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3분 속 3년

  • 작성자 카페라떼
  • 작성일 2025-10-25
  • 조회수 271

3분 속 3년



  10월 19일, 3년의 노력이 막을 내렸습니다.(어찌 보면 4년이지만, 중학교 3학년 때는 조금 결이 다르니 빼겠습니다.) 저는 사실 시보다는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읽는 것은 물론이고, 쓰는 것도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던 탓인 것 같습니다. 중학교 국어 시간, 딴짓을 하고 싶으면 교과서를 훑어봤는데 그중 시는 대충 눈으로 쓱 스치듯 읽고, 소설이나 극 대본 같은 것들을 찾아다녔어요. 핸드폰을 걷지 않았다면 핸드폰을 했을 수도 있겠죠. 허허,,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해 쫓아다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예고를 준비했어요.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1500자 소설을 하나씩 썼어요. 그 덕에 원하던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023년에 입학식을 하고, 문학 공부를 하면서 그해 5월까지는 제가 앞으로도 계속 소설만 쓸 줄 알았어요. 제가 시 전공이 될 줄은 그땐 상상도 못 했어요. 읽어본 시집이라곤 나희덕 시인님 작품밖에 없었으니까요.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예고는 1학년 때 소설과 시를 배우고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1학년일 때는 대부분 전공선생님들이 최대한 칭찬을 해주시면서 선생님과 같은 전공으로 바꾸도록 노력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속했던 실기반은 시 담당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었는데요, 그래서 가끔 야간 실기 때 운동장에 나가 시를 쓴다던지 벚꽃 잡으러 간다던지 하이틴 드라마 같은 수업을 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선생님이 이런 묘사가 좋다, 이런 전개가 좋았다고 해주시면서 엄청 칭찬을 해주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공을 안 바꿀 수가 없겠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소설로 참여한 백일장에선 상을 못 받는데, 시간이 없어 시를 제출한 곳에서는 예선을 통과했고 상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시를 더 좋아하고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뭐랄까, 효자 같은 느낌이었요. 효자 문학. 이후 전공 선생님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탭댄스 추듯 시를 쓰고 백일장에 나갔어요.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아 명지대 특기자를 준비하며 내신은 별로 신경을 안 썼어요. 그렇게 공부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행복한 고등학생으로 무럭무럭 자라다가, 고등학교 2학년 6월, 명지대 특기자가 제 입시부터 사라진다는 무척 신기한 헛소문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황스러웠어요. 내신은 지방대 턱걸이 수준이고, 아직 다른 특기자 대학 가기에는 백일장 성적이 부족했어요. 명지대 특기자를 생각하며 백일장을 다닌 거라 다른 곳에서 인정을 안 해주는 상들도  많았거든요. 


  ‘일단 지금부터라도 내신 성적을 챙기자.’ 


  시험공부를 했고, 기말고사를 봤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적이 조금 올랐을 뿐, 아직 많이 부족했어요. 지방대 턱걸이 합격에서 지방대 합격 수준. 안타깝게도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능력은 제게 없었어요. 아빠한테 명지대 특기자가 저 멀리 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던 거였는데, 그때 장난처럼 한 말이 있었어요.


 “자퇴하고 검정고시 보면 내신 3등급 초반이나 잘 받으면 2등급도 준대. 자퇴나 할깝쇼?”


  

  아빠는 장난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으셨고 저도 그냥 일상을 살았어요. 거기서 공부가 조금 추가된. 그렇게 기말고사 소식도 알리고, 다음 학기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여름 방학식을 기다렸어요. 솜사탕 같은 강아지가 있는 광주 본가로 돌아가길 기다렸어요. 방학식 이 주 전까지 기다렸어요. 그 이후엔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아빠가 방학식 삼 주 전에, 저한테 전화를 하셨어요. 자퇴하자고 전화하셨어요. 표정이 (0.0)처럼 바뀌었어요. 설마 아빠가 그걸 기억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실 줄 몰랐어요. 자퇴생 이미지가 조금 부정적이잖아요. 그런데 제 나이대에서 저랑 비슷한 이유로 자퇴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아빠가 제게 주신 시간은 일주일. 그 안에 결정을 내리라고 하셨어요. 2학기에 수학여행, 학교 친구들, 앞으로의 학교 생활을 포기하고 내려오면, 대학 가기 전까지 입시 준비를 제대로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아빠도 문창과 졸업생이시거든요. 중학교 때부터 공부했는데, 결과가 본가 바로 앞에 있는 광주대학교면 좀 그렇잖아요.(도보 15분에서 20분 거리) 광주대학교도 물론 좋은 학교지만, 으레 시골애들이 그렇듯 저도 상경을 꿈꾸며 안양으로 학교를 갔던 거니까요. 그렇게 친구들에겐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혼자 생각했어요.


  어느 날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학교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시다가, “그래도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지. 가끔은 하기 싫은 것도 하며 포기하면서 사는 거야.”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질문에 그저 맥없이 대답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님 입에서 딱 그 말이 나왔어요. 자퇴랑 관련된 단어는 한 마디도 안 했어요. 택시에 내려서 언덕을 올라갔어요. 주위에 친구들이 있나 없나 보고 아빠한테 전화해 자퇴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한라산보다 경사도가 가파르다는 것으로 유명한 학교의 언덕, 그 언덕이랑 관련해서 쓴 시들도 많은데, 그 언덕 위에서 전화를 하게 되었어요. 

  자퇴는 빠르게 진행됐어요. 학업중단숙려제는 시간이 없어 신청도 못했고(다음 검정고시 일정 맞추려면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자퇴해야 했어요.) 담임 선생님과 학과 부장선생님께 알리고 할아버지 댁에 돌아왔어요. 그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니 아빠가 오셨다고 지하철역에서 버스 타지 말고 전화를 하라고 하셨어요. 역사에서 밥을 먹고 자퇴와 관련된 서류에 사인해 주셨고요. 외할어지와 외할머니는 뵐 시간도 없이 바로 내려가셨어요. 가끔 백일장 하러 갈 때 데리러 와주시긴 했지만, 그렇게 평일에 오셨던 건 처음 같아요. 서류는 순식간에 처리했고,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친구들과 방학식을 기다렸어요. 


  “아~ 방학 언제 오냐. 빨리 늦잠 자고 싶다. 그런데 어차피 방학에도 실기 특강 들으러 와야 하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요.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학 특강은 무슨 일이 없다면 사실상 필수 참여였어요. 그래도 사복 입고 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아, 교복 입어야 했었나? 

  학과 부장님을 만나러 다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제가 워낙 학교를 좋아해서 자퇴를 의심하던 애들이 없었어요. 사실 택시 기사님 아니었으면 전 아직도 무소속이나 학교 밖 청소년 같은 이름이 아닌, 안양예고 3학년이라고 불렸을 것 같아요. 친하게 지냈던 5명에게만 자퇴 소식을 자퇴 일주일 전쯤에 말해줬는데, 방학식 날 작은 케이크까지 만들어줬어요. 절 닮았다며 모아이를 그려놓고 놀리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요. 방학식이 끝나고, 깔끔한 사복으로 갈아입었어요. 긴 데님팬츠에 좋아하던 반팔, 와이셔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옷들이에요. 방학식이 끝났으니 학생이 아니니까 교복을 가방에 집어넣었어요. 그래도 담임선생님이 마지막에 인사할 시간을 주셔서 반 애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재미있었다고, 동창회에 불러줄 수 있으면 불러달라고 했어요.(그런데도 방학 기간에 저에게 자퇴했냐고 묻는 애들도 많았어요!!)

  이후 작년 8월부터 올해 여름까지 계속 자퇴나 학교와 관련된 시를 썼어요. 정말 그 수많은 시들 중에서 학교와 관련되지 않은 시들이 없었어요. 언덕에 관한 시도 다시 써보고, 학업중단숙려제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시도 있고, 가장 많은 건 학교 생활을 추억하며 자퇴하던 날에 대해 정말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시 속에서 사진을 와르륵 떨어뜨리기도 하고요,  깜밖거리는 횡단보도를 친구들과 달려가며 조용히 가버리는 이야기도 있어요. 학교 들꽃을 부러워하기도 하고요 재수학원 계단을 내려가며 혼자 졸업식도 해봤어요. 가끔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 부모님께 설득당해 자퇴했다 하며 꿍시렁거릴 때가 있었는데, ‘결국 선택은 네가 한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 한 켠에 근육통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죠? 그래도 다행히 자퇴 이후 상 받은 것들도 있어서 이번에 중앙대 특기자에 지원했어요.


  10월 18일 토요일, 중앙대 특기자 면접을 보러 갔어요. 한 달 동안 계속 면접 연습하면서 찍은 영상 하나가 20분이었어요. 무슨 질문을 하실지 몰라 최대한 많이 준비했어요. 좋아하는 시인이 누굽니까? 하시면 이문재 시인님과 진은영 시인님이라고 대답하기로 준비했고, 이유를 물으시면 대답할 시집과 시도 준비했어요. 장래희망이 뭐냐, 왜 지원했냐, 하고 싶은 말 있냐,라는 질문들도 준비했는데, 정작 교수님들이 질문하신 건 어떤 시인을 좋아하세요?, 시를 어떻게 공부했나요? 어느 백일장에서 수상했나요? 가 끝이었어요. 정말 3분이었어요. 어떤 시인을 좋아하냐는 질문에도 이유를 묻지 않았어요. 3분 동안만 진행된다고 들었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일 줄은 몰랐어요. 면접을 끝내고 나오니 새벽 3시부터 운전하신 아빠가 기다리고 계셨어요. 3분 동안 했다, 이런 질문을 받고 저런 대답을 했다고 하니 수고했다고 하며 만두 가게로 갔어요. 유명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오픈이 11시쯤이었어요. 저희가 도착한 건 10시 40분이었고요. 다행히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받아주셨어요. 그 후 숙소에서 다음 날 동국대 실기 준비를 했어요. 이문재 시인의 시집을 필사하면서 기념식수라는 시도 외워보고요, 이전 실기 문제들도 다시 한번 써봤어요. 그렇게 다음날 동국대를 갔더니, 소문으로만 들었던 자신이 쓸 시를 외워온다는 학생들이 실기실을 가득 채운 상태였어요. 12시에 혜화관 밖으로 나와 이번엔 유명한 중국집에 갔어요. 저는 잠깐 친구를 만났고, 그 후 다시 아빠를 만나 집으로 돌아갔어요. 3년의 노력이 3분 안에 끝났고, 그다음 날엔 2시간 만에 끝났어요. 그 2시간 3분 속에 제가 포기한 1년 6개월이 들어 있었어요. 돌아가는 차에 누워 잠을 잤어요. 새벽 2시에 도착해서도 계속 잠을 잤어요. 오늘 아침엔 학원 자습에 지각했어요. 꽤 많이 잤어요. 이렇게 오래 잔 건 오랜만이었던 것 같아요.

추천 콘텐츠

UFO가 안 보이세요? - 등굣길 3

안양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횡단보도 없는 회전 교차로 한가운데 불시착한 UFO 하나가 박혀 있다 버스와 택시가 의식을 치르듯 그 주변을 돌고 의식에는 항상 제물이 필요하지 사람들은 홀린 듯 버스 정류장에 다가와 툭 고개를 떨어트린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반대쪽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없는 거야 나중에 친구와 같이 왔을 때서야 지하상가를 통해 건너야 한다는 걸 알았어 지방에는 지하상가가 별로 없거든 저 UFO의 주인은 어디 있는 걸까 그 주변 잡초가 항상 정리되어 있던데 크리스마스에 트리까지 세우는 걸 보면 벌써 이곳에 적응했나 봐 난 아직 인천행과 서동탄행이 헷갈리는데 며칠 전에도 관악역 방면에 서있던 걸 친구들이 끌고 와 데려다줬어 한 아이가 UFO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게 뭐냐고 묻고 있다 옆에 있는 엄마는 그저 조형물이라고 한다 아이는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표정으로 UFO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허, 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UFO의 주인인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다 하나 같이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그것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 저게 조형물이라면 달달 외워야 했던 지하철의 노선도 그 복잡함도 가짜여야 할 거야파릇파릇한 이파리가 UFO 주변에 자라나는 여름 나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 카페라떼
  • 2025-04-30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