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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의 유서

  • 작성자 신현
  • 작성일 2025-04-16
  • 조회수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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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께서 이것을 보고 계시다는 것은 제가 거기에 없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단순한  청소로는 발견할  없을 만한 위치에 숨겨 두었으니 아마 저를 앞에 두고 읽으실 일은 없을 거라 믿습니다. 어머니께서 글을 읽고 계시는 현재, 저는 사진 속에서나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게지요.


 혹자는 저더러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물음이 지금의 저에게까지 닿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렇게 물을 것을 알기에, 저는 미리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치의 후회도 없습니다. 단언합니다. 나는 내가 후회하지 않았음과,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혹자는 내게 물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런 선택을 하였니, 하고 말입니다. 

 거기에  내가 낱낱이 답한다면 나는 싸구려 기계처럼 변하고  테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평생을 기계가 되는 법을 배우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사람 행세를 하기도 귀찮고 하여, 나는  대답을 하고 맙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니, 사람보다 하등한 존재.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 비둘기, 새싹, 길가에 지나다니는 개미. 보통의 자들보다 열등한 나는 내가 무엇을 닮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나는 죽고 맙니다. 내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지나치게 크고 넓습니다.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숨을 쉬는 법을 배우지 못하였으니 그만 폐가 굳어버립니다.


 나는 과히 아름답고 정교한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러한 방에 소속되어 있는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압니다.  스스로 그곳에 있는지, 나를 제외한 전부가 알고 있는  같습니다. 참으로 경탄할 만한 자들입니다.

 나는 내가  나와 다른 방을 쓰는 자들과 다투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채로 학교로 갑니다. 학교에 가면 나는 나와 다른 방을 쓰는 자들, 이를테면 성적이 낮거나 떠들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무시해야 합니다.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깔보고 화내고 하면서, 나에게도 권하는 겁니다. 그러면 나는 마치 죄를 짓는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들을 따라 버립니다. 


 학교에서 나오면 나는  거리를 걷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곤 합니다. 그들은  누구랄  없이 서로를 헐뜯고 싸우고 손가락질합니다. 다들 그러하니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 줄은 압니다만, 어리석은 나로서는 조금  본질적인 이유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다들 똑똑한 자들입니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모든 것을 이해하니까요.


 거리를 걷다 보면 집에 도착합니다. 나에게는 집이 가장 어려운 곳입니다. 세상은 그렇게나 시끄러운 곳임에도, 집은 사랑으로 넘칩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이 진정 사랑하는 것이 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남들처럼 똑똑한  연기하는 나인지 아니면 그저 어리석은 나인지  길이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께서 어리석은 나를 사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골똘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닌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리석은 나를 사랑하실 리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나와 달리 아주 똑똑한 사람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머니께서 한없이 베풀어주는 사랑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해집니다.  남을 헐뜯어야 하는지, 무시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면 영영 알지 못하는  같은 것이  사랑을 받을 자격은 있을까요. 혹시 나는  영리한 세상에 잘못 던져진 것은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살아가야  바보들의 세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때마다 우울해집니다. 그러나 생각을 접으려고만 하면 도리어 상념이 짙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나는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 이를테면 우리  반장 같은 사람을 생각하곤 합니다. 

 반장은 참으로 머리가 좋은 아이입니다. 반장은 나의 들리지 않는 한쪽 귀를  놀립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까닭을 모르니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듣는 수밖에 없습니다.  번은 그가  들리지 않는 귀에 대고 박수를 쳤습니다. 내가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들리지 않으니 시끄럽게 하여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의 심오한 말에 탄복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것은 감히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니 나는 바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은 담임선생님에게로 흘러갑니다. 선생님 역시 진정 똑똑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같이 공부 잘하는 아이가 좋은 학교를 노려보지 못할  있냐며 나를 훈계하십니다. 그렇게 책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서 배운  하나 없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만, 내가 책에서 배운 것들, 이를테면 정의로운 마음이나 서로 돕는 행위 같은 것들을 등뒤로 감춰버립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들, 어떻게 하면 나보다 못한 자들을 무시할  있는지를 다시 마음속에 채웁니다만,  되지 않는  같습니다. 어쩌면 나는 영영  가르침을 따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나는 불구입니까? 아아, 두렵습니다. 세상에 제대로 엮여 살아가지 못할 것이 정말로 두렵습니다. 나는 바보인 데다 겁쟁이이기까지 합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가고 나면, 나는 더욱 의기소침해집니다. 이런 나를 어머니께서 사랑하실 이유가 더더욱 없는  같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더듬어 봅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나와는 하나도 닮지 않은 똑똑한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자신이 더욱 초라해집니다. 어머니는 내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엄숙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는 점점 아수라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은 내게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생각은 어제 어머니께서 나의 새파란 눈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눈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이라는 사람들과 달리 아주 시퍼렇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눈을 두고, 시간이 지나면 다들 예쁘다고  테니 지금의 조소는 견디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외계인이라고 놀리는 것일 뿐이니, 나중에 배로 갚아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까닭을 모릅니다.

 어머니, 나는 일시의 괴상한 눈과  일시의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눈은 언제나 사물을 보는 눈일 뿐, 예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검고 갈색인 눈들은 아무 지적도 당하지 않으면서, 나는 양면으로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 것입니까.


 어머니, 세상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그것은 내가 파란 눈에 왼손잡이에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아여서가 아니라, 그저  마음이 한없이 좁은 까닭일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다른 영리한 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탄합니다. 아아, 내가 조금  똑똑했더라면, 저들의 비웃음과 경멸의 이유를 알았을 텐데. 그랬다면 나는 그들에게 오히려 감사할지도 모릅니다. 설마 사람이 되어서, 악의를 가지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하였겠습니까. 아마 나를 위해서 쓴소리를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어리석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혹자는 내게,  머리가 성능이 좋아 가르친 것을 금방 외우고 계산도 빠르니 커서  곯지는 않겠다 합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 대수냐고. 왼손잡이인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파란 눈은 오히려 이득이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어떻게 그들이 하는 행동을 모방할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까닭도 방법도 모르는 나로서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번도 그들과 같았던 적이 없는데, 그들은 그들과 같은 나만을 원하는  같습니다. 


 어머니, 나는 이제 바보들의 세상을 향해 갑니다.  세상은 아마  배로 어리석을지언정,  배로 즐거울 것입니다. 어머니, 나는 어리석은 탓에 세상에   조각의 발자국도 남기지 못하지만 나를 제외한 똑똑한 사람들은 수십 수백 발자국이고 남기고 가겠지요. 그래서 세상은 그들의 신발 자국으로 뒤덮이겠지요. 아아, 본래의 하얗고 깨끗하던 세상이!

 어머니, 언젠가  세상이 새카매지고 나면, 나는 바보의 세상에서 그것을 관망하다가 환히 웃으며 말하겠습니다. 어머니, 나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이 사랑인  모르는 어린아이입니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의 배에서 자라 세상에 태어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곳은 나의 세상이 아닌 겁니다. 나는 그곳에서 어떠한 사랑도 받아서는  되는 겁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서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만, 그중 어떤 것도 품지 못하였습니다. 머리가 있다면 깊이 숙이겠으나,  시점에 내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기어코  손에  하나도 남기지 않아야 상쾌한  아는 바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만 확실히 알아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나는 그것만 안다면 괜찮을  같습니다. 세상 모두가 내게 보낸 사랑보다도, 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설령 어머니가 그러하지 않았다 해도 나는 괜찮지마는-다만 지금보다 조금  초라해질 뿐입니다. 절대 어머니를 탓하거나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끝내는 마당에 조금쯤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이런 나라도 사랑하였습니까?


 나는   순간에라도, 어머니의 딸이었습니까?







-내 딸의 유서

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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