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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으로부터 깨달은 것들

  • 작성자 yerbi
  • 작성일 2026-04-21
  • 조회수 157

https://youtu.be/n-80q6pItQ8?si=jykgu2XL3fMBiMPL

*노래를 들으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잘 

지내고

파이팅

할 수 있을 거야

절대로 

포기하지 마


현재보단 미래에 어울리는 말들의 나열. 무엇을 얻으려고 이런 표현을 주구장창 사용한 걸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다짐하던 새해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거 같기도. 


‘합격을 하고 싶었던 거지. 대학에 가고 싶던 건 아니야.’

낯선 곳에서 각자 새로운 삶을 마주하는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합격이란 겉으론 꽤나 달콤한 보상이자,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추상적인 것. 합격만 하면, 진짜 모든 걸 가져가도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우리. 12년간 축적해온 희망이 우리를 절망의 굴레로 밀어버리는 줄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란 질문에 섣불리 답하진 못하겠다. 지금 이 기억을 잃은 채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니까.

입학 후엔, 전공 선택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현재, 나는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나름 학과에 대한 애정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평소, 언어에 대한 흥미를 느낀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종일 영어로 범벅된 시간표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울렁거림이 올라왔다. 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같은 언어의 테두리 안에 있어도 각자 품고 있는 내면성의 차이를 깊게 파악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대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학과부터 미스였지만, 이 선택 덕분에 얻은 것들도 많다. 

첫 번째, 언어의 속성보단 그 언어로 이루어진 미디어나 문학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 두 번째, 감상으로 머무르기보다는 그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기회와 직접 문학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 이런 자아성찰 및 사색을 하며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했으면 좋았을련만, 대학 생활 초반에는 나이만 어른이지, 원하는 장난감을 안 사주면 떼쓰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했다. 3월에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새로운 환경이 버거워, 계단에서 눈물을 훔치거나, 그에 대한 열등감과 불만을 주변 이들에게 표현하는 행위가 잦았다. 요즘은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반수에 대한 용기와 이에 대한 성취를 위해 능동적인 삶을 시작했다. 스스로가 꽤나 어른의 요건을 갖추어 나간다고 느꼈다. 

본격적으로 반수를 다짐한 후엔, 내 시간표에는 학교에서 짜준 전공 3개와 필수 교양 2개가 전부였다. 듣는 강의 중에선 필수 교양인 ‘사고와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은 수업이다. 교수님은 시를 매우 사랑하시는 분이다. 매 시간, 김춘수의 꽃을 읊으며 학생들에게 사랑과 애정 표현의 중요성을 알려주신다. 며칠 전, 첫 과제를 내주셨다. 과제가 마음에 들었고 드디어 나의  관심사를 대학에서 배울 수 있어 기뻤다. 내가 살아있음을 몸소 느끼게 해준 과제는 바로 ’포토에세이 쓰기‘였다. 에세이란 매우 자전적인 얘기를 담고 있으면서,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는 글이다. 또한, 자전적인 얘기는 너무 과하면 자기 연민처럼 느껴질 수 있어, 깊이의 척도를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찌 되었든, 한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받는 피드백이란, 쉽지 않은 기회니 무척 행운이다. 드디어 대학이란 거대한 공간에서, 나를 보여줄 기회가 온 것일까?

소재는 ‘부산의 지역 중에서 자기가 가장 애호하는 공간을 멋지게 소개해 보기’였다. 그래, 포토에세이까진 좋았다. 그러나 소재가 조금 걸렸다. 나는 아직 부산이란 도시에 입성한지, 겨우 2달 남짓 되었고 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내 본가엔, 푸른 내음을 품고 있는 숲과, 영화 해피엔드를 연상시키는 육교 등 쓸 것이 많은데… 하필 이방인이라 느끼는 부산에서의 ‘가장 애호하는’ 공간이라니. 제출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약 2만 장이 있는 갤러리 스크롤을 내리며, 2달 동안 홀로 구경한 부산의 여러 장소에 대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센텀시티에 있는 영화관, 동래시장 등이 있었지만, 특색이라기엔 너무 평범했고 애호한다고 하기엔 부족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그저 분량만 채워 교수님께 보여드리고 싶진 않았다. 어떡하나 싶던 순간, 내 시야를 사로잡은 한 사진이 있었다. 바로, 푸름이 가득한 숲에 덩그러니 있는 예술 복합공간의 풍경. 여긴 망미역을 나와, 약간 높은 경사를 걷다 보니 우연히 발견한 장소였다. 사실, 취향이나 애정이 있는 공간은 우연함으로부터 발현하는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면, 여행 중 우연히 간 식당이 인생 맛집이 되는 것처럼. 

이 공간에 대한 첫인상은 왜 도로 옆에 갑자기 숲이 존재하는가?였다. 모든 것이 휙휙 바뀌고 피로함을 주는 도시에서, 평화의 공간이 덩그러니 존재하는 건, 호기심을 주기 충분했다. 숲은 제법 적당한 크기였고,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나무는 마치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식물을 무생물이라 칭하지만, 정작 살아있음과 생명력은 그것들이 훨씬 강할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마음껏 흔들리고, 움직일테니까. 숲의 끝에 다다랐을 땐 한글이 적혀있는 정사각형 동상과 예술 복합공간이 있었다. 

예술 복합 공간에는 미술관, 양식점, 카페가 있었다. 그 장소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카페에서 노부부가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유리창으로 인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들이 무척 행복해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사실 사고와 표현 수업을 들으면서, 사랑에 대한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던 교수님이 이해가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지?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건 무엇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니, 왜 사랑이 이 시대에 필요하고 표현을 해야하는건지에 대해 깨달았다. 사랑은 전하는 것이 아닌, 몸소 느껴야 그 의미를 제대로 포용할 수 있다. 상호작용이 되면 좋겠지만, 일방적 사랑도 가끔씩 스스로에게 응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법이 있으니.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랑은 다시 돌아오는 거야!‘ 나의 깨달음을 관통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2달의 시간을 헛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망미가 가장 애호하는 공간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다시 갤러리를 들여다보니 부산에서 제법 많은 것을 이뤄냈다. 3월의 초반,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몸을 이끌고 간 센텀시티의 영화관, 영화는 별로였지만 공간에 잠식된 느낌은 좋았다. ‘사색’이란 책을 구경하고 싶어, 무거운 짐을 끌고 간 동래역 근처 독립서점. 말 그대로 사색을 즐기며, 사색이란 책 외에도 좋아하는 작가의 수필을 매우 좋은 가격으로 구매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나는 성적 상승 및 수상과 같은 외부의 인정이 있어야만 그 시기를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과제를 통해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와 함께 외부와 마찰하는 평범한 순간(산책하기나 영화관에 가는 행위 등)도 나를 성장시켜주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이 글을 다 읽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스쳐가면서 담은 풍경들을 기억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것. 특히, 사진으로 담아둔다면 그 추억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양분이 될 거라고. 또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 이상과 다르다고 해서 절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기쁨은 늘 스쳐가고 슬픔은 늘 떼로 온다는 말이 있다. 우린 살아가며 수많은 슬픔을 느끼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주하느냐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미래를 나타내는 표현을 쓴다. 다들 잘 지내고 파이팅. 절대로 포기하지 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어. 어떻게든 원하는 지점에 닿을 거니까 낯섦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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