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캐치볼에서 다른 궤적 만들기
- 작성자 yerbi
- 작성일 20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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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시를 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제목이 정말 누구와도 겹치지 않을까? 며칠 전 그 궁금증을 타파할 수 있었다. 그때 난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과 황인찬 시인의 <구관조 씻기기>를 읽고 있었다. 각 시집에서 <캐치볼>이라는 제목의 시가 각각 있었다.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다르게 쓰여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말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세계가 생기고 구축하고 그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오로지 자신이 되니까. 평소 시를 읽거나 쓰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만 최근 들어 ‘시란 뭘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 시들은 그런 생각을 조금이나마 잊히게 해줬다. 시를 잘 모르거나 조금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많고 많은 시 중에 이 시들을 고른 이유.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어 이런 흥미를 발견하고 또 같은 제목으로 쓰여 다른 내용인 시를 각각 분석해보면 어떨까?라고 느낀 종착점. 평소 캐치볼하면 ‘주고 받는다’, ‘손에 꽉 잡힌다’라는 특징이 떠오른다. 과연 이 시도 그런 내용만 가득할까?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또한,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건 각 시인의 시를 분석하고 이들의 시 세계와 마인드를 엮어 나타내기.
자, 이제 한 번 캐치볼을 던져보자!
캐치볼 / 안희연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불타는 공이었다
되돌려 보내려면 마음의 출처를 알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투수는 보이지 않고
언제부터 내 손엔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을까
벗을 수 없어 몸이 되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알 수 없겠지, 이 모든 순서와 이유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나에게 다정해지려는 노력을 멈춘 적 없었음에도
언제나 폐허가 되어야만 거기 집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왔을 것이다
불행을 막기 위해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뭐든 미리 불태우려고
내가 받으며 노는 시간
그래도 가끔은
지평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
불타는 공이 도착했다는 것은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다
-> 이 시는 화자가 예고없이 날아든 공을 받는 상황이다. 처음엔 공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더 커보인다. 전개될수록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다시 날아오는 것에 대한 준비를 마친다. 캐치볼은 순식간에 날아오는 특성이 있다. 단순히 불타는 공은 공 그자체가 아닌 예고 없이 우리에게 오는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 모두 그런 경험 한 번 즈음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기력해진 날, ‘인생노잼시기’, 우산이 없는데 소나기가 내림 etc. 이런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다. 시인을 화자가 대신해 이 시로 알려주고 싶은 건 ‘고난과 시련에 대한 의지하는 법’이다. 처음엔 마음의 출처도 몰랐지만 나중엔 또 다른 불행을 일부러 부르고, 고독을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엔 그들을 상대할 의지를 다잡는 행위인 ‘글러브 단단하게 조이기’.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시와 자세 아닐까.
또한, 캐치볼 이외에도 안희연의 시에선 단단한 의지가 나타나는 점이 매력적이다.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일과>),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더는 믿지 않기로 했다 미로는 헤맬 줄 아는 마음에게만 열리는 시간이다’(<추리극>) etc. 무조건 완벽해야 할 필요없고, 가끔은 물건도 길도 마음도 잃어도 잘 살 수 있다는 안희연식 위로 방법이 좋았다. 안희연의 ‘캐치볼’은 ‘고난 역경 갑자기 와서 너무 힘들다 그렇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다잡아보자’라는 말을 압축한 표현이다.
개인적으로 <캐치볼>과 연관성과 마음에 든 점이 있다. 바로 우시사의 편지와 인스타그램 무물보 답장이다. ‘함께 살아 있자고 말하는 시 앞에선 번번히 마음이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무섭게 흐르는 것이니 생각보다 금방일 거예요’,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어떻게든 사랑해보기 위함이 아닐까요’(우시사),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한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 밖이 아니라 안에서 구하기’(인스타그램 무물보) 캐치볼의 시도 밖에서 일어나는 고난을 굳이 막으려 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가짐이였다. 또한, 생각보다 모든 건 금방 일어나고 식어버린다. 그러니까 다시 날아올 캐치볼을 잡으려는 다짐까지. 말하는 모든 것들이 시와 연관이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올곧고 쭉 이어나갈 수 있는 용기와 마음이 담담하게 따뜻했고 부드러움이 잘 느껴진다. 그녀의 세계 구축이 시가 되기까지의 걸음을 잘 보여준다.
가장 좋았던 구절은 ‘불타는 공이 도착했다는 것은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조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난 곧 졸업을 앞두고 있고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무소속 상태다. 또한, 대학이라는 공간은 지금 다니는 학교보단 소속감이 아무래도 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화 속에서의 낯섦과 불안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 시를 읽으니까 그런 마음이 조금은 줄어드려고 한다. 너무 먼 미래가 아니고 당장 2개월 뒤의 나는 어떻게 지낼지 모르겠지만 이런 불안함(불타는 공=불안한 미래)가 나에게 온 것은 앞으로를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불에 탈 무언가)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시가 세상에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고 문학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이 시를 노래없이 먼저 읽어보자. 그런 다음 Oasis - Wonderwall 듣고 다시 읽어보기!
https://youtu.be/Kpq3c-7f58I?si=Iy07CwIYiGH20Uz0
(이 영상에 있는 해석이 시와 잘 어우러진다)
황인찬 / 캐치볼
던진 공이 돌아오지 않는다
파울
선언하는 새들
잔디가 자꾸 죽으려 한다
죽은 것은 투수
나는 그 자세가 마음에 든다
공의 속도로
지면과 새가 부딪치듯이
손이 자꾸 헛나가니까
내가 자꾸 누우려 한다
원근법에 의거하여
글러브는 펜스 위에 잔디밭은 구름 위에
아니 조금 더
던진 공이 날아간다
글러브와 잔디밭을 통과하며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적 없으니까
새들은 침묵한다
-> 이 시는 화자 대신 그 주변의 사물의 시점에서 썼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공을 던졌지만 다시 받을 수 없다. 상대는 없어졌고 그로 인해 자신도 손이 헛나간다. 또한, 잔디가 자꾸 죽으려 하고 의도치 않게 누우려하고 하는 모습은 흡사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사람이 생을 다 하면 구름을 넘어 위로 올라간다고 말한다. 이는 갖고 있던 글러브와 그가 서 있던 잔디밭이 점점 위치가 바꼈다는 걸로 시에서 표현한다. ‘글러브는 펜스 위에 잔디밭은 구름 위에’ 부분 참고.
이 시에 주목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새’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새는 하늘에서 나는 존재다. 떨어질 일도 잘 없고. 마지막 부분에서 ‘떨어진 적이 없으니까 새들은 침묵한다’는 구절이 있다. 실제로도 시에서도 새는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굳이 특별한 점이 없는데 왜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화자가 서 있던 잔디밭(지면)과 새가 마찰하는 순간 황인찬의 ‘캐치볼’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현실과 영원의 문턱’을 넘어서기를 표현한 것.
황인찬의 시는 무엇보다 고요함을 잘 나타낸다. 이 시에서도 격앙되거나 절망보단 담담하게 대상을 바라보기에 그친다. 이런 담담함이 오히려 참신하다고 느끼게 된다. 고요함에서 느끼게 되는 공백은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마음을 선사한다. 가장 좋았던 구절인 ‘던진 공이 날아간다 글러브와 잔디밭을 통과하며 포물선을 그리며’가 이를 더욱 상기시킨다. 포물선이 그려지는 건 공이 아주 잘 날라갔다는 의미. 공(자신)이 잔디밭(현실)을 통과하며 마침내 하늘(영원)으로 나아감의 과정을 기승전결 구조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완벽하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건, 캐치볼은 현실에서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한 시간의 움직임이다. ‘영원’이란 단어를 믿지 않았지만 이 시를 읽을 때만큼은 믿게 된다. 영원에 관해 말한 헨드릭 빌럼 판 룬의 말을 인용하고 황인찬의 캐치볼에 대한 얘기는 이만 마무리하겠다.
”북쪽 저 멀리 스비트요드라고 부르는 땅에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높이 100마일, 너비 100마일인 바위이지요. 천년에 한번 작은 새 한마리가 이 바위에 와서 제 부리를 갈고 갑니다. 그렇게 해서 이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고 나면 ‘영원’의 하루가 겨우 지난 것이지요.“ - 헨드릭 빌럼 판 룬 (1882-1944)
*하단에 있는 노래와 함께 들어볼 것 (Novo Amor - State Lines)
https://youtu.be/MACzQc6FlRM?si=QzbRaRSYjDnMQQzz
같은 제목의 시가 있어도 내용은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고 그 시의 특징을 넘어 완전 먼 곳까지 사유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였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점을 계속 찾아다닐 것이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꽤 긴 분량의 글을 적을 수 있어 행복했다. 아직도 나는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가끔씩은 전 세계의 난제, 아무도 찾지 못한 범인 etc을 찾고 싶어 한다. 때론, 이런 무방비함이 나를 괴롭게 했지만 오늘 쓴 글을 통해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안희연의 캐치볼에서 ‘불타는 공이 있다는 건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와 황인찬의 캐치볼에서 ‘공의 속도로 지면과 새가 부딪히듯이’처럼 더욱 더 깊이 사유하고 탐구할 것이다. 모두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쓸데없이 많은 걸 궁금해하는 생각은 버렸으면 한다. 바닥에 버려진 찌그러진 캔도, 바닥에 있는 지우개 가루도, 유행이 지난 옷도, 내 얼굴에 난 여드름도 모두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것들이고 이를 더욱 나아가게 할 수 있다. 나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말과 노래를 마지막으로 이만 이 글을 끝내겠다.
‘사람들은 한 쪽으로 다 치우치는 게 좋다고 하지만 난 그래도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https://youtu.be/FJslPXPsz_Y?si=yuoIMMYR3Tttfjq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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