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와 잔재
- 작성자 하늘
- 작성일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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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모르는 사람을 보면 울어버리고는 한다. 그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녀는 오랜 시간 목 놓아 아빠를 불렀다. 그녀의 인생이 영화였다면 내가 너의 아빠라는 어떤 영화의 명대사가 그들에게는 일상일 것이다. 그녀가 조금 컸을 때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녀는 엄마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두 손 사이에는 무엇도 흘러나갈 틈이 없었다. 그날 오전에는 비가 왔고 그녀는 빨간 장화를 신었다.
*
나는 아직 그날을 기억한다. 모르는 남자가 왼쪽에 있는 방에서 나왔다. 그 남자는 아침밥을 먹을 때도 나의 왼쪽에 앉아서 내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흰밥 위에 스팸을 올려줬으니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엄마는 방에서 나와 나를 보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신발장에서 빨간 장화를 꺼내주었다. 그동안에도 남자는 나의 왼쪽에 서 있었다.
-엄마, 우리 어디가?
-우리 딸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지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러 갈 거야.
바람이 세게 불어서 엄마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렇게 믿었다.
병원은 실내라서 그랬는지,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특별히 발견된 이상은 없고…. 한마디로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건강한데 왜 울어?
엄마의 손에는 보라색 편지지가 있었고, 점점 구겨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나도 같이 울었다. 나는 아무것도 믿을 게 없어서 옆에 있는 남자를 보면서 울었다.
-아저씨, 엄마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울지 않았고,
-아저씨, 우리 엄마는 내가 건강한 게 싫은가 봐요.
나는 더 크게 울었다.
벌써 그 일도 10년 가까이 지났을 터이다. 내년이 지나면 10년인가, 오래된 기억은 꺼내볼수록 닳아서 나는 햇수를 세지 못했다.
*
아주 오래전,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여름이 오면 그가 누워있는 곳을 찾아가 묻곤 한다. 우리가 약속한 영원은 언제 오느냐고.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당신이 먼저 오면 좋겠다고 말이다. 자주 꺼내보는 것은 닳는다. 그가 나에게 청혼할 때 주었던 보라색 편지도 닳았다.
학창 시절을 보내며 나는 그 흔한 연애 한 번 못 해봤다. 나에게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너무 많았고, 사랑은 다 거짓말 같을 뿐이었다. 친구들을 보며 알았다. 웃고, 울고, 붙잡아도 그들의 손에 남는 것은 없었고, 다 사라졌다. 설렘도, 기쁨도, 슬픔도, 상처까지도. 그런 게 사랑이라면 너무 과대평가 받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신은 나에게 벌을 내리셨다.
그와 나는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우리는 매주 신비로운 현상들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터무니없는 가설을 세우고 터무니없는 실험을 했다. 대학생들이 하기에는 유치해 보였지만, 그중 진심으로 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하루는 그가 죽은 자의 혼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열변을 토하며 그의 가설을 이야기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죽은 자의 혼은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를 더 했다. “죽은 자의 혼이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면 좋겠습니다.” 열정에 비해 아는 게 없는 사람이구나, 사랑이라니, 얼마나 부질없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의 눈과 사랑에 빠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은 빨리 감은 것처럼 흘렀다. 그는 왼쪽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더 갈색빛이 도는 그의 눈을 보고 있을 때면 금방이라도 종말이 와버릴 것 같았다. 신랑은 신부를, 신부를 신랑을, 우리는 서로를 영원히 사랑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사랑은 아무리 세게 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 버리는 것. 그는 나에게 사랑이었다. 갈 때는 가더라도 아이의 이름은 같이 지어주고 가버리지, 나는 그를 끝없이 원망했다. 왼손에는 항상 보라색 편지지가.
아이는 자주 울었다. 자주 울면서도 아이는 단 한 번도 엄마를 부르며 운 적은 없었다. 따로 아빠라는 단어를 가르친 것도 아닌데 아이는 항상 아빠, 아빠, 하며 울었다. 이 점은 걱정스럽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조금 아플 뿐이었지만, 또래보다 많이 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걱정이 되었다. 조금 크고 나서 아이는 항상 왼쪽을 경계했다. 아이가 말할 수 있게 됐을 무렵, 나는 아이가 무언가를 본다고 짐작했다. 그것은 남자였고, 나보다 키가 조금 더 큰듯했다.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갈까 했지만, 친구는 일단은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제발, 무엇이라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날도 아이는 방에서 나오자마자 고개를 돌려 왼편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특별히 발견된 이상은 없고…. 한마디로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울었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엄마, 나는 건강한데 왜 울어?
주머니에 넣어놓은 무당의 명함을 꺼내려 했지만,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빛이 바래가는 보라색 편지지.
-엄마, 엄마, 엄마
아이가 같이 울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엄마를 부르며 우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저씨, 엄마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아저씨, 우리 엄마는 내가 건강한 게 싫은가 봐요.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오랜만에 그가 말을 걸었다. “죽은 자의 혼은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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