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놀이
- 작성자 양현서
- 작성일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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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짖는 개
목줄을 의자에 둔 채로 영화관을 나왔다
함께 하얀 혼잣말을 키웠다
카페 사장님이 주인 없다며 주신 스카프는
다재다능하다
두 개의 목을 쥐는 한 줌의 손이거나
터그 놀이*에 쓰이기도 한다
영화는 둘을 위한 산책길
개의 발자국을 지우는 등 뒤의
그림자
언덕이 빙판처럼 얼어도
흰 바람이 옷 안으로 들이쳤고
틈 날 때마다 물던 꼬리에는
스카프를 둘렀다
스크린 속 배우가 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머리와 발이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검은 눈이 영화를 말끔하게 가렸다고
말했기에
상처 없이
흰 빛을 문 개가 돌아왔다
쓰다듬으면 더 놀자고 짖었다
물린 구멍마다 같은 혼잣말이 쏟아졌다
*반려견이 장난감이나 줄을 물고 있을 때 사람이 반대쪽을 잡고 서로 당기며 노는 줄다리기 형태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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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망치를 쥔 목수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야 슬픈 일이니까 글루건이 잔뜩 붙어버려서 떼지 못하는 인생 같은 건 사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지도 모르지 아우성을 내지른다고 해서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아무렴 숨을 쉬기만 하면 된다고 누가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은데 식탁을 만들어내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겠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인정하게 되는 거 아닐까 사포가 갈리는 소리 웅웅대는 그라인더와 함께 지워낼 수 있다고 여기는 거겠지 부서져도 남아있는 게 있다고 믿으면서 얼기설키 뭉친 톱밥 그러모으면 새로운 의자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슬픔 없이도 말이야 조각내야만 하겠지만 그런데 목수는 사랑했을까 그의 작품을? 아니 연대기를? 그게 뭐든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손에 쥔 것들을 그게 무슨 소용이야 손바닥을 보이지도 못하는데 그러나 여전히 북적이는 공방 설계도 하나 없이 만드는 커다란 식탁과 단 한 개의 의자 목수는 앉고야 말겠지 왼팔과 오른팔을 헤집으면서도 새하얀 망치가 부서지고도 내려앉지 않고서
- 서벽
- 2026-08-25
아깽이 새해가 지나고 또 해가 뜨는 날에, 길고양이를 주웠다. 점심을 먹으려고 막 밖을 나선 참이었다. 아파트 화단 앞에 자그만 솜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말하기를 아침부터 저곳에서 꼼짝하나 안하고는 이따금 울어댔다는 것이었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흔한 고양이였다. 다만 지금까지 본 고양이 중에서 가장 새끼였다는 점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결국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동물을 한 번쯤 키워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 끝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다고, 내버려 두면 어미가 찾아올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만 동물을 한 번 키워본 사람은 또다시 동물을 키우게 된다는 말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차 안은 분주했다. 아니 사실은 마음 놓고 먹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결국 결말을 알면서도 또다시 같은 책을 읽듯이, 허무한 결말일 거란 걸 알면서도 끝까지 읽어버리고야 마듯이. 그 중간중간의 행복을 도무지 놓칠 수가 없어서. 역시나 한 시간 뒤에 돌아온 아파트 화단 앞에 그 녀석은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엄마가 말했다. 내 손에 잡히면 데려갈게. 아니면 그냥 놔둬. 그리고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손을 뻗은 순간 고양이는 품에 안겼다. 빳빳한 빗자루 같은 촉감이었다. 한겨울의 추위를 한껏 머금어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이었다. 병원에 가자마자 수액을 맞았다. 의사 말로는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도대체 그 몸으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4시간이 지나서야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는 담요 안에 안겨서는 온종일 잠을 잤다. 그제서야 좀 살아있는 게 느껴졌다. 잠결에 꿈틀거리는 발도, 밝은 금색의 눈동자도 모두. 이름은 아깽이로 했다. 그러니까 아기고양이, 임시 보호만 해야지 하는 다짐이 담긴 이름이었다. 고양이는 키워본 적도 없으니까. 그냥 이 정도의 책임만 지자고, 네 다리가 나을 때까지만, 딱 그 정도의 정만 주자는 생각으로. 그런데 그 다리가 말썽이었다. 입양공고를 올리려면 적어도 붕대는 풀고 있어야 할 텐데 3개월이 지나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진물이 터져 매일매일 소독해 주어야 했다. 도대체 검지만 한 다리가 뭐가 문제라고. 다만 아깽이는 그쯤 아주 날아다녔다. 분명 붕대를 감고 있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우다다 달리기 일쑤였다. 그 모습에 결국 속상해하다가도 웃음을 터트리고야 마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집안이 활기로 가득 차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쯤, 미래를 예견했던 듯하다. 저 고양이가 이곳을 종착점으로 삼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우리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정을 주고야 말았다는 것을. 물론 1킬로였던 고양이가 그 두 배가 되고 결국은 반년 만에 4킬로가 될 것이라는 건 몰랐지만. 그렇게 어느덧 한겨울이 지나고, 더위로 가득한 계절이 다가온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깽이는 집에 눌어붙어 있다. 아마도 앞으로 20년은 더 머물러있겠지.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아깽이일 테고.
- 서벽
- 2026-08-21
은유게임이란, 아무 단어를 제시어로 던졌을 때 그 단어의 본질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유의어와 반의어를 말하는 것으로 최근 친구들과 하기 시작한 게임이다. 얼마 전, 혼자 은유게임을 하다가 ‘상실’을 제시어로 던졌다.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삶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이 단어는 분명 게임의 답이 맞는데, 유의어와 반의어 중 어느 쪽에 두어야 할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문득, 좋은 은유는 어느 쪽의 말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이 찾아왔다. 삶은 상실과 유사한 말이 될 수도 있고, 상실과 반대인 말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같은 성질’과, ‘다른 성질’을 넘어선 본질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상실과 삶은 본질적인 ‘성질’을 공유하고 있다.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하고, 보지 못하지만 느낄 수 있는 것. 잃음과 얻음이 한 판의 유리장처럼 서로 붙어 있어 떨어트릴 수 없는 것. 한 쪽을 바라볼 때 다른 쪽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삶과 상실의 동일한 면이었다. 그렇기에 삶은 즉, 상실이 될 수 있다. 삶은 상실이라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 상실을 통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또 얻어간다. 임선우 작가의 소설집, 을 읽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상실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햇빛에 비춰 보는 다각면의 보석처럼 여러 인물들과 상황 속에서, 환상적인 장치 속에서 세심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상실’이라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내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궁금증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평을 쓰고자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실이 삶이고, 삶이 상실이라면, 결국 그게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우리가 카페에 앉아 유리창의 얼룩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멀리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결국 반대편의 거리를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생의 목표하는 지점들은,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한 것이 아니라 사실 긴 터널과 같이 이어져 있다. 소설집에서 사용되는 환상적인 장치들은, 독자가 익숙하다고 여겼던 세상과 몰입하는 것을 계속해서 깨트리며,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인물들과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독자를 타자화시키면서, 독자는 인물들이 목표하는 띄엄띄엄한 지점들이, 멀리서 보았을 때 전부 이어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촉수에 닿으면 인간이고 동물이고 전부 해파리로 변”하는 “변종 해파리”의 출현은, 인물의 상황이 실화가 아닌, ‘지어낸 이야기’임을 끊임없이 자각하도록 만든다. 그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수’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히키코모리가 된 사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도둑질을 하다가 해파리 변신 대행업체를 찾아간 사건은, 삶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 소설의 마지막 결론을 위한 하나의 수순처럼 느껴진다. 즉, 이 소설집에서 나타나는 ‘상실’은 ‘환상’과 결합하는 순간 ‘잃었다’는 의미보다 ‘생겨남’의 의미로 연결되게 된다. “변종 해파리”의 출현 전까지, ‘수’의 ‘현실적인’ 상황들(히키코모리, 아버지의 돌아가심,
- 방백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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