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올 수 있는 병 정신질환{드라마: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2-11
- 좋아요 2
- 댓글수 1
- 조회수 2,902
글에 들어가기 전 질문을 던지겠다. 정신질환, 정신과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대들은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를 이해하는 사회인가? 이 세 질문을 마음에 품고 이 글을 읽기 바란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차별의 시대다. 특히 일반인들과 다른 사람들은 이 차별에 노출 되기 쉽다. 텔레비전이나 개인 방송을 보면 차별을 이용하여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다른 이들을 죽이는 그런 영상이나 댓글들이 많다. 나 또한 이 차별을 보고 웃고 떠들었다. 차별 받는 내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지속 되는 기침이 작년 10월부터 지속 되어 중3에 올라온 지금 정신과에서는 기침 틱으로 판정이 되었다. 난 너무 창피 했다. 하지만 어쩌겄냐 이게 나의 팔자인 것을 그래서 할 수 없이 이기침 틱을 인정했다. 그렇게 기침을 인정하고 살던 2023년 11월 23일 개인 방송에 올라온 틱을 조롱하는 영상과 댓글을 보게 되었다. 난 너무 슬펐다. 틱이 죽을 때 까지 맞으면 해결 되는 일도 아니고 틱이 장난감도 아니고 왜 이 것 가지고 놀리는 것일까? 사람을 왜 마음 깊숙히 죽이는 것인가? 난 좌절하여 시험이 끝났지만 몇일간 충견에 빠져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그렇게 난 다시 우울에 빠질번 했지만 우연히 개인방송을 넘기다 보게된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고 이 우울에서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이 날 문화에는 사람을 죽이는 힘 뿐 아니라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은의 이야기}
이 드라마는 실수가 많은 3년차 내과 간호사 다은이 정신건강의학과로 가게 되서 일어난 일들을 주로 담고 있다.다은은 조울증,피해 망상,가성 치매 환자등을 만나 성장해 갔지만 퇴원한 환자 김서완의 자살로 해리성 기억상실과 우울증에 걸려 결국 다은은 다른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한 다은은 많이 힘들어 했다. 정신과 약을 먹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질환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런 다은도 주변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으로 정신병동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엣날 다은의 병동에서 입원했던 김성식을 다은이 입원한 병원에서 만났으며 얼마 뒤 다시 엣날에 다은이 있었던 병동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문제는 다은이 퇴원하고 다시 정신병동에서 일 하는 것을 이 김성식의 형이 알게 되었고 결국 정신병동의 보호자들 또한 이 일을 알게되어 다은과 병원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 아니냐."라는 등의 말로 해고를 요구했다. 그 때 수 간호사인 효신이 가족인 환자들이 모두 사회에 나가면 모두 똑같은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이런 효신의 말과 정신병동 사람들과 항문외과 교수 고윤의 노력으로 다은은 다시 기 죽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 다은 뿐 아니라 다은의 주변인물들의 서사도 이 드라마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먼저 수 간호사인 효신은 조현병 동생을 챙기며 살았으며 항문외과 교수 고윤은 강박이 있으며 간호사 차쌤은 워킹맘이라 아이를 잘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있으며 다은의 친구인 유찬도 공황이 있다.가성 치매를 가진 환자는 딸의 학교 생활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커져 가성치매를 갇게 되었고 김서완은 계속 떨어지는 시험에 심한 우울이 생겼으며 성식은 사회 생활의 정신적 학대를 받아 사회 불안 장애를 하람은 보이스 피싱으로 피해 망상을 간호사 들레와 리나는 엄마로 부터 받은 압박과 강요 상처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며 이를 단순 서술하는 방식이 아닌 적절한 비유로 시청자들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정신질환 그것은 사회의 잘못인가?개인의 부족함인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난 '정신질환이 사회의 문제인가, 개인의 부족함인가?'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난 정신질환은 사회의 잘못리하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 나온 거의 대부분의 환자는 보이스피싱,여유 없는 삶,수직적인 사무 관계등 현제 사회 문제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원인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가정사로 인하여 기침 틱과 우울증 유년 시절 분리불안을 겪었다.이는 환경 문제 즉 사회문제로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
이 드라마에서 수 간호사인 효신의 대사중 "정신병이라는 건 그런겁니다.언제 어디서 누구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요. 본인들만 안 아플거라고 장담하지 마세요."라는 대사가 있다. 난 이 대사에 살을 더 붙이고 싶다. "마음 속의 아이가 너무 아파 크게 울면 결핍이 되고 타인들의 파도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공황이 되고 슬픔의 유통기한이 넘어가도 슬퍼지면 우울이 되는거고 이 모든 것중 하나가 음성이나 운동 행동으로 그 것이 틱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와 같이 차별과 영상으로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이 드라마가 말하듯 우린 항상 좋아지고 있다. 지금은 무섭겠지만 조만간 아침이 올 것이다. 아침이 오기 전 새벽이 제일 무서운 것처럼 새벽에 서 있는 그대여 버텨라. 이 드라마를 보고 위로를 받아라. 궁금해서라도 버텨라. 정신질환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이다. 그러니 주눅들지 마라."라고 전하고 싶다.
{그대들도 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
남에게 상처를 주고 차별하는 세상으로 만드는 4차 산업 혁명형 살인자들에게 "그대들이 안 아플거라 생각하지마라! 정신질환이란 그런 것이다. 자만마라. 계속 사람들의 마음을 죽이면 언젠가 그에 대한 업보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싶다.
{글을 마무리 하며}
글에 들어가기전 물었던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는가? 이 질문을 세상에 던지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없어졌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으로 난 만족한다. 주변에 마음이 힘들거나 아픈 사람들을 봐주자.그들에게 따뜻한 희망을 전달하며 지난 날의 나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난 추천한다.
추천 콘텐츠
* 걸어온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 발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발이란 무턱대고 걸어서, 땅과 마주하는 일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이걸 굳은살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천천히 무감각해지는 발의 이야기는 굳은살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괜찮지만, 당신들은 괜찮겠어요? 제 발이 지나온 이야기가 약간 아플 수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궁금하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만 눈은 조금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나는 분명, 경고했다. **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굳은살 이야기가 뭐 그렇게 듣고 싶은지, 아니면 공감받고 싶은지 눈을 크게 뜨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스쳐 지난다. 사실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걷고 있는 길에 바람이 꽤 차갑다. 강원도 산간의 겨울은 역시 눈도 많이 내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골바람이 도시의 골바람과 다른 매서움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 삼촌 내외와 가까운 강원도 산간으로 이사를 왔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현실에서 일종의 도피를 경험하고 싶었기에. 도시에서 살며, 들이마셨던 공기와 먼지를 이삿짐과 함께 털털 털어내고 시작한 산골 생활이라 우리 가족은 이사 가기 전까지 즐거운 것들을 상상했다. 엄마와 나의 건강 회복과 농촌에 들어가면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 하지만, 시골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텃세가 심하다던데.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한 식구가 주변에 사니까, 기댈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도시보다는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과 희망이 가득했다.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짐들은 언제 다 풀고 정리할까. 우린 서로 웃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누고, 가져갈 건 가져가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됐다. 이제, 이사 가기 전, 감사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학교 다녔을 때 쉼터가 되어준 친구. 내 휴대폰에는 그들의 이름을 이름으로 저장해 두지 않았다. 성과 이름을 같이 붙여 놓으면,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그들을 각각 ‘아침의 햇살’과 ‘늦 밤의 달빛’으로. 저장해 뒀다. 그들이 언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이사 가기 전에는 연락이 왔으면 좋을 것 텐데. 나는 확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할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기에. 모든 일이 ‘텐데’로 끝났다. 이번에도 그렇고, 저번에도, 그 이전에도 그렇고. 확신이 없었기에, 그들에게 만나자고 했던 카톡 메시지는 다른 광고성 문자들로 인해 내려갈 공간까지 내려갔다. 그런, 나랑 반대로 엄마는 최근까지도 동생네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에도 빠짐없이 잘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사람을 만나는데 거리감이 적었다. 다만, 그만큼 한 공간에 뭉쳐 있지 않으면 그들과의 관계가 금방 흐지부지하게 끝난다는 것. 엄마는 조동모임에는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겠지. 조동 친구들은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뒤,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유지되는 관계
- 송희찬
- 2026-01-25
가습기와 에어컨을 모두 끈 채로, 맞이하는 여름은 생각보다 더 덥고, 꿉꿉하다. 습기가 가득 찬 여름의 공기, 나무와 바람이 만약 신이라면, 지금, 이 날씨를 견디는 우리를 보며 신이 날 것 같다. 축축한 벽지와 눅눅한 얼굴과 몸, 그들이 원하는 게 인간의 벌이라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그 벌을 모두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후 그들을 만난데도 나는 떳떳하다.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 더 한 것들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대에서, 사람 한 명 한 명 더 깊은 곳으로 추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방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생각보다 차갑다. 여름인데, 이런 바람은 여름과 어울리지 않지만, 바람은 바람이다.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수능 대비 대신, 글만 쓰는 것도 결국 나지만, 책임은 언제나 두렵다. 그러니까, 노트북을 들고 재빨리 거실로 나가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은 휴대폰을 넘기고 있다. 이 쇼츠 하나만 더 보고 공부하는 거다. 그래, 딱 하나만 더 보고. 더 더워지기 전에 공부를 해야지 하면서도, 공부를 끝없이 밀어냈다. 손에 땀이 고이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앞 골목에서 집 쪽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현재 시각 14시다. 동생 희열의 하교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그때부터 기침이 나도 모르게 갈비뼈를 짓누르고 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거부 반응. 오늘도 하루의 대다수를 휴대폰에 다 썼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언제나 빨리 학교를 나간다. 그러면서도 매일 학교를 빠지고 싶다고 희열이는 이야기한다. 물론, 내가 학교를 쉬기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그러나 그에게도 지금 상황이 나쁘지마는 아닐 거다. 엄마, 아빠 출근해도 집에서 항상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그래도, 내가 미워 보일 수도 있을까. 아직 어리니까, 그런 상황은 일단 내버려두고 옷이나 껴 입자. 언제부터 녹아갔는지 모르는 벽지 위에 걸린 옷을 꺼내 입으며, 인간이면서 인간 다워 보이려고 했다. 그게 방과 후가 끝난 희열과 본인의 자식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자 안심이기에.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홀스를 입에 물고 흰색 마스크를 입가에 걸쳤다. 이제, 날 그저 학부모 같은 청소년으로 봐 줄 수 있겠지. 오늘도, 작년 여름처럼 습기가 창문을 적셨고, 도로에는 물웅덩이가 깊게 파여 있다. 인공적으로 다시 타임 루프 한 것도 아니면서. 감기기가 아닌 기침이 작년 초 학교를 다닐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나를 잡을 수 있는 타인은 없지만, 유일한 내가 나를 잡을 수 있는 것.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원조 고등학교에서 열공을 하고 있을 나를 지지한 친구들과 나를 고교에서 내 쫓은 친구와 선생님의 얼굴에 대하여 올해는 어떻게 지낼지 생각한다. 그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자체가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좋은 추억을 꺼내 되새김질
- 송희찬
- 2025-12-23
*주의: 본문에는 이물 표현이 있습니다. 식사하시면서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며칠 전,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만났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6개월 전이었지. 못 본 지 반년 동안 그와 나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는 2학년 1.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모두 마쳐 고3을 마주해 있고, 나는 검정고시와 수시 합격 그리고 수능을 치르는 등의 경험과 성취를 이루어 냈다. 그래, 우리 모두 올 한 해 수고했지. 또한 내년에도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온 힘을 다해 뒤척이겠지. 그런 뒤척임이 한 해 한 해 쌓이며, 우린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다 보니, 금세 열아홉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청소년이 유효한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일 년, 일 년 지날 때마다 몸은 매해 바뀌었다. 키와 몸무게가 늘기도 하지만, 어릴 때 좋아했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등 체질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작년에는 그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평소에 즐겨 먹던 얼큰한 찌개와 매콤한 닭발을 몇 입 먹지 않았는데, 먹은 뒤에 속이 끓거나, 변을 자주 보는 등의 행위가 심해졌고, 매운 음식을 거부하게 됐다. 그렇기에 옛날에 바라보지도 않았던, 사리곰탕과 튀김우동이 제일 좋아하는 라면으로 변했다. 계속 이러다가, 이들조차 맵다고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매운 것도 못 먹는 맵질이 어른이 되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음식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하지만, 매운 음식과 반대로 어릴 적 못 먹었던 비빔밥은 한 해가 지날수록 고추장, 다시 먹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지금 껏 비빔밥을 먹지 못한 이유는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트라우마. 평범했던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급식으로 비빔밥을 먹었던 그날 급식이 속에서 얹혀 기절했다. 나는 태권도에 들어가자마자 출입문에서 토를 내뱉고, 나도 모르게 쓰러져 버렸다. 일종의 침묵, 어쩌면 소란스러운 환경에서의 고요만이 내 몸을 짓눌렀다. 그런 짓누름에 눈은 점점 감겼다. 어둠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어둠을 참 무서워했는데, 그 당시에는 어둠이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휴식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어둠 속에서 쉬었을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구급 대원들이 있었고, 태권도 학원 원장이었던, 위층의 미술 선생님과 태권도 사범님 등 학원 관계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중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미술 선생님의 질문. "희찬아, 100까지 세어볼까?" 그녀의 질문에 몇 까지 세었을까? 한 사십까지는 말했던 것 같지만, 결국 100까지 세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모르겠어요." 사실, 내가 숫자 100까지 셀 수 있는지 궁금해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내가 다시 정신을 잃지 못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거겠지.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받은 뒤, 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태권도 사범님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러나, 이는 그 상황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이후, 각종 검사를 받았다. 뇌파와 CT 등 뇌에 문
- 송희찬
- 2025-12-19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현대 사회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해서 개인과 사회의 관점에서 해석한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되는 정신질환은 불가피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와 희찬님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인정하고, 한 개인으로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이지만, 다행히, 수 많은 사람들의 연구적 성과와 노력으로 인해 인간은 정신질환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셨지만,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함께 주셨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있듯이 고통과 극복이 있습니다. 글을 잘 쓰시고 좋아하시는 희찬님이 많은 사람에게 정신적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과 감정적 공감을 알리는 글쓰기를 해주신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시든 비평이든 소설이든 글의 종류는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희찬님의 비평을 보며, ‘공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중국의 유명한 현자인 공자께서는 공감에 대해서 지혜로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공감은 우리 인간 사회에서 정말 중요하고 사회의 훌륭한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덕목입니다. 이것의 대한 중요성을 알고 계시는 희찬님은 앞으로도 더욱 훌륭한 리더로서 성장하실수 있을 것 같습니다.앞으로도 긍정적인 희찬님의 글이 더욱 기대되고 보고싶습니다.많이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