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퇴고)
- 작성자 서벽
- 작성일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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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다는 건 단순히 어떤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의 감정과 향기, 이를테면 푹푹 내리쬐는 햇빛의 쓰린 온기같이, 살면서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그 빛을 작은 프레임에 맞춰 조각하는 일이다. 우리는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며 액자 속 세상을 때로는 연민하고 때로는 부러워하며 회상한다. 비록 다신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그러니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일종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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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2014 -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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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시장 앞에 세워진 팻말을 흘깃 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평일 오전인 탓인지 그곳은 아직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있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작가의 사진전이라고 했다. 이름이 애쉬라고 했던가. 특이하게도 그는 본명이 아닌 가명을 쓰고 있었다. 때문에 처음부터 그를 인터뷰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대표작과 가명을 본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무릇 어떠한 신념이란 아무리 숨기려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전시장에서는 뉴욕이라는 타이틀과 상반되는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으나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울려댈 정도였다.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 입구 쪽에 붙여진 포스터 앞에 멈춰 섰다. 젊음을 나타내는 수수한 미소를 띤, 그러나 얇은 테 안경 뒤에 숨겨진 가라앉은 눈빛으로써 그의 나이를 약간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아래에 적힌 그의 소개란은 미리 확인했듯 텅 비어있었다. 적혀있는 건 오로지 Ash라는 단어뿐.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의 과거라던가 본명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마치 이전의 자신을 철저히 떨어트려 놓고 싶다는 듯, 혹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런 점이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첫 번째 작품의 배경은 도서관이었다. 사진 속 그곳은 소리하나 없이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초점이 잡히지 않아 명확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오직 비스듬히 스며든 햇빛만이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채였다. 다음으로 본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전보다 두꺼운 프레임에 담겨있었는데, 플래시를 터트려 빛이 여러 갈래로 번진 사진이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주로 어딘가 엇나간 듯 흔들리고 비틀려 있었다. 산란된 형형색색의 빛과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과 같이. 그러나 그것이 혼란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되려 가만히 멈춘 평범한 일상이 주를 이뤘고, 이따금 자유로운 뉴욕의 순간을 보여줄 때면 프레임 속 세상은 조금도 흔들려 있지 않았다.
천천히 감상했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전시의 막바지였다. 이 전시장은 특이하게도 감상을 하고 나면 반드시 뒤를 돌아 나와야 하는 구조였다. 때문에 마지막 작품은 가장 안쪽, 넓게 트인 창문 옆에 홀로 걸려있었다. 작품의 이름은 여명.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었다. 그곳에는 막 떠오르는 햇빛을 등진 채 창문에 걸터앉아 있는 소년이 있었다. 평범한 사진 중 유일하게 초점이 흔들리지 않아 사진 속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결코 눈에 띄는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수수한 얼굴임에도 어딘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 작품은 분명 이곳의 어떤 작품보다도 잔잔한 동시에 화려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빛 또한 마찬가지였고.
“잘 감상하고 계신가보네요.”
낯선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던 자신을 일깨웠다.
“아, 네. 작가님이신가요?”
“네. 오늘이 첫날이에요.”
그는 프로필 속 모습보다는 생기있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좀 더 무거운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을까. 어느새 그는 자신보다 더 가까이 작품으로 다가가, 부드럽게 떨어진 핀 조명 아래에 서서는 옅은 빛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게 대표작 이시죠?”
“네. 데뷔작이기도 하죠.”
“아름답네요.”
“모두가 그렇게 말하죠. 저도 그렇고요.”
그는 자신과 함께 작품을 응시하며 말했다. 확실히 대표작다운 사진이었다. 알 수 없는 묘한 끌림을 준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건 단지 자신뿐만은 아닌 듯했다. 작품에서 눈을 떼지 않는 그의 얼굴엔 어느새 희미한 웃음이 떠 있었으니.
“유학 시절에 찍었던 사진이에요. 오래된 탓에 빛이 바래버렸지만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단지 저 소년의 모습뿐이 아니라, 이 사진을 찍던 당시의 감정이 더 잘 드러나게 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행이네요. 참, 인터뷰를 부탁하셨죠?”
작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마주하고 나서야 무언가 알아차린 듯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물었다.
“네. 그래서 미리 보고 있었는데 마침 오셨네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거든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제스처를 취한 그는 다급히 전시장의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2층 카페에 올라가 계세요!”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는 전시장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시간대를 넘나드는 작품들이지만 이를 다시금 되짚어 보는 과정은 꽤나 색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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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반가워요. 기자라고 하셨죠?”
“네. 아직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요.”
그는 두 손에 쥔 음료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프로필 속에서 보았던 안경을 쓴 탓인지 조금 전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도, 한국에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다행이네요. 사전에 받으신 질문지는 다 보셨나요?”
“네. 사실, 조금은 떨리는 것도 같네요.”
뉴욕에서 오래 있었던 것이 거짓은 아닌지 그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단어를 찾는 듯 입을 달싹거렸다.
“그렇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돼요. 음…,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전시 준비는 괜찮으셨나요?”
“재미있었습니다. 정말로요. 오랜만에 오는 한국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이번 전시에는 오래된 작품들이 많았거든요.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들도 떠오르기도 했죠. 전시회의 제목처럼요.”
흔적. 그 간결한 단어가 주는 모호한 느낌이 제게도 마음에 들기도 했다.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자신이 인터뷰하는 작가들은 모두 자신만의 무언가를 작품 속에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는 노트북 옆 녹음기를 확인하고는 드디어 첫 번째 질문을 꺼냈다.
“가명을 쓰신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애쉬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sh. 타고 남은 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그런 느낌보다는…, 아직 타지 않았으니까요. 언젠가 활활 타올라서 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지었던 것 같네요. 네, 그래요.”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가벼이 입을 열며 말했다. 말을 이으며 드문드문 허공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답변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다행이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을 써 내려갔다. 타닥거리는 노트북 소리가 그의 목소리 아래로 작게 들려왔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분위기죠. 작품들은 모두 각기 다른 시간선에 있거든요. 그 때문에 뒤죽박죽 섞여 있어요. 연대기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그런데 그 점이 오히려 매력적일거라 생각했어요. 추측하는 재미도 있고요. 아무렴 사진은 늘 각자만의 세상을 만들어 내니까요.”
나는 답변을 무던히 적어 내려가다가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올려 그와 눈을 마주치자 옅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말은 과거 자신이 사진을 찍게 된 순간 결심했던 말과 닮아있었다. 물론 그건 아주 오래되어 이제는 흐릿해져 버린 기억이었지만.
이후의 인터뷰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는 대답이 길어질수록 멋쩍은 웃음을 지었으나 차분한 사람이었고, 덕분에 예정된 시간을 맞추어 인터뷰의 막바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마지막 질문을 던지는 자신은 어째선지 노트북이 아닌 그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관객분들이 이 전시를 어떻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세월이 묻어나는 작품을 좋아해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순간을요. 그러니 보시는 분들도 천천히 되짚어 보실 수 있길 바라요. 저의 아주 오래된 세상을.”
천천히 말을 마치는 그의 표정은 차분해 보였다. 준비한 말을 내뱉기보다는 순간순간 떠올리는 쪽에 가까워 보였음에도. 나는 잠시 답변을 정리하고는 녹음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는 금세 생각에 잠긴 듯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시회는 2주 동안 하신다면서요?”
“네. 어찌 보면 짧고 또 긴 시간이죠.”
“자주 와야겠네요.”
빈말이 아니었다. 어쩐지 좋은 기사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원하던 느낌의 사진을 그대로 포착해 냈을 때의 기분과 같은, 기자가 되고 나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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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진작가 Ash, “사진은 늘 각자만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
기사는 성공적으로 게시되었다. 그리 유명한 신문사는 아니었지만, 전시회의 첫 인터뷰로는 충분할 듯싶었다.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나. 벌써 전시회 일정의 반이 지나가 있었다. 물론 기사는 그와 인터뷰한 날 완성되어 올라간 지 오래였다. 다만 발등이 떨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마지막 작품 속 세상은 여전히 잊힐 생각 없이 자신의 머릿속을 일렁거리고 있었음에도.
“하….”
나는 결국 그의 인터뷰를 읽다 말고는 노트북을 덮었다. 며칠째 답답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멍하니 책상에 머리를 대자 구석에 놓아뒀던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모르겠다. 어쩌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까. 답답했다. 그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가도, 그래서야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눈을 감으면 다시금 인터뷰를 하던 순간이었다.
‘저는 세월이 묻어나는 작품을 좋아해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순간을요.’
문득,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작은 프레임 속에 세상을 담았던 그 순간이. 이제는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버려두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자신은 포기하고 말았으니까.
그렇지만….
선택은 한순간이었다. 충동적으로 먼지가 쌓인 카메라를 들고 밖을 나섰다. 무언가를 찍고 싶다는 생각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아주 잠깐이라도 과거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발길이 닿는 대로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전시장 앞이었다. 휴대폰으로 확인한 시각은 8시. 폐장 직전이었다. 그가 있을까. 아니 설령 있다고 해서….
“모르겠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망설이던 발걸음을 내디뎠다.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좋으니 지금은 그 작품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자신이 외면해왔던 무언가를 마주하기 위해서. 그조차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을.
폐장 직전의 전시장은 정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옅은 클래식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긴 했지만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관람을 멈추기라도 한 듯이. 발걸음은 자연스레 가장 안쪽을 향했다. 낯익은 작품들을 휙휙 지나쳤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울려댔지만 더 이상 그것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
발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그 작품 앞에 서 있었다. 미동 하나 없이. 그가 애쉬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 왔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듯 그저 액자의 모서리를 붙잡은 채 멍하니 여명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소 옅게 아른거리던 미소 하나 없이. 오로지 그의 등 뒤로 이어진 짙은 그림자와 핀 조명 빛이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보니 그는 두 눈을 감고 있었고 힘없이 떨어진 왼손 끝에는 노을빛이 흐릿하게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완벽한 피사체였다.
찰칵
짧은 셔터음이 고요를 깨트리며 들려왔다. 돌이킬 틈은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사진을 찍은 후였다. 필름 카메라를 잡고있는 익숙한 감각이 손끝을 스쳤다. 다시는 꺼내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음에도. 그러니까 이건….
“기자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애써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두 눈가를 문질렀다. 다행히도 셔터음은 듣지 못한 듯했다. 나는 카메라를 등 뒤로 숨기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오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나서요.”
“괜찮아요. 저도 다시 만나 뵙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그보다, 기사는 잘 봤어요.”
“정말요? 다행이네요.”
애쉬는 자연스레 창가 옆 의자로 다가갔다. 시선은 여전히 그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였다.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답하며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던 그 감각을. 그러니 카메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건 아직 지우지 못한 과거의 습관일 뿐이었다.
“네.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어, 카메라네요? 사진 찍는 거 좋아하세요?”
“아, 아니요. 그냥 가끔 하는 취미에요.”
“취미로도 좋죠. 저도 한 때 필름 카메라를 자주 썼거든요. 낭만 있지 않나요?”
“네. 아무래도 아날로그가 주는 낭만이 있더라고요. 물론, 그냥 취미일 뿐이지만…”
“그래도 자주 하셨으면 좋겠어요. 사진을 찍는다는 거,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되게 큰 의미가 있거든요.”
취미라는 단어를 내뱉는 게 어색해 자꾸만 입술을 달싹거렸다. 애쉬는 인터뷰를 하던 당시의 모습보다 편해 보였다. 아무래도 지난 일주일간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싶었다. 자신의 미학이 인정받는 건 어떤 기분인 걸까. 자신은 앞으로도 모를 테지만, 지금의 애쉬는 분명 그 감정을 있는 힘껏 즐기고 있는 듯했다.
이후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애쉬와 나는 서로를 마주 앉아 있었음에도 각자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자리해있는 듯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어느새 도처에는 온통 붉은 빛이 내리깔렸다.
“기자님.”
애쉬는 턱을 괸 채 멍하니 작품을 바라보다가는 제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자신도 그 작품을 바라보고 있던 것을 알아차린 듯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저 친구에 대해 이야기 해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요.”
한 박자 늦게 숨을 들이켠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음…. 10년도 더 지난 일이에요. 어쩌면 이제 저뿐일지도 모르겠네요. 저 친구를 기억하는 사람은요. 그리 긴 만남은 아니었지만, 분명 특별하고 이상한 애였어요. 남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거든요.”
애쉬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옅게 웃으며 말했다.
“뭐랄까, 동전의 뒷면과 앞면처럼 쉽게 뒤바뀌는 사람이랄까요. 정반대의 모습 속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자면, 두 모습 다 거짓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어쩌면 자신조차 몰랐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남들이 어찌 알겠어요?”
말을 끝마친 그는 어느새 속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학 이후에도 저분을 만나셨나요?”
“아뇨. 만나지 않았어요. 만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요? 자살했거든요.”
어쩌면 속삭임과 같았다. 흐릿한 클래식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만큼. 애쉬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애써 숨겨놨던 걸 겨우 토해 내버렸다는 듯이.
아. 그 때문이었을까. 머릿속을 맴돌던 소년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애쉬에게 저 사진은 끝내 버리지 못한, 그러니 말 그대로 흔적이라는 것을.
“왜…. 왜 그랬을까요? 사진 속 모습은 분명…. 아, 아니에요. 방금 말은 그냥 잊어주세요.”
“아뇨. 괜찮아요. 저도 항상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애쉬는 곧바로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는 다시금 다물었다. 이내 짧은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답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들려왔다.
“음…, 글쎄요. 아마도 평생 모를 노릇이죠. 그렇지만…. 세상에는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운명이 등을 떠미는 그런 사람이요. 그런 사람들의 최후는 결국 똑같아요. 벼랑 끝에 선 채 비틀거리다가는 한순간에 떨어지고야 말죠.”
그는 버거운 듯 숨을 들이켰다가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 친구의 죽음은 제게 단순히 슬픔이나 그리움이 아니라 흔적을 남겼어요. 도무지 지울 수 없는 흔적을요.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자주 멍을 때리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때마다 저는 생각에 잠겨있었고요. 가끔은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죠. 그래서 이번 전시에는 여태 보여주지 않았던 작품들이 많아요. 빛이 바래버린 사진도 많고요. 처음에는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만…. 글쎄요. 그것도 한순간일 테니까요.”
애쉬는 그 말을 하면서도 슬퍼하는 기색은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한 듯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애쉬의 프로필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던 것은 그의 과거를 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비워놓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작품 뒤에 숨겨진 세상을 누군가 직접 물어봐 주기를 바랐기에.
“한동안 저 사진을 꺼내보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무언가 질려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렇지만 결국은 이렇게 되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자면, 처음부터 받아들였어야 했어요. 영원히 잊지 않겠다거나 혹은 전부 잊어버리겠다거나 그런 건 무쓸모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러니 저 사진은 애쉬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가장 빛났던 순간이 여지껏 그의 뒤를 쫓아다닌 것이라고.
“저는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생각이에요. 조금 이른 것 같죠? 그렇지만 저는 더 이상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해서요. 저 사진은…, 집에 걸어두는 게 좋겠네요.”
“여전히 잊지 못하신 건가요?”
“잊지 못했다라…. 네, 그래요. 잊지 못한 게 맞는 것 같네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때로는 남겨두는 게 좋은 선택일 때도 있죠.”
애쉬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정을 모두 이해할 순 없겠지만 이젠 사진 속 그의 신념만은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오게 했는지도. 그러니 그는 결국, 이번 전시로써 자신의 과거를 매듭지었다는 사실도.
“죄송해요. 너무 오래 기자님을 붙잡아뒀네요.”
“괜찮아요. 오히려, 좋은 시간이었어요. 정말로.”
그는 자신을 전시장 바깥으로 안내하며 지나가는 몇몇 작품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는 한때 무모했던 시절을 회상하듯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차분히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나는 애써 어깨 위에 올려진 스트랩을 움켜쥔 채 그를 따라 걸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숨기고 있던 진실을 알아차렸다는 게 기뻤음에도, 이제는 또다시 마음속에 답답함이 자리해있는 탓이었다. 그 감정의 원인은 뻔했다. 나는 애쉬에게 스스로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해서도.
입구까지 자신을 배웅한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나는 그와 함께 손을 들어 올렸다가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어깨에 실린 카메라의 무게가 도무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또렷이 느껴졌다. 그를 찍었던 짧지만 선명한 감각은 이미 뇌리에 박혀 떠나가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를 마주한 채 입을 열 용기는 나지 않아 나는 바닥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있잖아요 작가님. 저도…,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더라고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그게 조금, 후회가 되네요. 그래서 제가 작가님과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일종의…, 미련이네요.”
“기자님.”
애쉬는 살짝 고개를 숙여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전보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떤 순간이든, 결국 해야만 하는 곳으로 가게 되는, 그런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러니 저는 언젠가 기자님이 다시 사진을 찍는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언제가 됐든지요.”
그 말을 하는 애쉬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차분히 빛났다. 흔들림 하나 없는 목소리로.
어쩌면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 위해 내뱉는 말이 아닌, 스스로를 향한 다짐과 같이. 이후의 인사는 없었다. 그저 애쉬는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을 애써 돌려보냈을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손에 쥔 스트랩이 익숙했다.
현관문을 닫자 적막한 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나는 어깨에 걸려있던 카메라를 내려놓고는 필름을 꺼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과거들이 담겨있을 테였다. 어쩌면 영원히 꺼내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책상 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필름을 두고서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자 그의 마지막 말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아른거렸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그의 말을 따라 속삭였다. 앞으로 아주 오래 되뇌일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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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로 다가가자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애쉬의 모습이 보였다. 주말인 덕분인지 저녁임에도 아직 몇몇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입구에 서 있는 그와 눈인사를 하고는 2층 카페로 올라갔다.
“오늘도 오셨네요. 기자님.”
“네. 이제 3일밖에 안 남았으니까요.”
“그러게요. 그래도 뭐, 물론 그동안 배운 것도 많으니까요. 아무래도 2주가 적당한 것 같네요.”
애쉬는 자연스레 자신의 앞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이번으로 벌써 그와 여섯 번째 만남이었다. 그동안의 나는 늘 퇴근을 하고서는 전시장에 들렸고, 애쉬는 당연하게도 늘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작가님은 항상 전시장에 계신 건가요?”
“네. 보통의 사진작가들은 그렇진 않지만요. 뭐랄까, 여전히 재밌더라고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감상하는 걸 바라보는 건.”
“관람객으로서는 좋은 일이죠. 각자만의 해석도 있겠지만 작가의 설명을 듣는다는 건 늘 바라는 일이니까요.”
“저도 그걸 좋아해요.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확실히 드문 일이기는 했다. 작가가 늘 전시장에 있는 것은. 그렇지만 그것도 어쩌면 그의 신념 중 하나이지 않을까. 애쉬는 늘 대화를 할 때면 한 층 풀어진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그런데 작가님. 그날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이유가 있나요?”
나는 컵 위로 피어오르는 김을 멍하니 바라보며 물었다. 그날 애쉬가 제게 진실을 털어놓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질문을 들은 그는 손끝으로 컵의 가장자리를 한 번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음…. 글쎄요. 그렇지만 어쩌면 기다려 왔던 것 같아요. 저 작품에 대해 토로해 낼 순간을요. 그게 기자님이었던 건…, 누구보다도 저 사진 속 세상을 사랑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일종의 동질감이었다고 할까요?”
나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그와 자신은 너무나도 다른 동시에 누구보다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그를 그렇게 느꼈을 리가 없으니. 나는 노을이 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아마도 저는 앞으로도 사진작가는 되지 못할 거예요. 그래도, 작가님 말처럼 언젠가 가끔은 사진을 찍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취미로 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그런 생각이요.”
고개를 돌리자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애쉬가 눈에 담겼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말을 듣다가는 입꼬리를 들어 올려 함께 웃었다.
“좋은 생각이네요.”
익숙한 노을빛이 하늘에 온통 번져있었다. 애쉬와의 대화를 끝마치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머니 안에 든 필름이 존재감을 알리듯 달그락거렸다. 그날 밤 나는 언젠가 익숙한 풍경을 찍으며 웃었던 꿈을 꿨다. 인화가 되면 마주하게 될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외면하지 않을 꿈을.
―
애쉬는 자신이 오기를 기다린 듯 전시장 문을 당겨 열어주었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것은 역시 마지막 날이기 때문인 듯했다. 전시장 안은 이미 정리가 끝난 듯 작품들이 모조리 치워져 있었다. 다만 액자가 있던 자리에는 희미하게 색이 다른 자국과 못이 박혀있던 구멍이 남아있었다. 그래서인지 클래식도 들려오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쓸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와 나는 당연하게도 가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그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여명은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걸려있었다. 이제 이 공간에서 빛을 받는 건 그 사진 하나뿐이었다. 나는 작품을 올려다보는 애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자신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 속 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저 사진을 이번 전시회에 걸기로 결심했던 애쉬를. 그러니 그걸로 충분했다.
“기자님.”
한참 동안 그 작품을 바라보던 애쉬는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어 있는 자신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우편을 꺼내 제게 내밀었다.
“사진 하나를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요. 초점 없이 흔들린 사진이지만, 이보다 뉴욕을 담아낸 사진은 없어서 말이죠.”
조심스레 우편을 건네받고는 안을 열었다. 그곳엔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있었다. 텅 빈 골목길을 배경으로 한. 곳곳에 네온사인이 번져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진이었다.
“자유의 도시인 만큼 어두운 구석도 많아요. 그렇지만 그런 곳도 뉴욕을 만들어 내는 결정체니까요. 형형색색의 스포트라이트와 뜨거운 열기 같은 것들도 한몫을 하죠.”
두 손으로 사진을 쥔 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에게 애쉬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쩐지 울컥한 마음이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게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예요?”
애쉬는 말을 고민하는 듯한 기색도 없이 입을 열었다.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그러나 분명 신중한 목소리로.
“당신이 좋은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는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애쉬가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 뒤에 올 단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이제 한국은 떠나시는 거죠?”
“네. 돌아가야죠. 뉴욕으로. 자유로운 도시거든요. 잊지 못할 만큼.”
애쉬는 전시장 입구에 서서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익숙하고도 낯선 작별 인사였다. 그렇지만 나는 미련하나 없이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또 봬요. 작가님. 언젠가는.”
“네, 그래요.”
나는 멀어지는 전시장을 돌아보지 않은 채 묵묵히 걸어 나갔다. 사진 속 세상과 같이, 그렇지만 조금 더 익숙해진 노을을 따라. 자신은 여지껏 꿈이란 반드시 이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뤄내지 못한 순간 그 꿈은 실패한 것이라고.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그토록 꿈을 원했던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사실을. 또한 이뤄내지 못했더라도, 무너지더라도 꿈은 여전히 꿈이라는 사실을. 다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밤이었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도 편히 잠이 들었다. 애쉬가 제게 준 선물을 두 손에 쥔 채로.
애쉬가 한국을 떠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의 뉴욕 집 주소로 한 우편이 도착했다. 그곳에는 여명을 올려다보는 그의 모습이 있었다. 초점 하나 없이 번지고 흐릿한 사진이었다. 노을빛이 그의 주변을 온통 붉게 적시고 있었고, 두 눈을 가볍게 감은 그의 모습은 마치 모든 것이 저물어 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딘가, 오래전 보았던 소년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애쉬는 그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사진 아래에 적힌 제목을 발견하곤 밝게 웃었다.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옛날처럼.
- 황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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