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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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고목과 파수꾼월장원 선정
잿빛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창문에 부딪친 빗물은 먼지를 씻겨내며 미끄러졌다. “큰일인걸.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아.” 운전석에 앉은 종석이 말했다. 와이퍼가 불쑥 나타나더니 창을 닦기 시작했다. 빗줄기와 와이퍼의 소리로 내부는 순식간에 산만해졌다. 그리고 나성은, 작은 점이 되는 기분이었다. 시끄러운 도시 한가운데서 홀로 옹송그리는 기분이었다. 비로 이루어진 대도시였다. 차는 안개로 둘러싸인 고속도로를 달렸다. 나성은 유리창에 머릴 기대 자동차의 떨림을 고스란히 느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두었다. 분위기를 환기할 겸 튼 라디오에선 게스트로 온 아이돌의 신간 홍보가 열심이었고 나성은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굴렸다. 아직도 한 시간을 더 달려야만 했다. 마침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제보자였다. 그 사람은 시내의 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말했고, 나성은 약간 늦어질 수 있음에 양해를 구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종석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가지 말자고 했잖아.” 종석은 나성의 매니저 겸 카메라맨이었다. 그보다 앞서,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유튜버로서 수입을 벌기 시작할 무렵의 나성은 그를 찾아온 종석을 동업자로 맞이해줬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라는 말이 지닌 효험은 강력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성은 종석의 제안을 재고할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종석의 성격은 퍽 껄끄러운 편이었다. 가령 지금의 상황과도 같이. “역시 백반집을 가는 게 맞았어.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비도 오고.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산에 가겠다는 거야? 당장 더 나은 선택지가 보이는데 굳이 이런 깡촌까지 기어 들어가야 되는 이유가 나는 납득이 안 되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평소에는 잘만 있다가도 한 번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폭발해버렸다.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듯한 성격은 어른이 된 종석이 버려야 할 부분이었다. 그의 마음은 정말이지 사춘기 소년의 그것과도 비슷해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혼자 안정을 되찾고는 했다. “방금은 미안했다, 야.” 종석 역시도 자신의 문제를 분명 인지하고 있을 테지만, 무릇 문제라는 건 인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은 나성이 감내해야만 할 부분이었다.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바닷가로 향했다. 약속시간을 30분가량 초과해서 그들은 겨우 카페에 도착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잇, 괜찮습니다, 팬입니다.” 따위의 대화들로 제보자는 두 사람을 맞았다. 제보자는 나성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어색하게 뒤따라온 종석과 악수를 나누었다. 종석은 언제까지나 카메라 뒤의 사람이었으므로 시청자들은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따라서 대화의 주도권은 언제나 나성이 쥐었다. 따뜻한 커피 세 잔을 테이블 위에 두고, 나성과 제보자는 마주앉았다. 종석은 나성의 옆에 앉았고, 나성을 올려다보는 각도의 카메라를 테이블에 설치했다. 녹화가 시작되자 대화가 시작되었다. “제가 메일을 보낸 까닭은 다름 아닌......산에서 집도 없이 홀로 거주하는 한 노인 때
작성일 2025-11-28 작성자 구포대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486상세보기 -
시 유리창 문월장원 선정
지하철은 돌아옵니다. 다음 열차에는 자리가 비어있을지 몰라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내리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예요. 정 못 믿으시겠다면, 좋아요. 저기 구석의 김노인이 보이시나요? 그도 한때는 지하철을 타고 세상을 돌던 사람이었죠. 그러나 지금의 처지를 보세요. 할 줄 아는 거라곤 두 손을 모으고 엎드리는 것밖에 없죠. 아, 지하철이 돌아오는군요. 문이 열립니다. 이런, 이번에도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군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지하철은 돌아옵니다. 역사가 속삭인다 스크린도어 너머의 통로는 깜깜하다. 철도는 회색으로 남아있다. 유리 너머를 들여다볼 때면 끝없는 선로에 아득해지고, 또, 새어 들어오는 시취. 윽! 어제는 몇 명이 떨어졌을까, 세는 사람이 없어 아는 사람이 없다. 역사의 위대한 헌장을 새기는 사람만 있다. 반복되는 속삭임은 날카롭게 인간을 음각한다, 한땐 새하얬던 살갗을 파먹으며, 지하철은 돌아옵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는 형은 기어코 지하철에 올라타 떠났다. 빼빼마른 아저씨를 끄집어낸 후 사람들 사이에 꽉꽉 눌려지며, 형은 잠시나마 기뻐보였다. 문이 닫힙니다. 문이 닫힙니다. 더 이상 형은 날 보지 못했다. 밝은 세계의 유리창은 스스로만을 비추고, 어두운 세계의 유리창은 밝은 면을 여과없이 투과한다. 시선은 일방적이다. 열차 안은 정말, 따뜻해 보이지. 찬 몸을 끌어안고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행동한다. 역사는 속삭인다. 아기의 소리가 들려온다. 산모의 소리가 들려온다. 자주. 이 사람들은 이 어두운 곳에서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낳는 걸까. 그래도 아기의 울음소리는 잠시나마 역사의 속삭임을 덮는다. 사람들은 잠시나마 기쁘다. 축복한다. 태어난 한 사람의 부피만큼 누군가는 땅을 잃는다. 누군가는 벼랑으로 몰려난다. 스크린도어는 쉽게 열린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체온은 공기로까지 번지지 않고,
작성일 2025-11-25 작성자 구포대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01상세보기 -
수필 긁어 부스럼월장원 선정
나에게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생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될 무렵 아토피를 앓았던 언니와는 달리, 내 경우 한동안 피부에 아무런 이상 증세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런 날 보며, ‘얘는 괜찮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하셨다. 그러다 네 살 무렵 찾은 한 소아과에서 나에게 아토피 판정이 내려진 건, 부모님께 청천벽력 같았을 것이다. 언니는 아기 때 이후로 발현되는 일이 없었던 반면, 나는 성인을 앞두는 지금까지 줄곧 아토피에 시달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릴 적엔 붉게 달아오르고 피딱지가 앉은 피부를 거리낌 없이 내보이고 다녔다. 그로 인한 관심이 불쾌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가벼운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내보이지 않았고, 어른들은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며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곤 했는데, 그걸 받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아이들이었는지, 무지한 어른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내가 가진 피부염에 전염성은 없는지 물어왔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만성 질환에 전염성이 있었다면, 세상 모두와 거리를 두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식구들에게마저도…. 나에게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내 곁에 있길 꺼리는 눈치라면, 필시 피부 때문이리라 넘겨짚고는 묻기도 전에 해명하곤 했다. 옮기는 거 아니니까, 괜찮다고. 남이 오해를 하더라도 내가 풀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의 나는 무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그리 가볍게 넘기지는 못할 것 같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아토피가 일어나는 양상이 바뀌었다. 팔다리 접히는 부위나 목, 손목과 손등과 같은 부위에만 상처가 났던 이전과는 달리, 얼굴부터 시작해서 몸 곳곳으로 넓게 번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피부가 심하게 일어났다가 아물기 시작할 때면 하얀 가루 같은 각질이 떨어졌다. 그 무렵 밖에 나갔을 때, 특히 등교했을 때가 관건이었다. 긁지 않아도 온몸에서 각질이 눈이 오듯 쏟아져 내려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각질이 잘 보이는 어두운 옷을 피하기 시작했다. 교복 조끼와 치마가 군청색이라, 아무리 더워도 위에 흰 외투라도 덧대 입는 것이 최선이었다. 곱지 않은 눈길이 느껴져도 나로서는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는 그런 시선을 외면하지 못하는 계기가 생긴 일이 있었다.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종일 자습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작년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나는 그 와중 아토피가 악화되어, 공부에 집중하기는커녕 그냥 버티자는 심산으로 자습 내내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내 짝으로 앉은 아이가 그의 대각선 앞자리, 즉 내 앞자리에 앉은 자신의 친구에게 다가가선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사자를 가까이 두고 말할 리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들을수록 나를 향한 이야기
작성일 2025-11-20 작성자 김희윤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0상세보기 -
시 실추월장원 선정
구름과 함께 날며 제 몸을 숨기던 한마리 늙은 새 구름에서 새를 발견한 눈 좋은 아이 고기가 필요해서라기보다 새를 잡기 위해 잡는 아이들의 새총 위 작은 돌 돌을 비껴맞고 살짝 내려온 새 다른 아이들도 새를 볼 수 있게 된 후 돌이 늘어난다 저들이나 늙은 새나 삶의 길이는 비슷하건만 어째 돌은 새만을 향한다 도망가는 새를 쫒는 수십명의 아이들 새는 명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만큼은 살지 못했다 종잇장이 팔락이듯 사체로 땅과 마주한다
작성일 2025-11-02 작성자 6개월된 러시안블루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36상세보기 -
감성&비평 사회가 서술하는 ‘남성적 언어’: <꽃처럼>을 읽고월장원 선정
[여성혐오: 사회학자 앨런 G. 존슨(Allan G. Johnson)에 따르면, “여성혐오란 여성을 여성이란 이유로 혐오하는 문화적 태도”이다.] 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하계에 내려온 일을 오오야마츠미는 기쁘게 여겼다. 대대로 미와 영속을 더불어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천손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는데, 나란히 니니기의 동반자를 자처한 이들은 꽃의 신 코노하나사쿠야히메와 바위의 신 이와나가히메였다. 그러나 니니기는 둘을 모두 아내 삼는 대신 미모의 코노하나사쿠야히메만을 취하고, 이와나가히메는 추하다는 이유로 곧장 돌려보냈다. 오오야마츠미는 진노하여 니니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었다. ‘이와나가히메가 있어 바위와 같이 영원하고, 코노하나사쿠야히메가 있어 꽃과 같이 번영할 수 있기에 나는 여식을 나란히 바쳤다. 만일 둘을 함께 맞아들였다면 천손은 피고 지지 않는 영광에 싸이었을 것이다. 천손의 선택으로 후생은 눈부시게 피어나되 찰나에 쇠하여 질 운명이다.’ 이리하여 영원을 내친 천손 내리의 생은 그저 피고 지는 꽃을 닮게 되었다. 이것을 인간의 삶이 꽃처럼 덧없는 세계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 중 도입부 일본 신화, 를 차용함 1. ’남성적 언어‘ 일부다처제란 무엇인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하나의 제도로까지 자리 잡고 있었던 이 구도는, 단순히 부부간의 개인적인 권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다처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만연한 성별 권력 격차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 구도가 무너져있는 곳에서부터 이 기묘한 세계는 출발한다. 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거느릴 수 있는 일부다처제는 단순히 이것을 행하는 한 부부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균형을 무너트린다. 결혼과 동시에 부부 사이의 관계는 전혀 동등한 형태를 띠지 못하고, 성적, 경제적, 권위적인 지배권이 모두 남편에게 속하게 된다. 이때 여성은 배우자가 아닌, 남성의 재산 혹은 번식 수단으로 종속되고, 정립된 여성의 권위는, 그 사회의 모든 여성에게로 이어진다. ㅡ 에서 나오는 두 여성(꽃의 신, 바위의 신)은 천손의 동반자를 ”자처“했다고 서술된다. 하지만 오요야마츠미가 두 딸을 천손에게 “시집보“낸다는 표현과 “바친다”는 표현을 살펴보면 ”자처“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소설은 두 딸이 아버지-남편으로 넘어가는 자리에서 가부장제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한 남성의 두 배우자로 들어가기를 ”자처“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의 고유한 신적 성질(꽃과 바위의 성질)은 ‘아버지가 남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친다”는 표현을 통해 아버지는 두 딸
작성일 2025-10-31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79상세보기 -
시 스노우볼 속 스노우맨의 사념월장원 선정
이곳의 눈은 내린다기보다는 솟아오르는 편이라 썩 즐겁지 만은 않다. 다만 유리막 바깥의 세상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약간의 위안이 되기는 했다. 다만 여전히 즐겁지 만은 않다. 그들이 나를 관찰할 때 나는 손을 흔든다. 그들이 나를 흔들면 나는 조금 어지롭고 이 세상마저도 어지럽다. 지구본을 닮은 유리는 겨울을 흉내 낸다 박제된 겨울은 흔들릴수록 촘촘해진다 그리고 저 너머의 서랍 위에는 가을이 박제되어 있다. 붉은 단풍보다는 샛노란 은행 한 닢 유리는 부자유를 포장하여 애정을 듬뿍 받고 이따금씩은 스스로마저 가둬두게 한다. 유리공예공은 만물을 박탈한다. 또 어떤 유리는 그 투명도가 너무도 높아서 인지할 수조차 없다. 그 어떤 인간이라도 인지할 수 없어서 다룰 수조차 없다. 실은 그들의 손가락에서 비롯된 것이면서도 누구도 자각하지 못하며 지금의 영화를 방부한다 말하지만 하릴없는 유리막 속에서는 늙은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다. 박제의 끝은 방치이고 둥근 세상도 언젠가 방치된 채 우주의 한구석을 구르겠지
작성일 2025-10-26 작성자 구포대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693상세보기 -
수필 3분 속 3년월장원 선정3분 속 3년 10월 19일, 3년의 노력이 막을 내렸습니다.(어찌 보면 4년이지만, 중학교 3학년 때는 조금 결이 다르니 빼겠습니다.) 저는 사실 시보다는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읽는 것은 물론이고, 쓰는 것도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던 탓인 것 같습니다. 중학교 국어 시간, 딴짓을 하고 싶으면 교과서를 훑어봤는데 그중 시는 대충 눈으로 쓱 스치듯 읽고, 소설이나 극 대본 같은 것들을 찾아다녔어요. 핸드폰을 걷지 않았다면 핸드폰을 했을 수도 있겠죠. 허허,,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해 쫓아다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예고를 준비했어요.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1500자 소설을 하나씩 썼어요. 그 덕에 원하던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023년에 입학식을 하고, 문학 공부를 하면서 그해 5월까지는 제가 앞으로도 계속 소설만 쓸 줄 알았어요. 제가 시 전공이 될 줄은 그땐 상상도 못 했어요. 읽어본 시집이라곤 나희덕 시인님 작품밖에 없었으니까요.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예고는 1학년 때 소설과 시를 배우고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1학년일 때는 대부분 전공선생님들이 최대한 칭찬을 해주시면서 선생님과 같은 전공으로 바꾸도록 노력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속했던 실기반은 시 담당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었는데요, 그래서 가끔 야간 실기 때 운동장에 나가 시를 쓴다던지 벚꽃 잡으러 간다던지 하이틴 드라마 같은 수업을 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선생님이 이런 묘사가 좋다, 이런 전개가 좋았다고 해주시면서 엄청 칭찬을 해주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공을 안 바꿀 수가 없겠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소설로 참여한 백일장에선 상을 못 받는데, 시간이 없어 시를 제출한 곳에서는 예선을 통과했고 상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시를 더 좋아하고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뭐랄까, 효자 같은 느낌이었요. 효자 문학. 이후 전공 선생님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탭댄스 추듯 시를 쓰고 백일장에 나갔어요.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아 명지대 특기자를 준비하며 내신은 별로 신경을 안 썼어요. 그렇게 공부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행복한 고등학생으로 무럭무럭 자라다가, 고등학교 2학년 6월, 명지대 특기자가 제 입시부터 사라진다는 무척 신기한 헛소문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황스러웠어요. 내신은 지방대 턱걸이 수준이고, 아직 다른 특기자 대학 가기에는 백일장 성적이 부족했어요. 명지대 특기자를 생각하며 백일장을 다닌 거라 다른 곳에서 인정을 안 해주는 상들도 많았거든요. ‘일단 지금부터라도 내신 성적을 챙기자.’ 시험공부를 했고, 기말고사를 봤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적이 조금 올랐을 뿐, 아직 많이 부족했어요. 지방대 턱걸이 합격에서 지방대 합격 수준. 안타깝게도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능력은 제게 없었어요. 아빠한테 명지대 특기자가 저 멀리 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던 거였
작성일 2025-10-25 작성자 카페라떼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78상세보기 -
시 장롱월장원 선정
원룸만 한 내 방 구성을 차지하는 장롱 하나 엄마 아빠가 조곤조곤 말싸움을 시작하면 나는 미리 장롱에 들어간다 장롱 안에 있으면 점점 커지는 소리의 불꽃이 옷가지들에 달라붙는다 그렇게 장롱 속에 작은 산불이 번진다 손으로 코를 막아도 매캐한 연기가 손을 뚫고 코로 들어왔다 당신 때문이다 이랬으면 저러지 않았을 거 아니냐 크고 무거운 문장들이 내 폐를 쿡쿡 찔렀다 어쩌면 화는 불이 아니라 물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바닥부터 차오른 물은 양말에서 시작해 봉에 걸린 겉옷까지 잠근다 숨을 꾹 참고 기다린다 밖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깥이 조용해지면 장롱 문을 연다 물과 함께 쏟아져 내린 나 방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온다 무릎 꿇고 날 안아주면 엄마의 바지는 축축해진다 이미 상의도 축축하다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잠겨버린 장롱 속에서 헤엄을 쳤다 거기엔 해수면이 없어 내 폐활량은 계속 늘어갔다 나는 젖은 팔로 엄마를 안고 저는 괜찮아요 중얼거렸다
작성일 2025-10-11 작성자 대리석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30상세보기 -
소설 #7. 부서진 문장을 짊어진 우리는월장원 선정
언젠가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문자는 투명해지고 단어의 의미만이 흐릿하게 남아 문장을 이룬다. 오래된 문자는 유리와도 같아서 잘 보이지 않더라도 상당한 무게를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짊어져야 해. 내가 언젠가 경에게 말했던가. 경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무엇을 짊어져야 하는지 물었고, 나 역시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빛바랜 유리와도 같은 문장이 몇 년간 나를 옥죄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반복될수록 깊어지는 회의감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한 문단을 넘지 못하는 글감과 뒤를 이어가지 못한 채 단절된 문장. 한번 흐름을 놓친 글은 방치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죽어간다. 자신을 갉아먹으며 연명하는 문장의 단면은 거칠고 해리하다. 때로 글자의 모서리는 날카롭게 갈려 알게 모르게 무의식에서 빠져나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자꾸만 심장을 찔러대는지 마음에는 숭숭 구멍이 난다. 글쓰기로는 메꿀 수 없는 성질의 공허함. 한구석에 뚫린 틈새로 더는 자라나지 않는 열정이 흘러 나가고, 지독한 무기력감에 빠져 시간을 죽이는 날에는 생각한다. 글 쓰며 얻는 것이 의구심뿐이라면 나는 더 이상 작가 하기 싫어요. 그러나 나는 이 생각마저 문장으로 직조하는 존재. 나를 괴롭히는 문장 앞으로 다가가 문장의 양 끝을 움켜쥔다. 녹슨 단어가 손에 찰과상을 입히고 손가락은 핏기에 젖어 무감각해진다. 주어와 서술어를 붙잡고 문장을 내리친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부서진 문장은 사라지지 않고 파편을 남긴다. 때로는 문장보다 단어 하나가 심장을 더욱 깊게 파고든다. 내가 문장을 이어가지 못하고 끝내 분쇄하여 단어로 조각조각 흩어져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누가 그런 것을 문학이라 불러줄까. 부서진 나의 언어로는 더 이상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문장을 내리친다면 글을 쓸 때 내 마음이 아팠던 이유가 되어줄까. 부서진 문장을 짊어지고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경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완전한 문장을 가지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데? 나는 문장을 만드는 것만큼 문장을 부수는 데 익숙한 사람. 조각난 단어들이 잠들어있는 마음속을 헤집으며 손에 잡히는 어휘를 집어 든다. 나의 심장에서 나온 단어는 유리 파편과도 같아 조심해서 만지지 않으면 상처가 난다. 그러나 나는 어떤 어휘도 부드럽게 다룰 마음이 없고, 피 묻은 손으로 경에게 깨진 단어를 던진다. ‘뭐가 달라지나’, ‘잘 쓴다고’, ‘글 좀’. 나의 언어는 경의 목을 가르는 흉터를 남긴다. 경의 얼굴도 내 손과 같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투명했던 마음은 유리처럼 쉽게 깨져 어느덧 불투명한 단면을 수없이 생성해 내고. 아껴 읽던 옛 시집이 끈적한 콜라병과 함께 분리수거장에서 발견될 때 산산이 부서지던 순수한 열정은. 쓰레기 더미에서 낡은 시집을 끄집어내고 함께 탈출한 콜라병을 발로 걷어찬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기억이 구른다. 그날 이후로 경은 콜라를 마시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사이다를 건넸다. 그는 나를 피하며 내가 주는 무엇도 마시지 않
작성일 2025-10-04 작성자 아기호랑이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76상세보기 -
감성&비평 같은 캐치볼에서 다른 궤적 만들기월장원 선정
가끔씩 시를 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제목이 정말 누구와도 겹치지 않을까? 며칠 전 그 궁금증을 타파할 수 있었다. 그때 난 안희연 시인의 과 황인찬 시인의 를 읽고 있었다. 각 시집에서 이라는 제목의 시가 각각 있었다.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다르게 쓰여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말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세계가 생기고 구축하고 그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오로지 자신이 되니까. 평소 시를 읽거나 쓰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만 최근 들어 ‘시란 뭘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 시들은 그런 생각을 조금이나마 잊히게 해줬다. 시를 잘 모르거나 조금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많고 많은 시 중에 이 시들을 고른 이유.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어 이런 흥미를 발견하고 또 같은 제목으로 쓰여 다른 내용인 시를 각각 분석해보면 어떨까?라고 느낀 종착점. 평소 캐치볼하면 ‘주고 받는다’, ‘손에 꽉 잡힌다’라는 특징이 떠오른다. 과연 이 시도 그런 내용만 가득할까?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또한,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건 각 시인의 시를 분석하고 이들의 시 세계와 마인드를 엮어 나타내기. 자, 이제 한 번 캐치볼을 던져보자! 캐치볼 / 안희연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불타는 공이었다 되돌려 보내려면 마음의 출처를 알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투수는 보이지 않고 언제부터 내 손엔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을까 벗을 수 없어 몸이 되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알 수 없겠지, 이 모든 순서와 이유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나에게 다정해지려는 노력을 멈춘 적 없었음에도 언제나 폐허가 되어야만 거기 집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왔을 것이다 불행을 막기 위해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뭐든 미리 불태우려고 내가 받으며 노는 시간 그래도 가끔은 지평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 불타는 공이 도착했다는 것은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다 -> 이 시는 화자가 예고없이 날아든 공을 받는 상황이다. 처음엔 공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더 커보인다. 전개될수록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다시 날아오는 것에 대한 준비를 마친다. 캐치볼은 순식간에 날아오는 특성이 있다. 단순히 불타는 공은 공 그자체가 아닌 예고 없이 우리에게 오는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 모두 그런 경험 한 번 즈음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기력해진 날, ‘인생노잼시기’, 우산이 없는데 소나기가 내림 etc. 이런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다. 시인을 화자가 대신해 이 시로 알려주고 싶은 건 ‘고난과 시련에 대한 의지하는 법’이다. 처음엔 마음의 출처도 몰랐지만 나중엔 또 다른 불행을 일부러 부르고, 고독을 이해하게
작성일 2025-09-28 작성자 yerbi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75상세보기 -
시 뉘앙스월장원 선정
호수의 뉘앙스와 바다의 뉘앙스를 생각한다 - 강에 사는 물고기는 정말 아름다울 것 같지. 강하고, 강하고, 물가 가까이를 걷다 보면 펜스 너머 지나가는 자동차와 둥글고 단단한 몸체에 기대어 비스듬히 질주하는 햇빛이 있었고 모자를 쓴 남자의 이마, 꼭 잡은 우리의 손등 그림처럼 흰 선이 그어졌어 얇고 긴 다리를 박고 서 있다가 몸을 비틀며 날아가는 흰 새는 모서리같은 면이 있지 강과 한몸인 것처럼, 큰 수초의 그림자인 것처럼, 오랫동안 서 있다가 다가오는 물고기 중 한 마리를 낚아챘어 나는 그 안에서 깊이를 느끼고 절반만 꾼 꿈속처럼 영원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 우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아닌 것처럼 한 줄기로 밀고 가는 빗금은 없는 것만 못했어 나는 형의 손을 맞잡았다가, 다시 놓았다가 불안하게 반복하면서 거리를 계속 좁히고 어제 본 꿈속에서는 강가를 찾았지 커다란 거울을 들고 가느라 눈이 부셨어 기울어지는 햇빛의 기세는 엄청났고 돌아온 흰 새는 멀뚱히 그것을 쳐다봤지 나는 거울을 결국 던져버리고 진흙으로 뛰어들며 흰 새를 껴안았어 마침내 작아지는 꿈의 환각들 아무리 때려도 날지 않는 새
작성일 2025-09-21 작성자 방백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834상세보기 -
시 어제는 너무 많이 울어버려서 진화했지!월장원 선정
구석기인들이 나보다 덜 울었으면 강인한 심장을 갖춰야지 그제서야 쥐여지는 인류 진화의 성공 티켓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는 내게 너의 손녀는 좋은 세상에서 살길 바란다고 얘기하며 힘이 다 빠진 팔로 꽉 안고 울었다 할머니 또 울어? 그녀는 너무 많이 우는 사람 체내에 남은 수분을 전부 빼내야 끝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할머니는 일종의 돌연변이라 그래 이틀에 한 번꼴로 울지 않으면 200살까지 건강하게 사시는 바람에 인류의 퇴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퇴화? 다섯 살의 나는 너무 어려서 그런 말 잘 몰랐지만 말이란 어쩐지 느껴지는 것 다섯 살의 나는 느낌이 좋았다 무당 해야 될 정도로 그래서 너는 뭐하고 사니 기어코 무당이 됐어? 유치원 동창 고고학자 D가 갑작스레 걸어온 통화 과거에서는 사실만을 쫓으면서 미래는 한 번 점쳐보겠다는 그녀 공과 사는 참으로 철저하지 어떻게 돼먹은 고고학자가 구석기인들이 나보다 덜 울었으면 D의 구석기 유물들의 눈물 자국 분포 연구 놀랍게도 구석기인들은 우리와 비슷하게 운다 교수에게 깨졌겠지 논문을 쓰는 내내 일종의 돌연변이 D 교수에게 욕 들어먹고 울다가 사우나에 가서 땀이며 스트레스며 쫙 빼내는 그녀는 체내에 남길 수분 없이 천천히 쪼그라들다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겠지 내게는 보인다 그런 미래 나의 할머니가 없고 D가 있는
작성일 2025-09-17 작성자 dlwjddus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42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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