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로의 회귀
- 작성자 노스텔지아
- 작성일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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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편 44: 23-26-
나는 본래 모태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이미 교회를 다녔었고,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교회를 빠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또한 모태 신앙이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나처럼 뱃 속에서부터 모태 신앙이었던 것은 아니고, 친할아버지가 큰 병을 치유하신 이후로 개신교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믿었던 초등학생이었다. 진실로 천국을 믿기도 했고, 성경이라는 이야기도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소설을 쓰거나 역사를 좋아했던 이유도 나는 근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것에서부터 모든 흥미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경 속 이야기 만큼 재밌는 것이 없었다. 그때는 배웠던 부분이 겨우 출애굽기 정도였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그 서사는 나에게 정말 큰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모든 것이 순진했고, 신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신을 믿었다. 기도를 하면 내 소원을 이루어주도록 돕는 것이 신이었고, 만약 내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 믿었다. 사실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신을 수단화했던 것이다. 학교 아이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신을 믿기만 한다면, 진실로 믿기만 한다면 죽어서도 천국에 간다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이렇게 단순히 생각했다. 모태 신앙이란게 참 무섭다. 왜냐하면 모태 신앙은 워낙 태어날 때부터 개신교적 사고관을 주입하면서 자라다 보니 천국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천국이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신의 음성을 들은 적도,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신앙심이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부목사를 그만두셨을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부목사를 그만두셨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역했던 사람이었다. 대학도 신학대학, 대학원도 신학대학원 그 외의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또 다른 직업은 구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나이도, 경력도 아버지를 이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땡볕이 기다리는 그 넓고 넓은 사막으로 가야만 했다. 계단을 여러 칸 올라가서 택배 상자를 내려놓으면 겨우 몇 백원을 번다. 그것을 몇 백개를 하루에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일에 적응을 잘했다. 평생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설교나 전도만 했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버지의 그 내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버텼을 것이다. 그 일이 쉬웠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했다. 신은 왜 이런 시련을 주는가? 아버지는 믿음이 부족하다고 하기에는 평생동안 사역만 한 사람이었다. 택배 기사를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허름한 빌라에 들어서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 도시에 떨어진 우리 가족은 이방인이 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나 신자들은 수 없이 많은 고난을 겪는다. 아버지 또한 그 고난의 일부인 것인가? 하지만 내가 배웠던 하나님은 분명 악한 것에는 형벌을 내리고 선한 것에는 복을 줘야만 하는 존재였다. 이집트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이스라엘인들에게 축복을 내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가? 서울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에게서 나는 이미 세상이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을 헤치면서까지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더 인정 받는다. 나의 이런 단순한 생각은 점점 거대한 국가간의 의문으로 이어졌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했는가? 그 수많은 유대인들은 무슨 이유로 학살을 당해야만 했는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니체를 접했다. '신은 죽었다.' 그렇다. 그 순간 내가 믿었던 지금까지의 하나님은 죽었다. 나에겐 이제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았다. 나의 본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카뮈와 사르트르를 접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실존한다. 그러나 본질은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 본질을 채워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나 자신이 직접 삶의 의미를 창조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주체성에 반했다. 시지프스가 산에 오르며 열정의 땀을 흘린다. 석양이 지고 있음에도 그는 돌을 올린다. 마침내 정상에 도달한 시지프스는 돌을 올리는데 성공하지만 돌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그 돌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을 산의 정상에 올린다. 그 일을 평생동안 반복하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그 열정과 자유의지에 나는 감탄했다. 지금까지 신이 내려준 삶의 의미만을 지키며 살아왔던 나에게 그 의미를 없애버리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시작을 알렸다. 신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공허한 공간이 나에게는 가득찬 것처럼 보였다. 그릇이 비워졌다는 것은 그 그릇에 모든지 넣을 수 있다는 것. 불교의 공사상과 실존주의는 나에게 큰 영감과 동기를 주었다.
아버지의 일도 점점 안정되어 가면서 나는 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신이 없어도 불행한 일은 벌어졌고, 행운도 가끔씩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모든 것을 신에 대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은 그저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책임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책임이라는 큰 짐을 얹었지만 그럼에도 그 길은 오직 나의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2025년 어느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접하면서 새로운 실존주의 사상가를 접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이미 중학교 때 많이 보았던 사상가인데, 유신론적 실존주의자 키르케고르를 처음 접했다. 사실 놀라웠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실존주의자들이 무신론을 지향할 수 밖에 없었다. 유신론이라는 가정 자체가 이미 신이 나를 창조했기에 자동으로 인간의 삶의 목적도 신에게 귀속된다. 신을 찬양해야 하고, 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자유의지가 아무리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신을 믿냐, 안 믿냐의 선택의 정도이지 주체성이 강조되기 어렵다. 키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아주 잘 표현해낸 사상가였다. 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거기서 주체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3단계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로 심미적 실존이다. 심미적 실존은 좀 더 파고들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동물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매일 쾌락을 추구하려고 하는 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과연 그 사람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매일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은 불안하고 결국 행복에 다다를 수 없거나, 행복도 아주 잠시의 쾌락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음 단계인 윤리적 실존으로 향한다. 윤리적 실존에서 사람들은 어느정도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가지만 문제는 이것으로도 결국 다시 회의감과 절망에 빠진다. 두 단계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향한다고 키르케고르는 이야기한다. 결국 그는 마지막 단계인 종교적 실존에 이르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점이 상당히 다른 신학자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신과 단독자로서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현실에 있는 모든 규범(법, 윤리 등등)을 모두 초월한 단독자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직 나와 신 이렇게 둘이 1대1로 만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주체성을 발휘해야 한다. 종교적 실존으로 이리는 것은 결국 나의 결단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신학에도 실존주의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다고만 생각하고 지나갔다. 나의 주 관심사는 여전히 사르트르였다. 이후에도 나는 사르트르를 계속해서 탐구했다. 나의 생기부에도 사르트르의 이야기를 많이 집어넣었다. 나의 소설에도 사르트르를 인용하고자 노력했고, 보고서를 쓸때조차 누벨바그 영화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서 분석했다. 참고로 누벨바그 영화 또한 당시 1960년대 프랑스의 6.8혁명과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생겨난 새로운 장르였기 때문에 실존주의의 영향이 컸다. 나는 대한민국에 실존주의 열풍이 돌았으면 했다. 절망에 빠진 청년들이 다시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으면서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와 같이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사회 분위기로 자리 잡아 사람들 서로가 자신의 주체적 결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이상사회를 꿈꾸기도 했다. 어쩌면 마음만큼은 60년대 프랑스 파리의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와 함께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서 나는 지금까지 5월을 절망으로만 채웠다. 자주 쓰던 소설 또한 잘 쓰지 못하게 되면서 글로써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이제는 서툴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은 나의 중간고사 성적과 6월 모의고사였다. 방학 때부터 학기 중에도 나는 꽤 최선을 다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이 공부를 해본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사항이 우리 학교에 왠만한 내신을 챙기는 아이들에게는 모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고3이 되어서 공부를 안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성적을 겨우 올리기는 했으나 내가 기대한 만큼 올릴 수는 없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형, 누나들의 명문대 진학 소식을 들으며 점점 위축되어갔다. 나는 처음으로 사르트르의 사상에 의문을 품었다. 과연 내 선택에 책임을 질 능력이 있는 존재인가? 점점 주체적인 공부를 해나갔다. 예전에는 무조건 학원에 따랐다면 이제는 학원 수업도 조절하면서 자습시간을 늘리고자 했다. 그러나 성적은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기에 나 자신에게 점점 의문을 품었다. 실존주의는 참고로 자기자신이 중요하다. 신이 없기 때문에 오직 믿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믿기 어렵게 되었다.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나무젓가락처럼 허약하게 쌓아놓은 구조물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현역 고3은 수능 공부를 따로 할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내신을 챙기기 위해 1달을 모두 사용하면 나머지 1달은 수행과 세특을 채워야 하고, 내신 공부도 조금은 해야한다. 나는 나름대로 학원을 조정해가며 6모를 준비했으나, 6모를 잘 보지 못했다. 나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모든 것에 의문이 갔다. 되려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질 능력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제서야 실존의 감정을 느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내던져진 인간이 되어버렸다. 실존주의자의 길은 외롭고 처참하며, 어둡다. 그 누구도 없는 곳에서 나의 본질을 찾아나서야 한다. 빛을 어떻게든 내가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고3이나 되었지만 아직 고3밖에 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누구에게도 내 선택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증명하라고 했지만 나는 증명하지 못했다.
그렇게 절망하던 중에 철학이라는 과목을 들으며 나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다. 신기한 점은 모든 과목이 선택과목인데 철학만큼은 필수 이수 과목이다. 철학 선생님은 절대 자습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실 나도 불만이 어느정도 있었으나 철학 선생님의 수업은 매우 가치있었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3이 되면서 평소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단 한 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철학 시간에 보는 영화만큼 값진 것이 또 없었다. 최근에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철학 시간에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다시금 종교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두 교황에서는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시스코 교황이 등장한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내려놓으려고 하지만 보수파인 베네딕토와 다르게 매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프란시스코 추기경이 다음 교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란시스코 추기경은 당시 추기경직을 은퇴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당시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에게 사임서를 보내지만 베네딕토 교황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보기로 한다. 두 사람은 만나고서도 의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 동성결혼 문제, 각종 차별 문제에 관한 두 사람의 입장은 너무나도 확연하고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은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한다. 서로가 고해성사를 하면서 각자의 아픈 내면을 드러내고, 신에게 기도하며 서로를 용서한다. 베네딕토 교황은 프란시스코가 자신과 입장이 다르지만,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프란시스코의 은퇴서를 거절하고 교황 자리에서 사임한다. 프란시스코가 콘클라베로 교황이 되면서 이 영화는 마무리된다. 2시간동안 이어지는 두 교황의 대화는 이상하게도 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보다는 키르케고르의 사상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종교 내에서 자신들만의 실존을 해낸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 내에서도 신학은 수 많은 각주와 해석을 낳는다. 성경의 한 구절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어떠한 오류가 없다. 성서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나름대로 실존을 해냈을 뿐인 것이다. 신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창조하며 신앙을 완성시켰던 것이었다. 나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다시 회상해보았다. 단순히 시련이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신의 존재를 없앴다. 중학교에 가서도 실존주의라는 매력에 빠졌지만 정작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한다는 것을 고등학교에 와서야 깨달았다. 결국 나의 답은 다시 신으로 향했다.
키르케고르의 <죽음의 이르는 병>을 통해 나는 종교적 실존으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일시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외로운 실존주의자의 길에 잠시나마 곁에 있을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했던 실존의 3가지 단계와 나는 완전히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추구해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나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결과는 모두 절망이었다. 내가 가야할 마지막 길은 종교적 실존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이사야 41:!0 10~13)
신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신이 나의 본질을 만들고, 오직 나의 의무는 신에게만 있다는 것. 나는 아직도 이 사실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잠시 한 걸음 물러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르트르에게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 춥고, 어두운 길 뿐이었다. 잠시나마 빛을 찾기 위해 나는 어릴적 잊었던 신을 다시 찾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내 주체성을 잃고 싶지는 않다. 두 교황에 나왔던 그 두 사람처럼, 신이라는 존재 속에서도 자신만의 신앙의 길을 개척했던 사람처럼 나도 종교적 실존으로 나아가고 싶다. 중요한 것은 신이 있냐, 없냐가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의 주체성으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찬송가를 가끔 듣곤 하신다. 아마 습관은 고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 좋아서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직도 신을 믿어? 라는 질문을 하려고 했다가 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택배를 하면서도 교회를 꾸준히 나갔던 이유를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실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낸 것이었다. 아버지는 신을 믿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실존해왔을 뿐이었다.
철학자 플로티노스는 모든 만물은 일자로부터의 유출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유출'은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개념이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자, 순선무악한 진리이다. 플로티노스는 인간 또한 일자의 유출이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자로 돌아가는 상승 운동, 즉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과 매우 유사한데 그래서 플로티노스를 신플라톤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일자로의 회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시 나의 근본으로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이제 고3 생활도 절반을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절망적인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극복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들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창조해나간 아버지처럼 나도 이제 다시금 이전의 실존주의적 삶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나는 새로운 신을 부활시켰다.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던 그 신이 아니라 내가 만든 신은 또 다른 신이라 할 수 있다. 그 신이 아직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 신의 의미 또한 내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다시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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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 고전 산문들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띄고 있다. 당장 ‘홍길동전’과 ‘장화홍련전’의 결말을 두고 비교해봐도 그렇다. 두 작품 모두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복을 받는 결말이다. 이러한 구성 방식과 결말은 한국 근대 이전의 소설들 속에서 주를 이뤘다. 그러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한국 고전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도 상업 소설인 웹소설, 상업 드라마, 상업 영화 등 대중적인 이야기 플롯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일종의 모티프다. 이런 모티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중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라는 모티프는 전 세대에 걸쳐 과거에서 현재까지 매체와 서술 방식을 변주하며 계속 나타난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상업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권선징악과 관련된 모티프가 자주 나타난다. 상업 드라마에서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보여주는 드라마 중 일부는 복수라는 장르를 내세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 ‘펜트하우스’, sbs 시리즈 드라마 ‘모범택시’, ‘열혈사제’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복수극도 개인에 이야기만을 하는 드라마와 개인을 넘어 사회까지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로 나눌 수 있다. 이로 볼 때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복수로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모범택시’ 시리즈, ‘열혈사제’ 시리즈는 개인과 개인을 넘어 현실 사회 문제도 건드리는 복수극이다. 따라서 ‘열혈사제’와 ‘모범택시’ 시리즈는 각종 사회 문제를 시리즈별로 이야기하여 그려낸다. 반면, ‘아내의 유혹’은 구은재와 신애리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복수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차이점은 각각 드라마의 결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은 악역인 신애리와 정교빈이 죽음으로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극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주인공인 구은재는 그들이 받은 벌을 보고도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구은재는 신애리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신애리는 친구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수의 성공이 결코 행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역으로 한때 악역이었던 애리를 용서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결말을 맺는다. 반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 실현으로 복수를 진행하는 ‘모범택시’ 시리즈와 같은 드라마는 무지개 운수라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이 사회 문제를 대표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식으로 에피소드별 결말을 맺는다. 그 과정은 복수극과 복수 대행 서비스 안에 맞춰서 폭력적이고, 역지사지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해결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악인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벌하는 모습을 보며 고양된 감정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하지
-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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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되돌아갈 수 없다. -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화> 육지에 터를 내리고 사는 인간으로서는 바다로 발을 내딛는 순간은 언제나 낯섦과 동시에 닿은 적 없는 세계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바다는 제 품에 안은 이들은 한없이 부드러이 끌어안아 주지만 그 밖의 이방인에겐 자비롭지 않다. 수면 아래서 아가미를 펄럭이며 유유히 살아가는 생물들과 달리, 인간에게는 약하게 부풀고 가라앉는 폐뿐이기에 그곳으로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거로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선 제 몸의 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딱 달라붙는 웻슈트를 걸치는 것은 복잡한 관문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그 다음으로 애석한 몸이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가라앉기 위한 무게추를 몸에 매달아야만 한다. 현실에서도 바닷속에서도 떠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가라앉아야만 하는 것이다. 부력조절기를 등에 메다는 순간 휘청이는 몸을 가누는 것 또한 온전히 인간의 몫이며, 동시에 육지의 공기를 끌어 담은 공기통을 매달고 부들거리는 다리를 치켜세우는 것 또한 바다를 향한 처절한 인간의 몸부림 중 하나이다. 그 모든 관문을 뚫고선 인간은 마치 하나의 돌덩이가 된 듯한 기분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어쩌면 정말로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일 텐데도, 그들은 해맑은 웃음과 함께 레귤레이터를 입에 문다. 이내 서로의 버디를 향해 일종의 사인을 주고받은 그들은 기어코 바다를 향해 뛰어든다. 철썩이는 파도를 뒤로하고는, 단지 크게 부푼 심장과 어떠한 맹목적인 갈망만을 지닌 채로. 그러니 육지에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 바닷물에 잠기는 순간은 해선에게는 썩 유쾌하지 않다. 차디찬 물기가 제 몸에 한껏 달라붙는 감각이며 새파란 빛으로 가득한 아래를 바라보면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가 스쿠버 다이빙에 빠져든 것 또한 그 이유에 있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 그 괴리감에는 어딘가 모든 걸 잊게 해주는 마법이 담겨있는 듯했기에. 핀을 가볍게 흔든 해선은 제 앞에 선 버디를 향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준은 조금씩 아래를 향해 두 발을 걷어찼다. 그의 등 위를 커다란 만타 가오리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해선은 옅게 웃으며 그를 따라 아래로 가라앉았다. 닿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과 달리 바닥은 몇 번의 발짓만으로도 도달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빛이 가려진 바닥을 화려하게 밝히는 그곳에는, 곳곳에 숨어든 작은 생물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청 푸른 빛에 은은한 어둠이 내리깔린 그곳, 그러니 즉 바다의 작은 심연인 그곳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다. 공중을 향해 가벼이 몸을 뉜 준은 그녀에게 검지를 들어 올려 손짓했다. 해선은 가벼이 몸을 돌려 새로운 바다의 내면을 바라보았다. 햇빛을 머금은 채 일렁이는
- 서벽
- 2026-06-15
어린이집 앞이야 엄마 어디, 어디 엄마를 찾는 그에게 담배를 물리자 울음소리가 잦아 들었다 그가 생긋 웃으며 눈가의 주름을 하나로 모았다 빠져버린 잇새로 내게 고맙습니다, 했다 나는 그의 백발을 쓰다듬었다 옷장 냄새가 나는 그의 손목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는 가장 달콤한 부분을 먹으려는 듯 가만가만 담배를 바라보며 힐힐거렸다 함박눈을 가지고 나는 천사를 그려 놓았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이런 식으로 흘리고 있었다 어린이집 유리문에 꼬마들이 모여 있었다 커다란 눈들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어깨를 쳐다보았다 엄마,엄마, 왜 아빠는 찾지 않아. 그는 담뱃대를 내게 권했지만 내가 사양하자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이 좋은 건 나누랬는데, 눈발을 머금던 유리문이 열렸고 선생님이 나왔다, 여기서 담배 피시면 안 돼요.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시내를 걸었다, 그가 겉종이를 씹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거리의 조명들이 검게 칠해진 내 각막 내피에 은은한 빛을 쏘아대는 것을 느껴 차라리 눈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 순수한 이미지만이 오늘을 벗어날 방법이었다 그는 사탕 가게에 들어가려고 고개를 연이어 돌리고 뒤꿈치를 무겁게 했다 그러다 놓쳐 버렸다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나는 까마귀 떼가 되었고 그는 멀리서 마, 마 중얼거렸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알지 못했다 그런 그는 없어도 되었다 없어도 돼, 볼이 아렸다 등을 돌려 걸었다 눈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눈송이들이 박혔다 아프지 않았다 나는 쓰러지고 싶었다
- 드시코
- 202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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