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지 않고 인정하기
- 작성자 탈퇴 회원
- 작성일 202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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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살아왔는지, 지난날에 후회는 없는지. 오늘 밤 기숙사에 돌아가 잠이 들기 전, 한 번쯤 되새겨보세요. 내 허벅지를, 내가 마구 소리 지를 수 있을 정도로 꼬집을 수 있는지. 그렇게 뚝뚝 눈물을 흘리다 내일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만납시다.”
그런 말을 들었다. 내 스스로 소리 지를 수 있을 만큼 허벅지를 꼬집어보라는 말. 나는 곧바로 기숙사에 돌아가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하얀 허벅지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흐느껴지지도 않았다. 크흠. 한 번 헛기침을 했을 때 내 목소리는 그 누구보다도 맑고 카랑카랑했다.
빨갛게 부어오른 허벅지를 뒤로 한 채, 나는 샤워를 했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스스로가 괴로운 것인지, 환경의 탓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서 돈이 없어 굶어본 적은 없고, 원하는 걸 다 갖진 못했으나 풍족하게 살았고, 어릴 적 유행하던 닌텐도도 주말마다 해보았으며, 학원도 다녀보았고, 영어 원어민 선생님과도 만나보았으니 분명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스스로 고통 받고 매일 같이 우는 이유가 억울했다.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가 복에 겨워 이런 생각에나 빠져산다고 느꼈다.
샤워를 끝낸 뒤, 구석에 쳐 박힌 콘센트에 전선을 꽂았다. 구닥다리 헤어드라이기가 털털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나는 뜨거운 바람으로 재빠르게 머리를 말리고는 방 불을 껐다. 하루 종일 공부만 했더니 온 몸이 피곤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텅 빈 침대 하나가 보였다. 룸메이트 친구의 것이었다. 그 친구는 독감에 걸려 3주전에 퇴소해서, 겨울방학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어두운 방에서, 나 홀로, 마음껏 생각하고, 흐느껴 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낮에 들었던 그 말을 들으며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했다. 채 2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인생을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봤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던가.
이상했다. 나는 분명 전교 1등도 아니고 모든 시간을 공부만 하며 알차게 보냈던 것도 아닌데 지난날이 후회되지 않았다. 분명 후회로 가득 차 눈물을 또옥 똑 흘려야 하는데,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더 정곡을 찔렀다. 속으로 말을 마구 내뱉었다. 넌 지금까지 한 게 없잖아. 고작 그 성적 가지고 뭘. 일부러 더 상처 되는 말을 했다. 진정으로 마음에 찔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제대로 된 반성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더 더 심장이 아파오게 말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나는 도저히 후회하지 않았다. 더 날카로운 말, 뾰족하고 예리한 말. 나는 그런 말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 말들이 도저히 찾기 어려워지면 일부러 말을 더 날카롭게 갈았다. 끝끝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화가 나는, 그리고 내 스스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말에 도달했다.
‘고작 열등감에 눌린 네가 뭐라도 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서 후회되지 않는 거야. 더 열심히 살지 않은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라며 합리화해왔기 때문이야. 그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야.’
나는 끊임없이 반성을 했다. 그래야 눈물이 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스스로 겁이 날 때까지 날 몰아붙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메마른 내 눈가는 오히려 더 건조해져서 따갑기까지 했다. 대실패였다.
그 날 밤, 나는 그런 꿈을 꿨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초등학교 동창 남자애가 같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 남자애의 엄마가 날 쳐다보면서 무슨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그러니까요, 쟤는 불쌍해서 어째? 쟤 동생은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는데 쟤는 왜 저럴까.”
끼리끼리 모인 아줌마들은 마구 킥킥대며 웃었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얇은 가방끈을 움켜쥔 채로 아파트 언덕을 내려갔다. 마구 뛰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그렇지만 적당한 속도로. 너무 천천히 걷게 되면 농땡이를 피운다고 또 욕을 먹을 테니 말이다. 나는 적당한 속도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갔다.
꿈에서 깨자 기분이 뒤숭숭했다. 마치 지금까지의 삶을 요약 정리해 보여준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지금도 모여 내 욕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영원히 가십거리로, 또는 밥상머리 소재로 쓰일 것만 같았다. 누가 봐도 좋아할 소재였다. 천재 동생과 비교당하는 슬픈 누나의 이야기. 그제야 눈물이 흘렀다. 나는 영영 이렇게 살아야 할 사람인가 보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단순히 초등학교 공부를 넘어서서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스스로 고등학교 생물학 책을 봤다. 관련 도서까지 전부 섭렵했다. 과학 영재로 지냈고, 과학을 그만큼 좋아했다. 주변에는 모두 동생을 과학 영재라 불렀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동생은 언제나 화려한 인정을 받았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고, 너무나도 간절한 나머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매일 매일 피아노를 칠 정도였는데, 결국 꿈에는 닿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재능이 없었다. 끈기도 없었고, 센스도 없었다. 연습을 하다가 단 한 번의 실수라도 하면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고 특히나 선생님께 레슨을 받아야 할 때에는 오 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들락날락거릴 정도였다. 다른 누구의 앞에서 실수를 한다는 건 용납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피아노가 괴로웠고, 너무나 좋았으나 힘들었고, 피아노를 칠 때마다 불안해서 차라리 피아노 뚜껑에 손이 짓눌리길 바랐다. 나는 결국 열한 살 때 피아노를 때려치웠고, 그 이후로는 피아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음은 체육이었다. 유일하게 사람들이 내게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 건 체육이었는데, 흔히들 내게 ‘여자치고는’ 체육을 잘한다며 말을 했다. 그 덕에 우연한 기회로 교육청 대회에서 상도 탔다. 덕분에 당시의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당연스레 집에 가면 칭찬을 받으며, 모두가 축하해주리라 생각했다. 나는 기쁜 마음을 안고, 도합 천 미터를 전력 질주한 내 다리에 뿌듯함을 느끼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날, 엄마와 아빠는 그 누구보다 화나있었다. 영어 학원을 빠진 것이 화근이었다. 그 날 내가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영어 학원을 빠져야만 했는데, 그 일이 엄마와 아빠의 화를 돋운 것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부터 운동에 대해 엄마와 아빠에게 온갖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다른 종목으로 전국대회에 나갔을 때도, 대표 선수가 되었을 때도, 주장이 되었을 때도, 나는 언제나 ‘동생보다 공부는 못하면서’ 운동만 하는 못난 딸이 되어야만 했다.
그 때 쯤 내 열등감은 더 심해졌다. 완전히 삐뚤어져서 학원에 가기 직전에는 심장이 마구 뛰고 심리가 불안해져 학원조차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그 덕에 성적도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따라서 전교 20등이던 내 성적은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나는 점점 희열감을 느꼈다. 이제 진정한 엄마 아빠의 못난 딸이 됐다. 이제 사람들이 나를 진심으로 욕할 것이다. 나는 불안함과 희열감에 가득차 점점 행복해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불행함과 허무함이 밀려와 매일같이 울기도 했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루에도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기분이 마구 왔다 갔다 했으니 솔직히 말하면 제정신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난, 이게 고작 이삼년 전의 일임에도 뚜렷한 일들 외에는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 머릿속에서 중학교 생활은 전부 리셋된 것이다.
그래서 난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 대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글쓰기는 너무나도 즐거운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속에 있는 말들을 지껄여대고 삭제하니 아무도 내 진심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학교에서 모범상을 쓸어오는 아이가 이렇게 추악한 모습으로 남긴 배설물이 아무에게도 공개되어지지 않는다니! 나는 기쁨에 가득 찼다. 행복했다. 나는 한글 파일 앞에서 그 누구보다도 더럽고 악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즈음 동생은 점점 앞서갔다.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모두가 동생을 시기 질투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시기질투한 사람은 나였다. 동생은 전교 1등자리에 부담감을 느껴 손톱을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고, 시험 전날 홀로 KTX를 타고 부산까지 내려갔다. 물론 도중에 붙잡혀 돌아오긴 했으나 그 당시의 나와 내 동생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나는 완벽해서 불완전했고, 다른 하나는 완벽함을 꿈꿔서 불완전했다. 그 때였다. 그 즈음 동생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동생은 학교 백일장을 휩쓸었다. 글을 너무나도 잘 썼다. 이따금 부모님은 말했다. 누나보다도 훨씬 글을 잘 쓴다고. 누나가 백일장 상을 타온 것보다 더 잘 쓰는 것 같다고. 이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너는 책도 안 읽어서 글을 그딴 식으로 쓰는 거라고. 단 한 번 진심으로 받았던 내 작문 실력에 대한 칭찬은 모두 비교로 무너졌다. 참담했다. 그 순간, 나는 피아노를 그만뒀던 것처럼, 운동을 그만뒀던 것처럼, 글도 그만두고 싶었다. 특출하게 쓰는 것도 아닌 거, 고작 일 년도 안 했던 거, 그냥 전부 다 그만두고 아예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너무나도 허무했다. 내가 치열하게 지켜온 것들은 모두 동생에 의해 무너지는 구나. 천재들이 노력하는 사람들을 갉아먹는구나.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던 간에 그들 앞에서는 전부 무너지는구나. 아, 그럼 나는 앞으로 살 이유가 없다. 나는 기껏 해봐야 할 수 있던 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노력하는 일’이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나는 굳이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할 필요가 없겠구나…….
그래서 새로이 시도하게 된 것들은 다양했다. 어쩌면 동생을 피해 색다른 것을 시도한 것일지도 몰랐다. 일명 ‘얕고 넓게 시도하기’ 전법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렸고, 캘리그라피를 했고, 영상을 만들었고, 포토샵을 했고, 노래를 불렀다. 물론 공부도 다시 다잡았다. 동생만큼은 못했지만 하위권이던 성적을 조금은 올렸다. 덕분에 나는 밖에서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며 칭찬받았다. 물론 아직도 안에서는 공부 외에 쓸데없는 것만 한다며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에도 재능이 없었던 나는 아주 얕고 얕은 실력으로 그렇게라도 인정받았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리고 씁쓸했다. 나는 아직도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동생보다 더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들을 해치워나갔다. 건강하지 못한 수법이었고, 분명 좋은 경험이었으나 힘들었다. 덕분에 깨달았다.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그냥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그러니 채 이십 년도 되지 않는 삶 동안, 내가 얻은 것이 있다. 물론 아직도 열등감에 짓눌려 살고, 그런 나를 혐오하기도 한다. 내가 노력하는 모든 것들이 동생의 일주일이란 시간에 추월당하고, 전부 무산될 때. 괴로운 눈물을 흘리며 꾸역꾸역 수학문제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천재가 가진 시간이 부러워 아직도 꿈속의 나는 천재이기를 바라며 겨우 잠에 들기도 한다. 사실 아직도 정확한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겨우겨우 내린 결론이 있다. 내가 동생보다 덜 인정받을지언정, ‘나’라는 한 책의 결말은 내야한다는 것이다. 그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든 희극으로 끝나든, 그래도 나는 희극을 더 좋아하므로, 희극이라는 결말이 더 괴로울 것은 아나, 힘든 만큼 얻어지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되므로. 그렇게 나는 이 답도 없고 무기력한 책 속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삶이 무의미하지도 않았고, 허무하지도 않았으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꼭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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