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로의 회귀
- 작성자 노스텔지아
- 작성일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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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편 44: 23-26-
나는 본래 모태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이미 교회를 다녔었고,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교회를 빠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또한 모태 신앙이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나처럼 뱃 속에서부터 모태 신앙이었던 것은 아니고, 친할아버지가 큰 병을 치유하신 이후로 개신교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믿었던 초등학생이었다. 진실로 천국을 믿기도 했고, 성경이라는 이야기도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소설을 쓰거나 역사를 좋아했던 이유도 나는 근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것에서부터 모든 흥미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경 속 이야기 만큼 재밌는 것이 없었다. 그때는 배웠던 부분이 겨우 출애굽기 정도였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그 서사는 나에게 정말 큰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모든 것이 순진했고, 신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신을 믿었다. 기도를 하면 내 소원을 이루어주도록 돕는 것이 신이었고, 만약 내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 믿었다. 사실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신을 수단화했던 것이다. 학교 아이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신을 믿기만 한다면, 진실로 믿기만 한다면 죽어서도 천국에 간다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이렇게 단순히 생각했다. 모태 신앙이란게 참 무섭다. 왜냐하면 모태 신앙은 워낙 태어날 때부터 개신교적 사고관을 주입하면서 자라다 보니 천국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천국이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신의 음성을 들은 적도,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신앙심이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부목사를 그만두셨을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부목사를 그만두셨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역했던 사람이었다. 대학도 신학대학, 대학원도 신학대학원 그 외의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또 다른 직업은 구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나이도, 경력도 아버지를 이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땡볕이 기다리는 그 넓고 넓은 사막으로 가야만 했다. 계단을 여러 칸 올라가서 택배 상자를 내려놓으면 겨우 몇 백원을 번다. 그것을 몇 백개를 하루에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일에 적응을 잘했다. 평생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설교나 전도만 했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버지의 그 내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버텼을 것이다. 그 일이 쉬웠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했다. 신은 왜 이런 시련을 주는가? 아버지는 믿음이 부족하다고 하기에는 평생동안 사역만 한 사람이었다. 택배 기사를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허름한 빌라에 들어서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 도시에 떨어진 우리 가족은 이방인이 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나 신자들은 수 없이 많은 고난을 겪는다. 아버지 또한 그 고난의 일부인 것인가? 하지만 내가 배웠던 하나님은 분명 악한 것에는 형벌을 내리고 선한 것에는 복을 줘야만 하는 존재였다. 이집트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이스라엘인들에게 축복을 내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가? 서울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에게서 나는 이미 세상이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을 헤치면서까지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더 인정 받는다. 나의 이런 단순한 생각은 점점 거대한 국가간의 의문으로 이어졌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했는가? 그 수많은 유대인들은 무슨 이유로 학살을 당해야만 했는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니체를 접했다. '신은 죽었다.' 그렇다. 그 순간 내가 믿었던 지금까지의 하나님은 죽었다. 나에겐 이제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았다. 나의 본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카뮈와 사르트르를 접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실존한다. 그러나 본질은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 본질을 채워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나 자신이 직접 삶의 의미를 창조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주체성에 반했다. 시지프스가 산에 오르며 열정의 땀을 흘린다. 석양이 지고 있음에도 그는 돌을 올린다. 마침내 정상에 도달한 시지프스는 돌을 올리는데 성공하지만 돌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그 돌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을 산의 정상에 올린다. 그 일을 평생동안 반복하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그 열정과 자유의지에 나는 감탄했다. 지금까지 신이 내려준 삶의 의미만을 지키며 살아왔던 나에게 그 의미를 없애버리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시작을 알렸다. 신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공허한 공간이 나에게는 가득찬 것처럼 보였다. 그릇이 비워졌다는 것은 그 그릇에 모든지 넣을 수 있다는 것. 불교의 공사상과 실존주의는 나에게 큰 영감과 동기를 주었다.
아버지의 일도 점점 안정되어 가면서 나는 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신이 없어도 불행한 일은 벌어졌고, 행운도 가끔씩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모든 것을 신에 대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은 그저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책임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책임이라는 큰 짐을 얹었지만 그럼에도 그 길은 오직 나의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2025년 어느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접하면서 새로운 실존주의 사상가를 접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이미 중학교 때 많이 보았던 사상가인데, 유신론적 실존주의자 키르케고르를 처음 접했다. 사실 놀라웠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실존주의자들이 무신론을 지향할 수 밖에 없었다. 유신론이라는 가정 자체가 이미 신이 나를 창조했기에 자동으로 인간의 삶의 목적도 신에게 귀속된다. 신을 찬양해야 하고, 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자유의지가 아무리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신을 믿냐, 안 믿냐의 선택의 정도이지 주체성이 강조되기 어렵다. 키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아주 잘 표현해낸 사상가였다. 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거기서 주체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3단계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로 심미적 실존이다. 심미적 실존은 좀 더 파고들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동물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매일 쾌락을 추구하려고 하는 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과연 그 사람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매일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은 불안하고 결국 행복에 다다를 수 없거나, 행복도 아주 잠시의 쾌락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음 단계인 윤리적 실존으로 향한다. 윤리적 실존에서 사람들은 어느정도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가지만 문제는 이것으로도 결국 다시 회의감과 절망에 빠진다. 두 단계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향한다고 키르케고르는 이야기한다. 결국 그는 마지막 단계인 종교적 실존에 이르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점이 상당히 다른 신학자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신과 단독자로서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현실에 있는 모든 규범(법, 윤리 등등)을 모두 초월한 단독자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직 나와 신 이렇게 둘이 1대1로 만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주체성을 발휘해야 한다. 종교적 실존으로 이리는 것은 결국 나의 결단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신학에도 실존주의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다고만 생각하고 지나갔다. 나의 주 관심사는 여전히 사르트르였다. 이후에도 나는 사르트르를 계속해서 탐구했다. 나의 생기부에도 사르트르의 이야기를 많이 집어넣었다. 나의 소설에도 사르트르를 인용하고자 노력했고, 보고서를 쓸때조차 누벨바그 영화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서 분석했다. 참고로 누벨바그 영화 또한 당시 1960년대 프랑스의 6.8혁명과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생겨난 새로운 장르였기 때문에 실존주의의 영향이 컸다. 나는 대한민국에 실존주의 열풍이 돌았으면 했다. 절망에 빠진 청년들이 다시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으면서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와 같이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사회 분위기로 자리 잡아 사람들 서로가 자신의 주체적 결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이상사회를 꿈꾸기도 했다. 어쩌면 마음만큼은 60년대 프랑스 파리의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와 함께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서 나는 지금까지 5월을 절망으로만 채웠다. 자주 쓰던 소설 또한 잘 쓰지 못하게 되면서 글로써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이제는 서툴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은 나의 중간고사 성적과 6월 모의고사였다. 방학 때부터 학기 중에도 나는 꽤 최선을 다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이 공부를 해본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사항이 우리 학교에 왠만한 내신을 챙기는 아이들에게는 모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고3이 되어서 공부를 안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성적을 겨우 올리기는 했으나 내가 기대한 만큼 올릴 수는 없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형, 누나들의 명문대 진학 소식을 들으며 점점 위축되어갔다. 나는 처음으로 사르트르의 사상에 의문을 품었다. 과연 내 선택에 책임을 질 능력이 있는 존재인가? 점점 주체적인 공부를 해나갔다. 예전에는 무조건 학원에 따랐다면 이제는 학원 수업도 조절하면서 자습시간을 늘리고자 했다. 그러나 성적은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기에 나 자신에게 점점 의문을 품었다. 실존주의는 참고로 자기자신이 중요하다. 신이 없기 때문에 오직 믿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믿기 어렵게 되었다.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나무젓가락처럼 허약하게 쌓아놓은 구조물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현역 고3은 수능 공부를 따로 할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내신을 챙기기 위해 1달을 모두 사용하면 나머지 1달은 수행과 세특을 채워야 하고, 내신 공부도 조금은 해야한다. 나는 나름대로 학원을 조정해가며 6모를 준비했으나, 6모를 잘 보지 못했다. 나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모든 것에 의문이 갔다. 되려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질 능력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제서야 실존의 감정을 느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내던져진 인간이 되어버렸다. 실존주의자의 길은 외롭고 처참하며, 어둡다. 그 누구도 없는 곳에서 나의 본질을 찾아나서야 한다. 빛을 어떻게든 내가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고3이나 되었지만 아직 고3밖에 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누구에게도 내 선택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증명하라고 했지만 나는 증명하지 못했다.
그렇게 절망하던 중에 철학이라는 과목을 들으며 나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다. 신기한 점은 모든 과목이 선택과목인데 철학만큼은 필수 이수 과목이다. 철학 선생님은 절대 자습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실 나도 불만이 어느정도 있었으나 철학 선생님의 수업은 매우 가치있었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3이 되면서 평소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단 한 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철학 시간에 보는 영화만큼 값진 것이 또 없었다. 최근에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철학 시간에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다시금 종교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두 교황에서는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시스코 교황이 등장한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내려놓으려고 하지만 보수파인 베네딕토와 다르게 매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프란시스코 추기경이 다음 교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란시스코 추기경은 당시 추기경직을 은퇴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당시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에게 사임서를 보내지만 베네딕토 교황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보기로 한다. 두 사람은 만나고서도 의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 동성결혼 문제, 각종 차별 문제에 관한 두 사람의 입장은 너무나도 확연하고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은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한다. 서로가 고해성사를 하면서 각자의 아픈 내면을 드러내고, 신에게 기도하며 서로를 용서한다. 베네딕토 교황은 프란시스코가 자신과 입장이 다르지만,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프란시스코의 은퇴서를 거절하고 교황 자리에서 사임한다. 프란시스코가 콘클라베로 교황이 되면서 이 영화는 마무리된다. 2시간동안 이어지는 두 교황의 대화는 이상하게도 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보다는 키르케고르의 사상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종교 내에서 자신들만의 실존을 해낸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 내에서도 신학은 수 많은 각주와 해석을 낳는다. 성경의 한 구절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어떠한 오류가 없다. 성서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나름대로 실존을 해냈을 뿐인 것이다. 신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창조하며 신앙을 완성시켰던 것이었다. 나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다시 회상해보았다. 단순히 시련이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신의 존재를 없앴다. 중학교에 가서도 실존주의라는 매력에 빠졌지만 정작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한다는 것을 고등학교에 와서야 깨달았다. 결국 나의 답은 다시 신으로 향했다.
키르케고르의 <죽음의 이르는 병>을 통해 나는 종교적 실존으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일시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외로운 실존주의자의 길에 잠시나마 곁에 있을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했던 실존의 3가지 단계와 나는 완전히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추구해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나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결과는 모두 절망이었다. 내가 가야할 마지막 길은 종교적 실존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이사야 41:!0 10~13)
신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신이 나의 본질을 만들고, 오직 나의 의무는 신에게만 있다는 것. 나는 아직도 이 사실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잠시 한 걸음 물러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르트르에게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 춥고, 어두운 길 뿐이었다. 잠시나마 빛을 찾기 위해 나는 어릴적 잊었던 신을 다시 찾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내 주체성을 잃고 싶지는 않다. 두 교황에 나왔던 그 두 사람처럼, 신이라는 존재 속에서도 자신만의 신앙의 길을 개척했던 사람처럼 나도 종교적 실존으로 나아가고 싶다. 중요한 것은 신이 있냐, 없냐가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의 주체성으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찬송가를 가끔 듣곤 하신다. 아마 습관은 고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 좋아서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직도 신을 믿어? 라는 질문을 하려고 했다가 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택배를 하면서도 교회를 꾸준히 나갔던 이유를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실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낸 것이었다. 아버지는 신을 믿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실존해왔을 뿐이었다.
철학자 플로티노스는 모든 만물은 일자로부터의 유출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유출'은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개념이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자, 순선무악한 진리이다. 플로티노스는 인간 또한 일자의 유출이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자로 돌아가는 상승 운동, 즉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과 매우 유사한데 그래서 플로티노스를 신플라톤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일자로의 회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시 나의 근본으로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이제 고3 생활도 절반을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절망적인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극복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들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창조해나간 아버지처럼 나도 이제 다시금 이전의 실존주의적 삶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나는 새로운 신을 부활시켰다.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던 그 신이 아니라 내가 만든 신은 또 다른 신이라 할 수 있다. 그 신이 아직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 신의 의미 또한 내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다시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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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유암센터 1층 접수 데스크 앞, 3년 전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나를 단박에 알아봤다. 그새 살이 좀 빠지고 목에 닿지 않도록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도 그랬다. 의아한 얼굴로 차트 기록을 몇 차례 클릭하던 직원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이내 입술은 다시 살짝 올라간 모양으로 돌아왔지만, 눈에 담긴 빛은 여전했다. 완치 후 전이나 재발은 흔한 경우였으므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상황 역시 유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나를 기억하는 건 아마도 3년 전 같은 자리에 앉아 비슷한 문답을 이어가던 때에 실신할 정도로 울었기 때문이겠지. 그때는 곧 죽을 사람처럼 누워있던 엄마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울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여전히 엄마의 과거 병력을 적어 넣어야 하는 칸은 한없이 모자랐으므로. “여긴 참 똑같다. 그치.” 엄마도 같은 날을 떠올리고 있는지 코를 훌쩍이며 부지런히 볼펜을 놀리는 내게 슬며시 물어왔다. 엄마는 내가 당신 때문에 우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이젠 그런 걸로 잔소리할 기운도 없는 건지 별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내가 이래서….” 로 시작하는 익숙한 반복을 흘려들으며 더 많은 눈물을 쏟아야 하는데, 엄마가 조용해서 나도 더 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 줄을 적고 볼펜을 내려놓았다. 전보다 두세 줄 늘어 난 병명이 종이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다. 엄마가 보지 못하도록 손을 움직이면서도 소용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구태여 읽지 않아도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겠지. 겪어봤다는 건 그런 거니까. 엄마는 꼭 봄에 아팠다. 새롭게 피는 것들이 쉬이 도드라지는 계절에 오는 끝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때마다 지겨울 정도로 우는 새벽을 보내야 했다. 눈물이 하도 쏟아져서, 도무지 멈추질 않아서 울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흐르는 것들을 닦아가며 밀린 일을 하다 머쓱해하고, 다시 울기를 반복하다 보면 아침은 여지없이 밝아왔다. ‘죽고 싶어'가 ‘죽을 거야'로 바뀌는 그 시간도 흘렀다. 엄마가 아픈데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양 구는 나를 마주치는 것. 가장 잔인한 건 언제나 그런 종류였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늘 바쁘게 움직였다. 엄마와 함께, 아니면 엄마에게 무언가를 권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그것보다, 더 열심히 혼자. 엄마의 손을 잡은 채 몇 시간씩 황톳길을 걷고 병원에 있거나 퇴원한 엄마에게 아침저녁으로 전화하고 일기 쓰기를 제안하고…. 그 와중에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독립 서점을 열고 매일 거기로 출근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자조적인 웃음을 짓자, 제이는 내 앞에서 한 번도 짓지 않았던 표정을 했다. 입술을 일자로 구기는, 웃는 것도 찌푸리는 것도 아닌. 거기에 담긴 말을 읽어낼 수 없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분명하게 지나와서 알고 있는 시절의 얼굴인데도.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 꼭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을 텐데도 그랬다. 간호사의 표정을 보면서, 3년 전 이맘때와 제이까지 떠올리지 않을
- listener J
- 2026-07-31
이 시집을 읽기 전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많지 않았다. 시인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고, 그 이후 이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시집 역시 화재 이후의 상실과 회복을 담은 기록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재라는 사건이 시집의 중심에 놓여 있고, 그 경험을 어떻게 견디고 지나왔는지가 주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가장 먼저 읽은 것은 자서였다.> 오래도록 어둡고> 우울한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거대한 불에 휩쓸렸다> 올해 봄날은 잿더미> 암흑세계였다> 생체발광할 수 있다면> 차가운 빛을 만들 텐데> 더듬어 시를 켰다> 절벽이 보였다처음 자서를 읽었을 때는 화재를 겪은 시인의 절망과 그 이후의 다짐을 압축해 놓은 글처럼 느껴졌다. 특히 ‘시를 켰다’라는 표현은 어둠 속에서 불을 켜듯, 시를 통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미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생체발광’이라는 표현 역시 스스로 빛을 내고 싶다는 바람 정도로 이해했고, 마지막의 ‘절벽이 보였다’는 문장은 막막한 현실을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왜 ‘시를 썼다’가 아니라 ‘시를 켰다’일까. 왜 절벽은 ‘보였다’에서 끝날까. 하지만 처음에는 그 표현들을 깊이 붙잡기보다, 앞으로 읽게 될 시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장을 넘겼다.1부 ― 바깥을 오래 바라보는 시선1부를 읽으며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시선이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인은 사람을 관찰하고, 일상적인 풍경을 오래 바라본다. 특별하거나 극적인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평범한 장면 하나를 붙잡고 그 안에서 천천히 사유를 이어 나간다. 읽기 전에는 화재라는 사건이 시집 전체를 이끌어 갈 것이라 예상했기에 이러한 전개는 다소 의외였다. 오히려 시인은 자신이 겪은 일을 서둘러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시선을 가다듬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그 과정에서 나는 1부가 단순히 바깥을 관찰하는 장이 아니라, 아직 자신의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전 스스로를 천천히 위로하고 마음을 정돈해 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화재를 외면한다기보다는, 그것을 곧바로 언어로 옮기기에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 과정은 어쩌면 화재라는 사건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천천히 위로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특히나 1부의 첫 시인 「이 세상에 없는 것」은 이후의 시집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의 차이는 뭘까> 모두 끝났다고 말해도 될까> 이 세상에 원래 없었던 것 같은 그것을 찾아> 나는 어딜 이토록 떠도는 것인지이 구절을 읽으며 처음에는 상실을 겪은 사람이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미 쓰여 없어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혹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 걸까. 시인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 시는 화재 이후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 미빈
- 2026-07-30
얼어붙은 호수의 경관은 새하얗고 텅 비어 보인다. 그러나 비었다는 것이 정말 텅 빈 것일까? 이 물음에서부터 김이듬 시인의 시집, 를 읽어볼 것이다. 여기 생활의 흔적이 남지 않은 빈 방이 하나 있다고 치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우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방, 혹은 생활의 흔적이 남지 않은 방을 보며 흔히 ‘빈’이라는 묘사를 붙인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비어’ 있는 게 아니다. 사물의 관점에서 다시 방을 보았을 때, 주름 지지 않은 이불과 고요한 침대, 먼지 쌓인 책상과 마룻바닥, 잘 개어진 옷과 닫힌 옷장 등 많은 물건이 들어찬 방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을 세계의 주체로 두고 본다. 인간은 사물과 달리 권력을 잡고 있으며, 주류라고 칭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의 언어로 설명되며, 이때 인간 아닌 ‘그밖의 것’들은 ‘원래 없었던 것’ 같이 묻혀 버린다. ‘그밖의 것’들은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를 주류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그 안에 남아 있던 비주류는 ‘있으나 없는 것’처럼 지워진다. 이 시집에서는 등장 인물이 ‘너’, ‘나’, ‘친구’ 혹은 일상적인 직업, 화자와 가까운 특징을 지닌 인물 정도에 그치는 여타 시집들에 비해 더 다양한 사회적 위치나 직업, 특징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재해의 상황들을 언급하며 그 속에서 피해를 입은 인물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고, 특정 사물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도록 한다. “폭풍”/“기근”/“역병”/“전쟁”, “동남아”에서 온 “가사도우미”, “생리대/초콜릿 바/담배/술”과 같이 값싼 물건과 생활 필수품을 훔쳐 곧 “감옥”으로 “떨어지”게 될 “도둑”, “사람”에게 죽은 “사람”과 “자기 혈육”에게 죽은 “가족”과 “마스크”가 “없”어 “승차를 거부”당한 “누추하게 젖은 사람”, “몽골인 노동자들”, “죽어 있”는 “식물”에서 떠오르는 방치된 사람들과 “태어났고 평범하게 성장했고 온순했으며 살해당한 소녀”와 “식물이 죽고 나서야” “그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는 세상의 무관심함에 놓여 있는 사람들, “거리 곳곳의 무장군인들과 탱크”, “고독사”, 태어나
- 방백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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