12-19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