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위성월장원 선정
혜유암센터 1층 접수 데스크 앞, 3년 전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나를 단박에 알아봤다. 그새 살이 좀 빠지고 목에 닿지 않도록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도 그랬다. 의아한 얼굴로 차트 기록을 몇 차례 클릭하던 직원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이내 입술은 다시 살짝 올라간 모양으로 돌아왔지만, 눈에 담긴 빛은 여전했다. 완치 후 전이나 재발은 흔한 경우였으므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상황 역시 유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나를 기억하는 건 아마도 3년 전 같은 자리에 앉아 비슷한 문답을 이어가던 때에 실신할 정도로 울었기 때문이겠지. 그때는 곧 죽을 사람처럼 누워있던 엄마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울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여전히 엄마의 과거 병력을 적어 넣어야 하는 칸은 한없이 모자랐으므로. “여긴 참 똑같다. 그치.” 엄마도 같은 날을 떠올리고 있는지 코를 훌쩍이며 부지런히 볼펜을 놀리는 내게 슬며시 물어왔다. 엄마는 내가 당신 때문에 우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이젠 그런 걸로 잔소리할 기운도 없는 건지 별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내가 이래서….” 로 시작하는 익숙한 반복을 흘려들으며 더 많은 눈물을 쏟아야 하는데, 엄마가 조용해서 나도 더 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 줄을 적고 볼펜을 내려놓았다. 전보다 두세 줄 늘어 난 병명이 종이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다. 엄마가 보지 못하도록 손을 움직이면서도 소용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구태여 읽지 않아도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겠지. 겪어봤다는 건 그런 거니까. 엄마는 꼭 봄에 아팠다. 새롭게 피는 것들이 쉬이 도드라지는 계절에 오는 끝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때마다 지겨울 정도로 우는 새벽을 보내야 했다. 눈물이 하도 쏟아져서, 도무지 멈추질 않아서 울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흐르는 것들을 닦아가며 밀린 일을 하다 머쓱해하고, 다시 울기를 반복하다 보면 아침은 여지없이 밝아왔다. ‘죽고 싶어'가 ‘죽을 거야'로 바뀌는 그 시간도 흘렀다. 엄마가 아픈데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양 구는 나를 마주치는 것. 가장 잔인한 건 언제나 그런 종류였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늘 바쁘게 움직였다. 엄마와 함께, 아니면 엄마에게 무언가를 권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그것보다, 더 열심히 혼자. 엄마의 손을 잡은 채 몇 시간씩 황톳길을 걷고 병원에 있거나 퇴원한 엄마에게 아침저녁으로 전화하고 일기 쓰기를 제안하고…. 그 와중에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독립 서점을 열고 매일 거기로 출근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자조적인 웃음을 짓자, 제이는 내 앞에서 한 번도 짓지 않았던 표정을 했다. 입술을 일자로 구기는, 웃는 것도 찌푸리는 것도 아닌. 거기에 담긴 말을 읽어낼 수 없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분명하게 지나와서 알고 있는 시절의 얼굴인데도.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 꼭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을 텐데도 그랬다. 간호사의 표정을 보면서, 3년 전 이맘때와 제이까지 떠올리지 않을
작성자 listener J 작성일 2026-07-31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감상&비평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 대상을 환원하지 않는 시선에 대하여월장원 선정
이 시집을 읽기 전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많지 않았다. 시인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고, 그 이후 이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시집 역시 화재 이후의 상실과 회복을 담은 기록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재라는 사건이 시집의 중심에 놓여 있고, 그 경험을 어떻게 견디고 지나왔는지가 주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가장 먼저 읽은 것은 자서였다.> 오래도록 어둡고> 우울한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거대한 불에 휩쓸렸다> 올해 봄날은 잿더미> 암흑세계였다> 생체발광할 수 있다면> 차가운 빛을 만들 텐데> 더듬어 시를 켰다> 절벽이 보였다처음 자서를 읽었을 때는 화재를 겪은 시인의 절망과 그 이후의 다짐을 압축해 놓은 글처럼 느껴졌다. 특히 ‘시를 켰다’라는 표현은 어둠 속에서 불을 켜듯, 시를 통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미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생체발광’이라는 표현 역시 스스로 빛을 내고 싶다는 바람 정도로 이해했고, 마지막의 ‘절벽이 보였다’는 문장은 막막한 현실을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왜 ‘시를 썼다’가 아니라 ‘시를 켰다’일까. 왜 절벽은 ‘보였다’에서 끝날까. 하지만 처음에는 그 표현들을 깊이 붙잡기보다, 앞으로 읽게 될 시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장을 넘겼다.1부 ― 바깥을 오래 바라보는 시선1부를 읽으며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시선이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인은 사람을 관찰하고, 일상적인 풍경을 오래 바라본다. 특별하거나 극적인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평범한 장면 하나를 붙잡고 그 안에서 천천히 사유를 이어 나간다. 읽기 전에는 화재라는 사건이 시집 전체를 이끌어 갈 것이라 예상했기에 이러한 전개는 다소 의외였다. 오히려 시인은 자신이 겪은 일을 서둘러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시선을 가다듬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그 과정에서 나는 1부가 단순히 바깥을 관찰하는 장이 아니라, 아직 자신의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전 스스로를 천천히 위로하고 마음을 정돈해 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화재를 외면한다기보다는, 그것을 곧바로 언어로 옮기기에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 과정은 어쩌면 화재라는 사건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천천히 위로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특히나 1부의 첫 시인 「이 세상에 없는 것」은 이후의 시집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의 차이는 뭘까> 모두 끝났다고 말해도 될까> 이 세상에 원래 없었던 것 같은 그것을 찾아> 나는 어딜 이토록 떠도는 것인지이 구절을 읽으며 처음에는 상실을 겪은 사람이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미 쓰여 없어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혹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 걸까. 시인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 시는 화재 이후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작성자 미빈 작성일 2026-07-30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감상&비평 미워하지 않았다는 말은 사랑했다는 말과 같다월장원 선정얼어붙은 호수의 경관은 새하얗고 텅 비어 보인다. 그러나 비었다는 것이 정말 텅 빈 것일까? 이 물음에서부터 김이듬 시인의 시집, 를 읽어볼 것이다. 여기 생활의 흔적이 남지 않은 빈 방이 하나 있다고 치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우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방, 혹은 생활의 흔적이 남지 않은 방을 보며 흔히 ‘빈’이라는 묘사를 붙인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비어’ 있는 게 아니다. 사물의 관점에서 다시 방을 보았을 때, 주름 지지 않은 이불과 고요한 침대, 먼지 쌓인 책상과 마룻바닥, 잘 개어진 옷과 닫힌 옷장 등 많은 물건이 들어찬 방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을 세계의 주체로 두고 본다. 인간은 사물과 달리 권력을 잡고 있으며, 주류라고 칭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의 언어로 설명되며, 이때 인간 아닌 ‘그밖의 것’들은 ‘원래 없었던 것’ 같이 묻혀 버린다. ‘그밖의 것’들은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를 주류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그 안에 남아 있던 비주류는 ‘있으나 없는 것’처럼 지워진다. 이 시집에서는 등장 인물이 ‘너’, ‘나’, ‘친구’ 혹은 일상적인 직업, 화자와 가까운 특징을 지닌 인물 정도에 그치는 여타 시집들에 비해 더 다양한 사회적 위치나 직업, 특징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재해의 상황들을 언급하며 그 속에서 피해를 입은 인물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고, 특정 사물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도록 한다. “폭풍”/“기근”/“역병”/“전쟁”, “동남아”에서 온 “가사도우미”, “생리대/초콜릿 바/담배/술”과 같이 값싼 물건과 생활 필수품을 훔쳐 곧 “감옥”으로 “떨어지”게 될 “도둑”, “사람”에게 죽은 “사람”과 “자기 혈육”에게 죽은 “가족”과 “마스크”가 “없”어 “승차를 거부”당한 “누추하게 젖은 사람”, “몽골인 노동자들”, “죽어 있”는 “식물”에서 떠오르는 방치된 사람들과 “태어났고 평범하게 성장했고 온순했으며 살해당한 소녀”와 “식물이 죽고 나서야” “그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는 세상의 무관심함에 놓여 있는 사람들, “거리 곳곳의 무장군인들과 탱크”, “고독사”, 태어나
작성자 방백 작성일 2026-07-30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수필 말을 읽기월장원 선정
어떤 행동은 글로 적힐 수 있다. 혹은 글로 적히지 않을 수도 있다. 오렌지를 나무에서 딴 후 껍질을 까 입에 넣는다. 씹는다. 이것은 한 개인의 행위로 볼 수 있다. 주어가 없어도 문장이 된다. 규모가 큰 것을 적거나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반드시 관념적이게 되는 것일까? 예컨대 역사책들은 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혹은 'OO국이 쇠퇴했다', '성장했다'. '번영을 누렸다' 라고 쓰지만 도대체 누가 번영을 누렸다는 것인가.. 한 나라 안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쇠퇴'라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눈부시게 발전했다'라고 쓴다면 그 '눈부신' 밝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러나 한 거대한 공동체의 일대기를 쓸 때에 (그 공동체가 실은 개인들의 합이란 것을 감안하지 않고 주로 쓰인다.) 이런 '개인'의 행위를 서술하는 데에 적합한 단어들 말고 공동체 전용 단어는 없다. A나라가 번영했다는 사실은 어떤 한 개인( 아마 'A나라' 라는 이름을 가진)이 번영했다는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쓰기도 어렵다. A나라에 세 사람이 살고 있었다면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씩 (동시에 세 줄을 읽을 순 없으니 순서대로) 써야 할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만연한 의인화는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가? 먼저 이것은 그 공동체가 실재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 축구 팀은 단지 같은 유니폼을 입기로 약속한 것일 뿐이다. 만약 'A축구팀이 승리를 차지했다', 'A축구팀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라고 쓴다면 언어의 힘은 읽는 이에게 혹은 듣는 이에게 그 팀에 속해 있는 선수들을 'A축구팀'으로 단순화하게 한다. '우리 반', '우리 학교', '우리 나라'도 같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나아가다 보면 (도대체 어디로 나는 '나아가고' 있단 말인가? 나는 강물 위를 떠다니는 나룻 사공이란 말인가?) '우리'라는 말마저 부정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정말 그러하다. 이것은 약속 혹은 확인이다. 우리는 언제라도 '그들' 혹은 '너와 나' 같은 다른 말로 바뀔 수 있다. 언어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과 어떤 것을 구별지어야만 한다. 두 원숭이가 언어를 처음 만드는 선사 시대 환경을 가정해 본다면 그것을 주로 야생 동물이나 식물의 '특성'을 묘사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성별' 그리고 대화의 주가 되는 '사람'과 '그 외'의 구별이다. 고유 명사는 제외하고 형용사를 보면, 도마뱀은 '빠르다', 거북이는 '느리다', 저 돌은 '크다'. 나무가 '높다' 등이 있다. 성격에 관련된 것도 그러하다. '교활한', '나쁜', '친절한', '아름다운' 등도 진화의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유행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렇듯 언어가 단지 목청이 내는 소리의 조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유행하는 소리'는 같은 집단임을 확인하는 신호로 보인다. 오늘날 유행하는 '야르' (이것의 의미는 알지 못한다.)
작성자 드시코 작성일 2026-07-29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새벽이 팽창하고 있어!월장원 선정
울고 싶었어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는데 슬프고 싶었지 아무려나 흔들리고 휘청이다 피곤에 못 이겨 쓰러지듯 자고 싶었어 잠은 천장에 얼씬대고 침대는 안 맞는 옷처럼 불편했지 투명한 손이 두 눈을 꾹꾹 눌러도 정신은 꺼지지 않고 찌그러지기만 할뿐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창밖으로는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거나 비행기와 비행기가 공중에서 맞부딪쳐 해보다 눈부신 불꽃을 흐트리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불타는 양이 한 마리 눈물 흘리는 양이 한 마리 백 마리 천 마리 양들의 세계에 운석이 떨어져 모두 멸종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포개진 양털 속에서 숨 막혀 풍선처럼 떠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요한 밤 저 시계의 맥박을 부러뜨리고 내 가슴팍을 찔러야지
작성자 구포대교 작성일 2026-07-14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울림월장원 선정
턱을 괴고 책에 한쪽을 넘기는데 비둘기가 앞에 있는 일은 턱을 괴고 있던 우울이 고개를 들게 하는 일 비둘기는 바닥을 쪼아먹는데 딱딱한 돌바닥이 혓바닥을 내밀고 나는 페이지를 넘기지만 작가의 작디작은 성대의 울림이 귀로 솟구친다 바람 불으니 나뭇잎 소리 들려오고 너는 왜 여기 왔니 물으니 비둘기의 목구멍에선 작가의 작은 울림이 새어 나왔다 비둘기에게 뭐라고? 안들려 물으니 푸드득 달아나는 일 비둘기는 푸드득 달아나고 남은 것은 책장 사이의 작은 울림 다시 돌아와 책이 되어 짧은 순간 너는 거기 있었고 우울은 턱을 괴던 손을 풀고 연필을 든다 입안에서 작은 날갯짓이 들린다
작성자 고래 작성일 2026-07-05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감상&비평 대중 앞에 놓인 카타르시스성 폭력-드라마 '참교육'을 중심으로월장원 선정
대부분의 한국 고전 산문들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띄고 있다. 당장 ‘홍길동전’과 ‘장화홍련전’의 결말을 두고 비교해봐도 그렇다. 두 작품 모두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복을 받는 결말이다. 이러한 구성 방식과 결말은 한국 근대 이전의 소설들 속에서 주를 이뤘다. 그러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한국 고전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도 상업 소설인 웹소설, 상업 드라마, 상업 영화 등 대중적인 이야기 플롯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일종의 모티프다. 이런 모티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중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라는 모티프는 전 세대에 걸쳐 과거에서 현재까지 매체와 서술 방식을 변주하며 계속 나타난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상업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권선징악과 관련된 모티프가 자주 나타난다. 상업 드라마에서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보여주는 드라마 중 일부는 복수라는 장르를 내세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 ‘펜트하우스’, sbs 시리즈 드라마 ‘모범택시’, ‘열혈사제’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복수극도 개인에 이야기만을 하는 드라마와 개인을 넘어 사회까지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로 나눌 수 있다. 이로 볼 때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복수로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모범택시’ 시리즈, ‘열혈사제’ 시리즈는 개인과 개인을 넘어 현실 사회 문제도 건드리는 복수극이다. 따라서 ‘열혈사제’와 ‘모범택시’ 시리즈는 각종 사회 문제를 시리즈별로 이야기하여 그려낸다. 반면, ‘아내의 유혹’은 구은재와 신애리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복수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차이점은 각각 드라마의 결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은 악역인 신애리와 정교빈이 죽음으로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극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주인공인 구은재는 그들이 받은 벌을 보고도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구은재는 신애리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신애리는 친구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수의 성공이 결코 행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역으로 한때 악역이었던 애리를 용서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결말을 맺는다. 반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 실현으로 복수를 진행하는 ‘모범택시’ 시리즈와 같은 드라마는 무지개 운수라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이 사회 문제를 대표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식으로 에피소드별 결말을 맺는다. 그 과정은 복수극과 복수 대행 서비스 안에 맞춰서 폭력적이고, 역지사지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해결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악인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벌하는 모습을 보며 고양된 감정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하지
작성자 송희찬 작성일 2026-06-29 댓글수 2 좋아요 0상세보기 -
소설 수면 아래월장원 선정육지에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되돌아갈 수 없다. -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화> 육지에 터를 내리고 사는 인간으로서는 바다로 발을 내딛는 순간은 언제나 낯섦과 동시에 닿은 적 없는 세계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바다는 제 품에 안은 이들은 한없이 부드러이 끌어안아 주지만 그 밖의 이방인에겐 자비롭지 않다. 수면 아래서 아가미를 펄럭이며 유유히 살아가는 생물들과 달리, 인간에게는 약하게 부풀고 가라앉는 폐뿐이기에 그곳으로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거로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선 제 몸의 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딱 달라붙는 웻슈트를 걸치는 것은 복잡한 관문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그 다음으로 애석한 몸이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가라앉기 위한 무게추를 몸에 매달아야만 한다. 현실에서도 바닷속에서도 떠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가라앉아야만 하는 것이다. 부력조절기를 등에 메다는 순간 휘청이는 몸을 가누는 것 또한 온전히 인간의 몫이며, 동시에 육지의 공기를 끌어 담은 공기통을 매달고 부들거리는 다리를 치켜세우는 것 또한 바다를 향한 처절한 인간의 몸부림 중 하나이다. 그 모든 관문을 뚫고선 인간은 마치 하나의 돌덩이가 된 듯한 기분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어쩌면 정말로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일 텐데도, 그들은 해맑은 웃음과 함께 레귤레이터를 입에 문다. 이내 서로의 버디를 향해 일종의 사인을 주고받은 그들은 기어코 바다를 향해 뛰어든다. 철썩이는 파도를 뒤로하고는, 단지 크게 부푼 심장과 어떠한 맹목적인 갈망만을 지닌 채로. 그러니 육지에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 바닷물에 잠기는 순간은 해선에게는 썩 유쾌하지 않다. 차디찬 물기가 제 몸에 한껏 달라붙는 감각이며 새파란 빛으로 가득한 아래를 바라보면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가 스쿠버 다이빙에 빠져든 것 또한 그 이유에 있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 그 괴리감에는 어딘가 모든 걸 잊게 해주는 마법이 담겨있는 듯했기에. 핀을 가볍게 흔든 해선은 제 앞에 선 버디를 향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준은 조금씩 아래를 향해 두 발을 걷어찼다. 그의 등 위를 커다란 만타 가오리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해선은 옅게 웃으며 그를 따라 아래로 가라앉았다. 닿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과 달리 바닥은 몇 번의 발짓만으로도 도달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빛이 가려진 바닥을 화려하게 밝히는 그곳에는, 곳곳에 숨어든 작은 생물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청 푸른 빛에 은은한 어둠이 내리깔린 그곳, 그러니 즉 바다의 작은 심연인 그곳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다. 공중을 향해 가벼이 몸을 뉜 준은 그녀에게 검지를 들어 올려 손짓했다. 해선은 가벼이 몸을 돌려 새로운 바다의 내면을 바라보았다. 햇빛을 머금은 채 일렁이는
작성자 서벽 작성일 2026-06-15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수필 일자로의 회귀월장원 선정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편 44: 23-26- 나는 본래 모태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이미 교회를 다녔었고,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교회를 빠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또한 모태 신앙이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나처럼 뱃 속에서부터 모태 신앙이었던 것은 아니고, 친할아버지가 큰 병을 치유하신 이후로 개신교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믿었던 초등학생이었다. 진실로 천국을 믿기도 했고, 성경이라는 이야기도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소설을 쓰거나 역사를 좋아했던 이유도 나는 근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것에서부터 모든 흥미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경 속 이야기 만큼 재밌는 것이 없었다. 그때는 배웠던 부분이 겨우 출애굽기 정도였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그 서사는 나에게 정말 큰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모든 것이 순진했고, 신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신을 믿었다. 기도를 하면 내 소원을 이루어주도록 돕는 것이 신이었고, 만약 내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 믿었다. 사실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신을 수단화했던 것이다. 학교 아이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신을 믿기만 한다면, 진실로 믿기만 한다면 죽어서도 천국에 간다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이렇게 단순히 생각했다. 모태 신앙이란게 참 무섭다. 왜냐하면 모태 신앙은 워낙 태어날 때부터 개신교적 사고관을 주입하면서 자라다 보니 천국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천국이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신의 음성을 들은 적도,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신앙심이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부목사를 그만두셨을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부목사를 그만두셨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역했던 사람이었다. 대학도 신학대학, 대학원도 신학대학원 그 외의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또 다른 직업은 구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나이도, 경력도 아버지를 이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땡볕이 기다리는 그 넓고 넓은 사막으로 가야만 했다. 계단을 여러 칸 올라가서 택배 상자를 내려놓으면 겨우 몇 백원을 번다. 그것을 몇 백개를 하루에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일에 적응을 잘했다. 평
작성자 노스텔지아 작성일 2026-06-07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십이월월장원 선정
어린이집 앞이야 엄마 어디, 어디 엄마를 찾는 그에게 담배를 물리자 울음소리가 잦아 들었다 그가 생긋 웃으며 눈가의 주름을 하나로 모았다 빠져버린 잇새로 내게 고맙습니다, 했다 나는 그의 백발을 쓰다듬었다 옷장 냄새가 나는 그의 손목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는 가장 달콤한 부분을 먹으려는 듯 가만가만 담배를 바라보며 힐힐거렸다 함박눈을 가지고 나는 천사를 그려 놓았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이런 식으로 흘리고 있었다 어린이집 유리문에 꼬마들이 모여 있었다 커다란 눈들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어깨를 쳐다보았다 엄마,엄마, 왜 아빠는 찾지 않아. 그는 담뱃대를 내게 권했지만 내가 사양하자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이 좋은 건 나누랬는데, 눈발을 머금던 유리문이 열렸고 선생님이 나왔다, 여기서 담배 피시면 안 돼요.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시내를 걸었다, 그가 겉종이를 씹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거리의 조명들이 검게 칠해진 내 각막 내피에 은은한 빛을 쏘아대는 것을 느껴 차라리 눈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 순수한 이미지만이 오늘을 벗어날 방법이었다 그는 사탕 가게에 들어가려고 고개를 연이어 돌리고 뒤꿈치를 무겁게 했다 그러다 놓쳐 버렸다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나는 까마귀 떼가 되었고 그는 멀리서 마, 마 중얼거렸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알지 못했다 그런 그는 없어도 되었다 없어도 돼, 볼이 아렸다 등을 돌려 걸었다 눈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눈송이들이 박혔다 아프지 않았다 나는 쓰러지고 싶었다
작성자 드시코 작성일 2026-06-02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주먹밥월장원 선정
차가움이 손 안에서 차츰차츰 풀어져가는 게 하얀 밥알 진득하게 달라붙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강바닥 무안한 얼굴의 조약돌처럼 나는 설익은 눈을 손 안에 감춘 기분 턱끝까지 차오른 여름 노을까지는 한참이 남았지 어릴 적 싫어하는 악기를 켜다 집에 돌아가는 네 시에는 붉은색이 복잡하게 펼쳐져 있어서 무서움이 들었었는데 낮은 층으로 이사와서 그런가 하늘이랑 멀어져서 그런가 집의 면적이야 더 커졌겠지만 그만큼 바글거리는 것도 사람 무서움을 기대 세워둘 곳이 사라지고 말았어 삐죽 나온 편의점 그 코앞이 버스 정류장 버스는 어차피 잦게 오는데 뭣하러 이 주먹을 채웠나 노을이 없어서 시계가 막막할 즈음이면 나는 버스가 그리워서 어디쯤 와 있는지 보기엔 버스가 지겨워서 어디 기댈 곳 없는 외로움에 주먹밥을 담았네 한가로이 걸으며 입 안에서 밥알을 센다면 양 백 마리 눈 아래에 반짝이는 풀씨들 그리움도 운치로 두고 가라앉지 않고 여유를 말할 수 있으려나하고 혹여나 덜컥 찾아올 기다림의 시간이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기다림을 위한 안절부절을 샀네 풀피리도 입속이 그리워서 불었던 걸 테야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을 샀네 버스에 덜컹이는 동안 나는 날 위해 마련된 기다림이 잊혀질까 그도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기다림을 위로하고 아이를 달래 조금만 더 뭉쳐져있지 않을래 하나하나가 다 뭉개질 지경까지는 말고 노을이 잘게 달라붙은 하늘처럼만
작성자 다만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1 좋아요 0상세보기 -
소설 괜찮은 죽음월장원 선정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작성자 송희찬 작성일 2026-05-31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