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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에어컨 아래서

  • 작성자 아기호랑이
  • 작성일 2025-05-25
  • 조회수 812

따사로운 햇볕은 들어오시되, 후끈한 여름 공기는 환영하지 않아요. 창을 닫고 커튼을 엽니다. 선풍기로는 부족할 테니 간만에 에어컨을 틀어볼까요. 이제 산뜻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겠어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온몸이 나른해져요. 주말이라서 그럴까요. 여름이라서 그렇다고요? 이유가 있기는 한 걸까요. 돌이켜보면 어느 계절이건 이불 속에 파묻히고 싶은 날들이 있어요. 오늘은 채광이 참 좋네요. 하늘이 맑아요. 이렇게 좋은 날, 언제나처럼 공원을 산책할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 가을이었다면 나갔을 텐데. 어림도 없는 상황을 가정하며 의자에 앉아봅니다.

닫힌 창틈으로도 음악 소리가 새어 나와요. 항상 같은 노래, 보이지 않는 분수마저 그려집니다. 흩날리는 물방울을 맞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사뭇 그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요. 나라면 쉽게 나아가지 못할 자리에서 누군가는 미소를 띠네요. 여름이 선사하는 해방감. 그 웃음이 부러워요. 

온도와 습도를 확인한 후에도 목적 없이 SNS에 접속해 봅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모두가 같은 나날이에요. 속으로 몇몇 친구의 안부를 물어보다가 무의미한 걱정인 걸 알고는 핸드폰을 덮습니다. 이토록 자연이 밝은 날, 반짝이는 화면은 어울리지 않아요.

자연스레 책장으로 향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만의 세계입니다. 대부분 소설이에요. 작은 책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잠들어 있을까요. 그곳에 내가 있을까요. 무심코 책을 꺼내어 작가의 말을 읽습니다. 이야기는 허구여도 그들의 말에는 꾸밈이 없어요. 모두가 진심을 다하고 있어요.

가볍게 읽기 좋은 책 하나를 들춰봅니다. 작가의 말이 길어서 좋아요. 아껴두었다가 소설을 마치고 천천히 곱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재작년 겨울에 읽었던 책이에요. 소설의 배경은 봄입니다. 어째서 아무것도 들어맞지 않을까요. 상관하지 않습니다. 침대로 향해요. 

베개를 둘 쌓아 올리고 살포시 이불을 덮습니다. 에어컨을 거쳐 간 이불이 맨살에 닿는 느낌이 좋아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촉입니다. 괜히 두 다리의 모양을 자꾸만 바꿔봅니다.

다리를 반쯤 접고 책장을 넘깁니다. 연두색 속지가 마음에 들어요. 마치 봄인 것만 같은 여름입니다. 짧은 소설은 금방 읽어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오후의 햇살이 조금은 약해집니다. 작가의 말이 쓰인 시점은 9월입니다. 아무것도 들어맞지 않지만,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간 듯합니다. 봄과 가을 사이에 잠든 여름을 깨워봅니다. 꿈만 같아요. 


P.S. 제가 좋아하는 여름날을 그려보았습니다. 반쯤 허구라는 소리에요.



2025.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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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백
  • 2026-05-31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괜찮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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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6-05-31
노력의 퇴적

대회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누군가는 쇼팽을 쳤고 누군가는 리스트를 쳤다. 검은 정장과 색색의 드레스를 입은 학생들의 손끝은 지나치게 매끄러워 보였다. 나는 그 사이에 부자연스럽게 앉아 핫 팩만 쥐고 있었다.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 틈에 섞인 중학교 1학년의 취미생.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손가락 끝이 둔해질 때까지 같은 소절을 반복했고, 틀린 부분은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며 다시 눌렀다. 하지만 어떤 노력은 처음부터 방향이 달랐다는 사실을 어린 나는 끝까지 인정하지 못했다. 그 무렵부터 왼손 약지 아래 안쪽 관절에 이상한 것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연습 도중 손바닥 안쪽이 약간 부풀어 오른 것 같다가도 금세 잊어버릴 정도의 감각. 말랑했을 때는 존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손가락을 굽힐 때 아주 잠깐 이물감이 스치는 정도였고,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찾아보지도 않았다. 몸이라는 것은 원래 여기저기 이유 없이 아픈 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혹시라도 손을 쓰지 말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 며칠 동안의 연습량이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방치했다. 정확히는 외면했다. 매일같이 건반을 누르며 같은 부위를 접고 펴는 동안 그 작은 덩어리는 손 안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결절종은 물렁한 침묵으로 시작해 결국 뼈처럼 굳어 갔다. 손가락을 쥐었다 펼 때마다 안쪽에서 작은 구슬 하나가 관절 사이를 밀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건반을 누르는 도중 유난히 이질적인 압박감이 느껴져 손을 뒤집어 보았고, 그제야 나는 거기에 무엇인가 자라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오래 방치한 감정이 어느 순간 형태를 얻듯이. 몸 안에서 자라는 것들은 대개 소리 없이 커진다. 통증조차 늦게 도착한다. 대회는 예상대로 끝났다. 아니, 어쩌면 예상보다도 더 조용하게 지나갔다. 그 대회에서는 모두가 상을 받았다. 상의 이름만 다를 뿐이었다. 중고등부가 한데 묶여 있었고,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높은 상은 입시생들이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생각했다. 그들은 매일 몇 시간씩 인생을 저울 위에 올려두는 사람들이었고, 또 누구보다도 절박했으며&middot;&middot;&middot;&middot;&middot;&middot; 나는 그저 좋아해서 피아노를 치는 애였으니까. 억울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쩌면 억울하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는 일 자체가 이미 가장 필사적인 자기방어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정말 괜찮을 때는 굳이 괜찮다고 되뇌지 않으니까. 집으로 돌아온 뒤 이상하게도 손부터 보게 되었다. 트로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왼손의 딱딱한 돌기였다. 대회를 위해 미뤄둔 것. 끝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끝나고 남은 것은 성적표 같은 상장과 더 단단해진 결절종뿐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노력이라는 건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군가는 그

  • 미빈
  •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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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체
    훈훈해요

    이 이상적 여름날, 저도 한번 살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2025-08-09 01:59:17
    이체 훈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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