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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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업’을 할 때. 피부는 투명하게 마르고 있었고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대면 찌릿거리며 정전기가 옮을 것 같았다. K는 인어. 상체는 로봇이고 하체는 진짜 물고기 꼬리였다. K는 반투명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집은 K에게 불법적으로 수조를 제공했으며 필요할 때 배터리를 갈아끼워주웠다. 대신에 때마다 K의 살점을 조금씩 떼어내서 횟감에 섞어 팔았다. 그것을 우리 가족은 ‘작업’이라 불렀다. 비린내. K 앞에선 어떤 비린내도 나지 않았다. 투명해서 기분 나쁜 수산시장 소독약 물 냄새만 주위를 둥둥 떠다녔다. 어떻게 K같은 존재가 우리집에 있는지, 애초에 K같은 존재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K를 아는 사람들 중, 그러니까 엄마나 아빠, 이모나 이모의 외동아들 중...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알고 있어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비밀을 알고 싶지 않았다. K는 감정이 없는 눈동자로 이층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K의 그런 취미 때문은 아니지만 창문에는 썬텐지가 짙게 발려 있었다. 걸어다니고 싶은 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K가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아빠를 불렀다. 아빠는 횟감을 뜨는 것처럼 K를 물에서 건져내 수건을 깐 바닥에 눕혔다. 엄마가 공구 상자를 가져왔고 녹이 슨 곳을 대충 살펴본 뒤 인공 피부를 가르고 철로 된 흉곽을 열었다. 아빠의 손놀림은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물기를 닦아냈고, 구석구석 방수 스프레이를 뿌렸다. 우리 가게는 호황이었다. 각종 인터넷 매체도 여러번 타 돈을 많이 벌었다. 나는 K의 꼬리지느러미에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던 종류의 마약 성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가 일련의 행위를 거의 마무리하는 동안 나는 관심 없는 척 철과 살이 맞닿아 있는 이음새를 여러 번 살펴보았다. 심장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데 어떻게 꼬리가 살아있을 수 있는지, 도대체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있지 너무나도 궁금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때 허공을 바라보던 K와 눈이 마주쳤다. K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것은 분명히 말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뻗뻗하게 굳어버렸다. K의 지능은 당연히 평균적인 로봇의 학습 프로그레밍과 비슷할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너무 구형이라 요즘 시장에 나오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인간형 로봇의 지능은 원래 수준이 높았다. 기업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굳이 돈을 들여 인간 형태를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능이 높은 로봇은 좋다. 지능이 낮은 로봇도 그 형태에 따라 쓸모가 있다. 하지만 지능이 낮은 인간형 로봇을 누가 원하겠는가. 아니, 그런데 기업에서 양산형으로 만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아무튼 중요한 건 K가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말이었다. K가 또다시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움직이려고 움찔거리는 입으로 시선을 집중할 때 풍덩 소리와 함께 K가 수조로 던져졌다.
ㅡ
가족 외의 누군가 K를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건 지난 여름이었다. 폭염주의보로 인해 아무도 거리로 나오지 않는 날이었고 우리 가게 역시 문을 닫았다. 그날 나는 K가 있는 수조 주위를 청소하는 중이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K를 바라보자 그 고개가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빛을 가리기 위해 썬텐지를 바른 이층 창문 밖이었다. K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골목에는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우리 집 창문 너머에 이상한 존재가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묘한 각도로 K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나는 소름이 돋아 얼른 블라인더를 내려 K의 시야를 가렸다. K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헤엄쳤지만 그날 이후로 K가 할 일 없이 바깥을 바라본다는 걸 나는 안다. 그리고 수트로 가려져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은 바른 동작으로 수어를 하고 있었다.
*
몇 주가 지난 뒤 다시 한 번 K와 알 수 없는 사람 사이의 같은 광경을 목격했을 때, 나의 마음은 숨길 수 없는 불안으로 가득 차올랐다. 우연일 수도 있지 않을까? 가족들에게 알리려다 괜히 일이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대로 상황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건지 확인만 해보는 거야.”
나는 얼굴에 썬크림을 대충 바르고 수트를 챙겨 입었다. 서빙하는 사촌 오빠의 시야를 피해 계단을 몰래 내려가 뒷문을 나서자마자 찌는 뜻한 더위에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골목 쪽에 그 사람이 아직 있었다. 나는 슬쩍 살피다 그냥 가려고 했지만 그가 손을 들어 수화를 하려는 모습을 보자 확신이 생겼다. 수어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이 동네에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등뒤로 천천히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지혜 언니?”
ㅡ
학교를 마친 뒤, 혼자 나오는 교문은 적막하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특수 섬유로 직조된 수트에 감싸져 몸의 어떤 부위도 햇빛에 노출되지 않는 상태였다. 유일하게 유리로 된 얼굴 앞판은 자외선으로부터 보호가 잘되지 않아 목까지 허옇게 썬크림을 발랐고, 밖은 더웠다. 나는 내가 한 줄의 김밥이 되어서 후라이팬에 구워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스팔트가 끝도 없이 온도를 올리느라 자글자글한 아지랑이가 허공으로 번졌다. 어깨에 맨 가방이 무거웠지만, 수트 안에서 미친듯이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다른 감각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얼른 바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빛이 반사되어 시야가 방해되었다.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겨우 바닥만 보고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부두 근처에서 폐기물을 수거하는 경찰들이 구형 로봇을 옮기고 있었다. 바닷물 속에 잠겨 있던 강철 줄은 크레인에 이끌려 천천히 올라왔고 곧 테트라포스 위로 잔뜩 녹 슨 로봇들이 줄줄이 건져졌다. 쓰레기통 형태부터 서빙 로봇, 배달 로봇, 강아지 고양이와 같은 반려 동물 로봇, 인체 등의 형태를 띤 고철 덩어리가 거대한 괴물처럼 한 뭉치가 되어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허공에 들리며 기이한 소리가 났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자 경찰들 중 한 명이 나를 알아채곤 소리쳤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 얼른 가라!”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려 도망쳤다. 왠지 속이 안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나의 부모님 세대에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바다에 방류되었다. 세계는 혼란에 빠졌고, 사회는 엄격하게 관리된 해수와 담수만 사용 가능하도록 법을 바꾸었다.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른다. 모든 교과 과목 시간에 꾸준히 언급되는 사건이나, 그 계기는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나는 막연히 전쟁으로 인해 거대한 원자력 발전소가 터진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이후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지구는 동식물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온난화로 인해 차근차근 망해가던 세계가 멸망으로 향하는 가속 패달을 밟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학 기술이 꽤 발달했다고 들었다.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로봇의 기준이 다른 국가보다 널널했고, 덕분에 골목마다 무단 폐기된 로봇 때문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단다. 엄마는 술을 마실 때마다 아빠를 붙잡으며 하소연했다. 그러니까 왜 하필 지금이냐고. 높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냐고...
시간이 많이 지났고, 예정된 암흑의 미래에도 사회는 나름 정착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답게 다가올 죽음이 내일은 아니겠지, 믿으며 계속 살아간다. 근원적 문제는 둘째쳐서라도 바닷가는 다른 지역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바다에 투기되거나 혼자 작동되다 빠져 버린 로봇들은 때마다 파도에 떠밀려 와 방파제에 부딪혔다. 얽히고 섥힌 고철 더미는 산처럼 높게 쌓여 있었고, 하굣길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오늘같은 구경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을 위험이 컸기 때문에 길거리 동물들도 국가적으로 자취를 감춘지 한참인데, 만에 하나 아직 움직일 수 있던 로봇이 오염을 퍼트린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나는 지혜 언니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언니네 동네는 우리 동네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다른 세계 취급되는 곳이다. 나는 한참을 걸어가 낡은 주택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익숙한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카메라 앞에 얼굴이 잘 보이도록 선 다음 ’언니, 나야.‘ 말을 전했다. 잠깐의 고요 뒤에 삐리릭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나는 손잡이를 돌려 맞이하는 언니를 바라봤다.
”오랜만이네.“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 분명히, 언니의 진짜 목소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지혜 언니는 인공 성대를 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빙긋 웃는다. 나도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밝은 한낮의 시간대였지만 커튼이 모두 내려져 있었고 거실에만 led형광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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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와 우리네가 있는 지역은 경상남도 외곽의 항구와 가까운 곳이었다. 아주 가난하지도, 딱히 부유한 곳도 아니지만 한달에 두세번 외식을 즐기고 중산층 이하의 소득을 가지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 중에서도 언니 쪽의 동네는 암묵적으로 이등 시민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 그것도 방사능 유출로 인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혜 언니는 선천적으로 성대가 없이 태어난 사람이다. 열여덟 살이 다 되어서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인공 성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은 목소리를 사용하는 게 어색해서 농인으로 살고 있지만 나에게만큼은 불편하더라도 소리를 내서 말해주었다. 나는 수어를 잘 몰랐고, 언니는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배려해주는 사람이었다.
”웬일이야?“
며칠 전, K를 지켜보는 수상한 사람 간의 소동 이후로 그 이가 지혜 언니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날 나는 태연한듯이 언니를 불러세워 언제 집으로 놀러가겠다는 약속까지 잡았다. 어릴 때, 바다에 빠질 뻔 한 나를 우연히 구해주었던 언니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멀어졌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찔리는 점이 있었기에 언니의 호의를 받아줄 수 없었다.
“물이라도 마실래? 간식은?”
“난 괜찮아.”
감정이 잘 담기지 않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껄끄러웠다. 언니의 시선을 피한다. 지혜 언니는 거실로 걸어가 소파의 가운데에 앉았다.
반 세기 전까지만 해도 종이책이 대중화되어 있었다던데, 요즘에는 학교나 공공기관이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 도서를 이용했다. 내가 들은 바로 과거의 사람들은 종이책의 특성을 좋아해서, 문서가 전자책으로 완전히 대체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이렇게 갑자기 다가온 환경 파괴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지금 시대에 나무나 풀 같은 초록 식물은 너무 희귀했다. 식량을 키우기 위한 물도 부족한 판에, 길거리 나무들까지 챙기다가는 인간들이 먼저 없어지기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종이책은 출판이 금지되었고, 남아 있는 책들은 사치품의 반열에 올랐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 있던 종이를 부자들에게 팔아버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실제 책을 구경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지혜 언니 집에는 종이책, 특히 동화책이 많이 있었다. 나는 언니의 집에 갈 때마다 과거 사람들과 부자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 손 끝에 느껴지는 부들부들한 질감, 열을 맞춰 서있는 활자를 직접 만져본다는 데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이 느껴졌다. 지혜 언니는 5살 때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고 한다. 방사능 피폭 2세대로 선천적 기형아였으니까 부모님들의 건강은 많이 안 좋으셨을 것이다. 언니는 그런 부모님께 재산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많은 양의 책을 물려받았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과거에 인기있었다던 동화를 많이 알고 있었다. 이것들 중 반만 팔아도 지금보다 훨씬 잘 살 수 있겠다. 속으로 그런 감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음 대화를 기다리는 지혜 언니를 보며 나는 이대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가다듬은 채 준비한 말을 꺼냈다.
“언니는 K를 알지?”
숨막힐 듯한 정적이었다. 하지만 언니와 함께 있을 때는 이 편이 더 익숙했다. 나는 언니의 예전 꿈을 떠올렸다. 언니는 기계공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지금은 흔한 동네 한구석에 처박혀 살고 있었지만 어릴 적에는 뉴스나 방송에서 뛰어난 재능으로 알려져 화제였다고 했다. 나는 언니가 왜 그 꿈을 포기했는지 모른다. 언니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은 왜 우리집 창문을 보면서 수어를 썼냐고, 그것부터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 나는 K라는 알 수 없는 존재를 누구에게라도 밝히고 싶었다.
“언니가 창문으로 바라보던 그 애 말이야. ...K가 이상해. 언니가 좀 봐 줘.”
*
오래된 계단이 삐거덕 소리를 냈다. 지혜 언니는 천천히 걸어올라갔고 나는 뒤따라갔다. 이층은 아주 캄캄했다. 아래층에서 장사를 하느라 모두 정신 없는 틈을 타 우리는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줄어들고 언니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화장실을 향해 직진했다.
”거기가 아니야.“
나는 언니를 이끌며 반대편으로 돌았다. 안쪽에는 화장실이 두 개 더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당연히 불법 개조된 공간이었다. 나는 두 번째 화장실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유일하게 빛나는 형광등이 망막을 찔렀다. 언니는 눈을 깜빡이다가 잠시 뒤 실눈을 떴다. 언니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해갔다. 타일 바닥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수조. 그 안에 사람만한 인어 하나가 빙글빙글 돌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언니는 물이 흘러넘치는 수조에 잠시 손을 가져다 댔다.
“정말 로봇이잖아.”
“응. 그리고 하체는 진짜 물고기 꼬리야.”
”난 몰랐어.“
”정확하게 알고 있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뭐일 것 같았는데?“
”처음에는 너나 가족들인 줄 알았지.“
”썬텐지로 가려져 있었는데 안쪽은 어떻게 본 거야?“
그 질문에 언니는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새 기능을 개발 중이었어. 썬텐으로 가려도 너머를 볼 수 있도록 수트 앞 유리판을 개조해봤어.“
”뭐? 언니. 그건...“
범죄잖아. 나는 간신히 뒷 말을 삼켰다.
”알아. ...여러 기능을 테스트 해보다가 얻어걸린 거야. 그리고 처음에 너희 집을 봤던 것도 의도한 게 아니었어.“
언니는 당황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찜찜했지만 나도 지혜 언니를 더는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을 K를 앞에 둔 채 하자니 웃기는 상황이라 입을 다물었다. 어찌 됐든 언니를 여기로 부른 건 나의 선택이었다.
“완전히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형체 정도만 흐릿하게 구별할 수 있어. 꼬리 부분은... 물결 때문에 몰랐지."
"수어는 어떻게 된 거야?”
언니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도 몰라. 그날은 너무 답답해서 사람이 없을 때 잠깐만 걸으려고 했거든. 어차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변덕이었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럼 언니가 나에게 붙잡혔을 때, 그때는 왜 수어를 하려고 했냐고.
”그런데 저거.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걸까? 비린내도 안 나는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했으나, 언니가 K의 기묘한 특성 중 하나를 바로 알아차릴 줄 몰랐기에 깜짝 놀라버렸다. 내가 다음 질문을 어떻게 꺼낼지 머리를 팽팽 돌리려 할 때 우연히 K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헉.”
깡!
순식간이었다. 화장실을 날카롭게 울리는 큰 소리가 났고,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언니를 끌어당겼다. K는 여태껏 공격성이라곤 전혀 보인 적이 없었다. 모든 로봇에게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제 1 법칙이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또 내가 K를 봐 온 세월 동안 K는 우리 가족들이 무슨 짓을 하던 어떤 반항도 없었다. 방심한 사이 K는 유리벽으로 가까이 다가와 언니가 있는 쪽으로 온몸을 수조에 부딪혔던 것이었다. 다행히 그 자리엔 금조차 가지 않았지만 대신 언니는 물벼락을 맞아 흠뻑 젖어버렸다. K는 여태껏 본 적 없는 형형한 눈동자로 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로봇에게는 감정이 없으니 나의 착각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K의 눈썹이 찡그려졌다는 건 분명했다.
사태를 파악하며 가슴을 추스리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냐며 외치는 소리가 각자 웅성거리는 손님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을 뚫고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황급히 K가 있는 공간에서 빠져나와 문을 거칠게 닫으며 걸어오는 엄마 앞으로 달려갔다.
“아무 일도 없어요. 실수로 미끄러 넘어졌거든요.”
엄마는 정말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아까 언니를 끌어안으며 물 묻은 상의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엄마는 알았다며 주의를 주듯이 당부했다.
“그래. 지금은 바쁘니까 공부 하다가 밥 먹으러 내려와. 그리고 되도록이면 그쪽 화장실엔 자꾸 가지 말고.”
네에. 나는 착하게 대답했으나 엄마가 다시 몸을 돌려 내려갈때까지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었다. 큰일날 뻔했다. 긴장한 마음에 한숨을 끊어서 내쉬며 다시 K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가자 그곳에는 당황한 표정의 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K와 함께 문 밖의 동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엄마는 갔어. 안심해도 돼. ... 그러니까 언니도 이제 가. 위험하니까.”
“잠깐만. 너 K를 살펴달라고 부른 거 아니었어?”
그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K에게 지혜 언니의 도움이 필요한 건 맞았다. K는 최소한 20년은 넘은 구형 로봇이었고, 여태껏 기술적 지식이 전무한 우리 가족끼리 적당히 K를 손보아 왔으니 말이다. 혼자서도 신기술을 개발해낼 줄 아는 언니라면 당연히 K를 손봐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를 이곳으로 부른 나는 본래 속셈이 따로 있었다. 지혜 언니를 통해 K가 하려는 말을 들으려던 것이었다. 나는 K가 나를 바라보며 분명하게 입을 움직였던 날을 떠올렸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왜 하필 나를 쳐다보며 그랬던 걸까. 그러나 지금 언니에 대한 K의 반응을 보니 궁금증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아직도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은 채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았다. 인간에게 공격성을 품은 로봇이라니. 더 알려고 하지 말자는 위험 경보가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울렸다. 덮어두고 여태껏처럼 잘 살아가면 된다고.
“아니야. 다시 생각해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 얼른 가.”
“너 혹시 아까 K가 한 행동 때문에 그래? 그건 내가 고칠 수 있어. 로봇 3원칙. 내 컴퓨터만 있으면 간단하게 코드를 재입력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됐어. 그러다가 더 잘못되면 어쩌려고. 내가 실수한 것 같아. K는 원래 저렇지 않았어.”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언니의 간곡한 설득에 그만 넘어가 버렸다. 언니는 K에게 자신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며 급기야는 비밀을 불어버리겠다 반 농담조의 협박을 섞었다. 나는 K의 공격성이 다시 드러나진 않을까 두려웠으나 이후로 몇 번 다시 마주쳤을 때 그날과 같은 일은 더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히 덧붙이지만, 언니의 첫번째 약속은 순 거짓말이었다.
언젠가 컴퓨터를 챙긴 언니가 저녁 시간 집으로 몰래 찾아왔을 때 우리는 낑낑거리며 K를 건져내 바닥에 눕혔지만 아무리 구석구석 살펴 보아도 컴퓨터와 연결된 코드를 꼽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걱정했던 게 무색하도록, 모든 일은 꽤 나쁘지 않게 흘러갔다. K를 볼 때마다 느꼈던 죄책감, K를 이용해 우리 가족이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불편함도 지혜 언니에게 털어놓음으로써 많이 나아졌다. 언니는 가끔 K를 보러 왔다. 학교 시험기간이 시작되었을 때는 공부 중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것을 핑계로 대 언니를 더 자주 집에 부를 수 있었다. 그런 날들이 쌓여가며 점차 셋이 만나는 시간보다 언니와 K둘이서만 남게 되는 시간도 길어졌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날씨는 좀처럼 추워지지 않았지만 더위는 익숙했다. 내 부모님은 지혜 언니가 날 구해주었을 때부터 언니를 알았다. 하지만 내가 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하셨고, 뭣모를 때는 그저 언니를 보고 언니와 노는 시간이 좋았다.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며 진지하게 지혜 언니를 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마 아빠가 얘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등 시민이 모여있는 주택가는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더럽고 음침했다.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 일은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언니와 사이가 잠시 멀어졌으나 지금의 나는 지혜 언니와 다시 친해질 수 있어 좋았다. 모든 게 이대로만 계속 되었으면.
언니 집은 종이 냄새와 철 냄새가 함께 났다. 나는 언니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 암막 커튼을 친 채 불 꺼진 거실에서 돌아가던 텔레비전을 의미없이 바라보는 시간도 즐거웠다. 그때 뉴스 아니운서가 이 지역의 명칭을 불러 우리는 동시에 내용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 로켓 발사?”
나는 웃음을 참았다. 화성 이주 계획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니. 역시 인간의 희망은 대단했다. 몇 달 뒤에 우리 동네의 외각 지구에서 로켓을 시범 발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집에 가야 하지 않겠어?”
그 말에 나는 지혜 언니를 올려다봤다.
“집에 가기 싫어...”
“왜?”
“오늘 ‘작업’ 날이야.”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반응에 더 울컥하여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머리를 숙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우리 가족은 하필 횟집을 했던 걸까. 그리고 왜 하필 우리 집에 K가 있었던 걸까. 왜 하필 나는 꿈과 희망도 없이 그저 죽기 위해 살아가는 세계에서 태어난 걸까. 언니는 며칠 전부터 다시 K와 수어를 시작했다. 물론 지혜 언니는 그 사실을 나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 몰래. K에게 수어를 가르치던 걸 목격해버린 것이었다. 묻고 싶었다. 언니는 진짜 뭐냐고. 처음부터 K가 뭔지 다 알고 있었던 건 아니냐고. K에게 수어를 가르쳐서,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너는 왜 나한테 K가 있다는 걸 가르쳐 준 거야?”
놀랐다. 언니가 내 속마음을 읽는 건 아닐까.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K에 대한 말은 내가 더 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그랬던 건......
순간 K의 눈빛이 떠올랐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리던 그날의 모습이.
“그건... 있잖아 언니. 그건 나도 모르겠어.”
조그많게 중얼거리자 언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속상한 마음에 그만 비명같이 소리를 질렀다.
”몰라.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다 모르겠어.“
할 말이 터져버리자 나도 모르게 엉 울어버렸다. 지혜 언니는 당황스러워하며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아주려고 헀다. 나는 됐다고 그 팔을 밀어버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언니 내가 언니를 불렀던 건 언니가 확신을 주었으면 해서야. 언니가 나처럼 이도 저도 아닌 바보같이 행동하는 게 아니라, 내 가족들같이 K를 그저 신기한 로봇으로 대하면 나도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어. 그런데 그건 다 뭐야? 로봇에게 무슨 수어가 필요하다고 그래. 우리가 로봇과 대화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다......
나는 그대로 집을 나서버렸다. 바깥은 더웠다. 너무 더웠다. 바닷가에는 고철이 쌓여 있었다. 땅에는 말라 비틀어진 흙 한 줌,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
방사능 오염 로봇이 거리를 활보 중이라는 소식이 있었다. 지역 전체에 경고가 내려왔다. 화상 수업을 통해 12월 한 달은 흐지부지 지나가버렸다. 방학 기간 동안 나는 귀찮은 사람들과 연락을 전부 끊었다. 언니의 연락은 일부러 피해 버렸다. 오염 로봇이 폐기 처리되었으며 방역도 확실히 끝난 이후 고등학교 3학년 첫 개학식 날이 밝았다. 운 나쁘게 최초로 그 로봇으로부터 오염되었던 재학생 중 한 명이 방학 두달 내내 앓다가 죽은 것 같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날 나는 언니 집으로 다시 찾아갔다. 시에서는 방사능 검사를 더 자주 할 것이라는 방침을 우리 가게에 내렸다.
나는 나쁘지 않았다. 이제 언니가 K와 무슨 말을 나누던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언니는 그 일을 묻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언니가 K와 수어를 나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넌지시 내비쳤다. 그 대신 언니와 K가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물 속에 움직이는 두 로봇 팔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ㅡ
개학 이후 나는 학교에 적응했고, 해가 긴 5월이었다. 내가 언니를 집으로 불렀을 때 언니와 K는 즐거워 보였다. 둘 다 능숙한 속도로 수어를 했다. 언니는 항상 단순한 대화밖에 할 줄 모른다고, 너도 수어를 배워 보라고 말했지만 나는 처음의 호기심과 다르게 K를 볼 때마다 점점 두려워졌다. 언니는 K의 무료한 일상에 나타나 새로움을 주는 존재고, 나는 K의 일상에 기생해 고통을 주는 존재였다. 생각할수록, K는 나에게 다른 말을 할 것 같았다.
그 진실로써 나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벌을 내릴 것만 같았다.
그때 갑자기 아랫층이 조금 다른 기색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 중간에서 가게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손님들이 웅성거리고 칼로 생선의 대가리를 치던 이모와 피묻은 앞치마를 한 사촌 오빠가 당황스럽게 문 앞을 지켰다. 엄마 아빠는 친가로 간 사이 이모와 오빠만 가게를 열고 있던 참이었다. 경찰과 오빠가 잠시 대화를 하더니, 공무 복장을 입은 사람들은 일층을 구석구석 살폈다. 분명히 단속에 걸린 것이다. 왜지? 우리는 항상 청결을 유지했고 법을 통과한 물에서 건져낸 회만 팔았다. 경찰은 방사능 검출표를 쥐고 거칠게 흔들었다. 그 순간 내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강타하는 한 단어가 있었다. K.
K 때문이다!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피가 식으면서 온몸이 뻗뻗하게 굳었다. 사촌 오빠도 그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이모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으나 그 사이에 경찰이 계단으로 올라오려는 건 막았다. 경찰은 아랫층 사람들과 달린 편한 잠옷을 입고 있는 나를 마주치자 살짝 당황스러워 했다.
“거기는 장사하는 곳이 아니고요, 우리가 잠을 자면서 생활하는 공간이에요!”
항변하는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나도 그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봤다. 경찰은 무언가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갔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손님들은 강제로 내쫒겼고, 이모와 사촌오빠는 세부적인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을 따라갔다. 오빠는 겉옷 수트를 챙겨 나가며 나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다.
”K를 바다로 내보내야 해. 지금은 소란스러워서 안 돼. 오늘 새벽이야. 부모님은 바로 경찰서로 가실 테니까 네가 꼭 K를 책임져야 해.“
우악스러운 손길로 붙잡힌 어깨가 흔들렸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확실하게 주의를 준 다음에야 오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가게 문이 잠기고 불이 꺼졌다. 바깥의 뜨거운 자외선 때문에 구경꾼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빈 공간에 생선들이 헤엄치는 소리, 퍼덕거리며 수조나 대야에 지느러미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끊임없이 부글거리며 흘러넘치는 물 소리도 들렸다. 어느 것이 K의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가까이 들렸다. 누군가 등을 툭툭 두드렸다.
언니는 아무 말이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 K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언니를 황급히 쫒아갔다. 언니는 꼭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긴장했지만 담담했다.
숨이 턱 막혔다. 끔찍하다.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쓰나미처럼 덮쳤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타일 바닥에 흥건한 웅덩이로 섞여 들어갔다. K. K와 나. K와 우리 가족...... 겨우 한마디를 내뱉곤 후회했다.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언니는... 억울하지도 않아?“
”누구한테 억울해야 하는데?“
지혜 언니의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많은 감정을 담지 않고 고막에 파고들었다. 오염된 세계, 회생이 불가능하게 변한 세계, 발을 딛고 있는 곳은 살면서 점점 뜨거워졌지만 더 나은 상황을 한 번도 겪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말은 잘 와닿지 않았다. 언니가 아니라 언니의 부모님이 방사능을 마신 세대. 억울해할 곳이 없었다. 여기선. 누구도.
”언니. 도와줘......“
ㅡ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우리는 K의 상체에 방수 스프레이를 잔뜩 뿌렸다. K의 흔적을 지우고, 수조에는 일 층에서 가져온 물고기 몇 마리를 옮겨 두었다. 태양이 뜨지 않는 시간대는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았지만 12시 이후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간 크게 돌아다니는 이는 없었다. 우리는 K에게 반팔과 긴 치마를 입혔다. 언뜻 보기엔 정말 사람 같았다.
어둠을 기다리는 동안 언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전부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동화 속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언니가 아주 예전에 들려 주었던 인어 공주 이야기를 떠올렸다.
새벽 네 시쯤 되자 달도 사라져 주위는 완전히 깜깜해졌다. 우리는 뒷문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나갔다. 언니는 K의 몸을, 나는 K의 꼬리를 잡았다. 거리에 나서자 손전등을 들고 돌아다니는 경찰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가 앞에서 졸음에 취해 있었다. 바닷가로 갈 수록 분명 경찰이 많아졌다. 다만, 이등 시민이 모여 있는 곳에는 감시의 눈길이 비교적 느슨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K의 치마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서늘한 새벽 바람에 몸이 차츰 떨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리를 죽인 채 행동했다. 바람에 기름 냄새와 비린 소금기가 섞여 불었다. 언니와 나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임마! 거기 누구야!”
우리는 신호를 주고받지 않았지만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경찰은 훨씬 먼 거리에 있었기에 이상함을 알아챈 그가 바짝 쫒아오는 걸 몇 번이나 피할 수 있었지만 K까지 든 채 합 맞춰 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경찰이 나의 뒷덜미를 잡았고, 우리는 앞으로 기울어져 넘어졌다. 순식간에 균형을 잃은 K는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허공에서 K의 꼬리지느러미가 드러났고, K는 경찰의 몸 쪽으로 쓰러졌다. 그는 귀신을 본 듯 놀라 말을 더듬으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이게 뭔, 무슨.”
나는 재빨리 그때를 틈탔다. 언니 쪽으로 K를 밀쳐내며 온 힘을 다해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와 함께 엎어지고 구르기를 반복했다. 경찰은 겁에 질려 몸이 굳었고 손전등을 떨어뜨렸는데, 그 도구를 선점한 내가 몸싸움에서 더 유리했다. 나는 먼저 일어나 그를 발로 밟았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긴장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으나 나는 울고 있었다.
“쟤 로봇 아니에요. 쟤 사람이에요.”
아니. 확실하게 사람은 아니었다. 이성적 판단을 두려움이 앞서자 아무 말이나 막 튀어나왔다. K를 테트라포스 앞 로봇 무덤처럼 만들어버리려는 주제에 자유를 주고 싶어 몸부림치는 거대한 자아가 꿈틀거렸다.
“몰라. 난 몰라요......”
그때 여태껏 가만히 있던 K가 자신을 들고 움직이려는 언니에게서 격렬하게 저항해 벗어났다. 나는 순간 집중력을 잃었고, 경찰은 삽시간에 내 머리채를 잡았다. 어떡하지. 이대로 끝인가.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두피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져 있었다. K가 쇠막대기 같은 로봇 팔로 경찰의 머리를 때린 것이었다. 그는 쓰러졌고, 나는 놀라 경찰이 살아있는지 확인했다.
“숨을 쉬어. 기절한 것 같아.”
언니는 다급히 내 곁으로 오더니, 안도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 구역에 cctv는 없어.”
우리는 다시 K를 들었다. K는 얌전히 들려주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없었다. 30분만 있으면 해가 뜰 것 같았다. 벌써 하늘 저편이 뿌옇게 번지고 있었다.
곧 바닷가였다.
부두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니와 나는 K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우리는 집에 있을 때 K의 전원 버튼을 찾았으나 역시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등 뒤에 있는 배터리를 뺄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언니는 인사를 한다며 K에게 수어를 했다. 마지막까지, 나는 K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헤엄칠 수 있을 거야.“
내가 말하자 K는 나를 바라봤다. 주위가 점점 밝아진다. 반짝이는 눈동자에 나는 시선을 빼앗겼다. 넋을 놓은 새, 차갑고 축축한 인공 피부가 입술에 닿았다. 퍽. 정신을 차린 내 손이 K를 밀친다. 몸체는 쉽게 떠밀리고 황급히 바다를 내려다보지만 울렁거리는 파도 이외에 K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지혜 언니가 나를 부르며 먼 곳을 가리켰다. 좁은 수조 안에 있었던 K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로봇으로 된 상체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느러미가 그 상체를 뒤로한 채 파장을 남기며 물 속으로 사라졌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고 있었다. 번쩍이는 빛이 바다에 섞인다.
피부가 약하게 따끔거렸다. 나는 입술을 매만지다 그대로 드러누워버렸다. 인어 이야기가 옛날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얘기하자 지혜 언니가 나를 바라봤다.
“왕자님을 만나러 온 인어가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나눠야 한다고 했잖아요. 왕자님은 바람피고. 다음 내용이 뭐예요?”
“인어의 생명을 댓가로 언니들이 마녀에게 칼을 받아 건네줘. 왕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죽여야 한다고.”
ㅡ
그거 결말이 어떻게 돼요.
바람이 불었다. 소금 냄새. 기름 냄새. 속이 울렁거리는 익숙한 비린내가 밀려왔다. 거기엔 사람이 불러온 죽음의 냄새도 있었다.
인어가 물거품이 된다
뭐야
그렇게 쉽게
다 사라질 수 있는 거구나......
나는 눈을 감았다. K가 사라졌다. 다 끝났다. 우리 가족의 비밀과 뿌리깊게 연결된 결정적 증거는 이제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저 바다 깊은 곳으로 영원히 떠나버렸다. 우리는 철저히 조사를 받겠지만 약한 처벌을 받은 뒤 풀려날 것이고, 장사는 이전만큼 잘 되진 않겠지. 그리고, 그리고......
인어 공주가 떠난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궁금하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끊임없이 화성 이주 계획을 논했으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100세 시대에 대한 기대도 우리는 전혀 느끼지 않는다. 저 멀리서 로켓이 발사되는 것 같았다. 아침의 흰 빛 하늘을 가르고 폭풍같은 붉은 섬광이 날아오른다. 누워 있는 땅에서 진동이 전해졌다. 지구는 어떻게 될까?
“언니. 있잖아요. K는 뭐였을까요?”
우리가 ’작업‘을 할 때, K는 단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고 너덜너덜해진 지느러미가 마음이 쓰여 나는 K를 궁금해했다. K. K.
눈을 감았다. 조금만 이대로 있고 싶었다. 그날 K가 나에게 하려던 말을, 듣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성장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뜨겁고 좁은 세계에 계속 갇혀있고 싶었다. 슬픈 마음이 나의 주변으로 흘러넘친다. 뜨거운 태양볕이 수트를 입지 않은 피부로 곧장 직행한다.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별의 파장을 직접 느껴본 적 없었다. 신기하다. 새롭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곧, 어른이 된다.
이건 세계가 죽어간다는 뜻.
K는 떠났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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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첨부된 이미지가 정말 중요한 글입니다. 파일 첨부가 안되어서 블로그로 연결된 링크를 달아 두었으니 꼭 이미지와 함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ㅡ최근 전세계에서는, ‘여성의 노출’이라는 주제가 계속해서 화제에 오르고 있다.2025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비앙카 센소리는, 전신을 꽁꽁 싸맨 칸예 웨스트 옆에서 안이 모두 비치는 망사로 된 옷을 입은 채 기자들 앞에 섰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은 시기 프랑스 파리에서는 ‘여성을 향한 전쟁을 멈춰라’는 구호를 가지고 상반신을 탈의한 여성 시위가 이루어졌다.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성적 외모 강박을 주제로 한 ‘서브스턴스’ 영화가 한국에서 큰 흥행을 이루었고, 일본에서는 여성을 성적대상화한 라면 광고에, 캐릭터를 남성으로 바꾸어 풍자하는 등의 추세가 번지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이, 다 지나가지도 않은 이번달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여성에게 성범죄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옷을 왜 그렇게 입었느냐’를 핑계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경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흔하다. 그녀가 입은 옷, 그녀가 취한 태도, 그녀가 지나가듯이 한 한 마디로 인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의 가해자는 너무나도 손쉽게 감형을 받는다. 사회는 범죄를 저지른 남성보다 범죄를 당한 여성에게서 먼저 잘잘못을 따진다. 사회는 단 한 번도, 여성을 위해 굴러간 적이 없다. 그것은 오랫동안 남성을 ‘인류(man)’로 기르고, 여성을 ‘여자’로 사육해왔다 며칠 전부터 X(구 트위터)에서는 연예인의 신곡 뮤직 비디오에서부터 시작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여자가 당당히 노출이 과한 옷을 입었을 때, 그것은 여성주의를 후퇴시키는 ‘섹스어필’인가, 아니면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노출할 자유‘인가?여론이 쏟아졌다 뒤바뀌고 서로의 다양한 발언이 정제되지 않은 채 흘러나오는 sns속에서, 나는 많은 고민을 했고, 이 글을 쓴다. 나는 솔직히 말해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노출에 회의적이다. 앞에서 말한 시위를 위한 노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가 곧 ‘상품’이 되고, ’상품의 이미지‘가 유행이 되는 사회에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유행을 오랫동안 가꾸어 여성을 세뇌시켜온 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말이다. 여자 아이는 어릴 적부터 많은 것들을 보고 자란다. 여자에게만 주어지는 꾸밈노동, 면역력에 해가 될 정도로 밥을 줄이면서 얻는 다이어트 강박뿐만이 다가 아니다. 가족 손을 잡고 영화관을 간 소녀들은 아울렛, 지하철 쇼윈도에 전시된 형형 색색의 속옷을 본다. 누가 보아도 과하게 성적 어필을 하는 프릴, 무늬, 리본은 아이들의 뇌에 강하게 새겨지고 그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어린이용, 청소년용 팬티와 브레지어에 달려있는 작은 리본과 프릴. 조금만 얇은 여름 옷을 입어도 리본이 거슬려 불편하다. 그러나 내 남동생의 속옷에는 그런 부속품이 없다. 과한 색상 또한 없다. 신체 특성에 맞추지 않아 딱 붙는 사이즈도 없고, 실제로 숨통을 조여오는 후크도 없다. 가슴 크기를 키우기 위
- 방백
- 2025-03-10
농담이에요농담이야농담농담이었어요소라는 실없는 소리를 해서 사람들을 싱겁게 만드는 게 특기였다. 그런데 어느날 소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담임 선생님이 아침부터 시끄러운 교실에 들어오며 문을 조용히 끌었을 때 난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천천히 걸었다. 소음 속을 천천히 아주 느리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집에서 먹은 감기약이 아직 넘어가지 않은 채 목구멍을 차지하는 것 같아서였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화면이 확 밝아지며 메시지 창이 떴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메시지를 꾹 누른다. 선생님의 입이 열린다......-농담이야!-소라가 토요일에 하늘나라로 갔다.거의 동시에 두 문장은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시신경과 청각세포를 분주히 그리고 일정하게 오가던 신호가 서로 어지럽게 얽히는 것 같았다.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남몰래 숨을 들이마시며 메시지가 온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그런데 이틀 전이다. 금요일 저녁, 소라와 놀고 헤어졌었다. 그날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서 읽지 못한 문자였다. 핸드폰을 재부팅하며 알림이 중복으로 뜬 것 같았다.그날부터 난 소라의 죽음이 왠지 재미없는 농담처럼 느껴졌다. 내가 보지 못한 소라의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소라의 흔적은 빠르게, 조심스럽게 사라졌다. 정확히 그 속도보다 한 박자 빠르게 '소라'는 금기어가 되어있었다.여름방학이 시작된 첫날 나는 소라의 사물함 앞에 섰다. 그리고 소라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눌러 장금장치를 풀었다. 사물함 문을 연다. 안에는.. 매미가 들어있었다. 톡톡. 누군가 등을 두드린다. 소라다. 뒤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빙긋이 웃고 있었다. 농담이야! 그리고 나는 소라의 집에 있었다. 천장에 목을 매단 소라가 힘없이 늘어져 있다. 바닥을 바라보자 농담이야! 라고...꿈에서 깬다소라는 농담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그 전엔 우주나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모든 사람들은 소라의 말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무슨 그런 영양가 없는 소리냐며 타박할 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웃기지는 않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애매한 말.아침에 일어나서 곧바로 냉장고 앞에 섰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이제 소라는 잊어버리라고, 눈빛으로는 열망하지만 입 밖으로는 내뱉기 힘든 말. 아마 내 주변인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냉수를 들이켠다. 나는 소라를 잊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는 잊으면 안됐다. 왜냐하면 소라가 내게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농담이라는 변명 없이. 처음으로 진솔하게 얘기했었다. 소라는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매미를 키워달라고 했다. 매미가 잘 살 수 있도록 지켜봐달라고 했다. 그게 금요일 저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새벽까지 메시지를 나누었고 소라는 한탄하듯이 어떤 활자를 전송했다.-아 그냥 죽을까.-왜?-그냥ㅋㅋ-어떻게 죽을 건데-목 매달아서날것인 문장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져 걱정된다는 말을 했
- 방백
-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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