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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일상  

  • 작성자 서벽
  • 작성일 2026-08-21
  • 조회수 350

아깽이

새해가 지나고 또 해가 뜨는 날에, 길고양이를 주웠다. 점심을 먹으려고 막 밖을 나선 참이었다. 아파트 화단 앞에 자그만 솜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말하기를 아침부터 저곳에서 꼼짝하나 안하고는 이따금 울어댔다는 것이었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흔한 고양이였다. 다만 지금까지 본 고양이 중에서 가장 새끼였다는 점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결국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동물을 한 번쯤 키워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 끝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다고, 내버려 두면 어미가 찾아올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만 동물을 한 번 키워본 사람은 또다시 동물을 키우게 된다는 말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차 안은 분주했다. 아니 사실은 마음 놓고 먹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결국 결말을 알면서도 또다시 같은 책을 읽듯이, 허무한 결말일 거란 걸 알면서도 끝까지 읽어버리고야 마듯이. 그 중간중간의 행복을 도무지 놓칠 수가 없어서. 역시나 한 시간 뒤에 돌아온 아파트 화단 앞에 그 녀석은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엄마가 말했다. 내 손에 잡히면 데려갈게. 아니면 그냥 놔둬. 그리고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손을 뻗은 순간 고양이는 품에 안겼다. 빳빳한 빗자루 같은 촉감이었다. 한겨울의 추위를 한껏 머금어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이었다. 병원에 가자마자 수액을 맞았다. 의사 말로는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도대체 그 몸으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4시간이 지나서야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는 담요 안에 안겨서는 온종일 잠을 잤다. 그제서야 좀 살아있는 게 느껴졌다. 잠결에 꿈틀거리는 발도, 밝은 금색의 눈동자도 모두. 이름은 아깽이로 했다. 그러니까 아기고양이, 임시 보호만 해야지 하는 다짐이 담긴 이름이었다. 고양이는 키워본 적도 없으니까. 그냥 이 정도의 책임만 지자고, 네 다리가 나을 때까지만, 딱 그 정도의 정만 주자는 생각으로. 그런데 그 다리가 말썽이었다. 입양공고를 올리려면 적어도 붕대는 풀고 있어야 할 텐데 3개월이 지나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진물이 터져 매일매일 소독해 주어야 했다. 도대체 검지만 한 다리가 뭐가 문제라고. 다만 아깽이는 그쯤 아주 날아다녔다. 분명 붕대를 감고 있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우다다 달리기 일쑤였다. 그 모습에 결국 속상해하다가도 웃음을 터트리고야 마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집안이 활기로 가득 차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쯤, 미래를 예견했던 듯하다. 저 고양이가 이곳을 종착점으로 삼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우리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정을 주고야 말았다는 것을. 물론 1킬로였던 고양이가 그 두 배가 되고 결국은 반년 만에 4킬로가 될 것이라는 건 몰랐지만. 그렇게 어느덧 한겨울이 지나고, 더위로 가득한 계절이 다가온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깽이는 집에 눌어붙어 있다. 아마도 앞으로 20년은 더 머물러있겠지.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아깽이일 테고.

 

그저 그런 일상

집사가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은, 고양이는 도통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굳이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깽이는 더욱 그랬다. 오전 5시 30분. 아깽이가 잠에서 깨어나 울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강아지와 다르다. 그것도 아주 고주파로 쏘아 보내는 목소리인데, 잠에서 막 깨어난 고양이의 소리는 잠겨있다. 도대체 왜 고양이도 잠긴 목소리를 내는 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내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을 참이었다. 두 팔을 흔들면서 구경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아깽이의 울음소리였다. 밥을 먹고 나면 다시 잠드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일과의 시작일 뿐이다. 해가 뜨기 전부터 출발선에 선 고양이는 곧이어 사냥 준비를 시작한다. 여기서 아깽이의 그나마 기특한 점은 구태여 낚싯대를 흔들어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흔들고 논다는 점이다. 물론 늘 그렇듯 우다다 거리는 소음과 당장이라도 귀신이 나타날 듯한 방울 소리를 멈출 수는 없지만. 이제 그것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백색소음이 되어버렸다. 오전 9시 정각. 내가 다시 잠에서 깨어나 집을 나설 때쯤이면 아깽이는 다시 잠에 들 준비를 한다. 그 준비 과정은 꽤 정교한데, 우선 내 침대 앞 계단 위에 올라서서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졸음으로 끔뻑거리는 눈동자로, 아주 빤히. 그러면 나는 집사의 역할에 맞게 침대 위의 쿠션 두 개를 아깽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약간의 틈을 둔 채 나란히 세운다. 그러고는 그 위에 이불을 올려 고정한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터널을 만드는 셈인 것이다. 아깽이는 집사의 노동을 가만히 바라보다가는 이윽고 만족스러운 터널이 생겨나면 곧바로 그 틈 사이로 뛰어든다.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꼬리는 만족스러운 듯 유유히 흔들거린다. 그제야 나는 밖을 나서고 아깽이는 이윽고 잠에 든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언제나 그렇듯 아주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그저 그런 일상이다. 햇빛이 막 떠오르고 난 후의 하늘처럼 눈부신.

 

그런 세상

마침표를 찍고 뒤를 돌아보자, 침대 위에 있는 너는 곤히 잠들어 있다. 오후 3시. 어느덧 절정의 여름에 이르러, 무르익은 햇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나와 네 몸을 적시고 있다. 동그랗게 말린 채로, 이따금 옅은 한숨을 뱉어내면서. 그 작은 생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문득 알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현재에 선 채로 살아 숨 쉬면서 이미 잃어버린 생명을 회상하는 일은 꽤 지루한 일이다. 다만 그 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떠올려 내야만 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지금은 현실의 너를 붙잡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적어도 아주 조금은 덜 후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너는 문득 바라보는 시선을 알아차린 듯 눈가를 꿈질거리더니 이윽고 금빛 눈동자를 드러낸다. 그 안에 깃든 나는 마치 빛으로 가득한 사람처럼 보인다. 분명 어떤 것도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작은 눈인데도, 그곳엔 마치 이 세상보다 더 크고 방대한 세계가 펼쳐져 있는 듯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꿰뚫어 버릴 것만 같은 그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가도 문득 네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울어도 이유를 묻지 않으리라는 것도, 표정을 살피고 의문스러워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러니 아무것도 훑어볼 수 없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서 되려 나는 온전히 너를 사랑할 수 있다고. 그렇게 감각은 물러가고 단지 현실만이 남아 우리를 에워싼다. 나는 손을 뻗어 살며시 네 이마를 쓸어 넘겨준다. 너는 다시금 두 눈을 감은 채로 골골거린다. 이것마저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듯이. 단지 이것뿐이라는 듯이. 어느새 너는 행복한 꿈을 꾸듯 네 발을 꼼지락거린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와 약하게 울려대는 심장 소리로. 그 작고 연약한, 인간과는 한없이 동떨어진 존재를 바라보며 나는 모든 걸 잊어버린 채 살아있다. 그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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