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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거리.

  • 작성자 시루떡
  • 작성일 2025-09-10
  • 조회수 306

덥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서 길게 한숨을 내쉰다. 어둠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 선선한 바람이 이따금 불어왔지만 도서관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사각거리는 소리와 팔락거리는 종이소리를 듣고있으면 쉴새없이 돌아가는 사람들의 뇌가 열기라도 뿜어내고 있는것같이 더워지는 것이다. 등을 적신 차가운 땀을 무시한채 담요속으로 파고든다. 덥다.

같이 도서실에 온 친구가 눈짓한다. ‘나가자.’ 쪽지에 적힌 글씨체가 장난스럽게 휘날린다. 키득거리거나 숨을 들이키는 것 대신 윙크 한번 날린 나는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인다.

나는 최대한 소리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느릿하게 움직여도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나고, 곧 몇몇 시선이 닿았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핸드폰과 에어팟을 챙기고 발을 빠르게 놀려 도서실을 나온다. 도서실과 밖을 구분하는 문을 닫자마자 바람이 훅 불어온다.

누군가가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껴안는것처럼, 일순간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움이 고여있는 도서실 안과 다르게 끊임없이 순환하며 목 뒤를 두드린다. 머리카락이 얕게 들썩거리고, 그 사이로 들어온 바람은 차가운 살결을 부드럽게 휘감아 간지럽힌다. 나는 건물 밖으로 완전히 나가 산책길에 들어서서는 정면을 바라본다. 탁 트인 시야속에 밤거리가 담긴다.

“…와, 진짜 예쁘네.”

“그러게. 도서실 오면서 볼때는 이렇게 예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교과서 지문이라는 현실을 살다가, 밤거리라는 환몽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실제로는 반대일 텐데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 보도블럭을 환하게 비추는 노르스름한 가로등. 가로등 아래 그림자를 만드는 붉그스름한 나무와 산책길 양옆으로 깔린 푹신한 흙. 그 위로 소담스럽게 핀 쑥부쟁이들. 다박거리는 걸음소리와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길목에 서서 그 조각들을 한눈에 바라본다. 바작하니 밟히는 낙엽들을 살살 밀어보다가, 괜히 잡초를 발끝으로 톡톡 건드려보기도 한다.

나는 나오면서 챙긴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고 마저 걷는다. 부드러운 달큰함이 혀 위로 뭉근하게 내려앉았다가 목을 넘어간다. 가을밤, 흐릿하게 풀내음이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고있자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식은땀에 젖은 등판을 말린다. 시원한 바람이 앞머리를 간질였다가 미련없이 떠나버린다. 이번에는 바나나우유를 한입 머금고 가만히 서있는다.

“뭐해?”

“이리 와봐.”  

바람이 귓가에 속삭이고 사라져,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고개를 들어본다. 새카만 하늘아래 남청색빛 구름이 달빛에 비추어 희미하게 보인다. 달은 구름 사이에 있다. 가로등이 비추지 않은곳을 밝혀주는 다정함이 구의 형태로 은은하게 빛난다. 그 달은 다감하게도 모두를 비추었는데, 가로등의 빛이 닿지않은 나무의 꼭대기를 다독이듯이 흐르는 빛을 볼때면 꼭 나와 내 친구도 저렇게 부드러이 쓰다듬어주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람이 속삭이는 말대로, 우리는 더 걸어간다. 공부와 입시와 경쟁으로부터 한걸음씩 멀어지고 있다. 발이 단단한 땅을 박차 걸음걸음 갈때마다 숨통이 트인다. 무언가의 열기로부터-혹은 냉기로부터-한없이 멀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걷는다. 두명분의 웃음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흩날리며 바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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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다윗

    글이 너무 좋아 여운이 남네요 ㅎㅎ

    • 2025-10-22 17:53:25
    위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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