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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안락사

  • 작성자 유성화
  • 작성일 2025-08-01
  • 조회수 894

담쟁이덩굴이 된 소월을 시멘트벽 아래에 하나씩 심었다. 총 마흔네 개였다. 손이 금방 붉어졌다. 뼈마디에 찬바람이 스미는 듯했다. 벽 사이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씨앗 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소월은 오 년 전 남편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 년 동안 홀로 좁은 방에서 살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좁고 음습한 악취가 풍기는 방이었다. 소월이 그 방에서 초록 안락사법이 있어 다행이라고 할 때, 나는 미치도록 반박하고 싶었다. 일흔다섯이 되면 강제로 식물이 되어 죽어야 하는 법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월처럼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월은 예쁜 꽃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물을 붓자 담쟁이는 빠르게 자라났다. 담쟁이를 눈으로 쫒았다. 밑에서부터 파릇한 잎사귀가 돋았다. 금세 탐스럽게 되어 선명한 녹빛을 띄었다. 잎사귀를 잡아보았다. 보드랍고 면적이 넓었다. 서희의 손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떨렸다. 가슴에 화한 민트 사탕이 떨어진 것 같았다. 소월은 죽기 전에 자기가 어떤 식물이 되던 벽 아래에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으로 소월이 원망스러워졌다. 나는 소월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 또한 소월이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죽으면 날 심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낮달을 봤다.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를 따라가다 보니 낮달이 보였다. 지난밤 보았던 달보다 더 커다란 반달이었다. 마치 종이를 잘라 물 위에 버려둔 반투명한 종이달 같았다. 곧 녹아 없어질 듯 엷게 빛났다. 시멘트벽은 청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상태였다. 담쟁이덩굴은 페인트 벗겨진 자리를 덮었다. 담쟁이덩굴이 벽 끝에 다다랐다. 


 소월의 집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그동안 아스팔트 끝자락에 자라난 민들레가 시체인지 의심했다.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의 노인이 앉아있었다. 오른편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청색 가죽 시트에 등을 기댔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히터가 세게 틀어져 있던 탓에 공기가 건조했다. 창밖을 보다 보니 길가에 자란 들풀마저 신경 쓰이기 시작하였다. 소월의 집에 다녀온 뒤로 신경이 예민해졌구나 싶었다.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뒤에 사마귀가 있는 노파가 비니를 푹 눌러썼다. 비니를 쓴 노파는 볼이 파여있었고 자주 기침했다. 멀끔한 남색 양복을 차려입은 노인이 노파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머리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였다. 노파는 비니를 올리고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이 품에서 사탕을 꺼냈다. 


 호박엿이에요. 노파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호박엿을 받았다. 노인이 노파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군청으로 갑니다. 초록 안락사는 죽기 사흘 전부터 신청해야 블랙카드를 받으니까요. 노인은 짧게 탄식했다.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노인이 대답했다. 가족이 있습니까. 노파의 질문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손녀 한 명이 있습니다. 췌장암 말기인 저를 이 년 동안 살게 해준 고마운 아이입니다. 노파의 눈에는 안광이 없었다. 편하다기보단 체념한 표정이었다그런데 제가 죽고 나서 씨앗이 되면 흙에 심어줄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게 다정한 따님이라면 분명 좋은 자리에 심을 겁니다. 이를 테면요? 노인이 턱을 괴었다. 아마 담벼락 같은 곳이 아닐까 합니다. 언제든지 볼 수 있기도 하구, 무엇보다 다른 식물들에 섞이기 좋잖습니까. 노파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노인에게 되물었다. 자기만 알아볼 수 있다는 거죠?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시신이 식물이 된 뒤로 어디든 납골당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 아마, 저라면 그렇게 심었을 것 같습니다.그나저나 죽기 전에 바다나 한 번 가고 싶어지네요. 노인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그러게요, 산속에서 평생 살다 보니 바다를 볼 일이 많이 없죠. 노인은 행복한 상상에 빠진 듯 말을 이었다. 가서 오징어 회도 먹고 싶구. 매운탕에 소주 한잔하고 바다도 보고. 면허를 반납하지 말 걸 그랬네요. 저도 면허가 없어서, 여기서 역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죠. 아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애썼다. 대화를 듣다가 노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양팔이 체중을 못 버티고 무너졌다. 어쩔 수 없이 멀리서 노인의 이름을 물었다. 최의립니다. 노파의 이름도 함께 물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인애라고 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바다를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군청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를 포함한 버스 안 노인들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기에 사람을 가리지 않는 듯 보였다. 같은 처지를 공유하는 동갑내기였기에 말이 잘 통했다. 군청에서 헤어지는 길에 인애의 집에 초대받았다.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다리가 야위어갔다. 어제보다 숨이 벅찼다. 날마다 떠오르는 해를 보는 시간이 빨라졌다. 이 나이에 느리게라도 뛸 수 있는 몸이 축복이란 걸 안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더 멀리 달리고 싶어진다. 무리하게 된다. 나와 함께 달렸던 소월이 어느새 손에 닿지도 않을 만큼 멀게 되었다. 소월과 달렸던 길이 부쩍 낯설게 느껴졌다. 더 빨리 달리라는 소월의 말이 메아리치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얼어 불은 강물 위로 태양이 반짝였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마른 갈대가 강가에 빼곡히 자라있었다. 눈앞이 무척 흐렸다. 눈을 덮은 얇은 수분 막에 성에가 낀 것 같았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쪽빛 하늘과 섞여 탁했다. 흐르는 땀에 눈물이 섞였다. 눈을 비볐다. 축축해진 손을 떼어냈을 때 비로소 눈앞이 또렷해졌다. 난간이 검붉은 낡은 다리 너머 그늘진 마을이 보였다. 콘크리트 벽에 태양이 내리쬐었다. 눈앞의 마을이 새하얗게 타는 듯했다. ‘임신 천국, 불임 지옥’ 다리에 걸린 플래카드에 시선이 쏠렸다. 최근에 건너 들었던 기억이 났다. 백발노인들 뿐인 마을에선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장례식을 한다고. 초록 안락사 탓에 마을의 유일한 소각장이 폐업한다는 얘기도 서슴없이 들렸다. 이 마을에 사는 노인들이 국회 앞 시위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흘려들었는데. 정말 마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정자에 멈췄다. 숨을 고르며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인애의 집으로 달려갔다. 라디오 뉴스는 끄지 않았다. 다리가 더 무거워졌다.

 - 국내 육십오세 이상 인구가 사십 퍼센트를 넘긴 가운데, 여전히 초록 안락사법은 수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찬성하는 비율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정년퇴직이 없어진 노인들의 자살률이 매우 증가했으며, 팔십오세 이상 노인을 데리고 있는 가정은 노인 나이에 비례하여 세금을 늘리는 법안이 오늘 새벽 네 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좁은 골목 사이에 도로가 있었다. 인애의 집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 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집이었다. 상아색으로 변색된 담장을 지나가다 유독 이질적인 나무 담장이 보였다. 적갈색 나무 막대를 감싼 덩굴에 아담한 분홍 꽃이 피었다. 윤기 나는 나무 담장 뒤로 새하얀 이층집이 서 있었다. 주홍색 벽돌 지붕은 햇빛이 드리우자 소금처럼 반짝였다. 마당을 덮은 잔디에 이슬이 맺혀있었다. 곧 죽을 사람의 집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동화 같은 집이었다. 인애가 밝은 미소로 나를 환영했다. 나는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의리의 옆에 앉았다. 의리는 오늘도 어제 입었던 양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 아침 뉴스를 보고 있었다.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던 내용과 같았다. 의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티브이를 쳐다보았다. 의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잔인하긴 하군요. 존엄사라고 해도 초록 안락사는 반강제적이지 않습니까. 의리가 소매를 걷었다. 마른 팔에 도드라진 핏줄이 조금은 징그러워 보였다. 예순다섯에 초록 안락사를 신청하지 않으면 의료 서비스조차 받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죠. 의리는 내 말에 동의하는 듯 강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처음 초록 안락사를 시행할 때는 아무런 제재도 하질 않더니, 쓸모없는 존재라고 낙인찍힌 기분이라 썩 좋지는 않군요. 연금을 더 받는 건 다행이죠. 제때 신청만 하면 죽기 전까지 먹고 살 수는 있으니까요. 인애의 말을 들은 의리가 발끈했다. 그것도 저희 세대가 버는 거잖습니까! 흥분한 의리를 진정시켰다. 소파에서 일어났다. 인애에게 화장실의 위치를 물었다. 인애는 화장실이 이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보일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아이보리색 나무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단단한 계단에서 짙은 나무 향이 풍겼다. ‘TOLET'이라고 적힌 문패가 보였다. 글씨가 비뚤배뚤한 것을 보아 인애가 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찰나 문을 열고 소녀가 나왔다. 기름진 머리의 소녀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나를 올려보았다. 빠르게 나를 지나쳤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화장실 건너편의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곶감을 먹으면서 영화 한 편을 봤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발견한 영화였는데. 사십년 전에 유행했던 <수상한 그녀>라는 코미디 영화였다. 조금 전까지 무거웠던 분위기도 풀리고 간만에 배를 잡고 웃을 수 있었다.영화를 보면서 틈틈이 여행 계획을 짰다. 내일 아침 여덟 시에 인애의 집에서 모여 주문진으로 가기로 했다. 밤이 깊어졌다. 인애가 집으로 돌아가서 먹으라며 땅콩 과자를 손에 쥐여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려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와 연락하는 중에 의리가 술을 권했다. 내일 아침 운전을 해야 했기에 거절했다. 하지만 의리가 마지막이라고 부탁하는 통에 그를 떨쳐내지 못했다. 금방 도착한 택시를 타고 함께 의리의 집으로 갔다. 


 의리의 집으로 향할수록 길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산 중턱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올라갔다. 노란 불빛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복수초 위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였다. 잠깐 들었던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택시가 점점 느리게 움직였다. 의리가 블랙카드를 꺼내 택시비를 계산했다. 택시는 어두운 산 아래로 금방 사라졌다. 의리의 집 앞에 섰다. 의리가 가까이 가니 형광등이 켜졌다. 붉은 판넬 지붕 위 갈색 솔잎이 수북했다. 벽돌 사이에 이끼가 자라있었다. 울창한 검은 숲 저편에서 까마귀가 울었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철문이 열렸다. 나는 의리를 따라 어딘가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을 넘었을 때 가장 먼저 다섯 켤레의 구두가 보였다. 먼지조차 쌓이지 않고 엄숙한 분위기가 풍기는 구두들이었다. 노란 백열등에 구두가 반짝였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에 발을 딛었다. 의리가 화장대에 기댄 작은 나무 탁상을을 펼쳤다.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병과 도토리 색 술잔 두 개를 꺼냈다. 의리에게 술과 잔을 건네받았다. 의리가 선반에서 일회용 접시 하나를 꺼내 내려놓았다. 나는 둥근 일회용 접시에 땅콩 과자를 뜯어 쏟았다. 낱개로 된 탓에 뜯는데 귀찮았다. 나는 과자 하나를 입에 넣었다. 단맛이 강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별미였다. 나는 의리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아무 말 없이 받아먹었다. 


 헤실헤실 웃는 의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 안 해요? 죽어도 내가 원하는 식물이 될 수 없다는 게.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의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의리는 표정을 팍 구기며 앞에서 손을 휘적였다. 당연하죠. 운 나쁜 사람은 이름도 모르는 잔디가 돼서 밟혀 죽을 수도 있는 거고. 운 좋은 사람은 은행나무가 돼서 제 명보다 더 오래 살고. 애초에 식물이 되면 우린 살아있긴 한 걸까요. 모르겠어요,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나는 의리에게 그것이 불만이냐고 물었다. 네, 불만입니다. 초록 안락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늘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지요. 나는 미세먼지로 인해 하늘의 색이 변한 시대를 떠올렸다. 초록 안락사가 시작되고 이십년이 지나서야 하늘은 본래의 푸른색을 찾을 수 있었다.그동안 젊은 애들이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고 그 책임이 모두 우리에게 있다는 것처럼 돌리고. 우리는 뭐 살아있으면 안 됩니까? 그냥 죽어야 하는 거예요? 나는 터져 나오는 의리의 입을 막걸리로 막았다. 의리의 잔에 막걸리가 위태롭게 철렁였다. 의리가 두 잔 만에 잔을 비웠다. 의리는 자기가 매일 닦고 있다는 구두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현관에 들어설 때 보았던 구두 다섯 켤레였다. 의리는 자기 돈을 모두 털어서 양복 세 벌과 구두 다섯 켤레를 샀다고 말했다. 양복점에서 사기엔 비싸서 중고로 구했는데 초록 안락사 신청한 날이 돼서야 사기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의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의리의 눈가에 난 주름에 그늘이 졌다. 나는 의리에게 어째서 이것들과 전 재산을 바꾸기로 했느냐 물었다. 의리는 폼나게 죽고 싶다고 말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비싼 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서, 죽을 때만큼은 멋진 옷을 입고 죽고 싶다고 속삭이듯 말했다. 의리는 예전 생각이 났는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꾸벅꾸벅 졸다가 의리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날이 밝아오도록 술판을 벌였다. 취한 의리가 중간에 노래 한 곡을 불러주었는데. 잘 때까지는 나는 그 이름 모를 노래의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 아직도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데. 죽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숙취에 찌든 의리를 놔두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너무 덜컹거리는 통에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옷만 갈아입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가까운 의리 내에서 의리를 태우고 인애의 집으로 갔다. 인애는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통이 큰 자색 맨투맨과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인애의 옆에 어제 봤던 소녀가 서 있었다. 잠든 의리가 뒷좌석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인애가 서희라고 부르는 손녀를 일단 앞에 태웠다. 의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옷에서 술 냄새와 함께 눅진한 땀 냄새가 났다. 백미러로 보니 인애는 의리와 거리를 둔 상태였다. 


 차 밖으로 나와 찌뿌둥한 몸을 폈다. 소금기 서린 바람은 뼈를 깎을 것처럼 차가웠다. 서희를 따라 오징어 회를 파는 집으로 걸어갔다. 서희와 인애의 걸음이 무척 빨랐다. 바다보다 먼저 횟집 앞에 서게 되었다. 두꺼운 비닐로 덮인 문을 열었다. 중년처럼 보이는 남자 한명이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오징어회 3인분과 매운탕을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비닐 밖만 바라보는 인애의 손녀에게 시선이 향했다. 의리가 눈치 없이 서희에게 이름을 물었다. 서희가 제 이름을 작게 읊조렸다. 서희의 눈은 쌍까풀이 없었고 그녀의 할머니처럼 눈에 안광이 없었다. 피부에 오돌토돌한 여드름 자국이 보였고, 내려간 입꼬리 탓에 불만 많은 사람으로 오해하기 쉬워 보였다. 오징어회는 빠르게 나왔다. 서희를 제외한 모두 젓가락으로 오징어회를 한 움큼 집어 먹었다. 씹는 맛이 아주 좋았다. 다만 비릿한 바닷냄새가 짙은 탓에, 비위가 약한 사람은 초장 없이 많기 힘들 것 같았다. 인애는 오징어회가 입에 맞는지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와사비를 풀은 간장에 살짝 담가 삼키기도 했다. 인애의 밝은 표정과 의리의 표정은 대조되어 보였다. 의리는 처음 오징어 회를 집어 먹은 이후 미간이 좁아지더니, 가끔 마늘을 씹거나, 서희에게 시선이 머무는 등 오징어회에는 거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주문한 오징어회는 나와 인애가 대부분 먹어 치웠다. 서희는 인애의 귀띔을 듣고 나서야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을 들었다. 


 횟집 사장은 매운탕과 함께 회 한 접시를 내왔다. 괴도라치라고 하는 생선이었다. 몸이 길쭉하고 괴팍한 생김새를 가진 생선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매운탕에 회를 뜬 괴도라치를 포함하여 도루묵도 함께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비스라고 말하는 사장에게 나는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는 마지막으로 보는 바다일 텐데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애가 사장이 떠나는 길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의리는 소주 한 병을 시키고 내게 한 잔만 같이 먹어달라고 권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괴도라치 회는 달콤했다. 단단했고 입에 달라붙는 뜻 쫀쫀하면서도 입에서 금세 사라졌다. 나는 도루묵 한 마리를 그릇에 담았다. 알이 들어찬 도루묵의 살을 골라내어 국물과 함께 삼켰다. 비닐 밖에서 남색 남방을 입은 키 큰 남자 한명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뒤에 몸집이 크고 얼굴이 붉은 남자도 함께였다. 그들은 그대로 횟집에 들어왔다. 키 큰 남자가 종이 뭉치를 훑더니 사장을 불렀다. 남자 둘을 본 사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얼굴이 붉은 남자는 사장에게 초록 안락사를 신청해야 할 기간이 지나서 직접 동의서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정중한 말투로 죽음을 독촉하는 모습이 무척 기이하게 느껴졌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공기가 불편해졌다. 인애는 내게 빨리 먹고 나가자며 눈치를 주었다. 나는 술을 반병쯤 비운 의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밖으로 가자며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결국 매운탕을 반도 못 먹고 밖으로 나갔다. 종이에 서명하는 횟집 사장이 나갈 때까지 눈에 밟혔다.


 트라이포트 위로 올라가 짙은 겨울 바다를 보았다. 거센 파도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파란 도화지에 하얀 유화를 거칠게 칠한 듯했다. 인애는 의리와 촛대 바위를 구경하러 갔고, 서희는 트라이포트 앞 시멘트 계단에 앉아있었다. 바다를 가까이 보고 싶어졌다. 나는 파도에 깎인 까만 바위 사이를 건너갔다. 바람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파도가 높게 치는 뾰족한 바위로 다가갔다. 폭발하듯 바위에 부딪힌 파도가 튀어 올랐다. 바닷물을 뒤집어썼다. 온몸에서 짠 내가 진동했다. 뾰족한 바위로 이동하는 동안 은은하게 풍겼던 바다 내음이 묻혔다. 너비가 좁은 회색 바위를 딛고 뾰족한 바위에 기댔다. 저 멀리 수평선에 걸친 작은 어선 한척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가슴에 쌓인 무거운 것이 파도와 함께 밀려가는 듯했다. 소월의 씨앗을 받으러 갔던 날을 회상했다. 군청 뒤 공동 수목원에 바나나 나무가 심기는 것을 보았다. 공동 수목원은 공동묘지와 마찬가지였다. 가족이 없는 노인들은 그곳에 심어졌다. 수목원의 문이 열려있었다. 빨간 글씨로 써진 ‘관계자 외 출입 금지’가 선명했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수목원 안으로 들어갔다. 수목원 내부는 숨쉬기가 답답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다. 멀리서 아지랑이 피는 것이 보였다. 공동 수목원에는 열대에서 자라는 풀, 냉대에서 자라는 나무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식물이 심겨 있었다. 옥수수밭 앞에 섰다. 빼곡히 자란 옥수숫대에 위태롭게 옥수수가 달려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옥수수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옥수수 사이로 어린 바나나 나무를 이고 가는 험상궂은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바나나 나무를 떨어뜨렸다. 잎이 노랗게 변색된 다른 바나나 나무 옆에 가져온 나무를 심었다. 여자가 일어나면서 잎을 건드렸다. 커다란 잎사귀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실수로 만진 옥수숫대가 바스러졌다.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내가 수목원에 심기는 상상을 했다. 메마른 땅에 뿌리를 뻗지만 결국 말라비틀어질 테다. 내가 죽은 자리에 새로운 식물이 심어질 테다. 만약 식물이 되어서도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 식물에 내 영혼이 깃든다면 가만히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야 하는 식물이 된다면, 나는 초록 안락사가 되기 전에 에바다에 빠져 죽어버리고 싶을 것 같았다. 파도가 높게 쳤다. 파도를 피하려다 바위에서 미끄러졌다. 얕은 줄 알았던 바다는 내 생각보다 더 깊었다.


 내 몸의 모든 구멍을 바닷물이 메우는 것 같았다. 발버둥 쳤으나 떠밀리는 속도를 늦출 뿐이었다. 파도는 너무도 쉽게 노쇠한 몸을 무너뜨렸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바다가 나를 굴복 시키려 했다. 내가 보는 곳이 위인지 아래인지 모르겠다. 태양을 찾아야 했다. 가까스로 눈을 떠도 빛이 보이지 않았다. 새벽보다 어두운 바닷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다. 두렵다. 내일이면 식물이 되는 것과 관계없다. 시골 병원의 낡은 일인실에 누워 외롭게 죽겠지만, 그런데도 누워서 눈을 감고 싶다. 사람의 눈을 보고 싶다. 내게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의 표정을 기억하고 싶다. 동정, 혐오, 무심 상관없이 모든 태도에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살고 싶다.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을 보았다. 석고로 만든 타일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을 머리 위로 들기도 힘들었다. 힘들게 고개를 들었다. 이불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가 보였다. 일어났어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인애가 있었다. 인애는 입을 꾹 다물고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제가 어떻게 살아있습니까. 서희가 당신을 살렸어요. 아, 나는 짧게 탄식했다. 서희는 다치지 않았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인애는 손가락으로 옆 침대를 가리켰다. 새하얀 천을 덮은 서희는 무릎이 부풀어있었다. 천 밖으로 창백한 손을 보며 나는 일어나기 위해 이를 물었다. 돌가루가 묻은 서희의 손으로 팔을 뻗었다. 인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희 엄마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어. 마흔일곱 밖에 안됬는데 토끼풀이 돼버렸어. 인애가 누워 있는 나를 향해 두서없이 말을 이었다. 서희는 제 어미를 집 앞에 심었지. 그리고 자라난 엄마를 씹고 있는 개를 다음 날 보았다고 했어. 서희는 차라리 사람으로 죽는 편이 낫다고 했어.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마. 오늘이나 내일이나 죽는 건 똑같잖아. 인애가 힘없이 중얼거리는 중에 간호사가 찾아왔다. 간호사는 원한다면 초록 안락사를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새벽 열 두시가 되자마자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인애가 간호사의 손을 잡았다. 자신을 초록 안락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오늘 손녀를 잃었으며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확답을 해주지 않았다. 의사에게 물어보겠다 답하고 종종걸음으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인애에게 해야 할 말이 많았다. 아무리 추려보아도 셀 수조차 없었다. 의리가 죽이 담긴 봉투를 들고 왔을 때 인애는 말없이 병원 밖으로 나갔다. 야채죽을 삼켰다. 허기진 배가 미웠다. 의사가 찾아와 내 상태를 말했다. 온몸의 뼈에 미세한 금이 생겼다고 했다. 오른쪽 다리는 유독 심각하다고 했지만, 초록 안락사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했다. 간간이 간호사가 찾아와 상태를 물었다. 나는 모든 질문에 괜찮다고 답했다. 창밖은 새카만데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열 두시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멀리서 간호사를 따라 걸어가는 인애를 보았다. 인애야! 쇳소리가 뻗어 나왔다. 목이 부풀었는지 말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어떻게든 침대에서 벗어나 보려 몸을 들썩였다. 침대 옆 난간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로 내려가려 다리를 내렸다. 차가운 타일에 발바닥이 닿았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극심한 고통에 신음했다. 가슴이 눌려서 숨쉬기가 어려웠다. 나는 차가운 타일에 머리를 박았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야 내가 식물 되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심어진 자리 그대로 평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잡초가 나의 또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되었다.

유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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