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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아버지

  • 작성자 노스텔지아
  • 작성일 2026-01-29
  • 조회수 299

“이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고 농민들이지 우리들은 졌어.”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사무라이 7명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이들은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삼시세끼 끼니만 마을 사람들이 챙겨 줄 뿐이다. 사무라이는 산적의 칩입을 막아내는데 성공하지만, 7명중 4명이 죽는 비극을 겪는다. 농민들은 산적이 모두 죽자, 농사일에만 전념하며, 사무라이들은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다. 여기서 나는 의문이 한 가지 들었다. 사무라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저 농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일까? 돈도, 명예도 없는 일에 왜 모든 것을 건 것일까?


나에겐 7인의 아버지가 있다. 7인의 아버지는 모두 다르면서도,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일단 공통점은 택배 기사이다. 물론 두 종류가 있다. 어떤 아버지는 낮에 택배를 하시고, 어떤 아버지는 새벽에 택배를 하신다. 이외에도 아버지의 성격 자체는 거의 유사하다. 화를 거의 내지 않다가, 갑자기 주전자에 물이 끓어 넘치듯 화를 내거나, 맨날 정치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본인은 잠을 잔다던가 등 이런 점들은 비슷하다. 하지만 각자가 모두 다른 세계에서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한 명인데, 왜 7명이라 부르냐면, 그것은 내가 쓴 7개의 단편에 모두 아버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길래, 소설에 항상 아버지가 나오냐고. 그것도 주연급으로 말이다. 사실 이것은 나의 소재력이 부족한 탓이다. 우리 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일단 아버지는 원래부터 택배 기사를 한 사람도 아니고, 원래 그렇게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여름엔 차가운 에어컨 아래에서, 겨울에는 거센 폭설이 내려와도, 따뜻한 히터에서 나오는 바람과 함께 업무를 보셨다. 아버지는 대학원까지 졸업한 사람이었고, 계속해서 이런 삶이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셨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야만 했고, 아버지는 급하게 일을 찾다가 택배 기사를 시작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스토리는 나의 소설에 단골 소재가 되었다. 아버지가 매일 겪는 부조리의 연속은 소설에 담아내고도 남을 정도로 정말 어처구니 없는 소재부터 재밌는 소재까지 다양했다. 택배를 하다보면, 참 여러 일이 발생한다. 분명 101호에 놓고 갔는데, 누군가가 그 택배를 훔쳐 가거나(코로나 시기에 이런 일이 실제로 많았다), 물건이 파손이 되었다고 연락이 오거나, 아파트에서 택배 트럭 출입을 금지해서 다툼이 벌어지는 등 파란만장한 일이 매일 벌어진다. 그래서 아버지는 천화벨 소리에 예민하다. 아버지가 전화가 울리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 받지 않으면, 물건 값을 물어주거나, 불이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벨 소리를 크게 해놓는다. 그러나 정작 전화벨이 울리면 절대 좋은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해야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을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담임 선생님에게조차 택배 기사를 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별로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어차피 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요즘 세상에 택배 기사는 꽤 흔한 직업이다. 그리고 내 주변에도 아버지가 운송업이나 트럭을 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많았다. 처음엔 아버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굳이 본인을 이렇게 숨기는 것인지, 나는 왜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감정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것을 알게된 것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서 읽은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본 이후였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권씨는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아내의 수술비 마저 부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며, 막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권씨의 마지막 자존심은 구두 뿐이다. 깨끗한 구두 9켤레. 그것이 권씨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원을 갈 정도로 학문에 열정이 있었고, 지금도 아버지는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신다. 새벽 배송을 마치고 퇴근하면 잠을 조금 자신 뒤 바로 책을 편다. 책을 읽고, 자고, 책을 읽고, 자고를 반복한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의 책으로 가득하다. 책장엔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책을 쌓아놓을 지경이다. 책은 대부분 어려운 인문 학술적인 것들부터 시작해서 과학까지 분야가 다양하다. 나는 우리 집에 물리학 책이 있는 것을 보고, 분명 이과 전공자가 없는데 하면서 의아하게 바라 본 적도 있다. 아버지의 이런 학술적인 열정은 현실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사막에서 계속해서 삽으로 파내며, 길을 개척하고자 하지만, 삽은 부러진다. 우리는 사막에 묻히고 묻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난한 철학자의 생애이다. 아버지는 돈이 많지 않다. 우리 가족은 돈이 없다. 아버지의 학문적 역량을 바쳐 줄 돈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직장에 취업해서 돈을 벌면서 책을 읽었지만, 이젠 그것마저 없다.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가장이 해고 당하고,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 누구도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소설에 너무나 녹여내고 싶다는 열정이 이어졌다. 원래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뒤로부터 열정이 무언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본 이후였다. 나는 중학교 때 생각보다 많은 모순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끔 어떤 날은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나는 정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허무감’이 도래했던 것 같다. ‘허무’는 매우 무섭다. 니체도 위버맨쉬, 초인을 주장했지만, 결국 말년에는 쓸쓸하게 죽었던 것처럼 허무주의의 도래는 나의 삶의 빛을 꺼뜨리고, 어둡게 한다. 물론 허무주의와 극복은 종이 한 끗 차이이다. 이 이야기는 알베르 카뮈 이야기를 하면서 더 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나는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그 문제가 바로 ‘실존’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실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나는 어쩌다가 이런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등 말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나온 부조리한 상황 그 자체, 그리고 시지프 신화로 이어지는 알베르 카뮈만의 해결법. 나는 그것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던 탓일까. 그 이후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일상을 나열하기 보다는 나의 생각과 사상을 서사적으로 표현하는 그런 소설 말이다. 알베르 카뮈가 했던 것처럼. 


당시 나에게 소재는 많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소설을 많이 읽던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소재가 거의 없었다. 학교 소재를 주로 쓰긴 했는데, 극적인 서사를 만들기에는 어려웠다. 말하자면 기승전결의 구조와 인물의 욕망, 그리고 그 해소 과정, 그리고 그에 따른 시사점을 모두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 가지 결함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유는 아직도 의문이다. 일단 나는 글을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었고, 초등학교 때 수필로 몇 번 상을 받아 본 경험이 전부이다. 글을 못 쓰는 편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 나는 학교 내에서 그래도 글을 잘 쓰는 편에 속했지만, 소설은 조금 달랐다. 수필이나 논리적인 글쓰기와는 다르게 묘사나 이야기가 중요시 되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것을 스스로 깨우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 그나마 편한 일이었다. 


나의 첫 소설은 매우 평범했다. 사실 이야기 구조도 거의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소설의 구조조차 잘 모르던 중학생이 끄적인 소설이었다. 제목은 <무명>이다. 제목이 처음엔 무명이 아니었다. 첫 제목은 내가 지은 것임에도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무명으로 바꾼 이유는 이후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께 내 작품을 보여드린 뒤 제목이 조금 주제 의식과 먼 것 같다고 하셔서 내가 생각해낸 제목이었다. <자산어보>라는 영화에서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않는 자산(玆山)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거기서 나온 무명이 생각이 나서 무명으로 적었다. 당시 내가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에서 불교의 무명이라는 것도 배운 상황이라, 무명이 가장 적합한 단어였다. 우리는 모두 무명이다. 우리는 연기법을 모르기 때문에 업을 쌓고, 윤회한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무명이다. 처음 석가모니의 사상을 들었을 때도 아마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무명>에서 아버지는 애매한 인물이다. 무언가 아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지는 않아도, 결국엔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다. 아들은 영화과를 갔다가, 반수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집에서 얹혀 살지만, 정작 제대로된 공부도 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차를 끌고 중고거래를 하러가다가, 아버지 차에 누군가 기스를 냈고, 이에 대해서 합의금이나 잘 뜯어내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그러나 합의금을 뜯어내는 것이 아닌, 적당한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아들은 이에 대해서 항의한다. 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하냐고.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꿋꿋하다. 아버지는 제주도로 향한다. 새로운 회사 면접을 위해서이다. 택배 기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를 간다면 그 일로 아들과는 작별이다. 아버지는 비행기 표까지 예매해두지만, 결국 가지 않는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로 한다.


<무명>을 아직 아버지에게 보여드리지 못했다. 첫 번째 이유는 부끄럽다. 제대로 쓴 소설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다. 두 번째로 아버지가 강조했던 택배 기사를 남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더더욱 보여드려서는 안 된다. 


“아빠, 아빠는 소설 안 써?”


“소설은 왜?”


“아니, 택배 기사 소재 되게 좋은거 많잖아. 적어도 기록을 해두는게 좋지 않을까?”


“전국에 택배 기사가 얼마나 많은데. 이미 그런 소재는 많아.”


아버지도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책을 많이 읽어왔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마치 7인의 사무라이들이 자신의 행적을 굳이 남기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의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많은 짐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시지프가 옮기는 돌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져만 간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을 배운 뒤로, 나는 알베르 카뮈에서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창조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보면, 생각보다 자유에 대한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처가 인간의 삶은 일체개고, 즉 고통이다라고 이야기한 것 같다. 자유는 고통이다.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스럽다. 차라리 하나님이나 신이 개입을 많이 한다면 삶이 조금 더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을 져야 한다.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가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니체가 말한 초인, 카뮈가 말하는 시지프가 된 느낌이었다. 


나의 제일 최근 소설 <심장소리>에서 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아들과 단 둘이 살아가는 가장이다. 아버지는 <무명>에서와 같이 여전히 택배 기사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모든지 열정적으로 해낸다. 집이 재개발 된다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위해 학교 주변에 있는 집을 구하는데 성공했으며, 아들이 자신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장의 역할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살아갔다. 아버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국엔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이번에 재계약서가 날라왔어. 업체에서 수수료를 올린대.”


수수료가 올라가면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줄어든다.


“분명 법적으로 부당한 계약이야.”


그러나 소송은 걸 수 없다. 소송을 걸면 돈이 들고, 만약 이긴다고 할 지라도 아버지는 택배 업체에서 마저 해고당할 것이다.


아버지는 저녁 8시 쯤, 재계약에 대한 고민을 하신 뒤, 짐을 싸들고 출근하셨다. 아버지에게 또 다시 자유에 대한 선택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인간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아버지는 또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이다. 


아침 9시 쯤 돌아온 아버지는 잠을 주무시고, 오후 3시 쯤 결국 재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가족에게 알렸다. 연대는 쉽지 않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이미 부당 계약을 택배 기사들이 반 이상 체결한 상황이라 노조에 가입하면 노조 인원만 해고당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시지프에게 내려진 형벌처럼 운명 앞에서 무력한 존재이다. 


7인의 사무라이들 중 살아남은 3명은 큰 허무를 느낀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이 마을을 지켜냈지만, 결국 이루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무라이이다.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무인의 정신을 가진 사무라이라는 이야기이다. 3명의 사무라이는 앞으로도 이방인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진정한 사무라이이다.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계셨다. 나는 뒷 모습을 보았다. 배란다에 약간 비치는 햇살, 햇살이 마치 스탠드처럼 아버지의 책을 비추고 있었고, 아버지는 책을 열중하며 읽고 있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시던 모습과 그것이 겹쳐보였다. 나의 눈이 약간 매워졌다. 점점 눈 앞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7인의 아버지는 각자의 세계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주인공은 정말 수많은 세계에 멀티버스를 모두 경험한다. 주인공의 딸은 그것을 경험하고 굉장한 허무와 과거에 대한 후회를 느낀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며 여러 우주를 만든다. 어떤 선택에서는 굉장히 행운이 따라서 내가 재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선택에서는 불운이 따르며, 거지로 살아갈 수도 있고, 배우가 될 수도 있고, 작가가 될 수도 있고, 택배를 할 수도 있고, 백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수많은 우리의 우주 속에서 주인공은 깨닫는다. 바로 ‘공’함을 말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항상 문제는 발생한다. 부자가 된 나는 여전히 재산을 지키기 위해 고통스럽고, 거지가 된 나는 오늘의 삶을 마치 마지막 날처럼 순간, 순간을 즐길 수도 있다. 즉, 선택에 대한, 과거에 대한 후회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위기가 찾아오고, 불행이 찾아오고, 그 이후엔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 아버지가 직장을 여전히 다니고 있는 삶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어떤 세계에서든 행복할 것이다. 마치 7인의 사무라이처럼 항상 우리 가족의 기둥이 되어,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지금이 가장 최선의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있고, 행복은 그에 따른 태도에 달려있다. 우리 앞에 놓인 수 많은 연기와 운명, 그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야 한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다. 계약서에 싸인을 한 날에도, 해고를 당하고 택배 기사를 처음 시작한 날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책을 읽었다. 


사무라이 3명은 다시 길을 찾아 떠난다. 돈도 명예도 아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며 살아갈 뿐이다. 내 소설도, 소설 속 7인의 아버지도 결국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노스텔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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