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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탈퇴 회원
  • 작성일 2022-03-16
  • 조회수 943

 격자무늬 창문을 통과한 10월의 멀건 햇빛이 망막 위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짙은 락스 냄새 덕분에 머리는 아찔했다. 바깥은 이제 막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건만, 수영장의 공기는 한겨울처럼 서늘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착각이다. 물의 온도는 적절하게 조정되어 있을 것이 뻔했다. 객석에는 관객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들이 뱉는 숨은 지나칠 정도로 뜨거워,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외투 아래 숨은 피부가 비명 질렀다. 너무 추워, 너무 춥다고.

 똑똑히 봐.

 그 별것 아닌 부탁, 혹은 협박, 혹은 권유 탓에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관심도 없었던 청소년 수영체전을 관람하기 위해 왕복 2,000원가량의 차비를 지불하고, 지금 이곳에 있다. 우스웠다. 대체 무얼 바랐던 건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질문이었다. 동시에,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K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너는, 무얼 보여주고 싶은 건가.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풀을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국가와 함께 선수들이 풀 라인을 따라 걸어 나왔다. 그중에는 K도 있었다. 팔 언저리가 파랗게 멍든, 방어흔을 가진 소녀가 객석으로 시선을 던졌다. 

 똑똑히 봐.

 그의 말이 나를 옥죄었다. K를 살펴야한다. 이 경기를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기억해야한다. 그건 분명히 '의무'였다.

 K를 포함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앳된 얼굴이었다. 동시에 명확했다. 그 또래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망설임, 기색 따위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기록 종목 선수 특유의 담담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별다른 안내 없이, 체계적으로 단련된 육체는 각자의 라인 앞에 줄지어 섰다. 허리를 숙여, 근육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고른 숨을 쉬었다. 훈련으로 확장한, 비대한 허파를 진정시키는듯했다. 그들의 가슴 속에 타는 파란 불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다. 덩달아 나까지 몸에 힘이 들어갔다. 침묵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감 시간은 무한대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달려라, 달려. 속으로 수십번을 되뇌었다.

 총성과 함께 선수들은 탄환이 되었다. 수면으로 몸을 찔러넣었다. 상어처럼 수중을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따금 공기 방울이 떠올랐다, 허망하게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오른 승모근, 팔뚝, 오목하게 모인 손바닥이 눈에 들었다. 내가 지금 그들에게 품는 감정은 무엇인가. 동경인가, 사랑인가. 동경이다.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박애도, 성애도 아닌 감정이 가슴을 두드렸다.

 와중에 나는 눈알을 굴려 가며 K를 찾았다. 4레인이었다. 검은색의 민무늬 수모, 그 안으로 깔끔하게 말아 넣은 머리칼, 무엇보다도, 가녀린 육신이 가진 말도 안 되는 생명이 내 고삐를 잡아챘다. K는 빨랐다. 다른 누구보다도.

 순식간이었다. K의 손이 먼저 난간에 닿았고, 체육관 한가운데 달린 커다란 전광판이 차례로 선수들의 기록을 비췄다. 나는 잠자코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K는 크게 내 이름을 소리쳤다. 순식간에 흩어져서,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분명 내 이름이었다. K는 활짝 웃었다. 수경을 벗고 눈을 맞췄다.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물론 성적으로. 나는 K의 말을 상기했다. 예쁜 목소리로 뱉어내는 상스러운 말이 묘한 힘을 가졌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추스르며 눈을 감았다. 걸음을 재촉해 수영장을 빠져나왔다. 근처 벤치에 몸을 뉘었다. 차가운 가을 공기로 속을 채웠다. 차례차례 쏟아져 나오는 관객에 눈이 부셨다. 눈을 감고 K를 기다렸다.

 “잘 봤어?”

 나는 눈을 떴다. K가 있었다.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잘 봤다. 눈부시게 예뻤지. 구태여 그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K 역시 슬쩍 웃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있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이따금 웃으며.

 “가자.”

 K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힘을 빼고 그를 따랐다. 거칠게 일어난 손이었다. 그 촉감이 싫지 않아, 나는 한동안 바짝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벌써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이 아이와 처음 눈을 들여다 보았던게.

 

 매년 마다 갱신되는 최고 기온에 맞춰, 나날이 일사병 사망자가 늘어가던 여름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주말마다 시립 도서관에 눌러앉아 소설을 썼다. 언제나 독백과 사색으로 가득찬, 이야기 없는 소설을 썼다. 형편 없었다. 그런 글을, 항상 신문사에 찔러넣었다. 낙방을 예상하면서, 항상 그랬다. 수상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새 희망을 만들어낼 여지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절망하고 싶었다. 삶을 상기시켜주는 감정의 격동이 필요했다. 그게 뭐든 간에 말이다. 나는 처참하게 박살 나야 했다. 처참하게 박살 남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다. 절망이 없으면 무망 뿐이었다. 나는 아직 살고 싶었다. 절망하는 일은 절망스럽다. 꺼려진다. 피하고 싶지는 않다. 이 무슨 아이러니.

 그날도 노트북 화면 위에 문서 프로그램을 열어놓고, 깜빡이는 커서를 훑었다. 가끔 손을 움직여 몇 문단을 끄적이다 말았다. 목구멍에서 피어오른 열이 머리를 덥혔다. 싫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그만두자니 금세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쓰기 싫으면서, 쓰고 있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멍하니 써 내려가지만, 또 나쁘지만은 않은 문장, 그게 바로 내 글이었다. 천하의 게으름뱅이가 지어내는 글이었다.

 남자가 달린다.

 간신히 첫 문장을 두드리고서 화장실로 향했다. 모국어의 조사는 곱씹을수록 기묘했다. 남자’는’ 달린다를  남자’가’달린다로 고쳐 쓴 것만으로 둘이 주는 느낌의 결이 완전히 달랐다. 결국 나는 ‘는’과 ‘가’사이를 한 시간 가까이 방황하다가, 그마저도 임시방편으로 가를 택한 채 자리를 박찬 셈이었다. 피가 뜨겁게 끓었다. 죄악감으로 끓인 선홍이었다.

 소변을 누면서 글을 쓰는 이유를 상기했다.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소설은 결국 허구였다. 어릴 때부터 거짓을 고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그건 언제나 가벼운 불쾌함을 동반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거짓을 고하는 일이 목적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는 정말 어떻게 되어버린 건가. 그야말로 악에 가깝지 않은가. 나태하다. 멍청하다. 나는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나는 윤슬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새벽녘, 순간 달을 담아 사라지는 물결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윤슬과 소설, 둘은 얼핏 봐도 완전히 다른 부류의 물건이었다. 아, 한심해라. 아, 이 미련한 녀석. 그런 잡생각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을 때, 나는 K를 만났다.

 그 광경은 아직까지 뇌리에 박혀있다. K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와 같은 고교의 제복이었기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체육복 바지 대신 치마를 둘렀고, 목 근처 단추를 두어 개 풀어놓은 와이셔츠 사이로 새까만 수영복이 엿보였다. 아직 물기가 번들거리는 수영가방을 어깨에 멘, 그런 인간이 내가 화면 위에 끼적거린 문장을 읽고 있었다.

 내가 근처에 다가가자 K는 태연하게 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금세 얼굴이 홧홧하게 닳아 올랐다. 지독한 체질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다는 건 끔찍한 고통이었다. 힘껏 연기해보려 해도 이 망할 뺨은 그럴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순식간에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나는 K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바보. 딱 생각했던대로네.”

 자리에 앉은 내 귓가에 K는 속삭였다. 소스라치며 뒤를 돌아봤을 때, K는 이미 자료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몸짓을 지켜보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움직일 수 없었다. 황망한 심정이었다. 그대로 작업을 접고 귀갓길을 밟았다. 묘한 마력에 의해,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스러운 행동은 아니었다. 글은 쓰고 싶지 않지만 써야 하는 것, 써야만 하는 것. 나는 적어도 숨쉬기를 멈추고 싶다고 곧장 코를 막는 광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글쓰기를 멈추고 싶다고 그대로 노트북을 덮어버린 건, 분명 광인의 무언가와 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K의 바보, 하는 음색이 몇 번이나 눈꺼풀 안쪽을 맴돌았다. 막연한 고통이었다. 심장 쪽이 미치도록 아팠다. 급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일단 눕고 싶었다. 다만 막연한 고통은 선명함 앞에서 무뎌지는 법이다. 아파트 현관 앞에 섰을 때, 나는 느꼈다.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싶지 않았다. 만약 누르더라도 계단을 타고 집을 찾아가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면 그곳은 분명 따뜻하다. 어머니는 묻는다. 다녀왔느냐고, 그리 묻는다. 그럼 나는 맹하니 예, 지금 왔습니다, 하겠지. 그걸 견딜 수가 없다. 막연히 지속하는 일상을 견디기에 내 정신은 미숙하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이라는 녀석을 찾지 못한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바깥에 머물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필히 얼어 죽는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단숨에 집까지 튀었다. 문을 열었다.

 정체모를 찌개냄새가 집안 가득 진동했다. 뭉툭한 칼소리가 도마를 때렸다. 어머니는 부엌에 계셨다. 생각해보면 벌써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니, 당연했다. 오늘의 저녁담당은 그의 몫이었다.

 "다녀왔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그게 전부였다. 어머니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밀어넣었다. 정수리에 턱을 기댔다. 나는 이제 그보다 키가 크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 준비가 끝나고, 마주 앉았을 때 조차 표정으로 서로를 읽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았다. 그건 금기였다. 암묵적인 법칙이었고, 규칙이었다.

 사랑한다.

 어머니도 예전에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흉하게 헝클어진 머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터진 입술을 연신 핥아가며. 

 점멸하는 과거에서, 나는 눈을 돌렸다. 다만,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선홍으로 물든 내 손이 있다. 아버지가 있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목이 잘려나간채 말했다. 맛도 느끼지 못 한채 식사가 끝났다.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언어를 발화하는 과정이 낯설다. 나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이부자리에 눌러앉아 생각했다. 어머니의 이름은, 뭐였지?

 법정에서의 차가운 기억이 늑골에 스몄다. 판사는 내 성장환경을 고려해 정상참작을 내렸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동의했다. 나는 너무 어렸다. 국가는 법감정이라는 모호한 물건을 철저한 시스템에 포함했다. 덕분에 국민적인 관심을 받던 패륜 살인의 가해자는 자유를 선고 받았다. 어머니는 눈물 흘렸다. 과장되게 일그러진 얼굴이 서양 고전 애니메이션과 같아 우스웠다. 그저 우스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머니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 한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왜, 이유가 없었다. 분명 당시에는 어미를 위한다 자신했지만, 나는 누구를 사랑해본적 없는 몸이었다. 멍청했다.

 기억속 아버지는 태고의 생명과 같은 숨을 뱉는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가늘고, 발작적으로 이어지는 호흡이다. 발악이다. 나는 어머니를 뿌리친다.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그의 목에 박힌 가위를 뽑는다. 울컥,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것들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다시 깊숙히 찔러 넣는다. 지쳐 쓰러진다. 

 엄마는 내 등을 감싸 안았다. 나는 눈물 흘렸다. 뻗뻗하게 굳은 혀를 달래 횡설수설했다. 당신이 죽을 것같았노라 말했다. 당신은 원래 약하지 않은가. 언제나 강한척 고개를 위로 꺾어 표정을 숨기지만, 들썩이는 어깨를 감추지 못하는 인간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 압도적인 폭력 속에서도 침묵을 지킬 수 있던 것이지 않은가. 나는 그게 싫었다. 짜증났다. 그러다 당신이 죽으면, 만약 당신이 죽으면 말이다. 그래서 죽였다. 그래서 부친의 허벅지, 복부, 끝내 목에 가위를 쑤셔박았다. 

 사랑한다.

 아버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주로 나를 교정할 때 뱉던 말이었다. 무책임의 선언이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기에, 어미를 사랑하기에, 그리 되었다.

 나는 그대로 드러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금세 곯아떨어졌다. 꿈조차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빠졌다. 어렴풋한, 지새는 달이 떴을 즈음에 간신히 눈을 떴다. 일요일이었다.

 나는 아침잠이 없었다. 의식적으로 수면 시간을 줄여나간 결과였다. 내가 의식을 가진 채 해낼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자는 시간을 줄이거나, 식사량을 제한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건 내 몸 밖에 없었다. ‘내’가 타인에게 닿는다, 그런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서로를 위할 수 있다는 말은 오만이다. 너무 오래전부터 이어져, 이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분명히 잘못된 표현이지만 누구도 고치려 하지 않는 어휘와 다르지 않다. 결국 타인의 말은 나의 사고다. 그런 사소함을 명확히 인지할 때 사람과 인간이라는 단어의 고결함은 급격히 훼손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진실해야 한다. 알맹이 없는, 허울 좋은 말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나는 그리 생각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곧장 집을 나갔다. 달렸다. 주말에는 가능하면 많이 집 바깥에서 머물고 싶었다. 집에는 어머니가 있으니까. 나의 역린이, 그곳에 있으니까. 나는 피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그걸, 그저.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어찌됐든 아버지도 인간일 뿐이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건, 자식을 가진다는 건 그처럼 유약한 인간에게는 너무 가혹했을지 몰라. 네가 없을 때의 우리는 참 행복했는데, 어머니는 농담조로 말했다. 나는 그걸 들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대화를 멈췄다. 서로에게 닿으려는 몸짓을 멈췄다. 타인을 박애로 대하되, 애정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알고 있으면서, 전혀 알지 못 한다. 그러면서도 진실이라든가, 사실같은 시덥잖은 것에 집착해 무의식적으로 글을 빚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해 정말로 깊게 다가갈 용기는 없어서, 제 나름의 공상을 글로 풀었다. 아 그래, 그게 바로 내 소설의 출처였다.

 나는 산책로에 서있다. 달리는 궤적 사이로 아스라이 아침이 번져, 나는 생각했다. 나는 0이다. 흔히, 물리에서의 0은 없음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은 나에게 서늘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디디고 서 있는 지면이 사실은 무한한,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그 에너지의 흐름이 그저 0으로 표기된다는 것이 소름 끼쳤다. 나는 0이다. 너무나 격동적으로 움직이지만, 그저 0일뿐이라,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시내를 달렸다. 그대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황갈색 위액을 토하는 통에, 월요일에는 등교하지 못했다. 

 

 “축하한다.”

 화요일 아침 교실에서, 담임은 나를 마주하자마자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몸이 온전하지 않았다. 간신히 움직이는 몸을 이끌어,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행한 등교였다. 이틀 이상 결석하는 학생은 명백히 눈에 띈다. 그건 끔찍한 일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학교에 당도한 나는 위험을 직감했다. 텅 빈 교실에서 담임이 던진 ‘축하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일주일 전 즈음, 교내 백일장에 입상했을 때와 같았다. 내가 어지간히 자랑스러웠는지 힘내어 복도 한복판에 내 글을 전시해놓았던 그 때와 같았다. 물론 전시 이틀 째 되던 날 내 글은 분실되었지만, 그의 긍정적인 기운을 나는 꺼렸다.

 아침 8시 35분 즈음, 교실은 아이들로 가득 들어찼다. 모두 감자였다. 눈이 흐리멍덩했다. 얼굴은 굽지 않은 도자기처럼 윤곽이 또렷하지 못했다. 그런 군중 사이에서, 담임은 나를 단상 위로 불러냈다.

 “예?”

 나는 그만 멍청하게 되묻고 말았다. 아뿔싸, 싶었지만 담임과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핥듯이 살피다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안도했다. 그들을 따라 웃었다. 급하게 책상을 박차느라 그대로 엎어졌다. 아이들은 더 크게 웃었고, 담임 역시 웃음을 삭이느라 별다른 말 없이 나에게 상장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끝났다. 내가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사라지고, 웃음과 익살이 남았다. 나는 멍청이인가? 나는 광대인가? 하지만 내 익살은 비루하다. 타인을 웃긴다는 건, 코미디라는 건 다른 무엇보다도 긴밀한 대화였다. 나에게는 타인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멍청이조차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아, 나는 0이 아니다. 나는 쓰레기다. 그저, 타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쓰레기다. 실감하고서, 그대로 쭈그러들었다. 얼굴을 붉힌 채.

 학교에서 나는 종종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점심시간의 도서관은 그런 곳이었다. 비슷한 놈들, 하지만 대부분은 겁쟁이였지 나와 같은 쓰레기는 없었다. 하루키, 한강을 읽는 놈들은 없었다. 굳이 따지면 그들은 미야베 미유키나 이영도의 글을 읽는 편이라, 말 한번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절대 어울릴 수 없다'라는 말도 안 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구석에 박혀 수려한 문장을 곱씹는 나날. 그런 매일 절망하는 나날 속에서, 나는 다시 K를 만났다. 시립 도서관에서 처음 눈이 맞고서 꼬박 2주 만이었다.

 국외 소설 서가에서 마주친 K는, 처음 만났던 날과 마찬가지로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투명한 눈이었다. 그 너머가 훤히 보이는 얕은 눈동자였다. K는 넋이 나간 내 얼굴 쪽으로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합성 펄프 재질에 줄이 그어진, 까만 글씨로 가득 채워진 교내 백일장 용지였다. 나는 의아했다.

 “이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

 K가 들고 있는 건 분명 내가 백일장에서 써낸 콩트였다.

 “처음 봤을 때 마음에 들어서 뜯어왔어. 이거 네가 쓴 거 맞지?”

 K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실의 범인은 이 녀석이었나. 그런 와중에도, 그가 풍기는 유약한 수영장 냄새가 기분 좋았다. K는 방긋 웃었다.

 “한참 지켜보고만 있었네.”

 그 한참 지켜보았다는 말의 무게를 나는 단박에 실감할 수 있었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 이름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단 ‘매력적’인 이성에게 그런 말을 듣고서 얼굴 붉히지 않을 사춘기 소년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도서관의 서가 사이에서, 염소 냄새가 은은하여. 나는 목소리를 쥐어짜네 물었다.

 “왜?”

 “너를 사랑하니까.”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K는 그게 아니면 도대체 또 다른 이유가 있느냐는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다시 ‘왜’, 하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 많은 남자는 질색인데.”

 조만간 자주 볼 거야, 하며 K는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나는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다. 무얼 알 수 없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K의 말마따나 그날부로 우리는 종종 만났다. 그가 일방적으로 얼굴을 비췄다고 해야 옳겠지만, 나는 그때마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동시에 두려워졌다. 새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의 종특이었다. 어차피 절망뿐이리라 확신해버리고 마는 인간의 종특이었다.

 우리는 쓸데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신중하게 대화의 깊이를 조절하고 있다고,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K를 자주 만나는 동안 그의 손목에 있는 멍을 보았다. 어미와 닮은 상처를 보았다. 그는 그것들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내가 눈을 땔 수 없도록. 나는 짐작했다. 묻지 않았다. K역시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내가 이리저리 돌려물을 때에도 K는 능숙하게 얼버무렸다.

 "너는 어째서 수영을 하는거야?"

 언젠가 내가 던진 질문에, K는 추궁하는 눈으로 나를 핥았다. 시야가 노랗게 타는 기분이었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매번 그랬다. 강한 죄의식을 느꼈다.

 "도망칠 때 썼던 팔, 다리, 허파를 좀 더 나은 곳에 사용하고 싶었으니까."

 그래, 이정도가 괜찮은거야. 나는 생각했다. K는 언제나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 완전히 눈 돌리는 것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이따금 내 호흡이 가빠지면, 그는 흉터를 드러냈다. 천천히 속삭였다. 똑바로 봐.

 “그만하면 안될까.”

 그런 의미 없는 만남이 이어진지 두어달 정도 됐을 때, 나는 말했다.

 “뭘?”

 “놀리는 거야?”

 K는 꼭 여든 정도 먹은 노인처럼 클클 웃어대며, 나는 널 사랑하니까, 하는 의미 모를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럼 적어도 그 이유라도 설명해줘.”

 절박한 심정이었다. 타인에게 사랑받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분명 그를 실망하게 할 테니까.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무거운 감정을 좌절시키는 건 끔찍했다. 그의 숭고를 좌절시킨다면 나는 필히 죽는다. 죽어 마땅하다. K는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볍게 말했다.

 “네 글이 엄청 웃겼으니까.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기로 했으니까. 그게 전부야.”

 그 순간만큼은 정말 바보가 되어버린 심정이었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서도, 그 순간 만큼은 더더욱.

 “내 글이 웃겼다고?”

 굳이 거짓을 보태지 않겠다. 어차피 나에게는 그럴 재주도, 여지도 없으니까. 나는 허탈을 품었다. 난생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비유하자면 그건 허기와 같았다. 아무리 받아먹어도 결코 충족될 수 없을 것만 같은 허기였다.

 “네 글에는 가짜가 없었으니까. 그게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내가 너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거야.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으니까.”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K는 발끝을 세워 도서관 바닥을 살살 긁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랑은 배워야 하는 감정이야. 결국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익혀야 하는 감정이라는 거야. 나는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고 싶어. 너는 다른 것들은 전부 끔찍해도 거짓된 건 없잖아. 사실, 세상 모든 인간이 그렇겠지. 인간은 끔찍해. 어렴풋한 장막으로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갈 뿐이지. 하지만 너는, 너는 아니잖아? 네 글에는 사실 밖에 없었어.”

 “그건 소설이었는데.”

 K는 웃었다. 킥킥대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는 듯 갸냘튼 호흡이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진실 속에 진실을 담는 건 불가능해. 그런 것들은 전부 거짓말이야. 허구로 간신히 빚어낼 때, 그제서야 진정성은 드러나는거야. 어째서 음악과 시는 인간의 마음을 울리지?”

 그건 정말 웃기는 소리였다. 정말이지, 웃기는 소리. 나는 K의 말을 듣고서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러니까 너는 좀 더 너를 사랑해주길 바라.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를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럼, 내 시합을 보러와. 그러면 너도 분명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야. 물론 성적으로. 내가 진실로 보여줄 수 있는 건 수영 밖에 없으니까. 네 소설처럼.”

 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거칠게 일어난 손의 촉감을. 그 미련한 음색을. 지금까지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무작정 내 손을 끌고 걸어가는 K에게 물었다. 가을 냄새가 물신 오른 거리였다.

 “뭘?”

 “우리 관계 말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하고, 그렇다면,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앞서나가던 K는 건조하게 말했다.

 “이대로. 그냥 지금 이대로면 되는 거야. 너는 내 수영을 알고, 나는 네 글을 알고, 막연히 사랑하는, 지금 이대로면 되는 거야.”

 나 역시 동감했다.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서로를 진실하게 여길 수 있다. 진실한 것만을 보여줄 수 있는 거리, 가까이하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 우스웠다. 하지만, 우스우면 또 어떤가. 나는 K의 손을 느꼈다.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지. 소녀'가' 헤엄침에, 소년'은' 달렸다. 타인에게 닿으려는 애처로움은 암시, 임시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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