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속도로 독자와 동행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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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 발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발이란 무턱대고 걸어서, 땅과 마주하는 일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이걸 굳은살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천천히 무감각해지는 발의 이야기는 굳은살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괜찮지만, 당신들은 괜찮겠어요? 제 발이 지나온 이야기가 약간 아플 수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궁금하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만 눈은 조금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나는 분명,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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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굳은살 이야기가 뭐 그렇게 듣고 싶은지, 아니면 공감받고 싶은지 눈을 크게 뜨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스쳐 지난다. 사실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걷고 있는 길에 바람이 꽤 차갑다. 강원도 산간의 겨울은 역시 눈도 많이 내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골바람이 도시의 골바람과 다른 매서움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 삼촌 내외와 가까운 강원도 산간으로 이사를 왔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현실에서 일종의 도피를 경험하고 싶었기에. 도시에서 살며, 들이마셨던 공기와 먼지를 이삿짐과 함께 털털 털어내고 시작한 산골 생활이라 우리 가족은 이사 가기 전까지 즐거운 것들을 상상했다. 엄마와 나의 건강 회복과 농촌에 들어가면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 하지만, 시골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텃세가 심하다던데.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한 식구가 주변에 사니까, 기댈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도시보다는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과 희망이 가득했다.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짐들은 언제 다 풀고 정리할까. 우린 서로 웃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누고, 가져갈 건 가져가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됐다. 이제, 이사 가기 전, 감사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학교 다녔을 때 쉼터가 되어준 친구. 내 휴대폰에는 그들의 이름을 이름으로 저장해 두지 않았다. 성과 이름을 같이 붙여 놓으면,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그들을 각각 ‘아침의 햇살’과 ‘늦 밤의 달빛’으로. 저장해 뒀다. 그들이 언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이사 가기 전에는 연락이 왔으면 좋을 것 텐데. 나는 확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할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기에. 모든 일이 ‘텐데’로 끝났다. 이번에도 그렇고, 저번에도, 그 이전에도 그렇고. 확신이 없었기에, 그들에게 만나자고 했던 카톡 메시지는 다른 광고성 문자들로 인해 내려갈 공간까지 내려갔다.
그런, 나랑 반대로 엄마는 최근까지도 동생네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에도 빠짐없이 잘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사람을 만나는데 거리감이 적었다. 다만, 그만큼 한 공간에 뭉쳐 있지 않으면 그들과의 관계가 금방 흐지부지하게 끝난다는 것.
엄마는 조동모임에는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겠지. 조동 친구들은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뒤,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유지되는 관계이기에. 이런 의미에서 00 어린이집 7세 찬누리반 졸업생 학부모 모임에서 빠지게 될 거고, 그들과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다. 그녀는 강원도로 이사하자마자 그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래, 이 정도 만났으면 오래 만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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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도면, 착하진 않았어도 나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제 표정을 보면, 화나 있다고 말해요. 그래서 내가 정중하게 “아니, 저 괜찮아요.”라고 말하면, 다들 찝찝한 표정을 하고 있더라고. 물론, 저도 화나 보이는 사람 옆에 있으면 이상하게 더 조심하거나 위축이 들더라고요. 물론, 제가 그 사람한테 못한 일도 잘한 일도 없지만요. 본인이 나한테 잘못한 일이 없으면 눈치 볼 일도 없으리라 생각한다는 건 적반하장이겠죠?
지금 제 표정은 어때 보이세요? 아이고, 표정이 썩 좋지 않네요. 아니, 거울까지 주시다니 너무 감사해요. 근데, 지금 제 표정을 보니 많이 좋지는 않네요. 눈도 풀려있고, 얼굴이 싸한 게. 어린아이들이 저를 피하는 이유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피하는 건 좀 너무한 일 아닌가? 왜 아무 말 하지 않죠? 스테비아 토마토나 따겠습니다. 끝나고는 감자밭에서 일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지만, 제 발이 요즘 너무 닳아서 밭일은 좀 힘들 것 같네요.
그래도 밭은 보고 싶어요. 제가 키운 감자들이 괜찮을지. 뿌리에서 자라는 종족이라 쉽게 상태를 측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잎들이라도 잘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판단은 쉽게 되지만, 힘든지 괜찮은지 판단은 잘 안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서 감자밭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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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연락이 거의 끊긴 뒤에도, 우린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사람을 만나고 일해야 했다. 강원도는 색으로 표현하면 초록색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정선의 곤드레를 포함한 산간 지역의 나물들, 숲이 많으니 나무의 푸른 빛도 그렇고. 강릉 해녀들이 잡는 자연산 홍합에 붙어 있는 다양한 해초들, 한식 대첩에 나오는 강원도 명인들이 입는 초록 앞치마 이런 이미지 때문에 강원도는 푸른 빛 중 초록색을 빚어내는 지방 같다. 그중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렇게 푸른빛이 우리를 빚어내어 악한 것들과 약한 것들을 몸속에서 배출할 수 있기 것.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살고, 기와에서 와송도 키우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는 갈색으로 물든 밭 주변으로 가야 했다. 강원도에서 우리의 유일한 연고인 외삼촌과 외숙모는 감자밭과 토마토 농장을 거느리고 있기에.
우리가 처음 왔을 때, 그들의 몸은 진한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이사 오기 전날 강원도에는 비가 내렸기에 그런 것 같다. 그들의 손에는 사촌 동생 한 명씩 잡혀 있었고, 큰동생은 어색한지 머리만 긁적였고, 3살인 막내는 외숙모 뒤에 숨어서 모두를 경계하고 있었다. 한 네 살은 되야, 우리를 기억하고 알아봐 줄 텐데. 그에게 우리는 낯선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형일 뿐.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아저씨로 볼 것 같았다. 삼촌의 말 한마디 때문에.
“야, 누가 매형이고, 누가 호영인지 모르겠네. 아저씨 되니까 완전 붕어빵이야.”
나는 그가 웃자고 한 말에 그저 멋쩍은 웃음만 남겼다. 나와 삼촌 사이의 기류는 어색했지만, 아빠와 삼촌, 엄마와 외숙모, 동생과 막네 사촌 동생의 대화는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잘 통했다. 나와 맺는 모든 관계를 제외하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하는 집은 넓지는 않지만. 딱 적당한 존재들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를 지닌 삼촌네 옆 한옥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원주택을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과 지붕을 이루는 기와와 좁은 마당을 거쳐야 나오는 아늑한 외부 화장실만 가진 현대식 모던 한옥이었다. 다행히 도시가스도 들어오고, 사는 동안 큰 문제 될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워낙 산골이라 병원을 가거나 시내로 가는 일은 차를 동반해야 했으며, 가뜩이나 없을 것 같은 대중교통은 1시간 20분에 한 대 있는 버스 하나뿐이다. 진짜, 차가 없으면 장이고, 병원이고 가기 어려울 것 같은 이곳에서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생존하라는 말인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의원이나 병원은 없어도, 간단한 감기와 같은 것들은 잘 고치는 보건 출장소가 있고. 동생보다 5살 어린 사촌 막네 동생도 이곳에서 3년을 견뎌 왔으니. 큰 걱정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라나고 있는 와송을 볼 수 있는 것과 자연이 전해주는 보이지 않는 천연 약제가 불안과 단점보다 더 큰 장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 수 있는 연고는 있지만, 아이를 가르치거나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가까운 분교도 스쿨버스가 와야 겨우 갈 수 있는 거리이며, 농사일을 할 수 있는 땅은 우리에게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래도 연고라도 있는 것이 어디냐. 아빠는 삼촌과 함께 여름에는 스테비아 토마토를 전국에 납품하고 배달하는 택배기사의 업무를 수행했고, 엄마 역시 몸은 좋지 않지만, 13년 차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저력으로 일을 나간 엄마들을 도와주며, 품앗이한다. 우리가 필요할 때 뭔들 받을 수 있게. 하지만, 그런 그들과 달리 나는 뭐하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감자밭의 감자를 지켜보거나 동네 산책하기. 집으로 돌아온 동생들 지켜보거나 가끔 엄마와 외숙모를 도와주는 것 뿐이었다. 그것도 사람들을 직접 대하는 부분은 아니고, 그저 멀리서 아이들을 감시하거나, 빠르지만 정확하지 못한 손과 정확하지만 느린 발로 움직이기만 할 뿐. 이렇게 매일 노는 나를 바라보는 동네 어르신들은 한숨만 푹 쉰다. 도와달라는 것도 아닌, 젊은 놈이 놀고만 있다는 생각만 하는 거겠지. 누군 놀고 싶어서 놀기만 하는 줄 아나. 나도 따라 한숨을 내쉰다. 한숨 소리도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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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우리 가족이 함께 기르는 감자밭이에요. 근데 저기 어르신은 오늘도 절 째려보네요. 제가 일하는 시간에 돌아다녀서 그렇다고요? 시골 어르신들은 남들 다 일할 때, 혼자만 눈에 보이게 노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소리는 이사 오기 전에도 들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외부인이 정착인으로 되기 전까지는 텃세 혹은 셈으로 보일 수 있겠죠. 근데, 당연한 것 같아요. 도시로 따지면 회사나 학교에서 다들 공부하고 일할 때, 교실에 들어와 돌아다니는 것이니. 일하는 사람이 볼 때 얼마나 얄밉겠어요. 그래도, 너무 무섭게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전 낮보다 밤이 더 바쁩니다. 그러니까, 낮에는 충분히 휴식을 치하거나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것처럼 수다 떨고 놀아야 하죠.
그들이 노려보고 욕해도 어쩌겠어요. 저희 아빠와 삼촌은 토마토 시즌인 여름만 되면 밤까지 일하는데. 물론 그들도 그렇게 일할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제가 노는 것 같아도, 저는 저 나름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학교만 가지 않을 뿐 고등공부는 하고 있고 각종 집안일 역시 나름 열심히 하고 있죠. 그
런데 성실하다는 말은 가급 적 지양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제가 성실하기만 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요. 성실이 곧 결과까지 성실로 만들어 주지 않더라고요. 그게 지금 제 몸이 증명하고 있잖아요. 저기 보이는 엄마도 외숙모도 양궁 선수인 사촌 동생과 아빠, 삼촌 그리고 감자밭 어르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의 피부가. 모두 거칠고 굳어있죠? 너무 오래 보지는 마세요.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저들도 곱게 살기 위해서 저렇게 일했는데 결국 이 자리까지 밀려나게 된 거죠. 남은 이야기는 감자 넣고 옹심이나 만들고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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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처음 난 겨울. 정확히는 올 1월 1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대대로 신정에는 떡국을 먹지 않고 구정에만 떡국을 먹었는데. 올해부터는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의미로 신정에도 떡국을 먹었다. 야, 올해도 한 살 더 먹는구나. 그러면서 아빠의 뱃살도 나이를 먹는 것처럼 나잇살이 쪘고, 나 역시 한해 한해 오를 때마다 체중이 무거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매년 실천 못했다. 게으른 놈이고, 운동선수로 지내고 있는 중학교 3학년이 된 사촌 동생 용환이는 참 부지런하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나는 나조차도 나로 비교한다. 이게 뭔 말이냐고?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매해 이런 기분을 느꼈다.
이번 신정 저녁에는 강원 산간 지방에 눈이 내렸다. 눈으로부터 시작되는 새해의 첫 이다. 낭만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낭만적인 상황은 아니다. 부디, 우리 집 앞마당은 괜찮게 해 주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늘 그런 식으로 허풍 떠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다. 시골길에 눈이 쌓이면 재정비하기도 힘들고, 가끔 보면 개집이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런 경우 동네에 집을 잃은 개들은 얼어 죽거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발광을 떠는 놈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렇기에 고립 되어 있는 마을일수록 새해만 되면 종교활동을 더 열심히 한다. 우리 마을도 눈이 내리기 전에 천우신녀의 굿판을 열기도 했는데. 효과는 무용지물이었다. 동네의 많은 개고기 장수들의 개들이 어딘가로 도망가거나 동사 되어 죽었고, 일반 가정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강아지들 중 일부도 얼어 죽거나, 밖에서 뛰며 놀았다.
우리 가족도 아픈 사람 안 아픈 사람 모두 힘을 모아 눈을 치우는데 야,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마당에 두었던 개집과 텐트가 무너질 정도니. 물의 무게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존재다. 한 방울, 한 방울은 무겁지도 따갑지도 않은데, 이렇게 뭉텅이로 쏟아지는 걸 보면, 꼴 보기 싫을 뿐 아니라, 보고 싶지도 업고 싶지도 않은 존재들이다. 이런 존재들이 하나의 생명을 죽이고, 한 명의 마음도 묻어지게 만들었다.
막네 사촌 동생이 우는 소리가 우리 집에서도 들렸다. 외숙모와 용환이가 그놈을 진정시키려고 온 힘을 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성 하나가 망가졌고, 그곳에 생명이 깃들었다고 믿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우리가 자는 동안, 막둥이가 치우지 못했던 그가 쌓은 정성. 블록을 만든 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야, 윤용훈 그만 뚝! 다시 만들면 되잖아. 이걸로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니.”
용환이가 그에게 호통을 쳤다. 우는 소리 지겨울 것이다. 슬픔이고 뭐고 우선 시끄럽고. 텐트 안에 그걸 놓은 용훈의 과실을 알려줘야 하기도 하고. 그러나 외숙모는 본인이 화내면 화냈지, 용환이 용훈에게 화내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가. 역으로 그녀는 용환을 말렸다.
“용환아, 엄마가 이야기해.”
용환은 그녀의 말을 듣고, 한숨을 크게 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강하게 다쳤다. 외숙모의 표정은 문을 쌔게 닫은 용환에게도 좋은 눈빛을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말 때문에, 다들 웃음을 참기 바빴다.
“바람 때문이야.”
이런, 엄마와 내가 웃다가 염탐하고 있는 것을 들켜 버렸는지, 마당 입구 쪽으로 네 발로 걸어왔다. 들킨 것이었다.
“언니, 호영아. 다 봤어요?”
“어, 미안 보고 싶지는 않은데, 소리가 들려서.”
우리 한참 동안 웃었다. 눈도 다 못 치웠는데, 이렇게 웃다가 하루가 금방 지나겠어. 우린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웃다가 다시 각자의 마당으로 갔다.
각자의 마당을 쓸어야만 다음번에 눈이 와도 집 밖을 구경할 수 있으니. 나는 기와 쪽에 쌓인 눈을 쓸어내렸고, 엄마는 쌓인 눈을 녹이기 위해 염화칼슘을 다라이에 담았다. 녹인 다음 하수구에다 버리기 위해. 그러다가 내 손에 까슬까슬하고 촉감이 신기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기와에서도 식물이 자라긴 하네. 자세히 보니 마치 푸르른 솔방울 같은 게, 와송인 것 같았다.
“엄마, 여기 와송 자랐네. 언제 자랐는지도 몰랐는데.”
“그러게. 좀 더 자라게 한 다음 5월에 다래 마시자.”
우리는 계속 눈을 치웠고, 치웠던, 눈은 봄에도 다시 내렸지만, 그럴 때마다 우린 열심히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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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들어와요. 맛있게 만들긴 할 건데, 노동 좀 도와줘요. 오신다고 해서, 새벽에 엄마랑 함께 미리 반죽했어요. 수능 끝나고 힘 많이 들겠지만, 막노동 좀 시킬게요. 이 반죽을 이렇게 단팥죽의 새알처럼 만들어 주세요. 이해됐죠? 모양 이쁘지 않아도 되니까, 정성껏 빚어주세요. 저는 키운 감자들을 다듬고, 멸치 육수 시원하게 낸 다음 맛있게 끓일 거에요. 우리 잠깐만 이야기하지 말아 봅시다. 온 침묵을 다하여 반죽과 육수에만 신경을 씁시다. 모양 안 예뻐도 예쁘다고 생각하며 만듭시다.
인터뷰는 계속하고 싶다고요? 난 관심받는 게 질색인데 어떻게 하지. 음식을 만들 때는 최대한 그날의 감정을 담으려고 합니다. 당신들도 그랬잖아,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조물조물 놀면서 만들었던, 수제비 기억나죠? 그때 수제비는 다른 대단한 비법이 들어간 게 아니라,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그런 거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기쁜지에 대하여 생각하며 만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침묵이 꼭 필요한 거예요.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러니까 하나하나 빚으면서 나도 같이 빚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제발 쉿. 판단하지말고 둥글게 만들어 주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못생긴 놈도 잘생긴 놈도, 그저 옹심이 한 알이고 시간이니 너무 그곳에 집중하지는 말고, 그냥 다 만들었으면 저에게 주세요. 엄마 오면 같이 만들었다고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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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익숙한 이름이 카카오톡 화면 창에 떴다. ‘아침에 햇살’과 ‘늦 밤의 달빛’. 이들과 연락이 끊긴지는 1년이나 넘어도 훨씬 넘었는데. 올 11월 그들은 수능시험을 봤을 거고, 분명 자랑과 관련된 카톡이겠지. 그냥,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걷는 것, 나아가는 조차 숨이 차는데. 그들의 문자를 읽는 순간 1년 동안 시골집에서 다양한 것을, 지켜보고 바라보기만 했던 게으름이 너무 현실처럼 나에게 닿을까 봐. 그러나, 그들의 일상은 궁금하다. 매번 내게 먼저 와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먼저 그들을 버렸는데 무슨 자격이 있는지 궁금증을 참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지금은, 엄마와 함께 빨래를 계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마저 수건을 접고, 웃옷과 윗도리를 접으며 엄마를 봤다. 어제따라 엄마의 목을 감싼 10.000원짜리 목걸이가 더 빛나 보였다. 이곳에 와서는 다른 목걸이를 하지 않던, 칼자국이 선명한 엄마의 목이 빛나고 있었다.
이런 내 시선을 엄마는 느꼈을 거다. 엄마는 여릿한 미소를 지으며, 철이 지난 곤드레를 씻으러 갔다. 저녁은 곤드레를 넣고 졸인 고등어 조림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그러고 어깨를 잡으며 물어보려고 했는데. 엄마는 내가 따라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나 보다.
“왜 이렇게 따라와? 뭔 일 있어?”
“어, 요즘 그 목걸이 안 쓰네.”
“안 쓴 지 꽤 됐는데. 이사 오면서 다 팔았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등을 돌려 곤드레를 꼼꼼하게 씻었다. 싸구려 금속으로 목을 감싸면, 목에 쇠 독이 올라올 거 같은데. 그녀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흉터를 빛나게 보이고 싶은 것 같다. 그녀의 목은 이사 오기 전이나, 이사 온 후. 혹은 와송을 다려 먹었던 지난 5월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그녀의 목이었고 그녀가 이겨 내야 할 몫이었기에.
엄마는 몇 년 전 큰 수술을 했다. 갑상샘이라고 이름이 새로 생긴 갑상선 때문에. 그녀가 아프고 난 뒤부터 수술이 끝난 뒤까지 우리 가족의 신경은 매번 날카로워졌다. 그 당시 세 살이었던, 동생도. 학교를 나름 잘 다녔던, 나도. 물류에서 장비를 타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서로 날카로웠다. 아픈 사람은 아프니까 예민해지고, 아프지 않은 사람도 아프지 않게 만들려고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우리가 푸르고 빛나는 색을 찾는 거일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어색하지 않게, 회색으로 잔뜩 물든 수원에서부터 벗어나 우리가 우리로 나아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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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 끓였어요. 감자옹심이를 부어 주세요. 이제 익으면 맛있는 옹심이가 될 겁니다. 저는 옹심이만큼 좋은 음식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수제비보다 쉽게 넘어가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고, 이렇게 추운 11월에는 옹심이 만큼 좋은 것이 없어요.
한 입 잡숴보세요. 어때요? 맛있나요? 나한테만 말하게 해 놓고, 당신은 이야기하지 않고 먹고 보고만 하세요. 나 진짜 어색해지려고 하네. 우리 중고딩 때 이러지 않았잖아. 내가 먼저 버린 게 미안하기는 한데. 그해가 오기 전, 우리가 봤던. 그러니까, 늦 밤의 달빛과 아침의 햇살과 마주한 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해.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쓸 때마다, *을 쓰고 있잖아요. 멋있는 풍경을 잠시라도 느끼게 해준 너희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니 할 수 있는 말이 없네요. 좀 당황스럽네요. 말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그래도 그날의 숲 이야기는 글로써 좀 이야기하고 싶지만, 인터뷰로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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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언제냐고 많이들 묻는다. 청소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할 때 간혹 감정에 취하여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 역시 나를 정확하게 말하고 설명하고 싶어서였다. 정확히는 소통의 방법이 이것뿐이었기에.
엄마가 수술받았던, 그해. 나와 엄마는 목소리를 잃었다. 원래 말하는 것과 소통을 좋아했는데, 이때부터 타인과 함께 있는 일은 피하게 됐다. 그 당시, 나는 동생을 바라봐야 했고, 아빠는 돈 벌기 위해서 나름 바쁘게 보냈기에. 아침에 어린이집을 보내고 학교를 오가는 동안의 공기는 꽤 차갑다. 여름이어도, 오전 8시는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래도, 나름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은 자라났고, 집안의 공기는 날이 갈수록 회색 먼지가 휘날렸다. 그럴수록 나는 예민해졌고, 타인과 말하기를 습관성으로 피하게 변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말이 어눌해졌다. 외로워서도 겁먹어서도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거다. 오랜 시간 입 밖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목구멍 안에만 쌓여 목은 닳았고, 입술은 진심을 내뱉는 말이 익숙하지 않아, 마음에서 울어 나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법을 잊은 듯 어색했다.
특히,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 때문이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난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내 성 씨인 ‘송’에서 ‘시옷’을 발음하지 못했기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라 그 당시의 창피함도 수치심도 기억에는 없다. 그저, 남은 것은 엄마의 말. 이런 내 모습에 나는 “우리 빼고,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아 했어.”라는 말과 이런 내 곁을 스쳤던, 언어치료 선생님과 몇몇 친구들의 배려뿐. 어쩌면 그 당시에는 이런 따뜻함이 나 자신에 관한 미움 때문에 가려져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날 고치기 위해서 하루씩 적었던 글인데. 그걸, 그들이 매번 즐겁게 읽어줘 버렸다. 햇살과 달빛으로 저장한 너희들.
한 명의 친구가, 어쩌면 여러 명의 친구가 교실 구석에 앉아있던, 나를 불렀던 적이 있다.
“오늘 저 경기 과학고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천문대 개방한데. 우리 같이 보러 갈까?”
“됐어.”
“아니면, 여기 광교산 올라갈까? 정상은 아니고, 맛고을 광장 끝까지.”
여기서 더 싫다고 말하기는 좀 그랬다. 그래, 그들이 많이 양보해서 맛고을 광장으로 와 준다니. 아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학교가 끝난 밤이 된 뒤 함께 맛고을 광장을 올랐다. 네온사인과 일반 전원주택이 밝히는 약간의 조명들 사이로, 별빛이 보였고 참 환하게 빛났다.
밤이 자연적으로도 빛날 수 있구나. 이런 생각도 조용히 하는 것 같았지만, 생각 속에서는 나의 발을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고, 함께 걸어준 너희들이 참 고마웠는데. 한마음으로 내 치부가 너희들에게 걸린 것 같아 무서웠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은 있지만, 나는 그 믿음조차 믿음으로 받아드리지 못했다. 이렇게 너희들을 또 버리고 학교 밖을 나왔다. 그렇게 어떤 글도 쓰고 싶지 않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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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 이건 말해 줬으면 좋겠어. 인터뷰라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와 친구대로. 시험과 관련된 거 말고. 그냥 어떻게 지냈어? 그것만 알려주면 좋겠어.
먼저 한 숟가락을 풀게. 음, 간이 좀 약하네. 필요하면, 새우젓 놓고 간을 잡으면 좋겠어. 근데 지금까지 내 이야기는 좀 심심했는데. 어, 그래 옹심이를 으깨 봐. 그리고 다시 퍼가면서 먹어 봐. 그럼 예쁜 감자였든 모난 감자였든 그냥 맛만 좋다니까. 이번에는 감자로 한 번 글을 적어볼까? 근데 글 쓰는 손이 너무 많이 닳았어. 아마도, 지금까지 쌓인 글이 너희들에게 닿기는 쉽지 않을 거야. 너희 그냥 인터뷰 내용만 가지고 있어.
이제 곧 다른 가족들 우리 집에 와. 삼촌이 너희들과의 관계를 말하니까, 아빠랑 같이 시내에 가서 향어 큰 거 데려온대. 비록, 민물고기라 회는 좀 그렇지만, 탕은 괜찮지? 날씨도 추우니까 맛만 보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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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사촌 동생 용환이다. 그의 몸에선 땀 냄새가 났고, 오늘도 운동하다가 뒹굴었겠지. 한옥과 어울리지 않는 센서등이 거실을 향해 켜져갔다. 터벅터벅 걷는 소리. 그 안에는 뭔가 지침과 피곤함, 피로가 뭉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있다.
“어, 용환아. 왔. 야, 표정 왜 그래? 뭔 일 있었어?”
용환의 얼굴은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다. 두 눈알은 풀어져 있고, 두 어깨는 축 쳐져 있다. 나도 모르게 그와 이야기하면서 마침표 같은 쉼표를 여러 번 연사했다. 용환은 평소처럼 나에게는 아무 말하지 않고,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고 물었다.
“형, 목욕해도 되죠?”
“어, 해도 되는데. 왜 집에서 안 하고.”
“묻지 말아 주세요. 엄마한테 저녁 먹기 전까지 여기 있겠다고만 해주세요.”
그리고 조용히 화장실 문이 닫혔다.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샤워기 물이 약해졌다가 강해졌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분명, 용환이한테 무슨 일이 있어. 그리 친하지 않았어도, 거대한 슬픔과 무기력함은 숨기려고 해도, 공기에 접촉하지 않을 뿐. 표정에는 어렴풋이 드러난다. 근데, 딱 용환이의 표정이 그랬어.
나는 너희와 만든 감자옹심이를 떠 놓았다. 샤워하고 속이 좀 따뜻하면, 눈물이 나거나 몸이 확 풀리기에. 나는 나를 찾아온 너희의 짐을 급하게 챙겨줬다.
“미안하지만, 이제 인터뷰는 하지 말아줘. 난 더 이상 돌아갈 수도 돌아올 수도 없어. 미안해. 촬영본, 어쩌면 라이팅 한 것은 가지고 있어도 된다.”
그러고는 외숙모에게 가서 용환의 상태와 풍기는 아우라에 관하여 이야기해줬는데. 창밖을 보니 눈이 내렸다. 너희들이 잘 돌아갔는지 약간의 걱정이 내 마음 뒤에서부터 몰려온다. 괜히 오늘 와서, 그들이 지나온 길은 못 듣고 내 걸음 이야기만 했네. 그래도, 지금은 용환이의 상태를 바라보고 외숙모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물론 자세한 점수를 물어보기보다는 선수 생활과 학교생활 병행이 잘 되고 있는지, 고민은 없는지 정도만.
눈이 내릴 때, 눈을 맞으면 생각보다 꽤 따갑다. 눈알 한 송이도 날카로운 땅과 마주하여 사라지는 것을 대비하여 날카롭게 진화한 거겠지. 사촌 동생이 앉아서, 옹심이를 떠먹고 있다. 지금 그와 같은 식탁에 앉아 있으면, 그가 옹심이의 온기를 전부 느낄 수 없을 것 같아서, 거실과 어울리지 않는 쇼파에 앉아서, 그를 곁눈질로 봤다. 눈에 맞아 따가운 눈이 또 다른 이의 눈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러다가 용환이도 약간의 시선을 느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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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환의 피부는 그가 강원도로 이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뽀얀 흰색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대부분 황색 톤의 피부를 가졌지만, 그는 흰 얼굴을 가졌다. 그랬던, 그가 강원도로 간 이후부터 피부색이 갈색으로 타는 것 같았다. 물론, 산간 지역과 농촌에서 매일 뛰어놀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당연한 결과가 당연하고 정당한 이유에서 나왔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사람을 피한 것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것도. 용환이 지금 이런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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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자퇴하기 전, 우리 학교에 있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를 골치로 생각했다. 본래부터 천식이 있어, 많은 활동에도 큰 제한이 있으며, 공기의 흐름이 바뀌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호흡이 급격히 빨라지기에. 내가 흥분한 것처럼 보이고, 말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하기에,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또한 나의 거센 호흡과 종종 튀어나오는 기침은 고등학교를 지내는 타인들로부터 좋은 평가와 시선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오게 됐는데.
본래 이방인이었던, 사람이 이방인이 아닌 것처럼 생활하기는 여간 쉽지 않다. 상처를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언제나 아울러 만져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는 것을 평소와 다르게 확신해서 말 할 수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마주하면 상처가 굳기 전 다시 터져 나오는 거 같기에. 타인을 피하고, 이사 와서도 어르신들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과 가까워지려면 많은 마음을 열어야 하기에, 가까워지는 것을 스스로가 격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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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모 말에 따르면, 용환 역시 이사 온 뒤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강원도 산간이자 시골은 자녀를 출산하고, 강원도에서 아이를 키우면, 나오는 지원금이 꽤 크다. 그런 의미에서 태어나기로 정해져 있던, 용훈과 용환이 더 많은 지원으로 다양한 꿈을 키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간 곳이었는데. 용환은 낯선 곳이 낯설었던 것이 아닌, 홀로만 달랐다. 피부색도 인종도. 그는 어쩌다가 시골에 내려와서는 이방인이 되었다.
동생네 학교에만 가도 알 수 있었다. 학급에 토종 한국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필리핀을 포함한 베트남, 이슬람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혼혈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토종 한국인이 학교로 전학 가게 되면, 약간의 텃세와 함께 문화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종종 있다. 용환이 역시 다름과 텃세를 해치워 가는 길에 마음에도 발에도 여러 굳은살이 생겼을 거다. 그래서, 외숙모가 시킨 것이 양궁이었는데.
작년부터 용환이가 번 아웃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손에는 매번 굳은살이 생기고 얼굴에는 활 자국이 생기지만, 대회에선 좋은 성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수 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해야 하지, 공부도 해야 하지. 그가 흐르는 땀이 결코 땀의 값을 증명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중3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도 썩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고 하니. 학창 시절의 대다수를 양궁에 올인한 그에게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공부만 하라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공부를 시작하여, 또래와 같은 나이에 좋은 대학을 가는 것과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도 그렇고. 이런 현실을 말한 그의 중3 담임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어쩔 수 없이 그의 꿈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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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계속 눈알로 바라봐서 그런가? “형, 왜 이렇게 휠긋 봐요?” 그가 먼저 물어봤다. 순간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바라볼 수는 없는 것. 조심히 그에게 다가가 먹고 있는 옹심이를 봤다. 김이 모락모락 났지만, 옹심이는 거의 다 먹었다. 못생긴 놈과 잘생긴 놈 모두 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무슨 일 있어? 오늘 양궁 훈련 없어?”
“재미없어요. 그냥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예요.”
그는 대화의 창을 닫아버린다. 어떤 말을 해도 닫아버린 마음은 열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약간의 꼰대짓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번에는 얼굴값처럼 연장자의 잣대를 조심스럽게 내밀어 본다.
“그래도, 재미없다고 포기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거 아깝지 않겠어?”
“됐어요. 그냥, 재미없어요. 지금 계속해도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내려가기만 할 텐데..”
“아니, 왜 내려가. 내려가면,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아? 언젠가”
나도 모르게 그를 위로하려고 위로가 앞에 나서 버렸다. 그의 말도 끊어 버렸다. 이러면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데.
“음, 저 감자밭 가서 생각해 볼게요.”
도어록 문이 닫혔다. 센서등은 밖을 향해 하나씩 켜져 갔다.
“아가, 눈 내린다. 아빠랑 삼촌 오기 전에는 오렴. 오늘 저녁 향어탕이야.”
나조차 그에게 포기하지 말라. 이방인이어도, 나아갈 수 있다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조언을 해버렸다. 이런 말은 해버리는 것 보다 그냥 버리는 게 맞는 말인데. 오지랖을 부렸다. 지금의 나도, 나를 마주하기 어려워서, 나와 대화하는 것조차 피하면서 그에게 말을 하긴 뭔 말을 해. 그의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기에. 엄마와 동생 그리고 식구들 한명 한명씩 들어올 때마다, 내가 괜히 이런 말을 했다고, 후회가 든다. 굳은살이 아려온다. 시간이 지나는지도, 집안의 벽지가 점차 바래지는 줄도 모르고.
*
용환은 우리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삼촌네 집에 있겠다고만 한다. 그런 그와 반대로 나와 엄마 그리고 외숙모는 향어를 손질하고, 채수 육수와 감자를 넣고 끓이고, 곤드레와 감자를 넣고 만든 곤드레밥을 지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보고 물었다.
“호영, 표정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그녀는 역시 나의 표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아차린다. 할 수 없이 내가 용환에게 했던, 말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뱉었다. 외숙모와 엄마 그리고 우리 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는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상처를 억지로 위로하려고 달려든 사람의 댓가이기에. 엄마는 그런 그들을 보고 씩 웃고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에 걸고 있었던, 시장에서 얼마 하지 않을 것 같은 목걸이를 벗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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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본래 노래하는 삶을 꿈꿨다고 한다. 그러나, 창을 배울 형편도 상황도 되지 못했다. 형편은 형편으로 두더라도, 그녀는 두 번의 갑상샘 수술로 성대가 건들어져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나아온 길에는 음악이 스며들어 있다. 전문적으로 노래를 가르치는 강사는 아니지만,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동요를 가르치거나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등. 그녀가 가려온 목에선 늘 노래가 입 밖으로 조금씩 흘러 내려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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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향어탕과 밥이 거의 다 만들어졌다. 일단, 다른 사람보다 내가 그에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당연한 일이었기에.
“용환이랑은 제가 같이 밥 먹을게요.”
밥과 약간의 탕을 가지고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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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있는 집으로 갔을 때, 그는 멍때리고 있었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멍때리기가 좋기는 한데. 집안은 고요했고, 어색했다. 그래도, 그를 불러, 함께 밥을 먹었다.
“용환아, 향어탕 먹어 봐, 향기롭지?”
“비린데요. 뭐. 민물 놈들이 다 비리고, 뼈만 많지.”
“아니야, 향어가 왜 향언데. 일단 먹어.”
그는 조용히 음미했다. 그러고는 약간의 미소를 보였다. 슬퍼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웃음이 나오니 그렇겠지. 다시 돌아와. 난 본론을 이야기했다.
“용환, 고등학교 가면, 내신도 중요한데...”
“아니, 싫어요. 양궁으로 가면 어차피 잘 안 풀릴 거 보이는데.”
그가 내 말을 한번에 베어버렸다. 그래도, 최대한 미소를 보이며 그에게 한마디만 던졌다.
“후회가 없고, 힘들면 포기해도 좋아. 선택은 네가 하렴. 선수 못해도 살면 살아지니까.”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한 마디 물어봤다.
“호영이 형은, 그럼 글을 왜 포기했어요?”
“난, 잠깐 도망친 거야. 언제 다시 써질지 모르겠어.”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만 응시했다. 창밖에 눈이 송글 송글 맺혔다. 우리의 갈색 피부가 조금씩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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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원하는 거 같아서, 그냥 그때 이야기를 다 적어봤어. 이게 내 굳은살이고, 우리의 굳은살이야. 2024년 강원도에서부터 걸어온 우리 가족의 이야기. 나머지, 너희의 이야기는 너희가 써 내려가 줘. 어떤 웃음도 울음도, 이방인들의 시선도 모두 견디며. 너희들이 쑥 나아가줘. 어느 시간의 어느 때에서든. 호영이의 대답에 나도 답할 수 있게
-2026년의 어느 날에서부터 시작된 송호영의 글과 함께 시작하고 견디고 이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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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또 희찬오빠를 숭배해야해....
@선 혁 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선 혁님도 화이팅!!!^^
나도 월장원 할거라구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