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
- 작성자 김희윤
- 작성일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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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생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될 무렵 아토피를 앓았던 언니와는 달리, 내 경우 한동안 피부에 아무런 이상 증세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런 날 보며, ‘얘는 괜찮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하셨다. 그러다 네 살 무렵 찾은 한 소아과에서 나에게 아토피 판정이 내려진 건, 부모님께 청천벽력 같았을 것이다. 언니는 아기 때 이후로 발현되는 일이 없었던 반면, 나는 성인을 앞두는 지금까지 줄곧 아토피에 시달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릴 적엔 붉게 달아오르고 피딱지가 앉은 피부를 거리낌 없이 내보이고 다녔다. 그로 인한 관심이 불쾌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가벼운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내보이지 않았고, 어른들은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며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곤 했는데, 그걸 받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아이들이었는지, 무지한 어른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내가 가진 피부염에 전염성은 없는지 물어왔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만성 질환에 전염성이 있었다면, 세상 모두와 거리를 두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식구들에게마저도….
나에게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내 곁에 있길 꺼리는 눈치라면, 필시 피부 때문이리라 넘겨짚고는 묻기도 전에 해명하곤 했다. 옮기는 거 아니니까, 괜찮다고.
남이 오해를 하더라도 내가 풀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의 나는 무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그리 가볍게 넘기지는 못할 것 같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아토피가 일어나는 양상이 바뀌었다. 팔다리 접히는 부위나 목, 손목과 손등과 같은 부위에만 상처가 났던 이전과는 달리, 얼굴부터 시작해서 몸 곳곳으로 넓게 번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피부가 심하게 일어났다가 아물기 시작할 때면 하얀 가루 같은 각질이 떨어졌다. 그 무렵 밖에 나갔을 때, 특히 등교했을 때가 관건이었다. 긁지 않아도 온몸에서 각질이 눈이 오듯 쏟아져 내려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각질이 잘 보이는 어두운 옷을 피하기 시작했다. 교복 조끼와 치마가 군청색이라, 아무리 더워도 위에 흰 외투라도 덧대 입는 것이 최선이었다. 곱지 않은 눈길이 느껴져도 나로서는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는 그런 시선을 외면하지 못하는 계기가 생긴 일이 있었다.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종일 자습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작년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나는 그 와중 아토피가 악화되어, 공부에 집중하기는커녕 그냥 버티자는 심산으로 자습 내내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내 짝으로 앉은 아이가 그의 대각선 앞자리, 즉 내 앞자리에 앉은 자신의 친구에게 다가가선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사자를 가까이 두고 말할 리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들을수록 나를 향한 이야기라는 확신은 커져만 갔다. 그들이 들리게 이야기한 건지, 내가 유독 예민해진 상태라 그날따라 그들의 말소리가 귀에 꽂혔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옮겨 적자면, 이랬다.
“너, 1교시에는 내 옆으로 오더니 왜 다시 뒷자리로 옮겨 간 거야?”
“그래도 담임쌤 오셨는데, 대놓고 자리 바꾸고 있기는 좀 그렇더라. 쭉 자습인 거면, 집에 가면 안 되나.”
“걔, 또 그래?”
“응. 뭐 옷에 음식 냄새가 뱄는지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아. 그리고 저러다 나한테 떨어지는 건 아닌지, 불쾌하고 신경 쓰여.”
“설마, 그게 너한테 어떻게 튀려고.”
“어떻게 하다 보면, 이렇게….”
“야, 개 더러워! 아, 그런 건가? 단백질 파우더를 앞에 두고 재채기해서, 펑, 하고 흩뿌려지는 것처럼….”
다른 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듣고 있기 버거워 밖으로 나왔다가, 그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버티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길로 교무실에 가서 조퇴증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께 정황은 미처 말씀드리지 못하고, ‘아토피가 심해서 학교에 있기 힘들다’를 이유 삼았다. 병원에 가는 것도 아니고, 아토피 상태 자체를 조퇴의 이유로 쓴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다행히도 선생님께서는 더 묻지 않으시고 흔쾌히 보내주셨다.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는데, 조금 후회된다. 당시의 나에게는 내 기분밖에 보이지 않아서, 가족들이 느낄 속상함은 뒷전이었다.
‘너한테서는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나지도 않는 냄새를 가지고 트집을 잡다니 정말 이상한 애들이다, 각질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네가 아토피 관리를 잘해야겠다. 네 몸도 힘드니까.’ 가족들의 주된 반응은 이러했다. 그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지점은 내가 꽂힌 곳과는 다른 데 있었다.
사실, 트집이든 아니든, 냄새가 난다는 말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사실 확인이 어렵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들을 때 기분이 나쁘더라도 넘어갈 수 있었다.
반면 내 몸에서 각질이 떨어지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 이 이야기를 듣는 누구라도 날 탓할 것 같았다, 대다수는 아토피 환자의 입장보다, 옆에 앉은 아토피 환자가 떨어뜨리는 각질이 신경 쓰여 공부를 방해받는 입장에 공감이 갈 테니까. 나도 주변 환경에 민감한 편이라 이해가 되었다.
그저 웬만해선 당사자에게 직접 전하지 못했을 뿐이지, 세상에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는 걸 그제야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해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환자니까, 남에게 의도치 않게 피해를 주더라도, 내게 원망이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누구도 감히 그럴 수 없을 거라며, 여태껏 외면해 왔던 것 같다. 무심하고, 안일했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어쩐지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전 처음 들어본, 더럽다는 말이 수없이 귓가에 맴돌며 가슴을 찔러댔다. 내 귀에 들어온 것이 처음이었을 뿐이지, 이 몸으로 나다니며 몇 명에게 그런 인상을 주었을는지 생각하면, 내가 정말 더러운 존재라도 된 것만 같았다. 순간적으로 환부를 도려내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물론, 생각에서 그쳤지만.
작년 겨울은 몸도 마음도 아픈 계절이었다. 겨우내 마음속에 인정 욕구와 수치심, 억울함, 자책감, 원망이 섞인 이상한 감정이 고여만 갔다. 그러다 보니 아토피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눈 부근에 자꾸 손을 대다 보니 심한 결막염에 걸리고 말았다.
엄마 차를 타고 결막염 진료를 받으러 안과에 가는 길이었다. 도착할 즈음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온 동네를 하얗게 뒤덮었다. 진료를 보고 나올 때까지도 눈은 그치지 않았다.
한순간, 눈이 내리는 모습이 꼭 내 몸에서 흩날리는 각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도 함박눈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억눌렀던 설움이 터져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송이가 차창에 붙었다가 스르르 녹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런 체질 때문에 가장 괴로운 건 난데, 잘못한 사람도 나여야 하나, 내 잘못인가, 이런 의미 없는 말을 되뇌었다. 괜찮으니까 참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많이 울었다.
그저 단순한 하소연과 감정 토로에서 그치지 않게 되길 기다려왔다. 당시 범람하는 감정을 그대로 남겨두면, 글을 꺼내 보기 겁이 날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남기려는 건, 그 기억을 원망보다는 성찰의 계기로 남기기 위함이다. 돌이켰을 때 그다지 아프지 않은 지금에야 담담하게 적는다.
난치병을 앓는 이상, 나는 아마 이 난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이제는 지나간 기억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한다.
올해 첫눈이 오면, 여느 때처럼 들뜨고 싶다. 다른 불순한 것들은 지나간 겨울과 함께 묻어버리고 싶다. 새 살이 돋기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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