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뜨기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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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오디오 북 듣기를 즐겨 하고 있다. 책은 직접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오랫동안 읽다 보니 눈이 아파서 잠깐 듣기 시작한 오디오 북은 어느새 한 달 째 내 방학 생활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 오디오 북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일상 생활(특히 설거지나 빨래 개기 같은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손을 움직여야 하는 일)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에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틀어 놓고 귀로만 들어도 되니,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 보는 것처럼 다른 일을 할 때 중요한 장면을 놓칠 일도 없고,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해낸다는 효율성(즉 가성비)이 참 좋게 느껴지는 것이다. 오디오 북을 듣게 된 뒤로는 미루던 집안일도 흔쾌히 하게 되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다.
다만 굳이 단점이라고 해야 할 점은 오디오 북‘만’ 듣고 있을 때 나타난다.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 읽어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청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들, 그리고 그 감각들로 할 수 있는 팔다리의 기능들이 ‘심심하고 시간 아깝다’며 아우성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귀는 오디오 북에 기울인 채 흘러가는 이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채울 수 있을까 고심하던 나는, 내 침대가에 있는 듯 없는 듯 방치되어 있던 뜨개질 바구니를 발견하게 된다. 어라?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눈으로 계속 봐야 하지만, 지루한 생각과 청각을 달래기엔 오디오 북이 적격인 것! 나는 뜨개질에 다시금 눈을 뜨게 되었다.
(자, 어째서 '다시금'인지, 여기로 화제가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를 강조하자면, 뜨개질과 오디오 북 듣기를 함께 하는 일은 정말 환상적인 콤비이자 효율적인 취미이다!)
초등학교 3학년즈음, 이제는 어떤 일인지 기억 안 나는 일로 잠시 큰고모집에서 동생과 내가 하루 놀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큰고모는 참 다정하게도 재미있는 어린이용 떡 만들기 키트와, 뜨개실과, 동생과 내게 주실 선물까지 갖춰서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주고자 준비 만반인 상태이셨다. 그날 나는 큰고모께 뜨개질 하는 법을 처음 배웠다.
세계(라고 해봤자 사실 서양으로 퉁쳐도 될 것 같은)문학전집을 오래 읽으며 자란 어린이에게, 뜨개질이란 무엇일까? 뜨개질이란... 오즈의 마법사와 하이디가 연상되고, 푸르른 들판(혹은 흐린 영국의 도시)에서 치맛자락을 당차게 쥐곤 힘있게 걸어가는 소녀들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목재 흔들의자에 앉아 아주 긴 스웨터를 뜨시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할머니 목소리. 그것을 따라 창문 바깥으로 신비로운 일들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가슴 떨리는 순간들.
때문에 세계문학전집을 즐겨읽던 나는 뜨개질이 너무 좋았고, 뜨개질의 매력에 금새 빠져들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린 나는 안타깝게도, 아주 기초적인 뜨개질 이후로는 마땅한 진도를 나갈 방법이 없었다. 사실 명절과 가족 모임에 뵙는 것 말고는 따로 혼자 찾아갈 방도가 없는 큰고모이기도 하셨고. 초등학생 시절, 핸드폰으로 뜨개질 영상을 찾아 본다는 생각조차 못 해봤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갔다. 당당히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도 지나가고, 뜨개질은 내게 잊혀졌으며, 크리스마스 날 부모님을 졸라 선물로 받았던 털실 뭉치들만이 방 한구석을 묵묵히 차지하고 있었다. 딱히 잘 하지도 못 했으면서 욕심만 많던 나는 털실을 꽤 많이 샀다. 실력은 컵받침이나 겨우 뜨면 다행이었던 주제에 그림같은 스웨터를 상상하고 돈푼깨나 쓴 것이었다. 거기다 고모들이 내게 주셨던 털실까지 다 합하면 무거운 수준이었다. 이것들은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돈 아깝지?'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렇다. 아주 값싼 물건도 잘못 샀을 땐 아까운 법인데. 난 아주 쓸모 없어진 털실에 돈 아까워서 배가 꼬였다. 초등학생 시절 날 만나면 어깰 잡고 짤짤 흔들고 싶었다. ...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 돈 아까운 시간을 거쳐, 오디오 북이라는 완벽한 계기를 통해, 털실의 사용처에 다시 눈 뜨게 된 것이다. (이 부분에선 나의 어깨를 다시 놓아 줘도 좋다.)
뜨개질은 정말 재미있었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보며 만든 조그마한 인형들은 너무 귀여웠고, 성취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군번줄을 짧게 달아 친구들에게 선물하면, 즐거워하는 얼굴에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색색의 실일 뿐인 그것에, 손을 움직여서 단단하고 팽팽한 형태를 잡아가고 있을 때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과, 신기해 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시에 복잡하게 얽힌 털실처럼, 그러나 풀어내지 못 하고 그냥 그대로, 안쪽 깊이 넣어 놨던 그리운 감정들 또한 나를 찾아온다. 가슴께 주위를 뿌연 안개처럼 휘돈다.
내게 코바느질을 가르쳐 주셨던 큰고모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호쾌하고 직설적인 큰고모의 성격에 어릴 때는 많이 무서워 했지만, 점점 커가면서 그 커다란 행동 안에 담겨 있는, 무심한 듯하지만 따뜻한 배려, 세심하게 챙겨 주는 관심이 보였다. 큰고모는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주는 분이셨으며, 큰고모의 밝고 유쾌한 말씨에 난 어느샌가 큰고모를 롤모델로 삼게 되었다. (단적인 비유로,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고모는 어머니 같은 분이다. 거기다 마음이 넓으며, 그 다정한 행동에 크게 생색 내지 않으려는 단호한 말투의 사람을 어느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우리 가족에게 큰고모와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큰고모도 내게, "시은이는 나를 닮았어."라 해주셨고, 나는 그 말을 큰 칭찬처럼 받아들이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코바느질로 하나 하나 코를 떠 가고 있으면 큰고모가 생각 난다. 어릴 적에 큰고모가 만들고 선물해주신 인형들을 바라보며 신기하게 생각했던 짜임이, 내 손 안에서 형태를 갖추는 일은 낯설다. 조금 생소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좋은 순간들을 추억하게 해 준다. 내가 만든 인형을 엄마와 아빠에게 보여드렸을 때, 엄마는 "너 큰고모랑 닮았구나!"하셨고, 아빠는 "이제 네가 인형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선물해 주는 거니?" 웃으셨다.
난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큰고모께 감사를 자주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큰고모와 함께 했던 추억들은 큰고모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어린 나의 마음에 반짝반짝한 장면들을 남겨 놓고 있었는데, 이젠 그 아끼는 순간을 펼쳐 놓을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어떤 단어로 표현하는 순간 너무 멀어지거나, 너무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어렵다. 내게 커다란 털실 뭉치가 있다면. 내 마음은 털실 뭉치 그 자체일 뿐인데 실을 뽑아내는 순간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뀌어 버릴 것 같아서 꺼내 놓기가 두렵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뜨개질을 할 때에는 그 엉켜 있던 부분들이 풀리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만든 작은 인형들을 쪼르르 줄 지어 놓고 멍하니 바라볼 때에도.
그 과정에서, 나는 어렴풋히 느꼈다. 슬픈 마음을, 그리워하거나 추억하는 마음을 말로써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는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틋한 장면이 복잡한 기분과 얽혀서, 큰고모를 떠올릴 때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마음을 온전히 안을 수가 없었다. 안으면서 ‘이게 뭐야?’ 자꾸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다만 명확히 알아볼 수 있는 말로 정리된다면 이 마음이 무엇인지, 이 막막한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시를 쓰든지, 친구에게 털어놓든지, 계속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가슴 저편 묻어놨던 것이다.
큰고모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런 글을 봤다. 꼭 울지 않아도, 슬픔에 빠져 살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추억하는 모든 행위가 애도하는 것과 같다고. 힘들어질 때마다 큰고모를 떠올리면서 이게 애도인 걸까, 생각했는데 어딘가 맞지 않는 드라이버로 나사를 돌리듯 엇나가는 기분이 들었던 건 당연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그 문장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 듯하다. 나는 코바느질을 뜨면서 오디오 북을 함께 듣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만족감, 귀여운 인형을 만들 때의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코바느질을 뜨면서 큰고모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내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리운 장면들. 나는 코바느질로 작은 인형을 만들면서 내 마음 속 털실도 풀어 나간다. 그 행위로써 나는 행복하다. 나를 큰고모 곁에 남겨두면서도, 나의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큰고모가 주신 코바늘로, 큰고모가 주신 뜨개실로, 큰고모가 가르쳐 주신 방식으로 뜨개질하며 나는 마음 속에 작은 인형을 만든다. 얽혀 있는 실을 써서, 색색의 단단하고 윤기 나는, 또록또록한 인형을 만들고 있다.
그제야 ‘네가 누구야?’ 묻지 않아도, 네가 누군지 몰라도, 나는 이 작은 인형을 기꺼이 안을 수 있다. 무엇인가를 그저- 안을 때 느끼는 마음으로, 내게 너무 좋은 분인 큰고모를 마음으로 꼭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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