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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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비평 같은 캐치볼에서 다른 궤적 만들기월장원 선정
가끔씩 시를 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제목이 정말 누구와도 겹치지 않을까? 며칠 전 그 궁금증을 타파할 수 있었다. 그때 난 안희연 시인의 과 황인찬 시인의 를 읽고 있었다. 각 시집에서 이라는 제목의 시가 각각 있었다.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다르게 쓰여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말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세계가 생기고 구축하고 그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오로지 자신이 되니까. 평소 시를 읽거나 쓰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만 최근 들어 ‘시란 뭘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 시들은 그런 생각을 조금이나마 잊히게 해줬다. 시를 잘 모르거나 조금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많고 많은 시 중에 이 시들을 고른 이유.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어 이런 흥미를 발견하고 또 같은 제목으로 쓰여 다른 내용인 시를 각각 분석해보면 어떨까?라고 느낀 종착점. 평소 캐치볼하면 ‘주고 받는다’, ‘손에 꽉 잡힌다’라는 특징이 떠오른다. 과연 이 시도 그런 내용만 가득할까?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또한,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건 각 시인의 시를 분석하고 이들의 시 세계와 마인드를 엮어 나타내기. 자, 이제 한 번 캐치볼을 던져보자! 캐치볼 / 안희연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불타는 공이었다 되돌려 보내려면 마음의 출처를 알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투수는 보이지 않고 언제부터 내 손엔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을까 벗을 수 없어 몸이 되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알 수 없겠지, 이 모든 순서와 이유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나에게 다정해지려는 노력을 멈춘 적 없었음에도 언제나 폐허가 되어야만 거기 집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왔을 것이다 불행을 막기 위해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뭐든 미리 불태우려고 내가 받으며 노는 시간 그래도 가끔은 지평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 불타는 공이 도착했다는 것은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다 -> 이 시는 화자가 예고없이 날아든 공을 받는 상황이다. 처음엔 공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더 커보인다. 전개될수록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다시 날아오는 것에 대한 준비를 마친다. 캐치볼은 순식간에 날아오는 특성이 있다. 단순히 불타는 공은 공 그자체가 아닌 예고 없이 우리에게 오는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 모두 그런 경험 한 번 즈음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기력해진 날, ‘인생노잼시기’, 우산이 없는데 소나기가 내림 etc. 이런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다. 시인을 화자가 대신해 이 시로 알려주고 싶은 건 ‘고난과 시련에 대한 의지하는 법’이다. 처음엔 마음의 출처도 몰랐지만 나중엔 또 다른 불행을 일부러 부르고, 고독을 이해하게
작성일 2025-09-28 작성자 yerbi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71상세보기 -
시 뉘앙스월장원 선정
호수의 뉘앙스와 바다의 뉘앙스를 생각한다 - 강에 사는 물고기는 정말 아름다울 것 같지. 강하고, 강하고, 물가 가까이를 걷다 보면 펜스 너머 지나가는 자동차와 둥글고 단단한 몸체에 기대어 비스듬히 질주하는 햇빛이 있었고 모자를 쓴 남자의 이마, 꼭 잡은 우리의 손등 그림처럼 흰 선이 그어졌어 얇고 긴 다리를 박고 서 있다가 몸을 비틀며 날아가는 흰 새는 모서리같은 면이 있지 강과 한몸인 것처럼, 큰 수초의 그림자인 것처럼, 오랫동안 서 있다가 다가오는 물고기 중 한 마리를 낚아챘어 나는 그 안에서 깊이를 느끼고 절반만 꾼 꿈속처럼 영원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 우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아닌 것처럼 한 줄기로 밀고 가는 빗금은 없는 것만 못했어 나는 형의 손을 맞잡았다가, 다시 놓았다가 불안하게 반복하면서 거리를 계속 좁히고 어제 본 꿈속에서는 강가를 찾았지 커다란 거울을 들고 가느라 눈이 부셨어 기울어지는 햇빛의 기세는 엄청났고 돌아온 흰 새는 멀뚱히 그것을 쳐다봤지 나는 거울을 결국 던져버리고 진흙으로 뛰어들며 흰 새를 껴안았어 마침내 작아지는 꿈의 환각들 아무리 때려도 날지 않는 새
작성일 2025-09-21 작성자 방백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540상세보기 -
시 어제는 너무 많이 울어버려서 진화했지!월장원 선정
구석기인들이 나보다 덜 울었으면 강인한 심장을 갖춰야지 그제서야 쥐여지는 인류 진화의 성공 티켓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는 내게 너의 손녀는 좋은 세상에서 살길 바란다고 얘기하며 힘이 다 빠진 팔로 꽉 안고 울었다 할머니 또 울어? 그녀는 너무 많이 우는 사람 체내에 남은 수분을 전부 빼내야 끝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할머니는 일종의 돌연변이라 그래 이틀에 한 번꼴로 울지 않으면 200살까지 건강하게 사시는 바람에 인류의 퇴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퇴화? 다섯 살의 나는 너무 어려서 그런 말 잘 몰랐지만 말이란 어쩐지 느껴지는 것 다섯 살의 나는 느낌이 좋았다 무당 해야 될 정도로 그래서 너는 뭐하고 사니 기어코 무당이 됐어? 유치원 동창 고고학자 D가 갑작스레 걸어온 통화 과거에서는 사실만을 쫓으면서 미래는 한 번 점쳐보겠다는 그녀 공과 사는 참으로 철저하지 어떻게 돼먹은 고고학자가 구석기인들이 나보다 덜 울었으면 D의 구석기 유물들의 눈물 자국 분포 연구 놀랍게도 구석기인들은 우리와 비슷하게 운다 교수에게 깨졌겠지 논문을 쓰는 내내 일종의 돌연변이 D 교수에게 욕 들어먹고 울다가 사우나에 가서 땀이며 스트레스며 쫙 빼내는 그녀는 체내에 남길 수분 없이 천천히 쪼그라들다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겠지 내게는 보인다 그런 미래 나의 할머니가 없고 D가 있는
작성일 2025-09-17 작성자 dlwjddus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46상세보기 -
감성&비평 어느 단상: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바라본 당사자성월장원 선정
문학에서 (특히 소설의 경우) 저자가 3인칭 서술을 사용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최근 한국문학에서 3인칭 서술 사용의 빈도가 가시적일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인상을 받고는 한다. 특히 그러한 양상은 미디어 매체에 전면적으로 영향을 받고, ‘SNS’와 ‘알고리즘’이라는 자기 폐쇄적인 공간을 시대에 의해 수용하게 된 2030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서 크게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이들만 간단히 호명해 보자면, ‘김병운’, ‘김멜라’, ‘김지연’, ‘이서수’, ‘서이제’, ‘손보미’ 등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들)은 대게 소설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화자를 ‘나'라는 1인칭 단수로 설정함으로써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기 폐쇄적인 공간에서 진솔하게 이끌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민의 흔적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젊은 작가들이 1인칭 묘사를 애용하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휴대폰이 이제 막 세상에 등장했을 때, 그들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거나, 혹은 대학을 전전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한때 국내 문단을 주름잡았던 7080 세대들이 민주화 운동의 전선에서 사회를 마주하고 발화와 사유를 터득했던 것처럼, ‘2030’ 젊은 작가들은 휴대폰이란 자가폐쇄적/개인적 공간에서 세상을 마주했다. 그렇기에 ‘7080’ 세대 문인들이 운동권에서 세상을 배워나가며 ‘정치 문학’이라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을 만들어냈듯, 2030 세대 문인들은 (옳은 명칭은 아니겠지만) ‘개인 문학’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1인칭 묘사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사례를 긍정적으로 (또는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닌 듯하다. 시대에 따라 뒤바뀐 양상을 검토 없이 수긍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뿐더러, 체화되지 않은 것들을 내부로 끌어들일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묘사법처럼 독자와 작품을 매개 하는 중요한 형식은 더욱 세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1인칭 묘사/서술에 대해 조금 더 많은 논의를 거칠 필요성을 느꼈다. 1인칭 묘사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는 논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작품 속 ‘나’가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구체화된 창조적 ‘인물'인지, 아니면 이면지 뒤에서 글을 쓰는 작가 ‘본인'인지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작가)’이 화자가 되어 당사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어쩌면 작품의 윤리를 결정적으로 판가름 지을 수도 있는 흐릿하고도 모호한 자가당착의 경계에 봉착한다. 작
작성일 2025-09-11 작성자 화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84상세보기 -
수필 가을밤, 거리.월장원 선정
덥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서 길게 한숨을 내쉰다. 어둠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 선선한 바람이 이따금 불어왔지만 도서관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사각거리는 소리와 팔락거리는 종이소리를 듣고있으면 쉴새없이 돌아가는 사람들의 뇌가 열기라도 뿜어내고 있는것같이 더워지는 것이다. 등을 적신 차가운 땀을 무시한채 담요속으로 파고든다. 덥다. 같이 도서실에 온 친구가 눈짓한다. ‘나가자.’ 쪽지에 적힌 글씨체가 장난스럽게 휘날린다. 키득거리거나 숨을 들이키는 것 대신 윙크 한번 날린 나는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인다. 나는 최대한 소리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느릿하게 움직여도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나고, 곧 몇몇 시선이 닿았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핸드폰과 에어팟을 챙기고 발을 빠르게 놀려 도서실을 나온다. 도서실과 밖을 구분하는 문을 닫자마자 바람이 훅 불어온다. 누군가가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껴안는것처럼, 일순간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움이 고여있는 도서실 안과 다르게 끊임없이 순환하며 목 뒤를 두드린다. 머리카락이 얕게 들썩거리고, 그 사이로 들어온 바람은 차가운 살결을 부드럽게 휘감아 간지럽힌다. 나는 건물 밖으로 완전히 나가 산책길에 들어서서는 정면을 바라본다. 탁 트인 시야속에 밤거리가 담긴다. “…와, 진짜 예쁘네.” “그러게. 도서실 오면서 볼때는 이렇게 예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교과서 지문이라는 현실을 살다가, 밤거리라는 환몽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실제로는 반대일 텐데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 보도블럭을 환하게 비추는 노르스름한 가로등. 가로등 아래 그림자를 만드는 붉그스름한 나무와 산책길 양옆으로 깔린 푹신한 흙. 그 위로 소담스럽게 핀 쑥부쟁이들. 다박거리는 걸음소리와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길목에 서서 그 조각들을 한눈에 바라본다. 바작하니 밟히는 낙엽들을 살살 밀어보다가, 괜히 잡초를 발끝으로 톡톡 건드려보기도 한다. 나는 나오면서 챙긴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고 마저 걷는다. 부드러운 달큰함이 혀 위로 뭉근하게 내려앉았다가 목을 넘어간다. 가을밤, 흐릿하게 풀내음이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고있자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식은땀에 젖은 등판을 말린다. 시원한 바람이 앞머리를 간질였다가 미련없이 떠나버린다. 이번에는 바나나우유를 한입 머금고 가만히 서있는다. “뭐해?” “이리 와봐.” 바람이 귓가에 속삭이고 사라져,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고개를 들어본다. 새카만 하늘아래 남청색빛 구름이 달빛에 비추어 희미하게 보인다. 달은 구름 사이에 있다. 가로등이 비추지 않은곳을 밝혀주는 다정함이 구의 형태로 은은하게 빛난다. 그 달은 다감하게도 모두를 비추었는데, 가로등의 빛이 닿지않은 나무의 꼭대기를 다독이듯이 흐르는 빛을 볼때면 꼭 나와 내 친구도 저렇게 부드러이 쓰다듬어주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람이 속삭이는 말대로, 우리는 더 걸어간다. 공부와 입시와 경쟁으로부터 한걸음씩
작성일 2025-09-10 작성자 시루떡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306상세보기 -
소설 꽃처럼월장원 선정
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하계에 내려온 일을 오오야마츠미는 기쁘게 여겼다. 대대로 미와 영속을 더불어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천손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는데, 나란히 니니기의 동반자를 자처한 이들은 꽃의 신 코노하나사쿠야히메와 바위의 신 이와나가히메였다. 그러나 니니기는 둘을 모두 아내 삼는 대신 미모의 코노하나사쿠야히메만을 취하고, 이와나가히메는 추하다는 이유로 곧장 돌려보냈다. 오오야마츠미는 진노하여 니니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었다. ‘이와나가히메가 있어 바위와 같이 영원하고, 코노하나사쿠야히메가 있어 꽃과 같이 번영할 수 있기에 나는 여식을 나란히 바쳤다. 만일 둘을 함께 맞아들였다면 천손은 피고 지지 않는 영광에 싸이었을 것이다. 천손의 선택으로 후생은 눈부시게 피어나되 찰나에 쇠하여 질 운명이다.’ 이리하여 영원을 내친 천손 내리의 생은 그저 피고 지는 꽃을 닮게 되었다. 이것을 인간의 삶이 꽃처럼 덧없는 세계의 시발점이라고 한다.壱—자네가 오늘의 호위군! 잘 부탁하네. 혼란의 시대란 어느 때보다도 인간에게 꽃을 영사한다. 진득한 윤곽이 말라붙어 인간을 뜻이라는 하찮은 이름으로 낙화시키고 차안의 기저에 깔아 정도(正道)라 하는 길을 수놓는다. 헤아릴 길이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쌓인 꽃을 길로 착각하기에 이르기 전까지 난분분한 낙화는 멈추지 않는다.—최근 막부 타도니 존왕이니, 당치도 않은 망발로 나 같은 중역을 베려는 불한당이 판쳐서 말이지. 자네처럼 실력 있는 검객을 호위로 붙이지 않고서는 안심이 되질 않아. 여느 평화 속에서든 꽃이 지듯 어느 혼란 속에서나 꽃은 핀다. 지기 위해서라고 해도 지는 인간은 저무는 꽃답게 열매를 맺는다. 누구라도 원한을 쉬이 맺는 세상이다. 원한이 열매와 같이 맺히고 따이는 치열한 순환의 현장이다.—이거 원, 외출도 편안히 못하겠다니까. 사법성의 고위 관료로 재직하는 고용인은 능청을 피우며 말을 걸어왔다. 명백히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니꼬운 거드름이었다. 살집을 내두르는 피둥피둥한 풍채로 시름을 연기해 봤자 목숨을 위협 받고 있다는 느낌은 결코 닿지 못한다. 아직이라고 할까, 정적이 우선적으로 노릴 재목이 못 됐다. 물론 있기나 하다면. 나는 솜씨가 좋아서 막부의 고위 인사를 호위해 달라는 비싼 요청도 금세 쇄도했다. 실력을 향한 감탄이 싫지도 않았고, 칼잡이人斬り(ひときり) 노릇은 즐거웠다. 보수를 받고 인명을 해치는 상벌의 역로만큼 뒤집힌 채 굳건한 질서도 나의 기꺼운 발견도 없었다. 무엇보다 고향을 한참 벗어난 내가 에도에서 대성하려면 돈이 필요했다.—아, 그래그래. 이쪽은 내 참모 사다토시일세. 동행할 예정이니, 유사시에는 이쪽의 안전도 부탁해. 고용인이 설렁설렁 가리킨 자리로 눈길을 보내자 어느새 조용히 합류한 남자가 작게 허리를 숙였다. 과연 참모 같다는 인상의 남자였다. 20대 후반으로 추정됐지만 꽉 찬 고뇌로부터 긁어 쌓은 연륜이 젊음을 앗아간 지 오래였다. 예리하게 째진 눈매는 그을음처럼 묻은 피로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번뜩였다.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희귀한 양복을
작성일 2025-09-01 작성자 지존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42상세보기 -
시 복도식 아파트의 무한성월장원 선정
복도식 아파트 3층 맨 끝에서 두 번째 저희 집에는 선풍기 한 대가 있습니다 에어컨은 없어요 복도식 아파트의 특징 하나는 어쩐지 떨어질까 봐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복도식 아파트의 괴담인지 모를 장난을 치곤 악몽을 웃음으로 겹겹이 포장하는 미소를 짓지 나의 룸메이트는 담력 있는 사람 멀티버스 세계관의 장단점을 구분해 내지 못하고 영원 회귀의 삶을 거뜬히 살아낼 수 있는 중국 쇼핑몰에서 한 달 전에 시킨 택배가 도착했다네 잔뜩 둘러진 뽁뽁이 속 미소 교정기 술 먹고 시킨 것 아니냐며 한참을 웃었다는 괴담 그녀는 중국 쇼핑몰을 믿지 않았다…. 너는 믿음의 연속성이라는 말을 알아? 룸메는 그런 말을 믿는 듯 했다 첫 구매 이벤트에 마음 한편을 내어버린 그녀는 그렇게 어색하게 웃다가 자신이 무엇을 포장하는지도 까먹어버린 사람 장난 같은 사실은 나보다도 그녀가 미소 교정기를 많이 꼈다는 것이었다 (충격) 포브스 선정 첫 구매 이벤트를 가장 많이 하는 한국 회사…에 포장 인력으로 상당 부분 존재하던 그녀는 에어컨을 가장 많이 보내는 사람이었다 할머니 댁 본가 신혼부부 친구의 집 대학교 후배의 자취방 우리는 에어컨 있는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나는 쓸데없는 소모품을 잔뜩 사는 사람 매일 신께서 어지러우실만한 기도를 올렸다 믿음의 가변성을 믿고 싶어 하곤 복도식 아파트의 무한함을 믿기로 했다 복도식 아파트의 끝에는 멀티버스와 영원 회귀의 개념을 평정한 네가 우리를 이어주겠지 선물 상자를 풀어헤친 네가 복도식 아파트 3층 맨 끝 저희 집에는 에어컨 두 대가 있습니다 선풍기 하나도요
작성일 2025-08-31 작성자 dlwjddus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01상세보기 -
시 폴라로이드 입기월장원 선정
동생이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갈 때 문 너머의 골목은 그림이 가득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벽화 마을, 사람들이 그린 벽에는 나를 닮은 동생이 그려져 있고, 아이들 안에서 살았다. 아동 보호 구역을 지나면서, 우리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손에서 끌려오는 캐리어 속에, 투명한 내 허물이 동생 얼굴로 굽어있다 나는 태안에서 태어나 태안이라 적혔고, 다 큰 발을 가졌고 동생은, 대한에서 태어나 대한이라 불렸고 커지는 발을 가졌다 우리가 걷고 있는 집에 걸린 우리의 허물들 계단 아래서 조금씩 빨래가 말라가는데 동생이 반대편 벽을 보고 나에게 손자국을 남겼다. 붉은 멍을 내 몸에 묻었다 투명해서 없는 것 같은 나를 닮은 아이의 손 끝으로 벽화 마을은, 사람이 많이 온 데, 관광지고 캐리어를 끌고 아이의 손을 잡으며 걸어가는데. 내가 가는 한 보의 걸음, 동생은 자라고 있는 걸음으로 여러 걸음, 캐리어의 바큇자국에는 우리가 접은 옷들이 있고, 입을 옷들이 있고 이번 여행은 많은 것을 안지 않고, 하나만 안는 것. 허물을 담으며, 그림들을 본다. 아이들만 안은 유아 그림이 담긴 벽을, 내가 만져본다. 보이지 않는 동생도, 유화가 굳은 유아 그림을 만져본다 우리는 서로를 끌고, 웃는 얼굴을 해야지 밖으로 나가 계단을 오르는 일. 아이들은 웃는 얼굴상이라지. 문밖 그림들은 모두 웃고 있다. 서로를 덜 만지고, 속도는 30km 미만으로 자라고. 나는 나를 안아줘야 하는데, 빨리 커버린 동생은 태안 밖으로 나아 간다. 잘린 부분을 품을 수 없는 어린이 보호 구역의 경고 표시로. 우리의 표정이 퇴화한다. 여런 번 덧입힌 태명으로. 벽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를 밟은 나만 있을 뿐 집에 들어와 나를 벗는다 캐리어 속에서 꺼낸 나를 닮은 동생. 우리 몸은 계단 아래서 자라나고 구겨지고 있다. 바람이 몸을 치면서 우리는 서로를 감싼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부는 바람 자국 내 몸에 묻은 오늘의 허물을 누르며 나는 캐리어 속에서 빨고 입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고 내 허물은 빨래통으로 아무도 모르게 나를 입고 동생은 문밖으로 나가 자랐다
작성일 2025-08-30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74상세보기 -
감성&비평 10대의 시선에서 바라본 학창시절의 노스탤지아 - 박상수 시인의 <후르츠 캔디 버스>를 읽고월장원 선정
평소 학창시절에 대해 생각하면 기쁨과 행복 보다는 후회,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끝나버린 인연, 어리숙했던 첫사랑이 떠오른다. 또한, 남들보다 빛나지 못 한 순간이 내 앞을 가려버린 적이 많아 성인이 되면 이때의 순간을 잊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그러나 이 시집은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인연에 대한 상념, 불안정한 10대의 모습, 청춘의 계절이라 할 수 있는 여름날의 후회등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빛나지 않아도 울적한 날이 달력을 가득 채웠어도 괜찮다는 말을 소녀와 소년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난 항상 누군가에게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어도 마음처럼 잘 되진 못 했고 오히려 엇나가는 모습이 대부분이였어서 나를 더욱 옭아맸다. 이 시집을 통해 나와 같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지난 날의 후회와 추억을 담아서 빌려말할 수 있는 좋은 시집이라고 생각했다. 날려보낼 수도 있지만 휘발성이 강하기도 하고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올 후회라면 조심스레 건네보내는 게 매듭을 짓기 위한 좋은 스텝 중 하나일지도.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 탐구하고자 하는 바를 밝히겠다. 박상수 시인은 소년과 소녀를 화자로 내세워 이 시집을 총 4부로 나눴다. 각 부에 있는 시들중 1-2편을 골라 분석한 후 제목이 ‘후르츠 캔디 버스’인 이유와 ‘10대의 시선에서 바라본 학창시절의 노스탤지아’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또한, 시는 소리를 축적해주는 예술인 음악과 함께라면 더 즐기기 좋다. 이와 어울리는 노래도 몇 번 담아볼 예정이다. 이 시집은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느 곳에 있는 화자인지 정확히는 알기 어렵다. 마치, 아우구스티누스가 했던 말처럼. 따지자면 과거에 더 가까울지도. 학창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에게 위로와 행복 또는 물기어린 슬픔을 선물할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어떤 감정이든 소중히 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시집이 바라는 바가 그런 게 아닐까라는 조심스런 나의 생각이다. 이런 말이 있다. ‘이럼에도 저럼에도 나는 모두를 사랑해!’ 이 시집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섭하다. 작가의 말이 책을 관통한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먼저, 2006년 2월 구판 속 시인의 말을 보자. ‘괜찮니? 그래, 오늘은 잠깐 너를 보러 온 거야…… 달이 있고 여전히 이곳엔 지구인의 폐기된 기억이 떠다닐 테지만.‘ 시인은 여기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너’에게 말을 건넨다. 뒷 부분을 보면 달, 지구인의 폐기된 기억 … 아마 시인이 말하는 ‘너’는 외계인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리는 걸 넘어 폐기하고 싶었던 기억 옆에서 부르는 미지의 존재라니. 아무래도 주인공은 무척이나 외로운 상태라고 생각했다. 잠깐 보러온다는 말이 조금 애달팠다. 모두들 이런 경험 한 번 즈음은 있을 것이다. ‘나.. 학원 가야해서
작성일 2025-08-30 작성자 yerbi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08상세보기 -
시 완숙 토마토는 의외로 초록색월장원 선정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으면 안되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꼬리뼈는 꼬리가 퇴화한 기관 날갯죽지는 무엇이 퇴화했나 구품천사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지 땅만 보고 걷지 마렴 나도 하늘 보는 사람이 좋아요 힐끔힐끔 곁눈질로 보는 거 말고 대놓고 하늘이랑 눈 마주치는 거요 토마토가 슈퍼푸드에 선정 갈아 만든 악마의 주스 밖은 아직 칠 월 무성한 초록 사이 토마토 수확 시기 뜨겁게 달궈진 빨간 열매 아직 덜 여문 키위에 상처를 내야 해 그래야 당도가 높아지거든 낫지 않으면요 그럼 어떡해요 그땐 어쩔 수 없는 거란다 구름 위에서 피를 흘리는 기분... 너는 알 수 없는 말만 하는구나 세상을 살아보렴 상처입힌 기억은 언젠가 되돌아오지만 상처입은 이들을 치유해주진 않아 그저 그들이 갈변하지 않고 더욱 단단해지길 바랄 뿐이지 부박한 그 아이에게 날개 잃은 천사에게 상처 입은 과일에게 붕어빵을 건넨다 굿바이, 녹색 눈의 아이야 이 계절의 녹빛을 조금씩 전부 꼭꼭 씹어 삼키렴 자연 경관 주인 없다 해도 네가 가지면 그만 아니겠어 은행잎이 물듦 여름 영원에 가둠 동물원에서 얼룩말이 탈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상처가 이내 아물고 또다시 자리를 잃어버릴 여름과 푸름 겨울에는 군고구마 사줄게 글 계속 써줘 랑해
작성일 2025-08-27 작성자 마용건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48상세보기 -
수필 언젠간 단단한 마음을 너에게월장원 선정(글에 들어가기 전 ** 부분은 제목 사진 혹은, 프로필 사진을 참고해 주세요) 지난 2024년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던, 평범한 연도인 줄 알았는데. 그해 나는 자의와 타의로 인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9월에 자퇴했다. 자퇴를 한 계기를 묻는다면, 건강 문제라는 단어로 답하지만, 세세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내 문제가 하나의 사이클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나는 2022년도 10월부터 원인 모를 기침을 앓아왔다. 끝없는 기침으로 동네 의원을 밥 먹듯 다녔다. 의사는 그런 나를 보고, 약한 약부터, 독한 약까지, 기침과 관련된 약을 모두 사용했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기침은 호전되지 않아, 대학 병원 소아 청소년과 교수들, 정신과 의사까지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진단을 했다. 소아 청소년과 교수 중 한 명은, 천식이라 보고, 다른 한 명은 기관지가 민감한 것, 정신과 의사는 기침 틱으로 내 병명을 진단했다. 그래서 나는 알레르기 약 {싱귤레어}, 기관지 확장제 {심비코트}, 틱 약을 모두 혼합해서 먹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관지 한쪽에서 끙끙거리며, 내 생활을 조여왔다. 사실 고등학교 진학 및 졸업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침 때문에, 내가 수업을 듣기 힘들뿐더러, 반 친구들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1학기까지는 반 친구들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대해줬다. 나 역시 친구들의 배려에 보답하고 싶어, 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기침을 최대한 참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넘치는 물을 누르면 누를수록 물이 빠지는 게 아닌, 쌓이는 것처럼 기침 역시 해소되지 않고, 내 의식으로 눌려 쌓여갔다. 지난 8월 누르고 있었던 게 터진 걸까? 감기가 들어온 이후부터, 내 기침은 갈비뼈에도 금이 갔던, 2022년의 기침과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명, 두통 등 자잘한 잔병들이 나를 학교 밖으로 몰아세웠다. 아무 도 나에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가 내는 기침 소리 때문에 보이는 눈치가 보였고 이는 나를 조여왔다. 이를 본 담임 교사인 과학 선생님께서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나에게 자퇴를 권유했다. "선생님은 희찬이 한 명의 선생님이 아니니까. 2학년이 돼서도 이렇게 기침이 나오면, 자퇴해야 할 확률이 커질 거야?" 그의 논리에는 빈틈이 없는 듯 보였다. 혹여나, 논리에 빈틈이 있더라도, 그 빈틈 역시 나를 감정적으로 조여왔기에, 빈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빈 곳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자퇴를 선택하는 방법밖에. 그렇기에 나는 9월 10일 오후, 자퇴 서류에 서명했다. 단지 미안함과 원망 그리고 이해만이 몸을 따라, 학교 밖을 나왔다. 자퇴하고 난 뒤, 9월과 10월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지 갑자기 속이 뜨거워지고, 기관지가 사람을 만나기를 거부하는 기침만 나 올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 소설, 수필,
작성일 2025-08-21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29상세보기 -
소설 초록 안락사월장원 선정
담쟁이덩굴이 된 소월을 시멘트벽 아래에 하나씩 심었다. 총 마흔네 개였다. 손이 금방 붉어졌다. 뼈마디에 찬바람이 스미는 듯했다. 벽 사이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씨앗 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소월은 오 년 전 남편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 년 동안 홀로 좁은 방에서 살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좁고 음습한 악취가 풍기는 방이었다. 소월이 그 방에서 초록 안락사법이 있어 다행이라고 할 때, 나는 미치도록 반박하고 싶었다. 일흔다섯이 되면 강제로 식물이 되어 죽어야 하는 법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월처럼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월은 예쁜 꽃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물을 붓자 담쟁이는 빠르게 자라났다. 담쟁이를 눈으로 쫒았다. 밑에서부터 파릇한 잎사귀가 돋았다. 금세 탐스럽게 되어 선명한 녹빛을 띄었다. 잎사귀를 잡아보았다. 보드랍고 면적이 넓었다. 서희의 손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떨렸다. 가슴에 화한 민트 사탕이 떨어진 것 같았다. 소월은 죽기 전에 자기가 어떤 식물이 되던 벽 아래에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으로 소월이 원망스러워졌다. 나는 소월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 또한 소월이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죽으면 날 심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낮달을 봤다.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를 따라가다 보니 낮달이 보였다. 지난밤 보았던 달보다 더 커다란 반달이었다. 마치 종이를 잘라 물 위에 버려둔 반투명한 종이달 같았다. 곧 녹아 없어질 듯 엷게 빛났다. 시멘트벽은 청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상태였다. 담쟁이덩굴은 페인트 벗겨진 자리를 덮었다. 담쟁이덩굴이 벽 끝에 다다랐다. 소월의 집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그동안 아스팔트 끝자락에 자라난 민들레가 시체인지 의심했다.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의 노인이 앉아있었다. 오른편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청색 가죽 시트에 등을 기댔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히터가 세게 틀어져 있던 탓에 공기가 건조했다. 창밖을 보다 보니 길가에 자란 들풀마저 신경 쓰이기 시작하였다. 소월의 집에 다녀온 뒤로 신경이 예민해졌구나 싶었다.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뒤에 사마귀가 있는 노파가 비니를 푹 눌러썼다. 비니를 쓴 노파는 볼이 파여있었고 자주 기침했다. 멀끔한 남색 양복을 차려입은 노인이 노파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머리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였다. 노파는 비니를 올리고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이 품에서 사탕을 꺼냈다. 호박엿이에요. 노파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호박엿을 받았다. 노인이 노파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군청으로 갑니다. 초록 안락사는 죽기 사흘 전부터 신청해야 블랙카드를 받으니까요. 노인은 짧게 탄식했다.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노인이 대답했다. 가족이 있습니까. 노파의 질문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손녀 한 명이 있습니다. 췌장암 말기인 저를 이 년 동안 살게 해준 고마운 아이입니다. 노파의 눈에는 안광
작성일 2025-08-01 작성자 유성화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573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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