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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

  • 작성자 기능사
  • 작성일 2025-07-09
  • 조회수 623

내 아이들에게 

기차 브레이크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얼마 후면

이 곳에서도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해


2호선 그 꽉찬 기차칸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끼어있으면


덜컹거리다가도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고

그럴 때마다 잠이 드는데


내 아이들에게 

우리가 나무 한그루 없는 설산을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것 같은 곧고 굳은 그 설산말이야


숲진드기에 물려서

독일어로 욕을 내뱉는 내 아이에게


키큰 침엽수림을 왜 내가 좋아했는지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의 그라피티를

그리고 마르티니에서 브리그로 가는 계곡의 열차를

좋아했는지 말이야


발리스 사람들에게 하이디를 아냐고 물으면 혼날테지만

나는 하이디가 썻던 말을 내 아이에게 가르칠거야


지푸라기 침대가

나무인 척하는 플라스틱 학원 책상보다 나으니까


알프스가 유럽의 지붕이라던데

나는 비행기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무도 없는 

텅빈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


여기도 재건축이 되면

옥상 문은 굳게 걸어 잠기겠지


내 아이들에게

과천에서도 롯데타워가 보인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추천 콘텐츠

근래의 사건들에 대하여

(멘토님은 끝부분 부터 보십쇼) 최근들어 벌어진 일련의 사건(분리해서 이해될 것도 아니지만 2개의 비슷한 현상이 간격을 두고 일어났으므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은 글티너들에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당장 뒹글귕굴은 이 사안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제시되고 있고, 개중에는 다소 공격적인 것도, 또 그 반대의 성격을 띄는 것들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정치적으로 실존하는 문제들과 비교될 수 있다는 점이다(그중 다수를 필자가 직접 제시한 바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 현존하는, 그리고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고자 짧은 글을 남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파고들어보자. 2025년 6월 12일과 20일, 하루 최대 3-4개의 글이 올라오던 수필게시판에 10-20개 정도의 글이 올라왔다. 대체로 1000자 이하의 짦은 글이었으며 주제가 비슷했기 떄문에 조직적으로 올렸으리라 짐작이 되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정중 일부가 소속 학교를 명시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추적한 결과 글틴을 교육과정중에서 활용했다는 것을 찾을 수 있었기 떄문이었다. 몇몇 글티너들은 분개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항의의사를 표했다. 글티너들이 이를 불쾌하게 여긴 수많은 이유중 하나는 (화자님의 논지를 인용하자면) 글틴을 학생들에게 강제했다는 것이었고, 이 외에도 멘토님에 대한 부담이나, 월장원에 대한 저평가등 중요한 이유들은 더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사건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글틴에는 분명히 글틴의 홍보 차원에서 이 사건이 비단 부정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고도 주장한다. 문학의 보급 차원에서 이는 어쩌면 문학이 더 대중화되고 있고, 또 이를 통해 더 대중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멘토님에 대한 부담이나 문예위에서 멘토 인력을 확충하면 될 일이다. 역사적으로 가능했었음은 여러 군데에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서 한가지 짧게 짚을 점은, 문학가로서 평범한 한 인간에게 문학에 참여하는 것을 권하기란 꽤나 난감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은 잉여적 노동이고, 항상 그래왔으며, 또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소모적인 동시에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진부한 공격이긴 하지만 필자는 예술의 본질이 아마추어리즘에 있다는 데에서 한치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 이에 대해선 후에 다루도록 하고, 문학을 권함에 있어 문학적 창작이 대중화 되는 것에 대하여서도 그것이 마냥 좋기만 한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문학은 문학가의 수가 아니라 문학가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이해에 인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더이상 글틴이 ‘우리’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생각해보자. 이번 건은 큰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다른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타났음에도 그에 대해 분석할만한 다른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개인적 수준의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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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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