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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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비평 하나의 얼굴과 다섯 개의 이름 (드라마『레이디 두아』 비평문) 월장원 선정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레이디 두아』의 주인공은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될 수 없는 인물이다. 수차례의 신분 세탁을 거치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는 매 순간 다른 이름, 다른 나이로 존재했고, 그 이름들은 단순한 가명이 아니라 주인공의 각 시기의 생존 방식이었다. 따라서 본 비평에서는 인물을 하나의 통합된 호칭으로 부르기보다, 그녀가 당시 사용하던 이름으로 지칭할 것이다. 이는 정체성이 끊임없이 변형되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이다. 『레이디 두아』의 중심에는 사라 킴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녀를 처음부터 하나의 명확한 인물로 제시하지 않는다. 사라 킴은 서로 다른 이름과 나이, 신분을 거치며 끊임없이 자신을 바꿔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였고, 또 다른 이에게는 가해자였으며, 어떤 기억 속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남아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관객은 하나의 완성된 인물을 만나는 대신, 타인의 기억 속에 흩어진 조각들을 통해 서서히 사라 킴이라는 존재를 조립해나가게 된다. 『레이디 두아』는 일반적인 드라마가 따르는 연대기적 서사 나열 방식이 아닌 강한 몰입감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파편적 서사 구성 방식의 작품이다. 드라마의 전개 방식은 이렇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형사 무경이 그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다니고, 그들 각자가 기억하는 과거의 기억들이 뒤섞이며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관객은 인물의 삶을 순서대로 이해하는 대신 단절된 기억들을 추적한다.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연결되지 않은 채 제시되다 보니 관객은 이러한 드라마의 구조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건의 맥락이 잡히기 전에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시간대가 계속해서 밀려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혼란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이다. 여러 이름과 신분을 거치며 살아온 사라 킴의 인생은 애초에 하나의 직선적인 시간으로 정리될 수 없는 것이고, 그녀의 기억 역시 단절되고 왜곡된 형태로 남아 있다. 드라마는 그녀 삶의 파편성을 설명하는 대신 구조 안으로 그대로 끌어들였다. 그때 관객은 형사와 동일한 위치에 놓여 제한된 정보만으로 인물을 판단하게 되고, 이후 밝혀지는 과거를 통해 자신의 이해가 끊임없이 수정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 그것이 이 드라마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때 형사는 사건의 진실을 즉각 밝혀내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통해 서사를 정리하고, 서로 다른 기억들을 하나의 맥락 속에 놓이게 만든다. 형사의 시선을 따라가는 과정은 곧 관객이 인물을 배워가는 과정과 겹쳐지며 드라마는 설명 대신 이해의 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이처럼 『레이디 두아』는 하나의 인물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이름과 삶을 통해 분열된 존재로 살아간다. 동일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 인물은, 이름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관계와 서사 속으로 편입되며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특히 신혜선이 연기한 인
작성일 2026-04-29 작성자 시유레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85상세보기 -
시 행간월장원 선정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어, 누군가가 말한다. 당신이 그 말을 듣고 있다. 떨어지고 있어, 떨어지고 있다. 당신은 길을 걸으며, 그 말을 곱씹는다. 떨어지다는 탱탱볼이 문방구 뽑기 기계의 사면을 따라 둔탁하게 튕기는 모습이 아니다. 떨어지다는 빗방울이 가속도를 더해 가며 낙하하다가 결국 터지는 모습이 아니다. 나뭇잎은 벽돌처럼 투박하게 땅을 만나지 않는다. 꽝ㅡ 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없다. 아래로 떨어진다. 누군가는 나뭇잎이 듣는다, 고 말한다. 빗방울이 듣듯이. 살점처럼 떨어지는 수도꼭지의 마지막 물방울은 나뭇잎과 조금도 닮은 게 없는데도요. 집요하게 굴면 큰 차이가 보인다고 당신은 느끼지만 말하지 않는다. 나도 침묵한다. 나뭇잎은 사방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계절은 봄이다. 동그란 호수를 따라 난 둥그런 산책로를 걷고 있다. 공원의 빨간 트랙에는 비눗방울을 부는 어린 아이들이 있다. 여자애가 머리를 땋고 있다. 앞머리가 아주 적고 얇아서 이마가 비친다. 비친다? 당신은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비친다는 오래 전 어느 순간이 아니다. 세로로 박음질된 하얀 여름 이불을 처음으로 농에서 꺼내 세탁하고, 아파트 난간 너머로 빗겨 털었을 때 이불에 여과되고 있던 반투명한 크림색이 아니다. 난간이 빛을 막아서서 횡단보도를 만들고 있었는데. 비친다... 바람이 불었고. 빨래 냄새가 났다. 둥그런 비눗방울을 만진다면 터져 버릴 것 같았지. 그러나 어디로든 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친다? 당신은 다시 묻는다. 이번에는 당신이 고개를 젓는다. 아이의 이마는 번진다. 해가 지고 있다. 당신이 걷고 있다. 그래서 나도 걷고 있다. 나뭇잎이 바닥에 있다. 해는 지고 있다.
작성일 2026-04-27 작성자 강완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371상세보기 -
시 미래예상도-일기월장원 선정
흐르고 있어. 움직이지 않았는데. 오늘도. 강은 강으로 흐르고 있다. 골목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물줄기 소리와 함께 어젯밤 우리 집은 시끄러웠어. 우리밖에 없는데. 우리 밖에 나왔는데. 오늘도. 조명 속 빛은 깨진 채로 흐르기만 하겠지. 아무것도 터지지도, 뭐에도 찔리지도 않았는데. 오늘이 되면 어제가 아파진다. 침대는 물에 젖어 있다 배수관 위에 아침이 왔는데도 우리와 함께 우리에 기대며 거리를 걸었다. 아침은 새벽과 함께 쉽게 다가왔다. 자기만 했는데 걷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흘러갔다 밤새 밖을 떠돌던 골목에 사람들이 자취방으로 들어가고 원룸에서 숙취를 깨는 동안 강 소리는 강으로 들려온다. 그림이 그려진다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들 깨져있고 조용한 강의 파편들 집 안 가구들은 멀쩡히 깨져간다 매일 돌아가면서 매트릭스까지 휩쓸고 간 우리의 이야기 내일이 되면 또 젖겠지 두 개일 때 완성되는 짝수 두 손이 오늘도 서로를 쓰다듬으며 그려본다 매일 아침을 종이 위에 똑같이 적어본다 오늘도 시간은 강하게 흘렀다 우리 몸을 통과하면서 가만히 녹아간다
작성일 2026-04-24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72상세보기 -
수필 낯섦으로부터 깨달은 것들월장원 선정
https://youtu.be/n-80q6pItQ8?si=jykgu2XL3fMBiMPL *노래를 들으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꼭 잘 지내고 파이팅 할 수 있을 거야 절대로 포기하지 마 현재보단 미래에 어울리는 말들의 나열. 무엇을 얻으려고 이런 표현을 주구장창 사용한 걸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다짐하던 새해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거 같기도. ‘합격을 하고 싶었던 거지. 대학에 가고 싶던 건 아니야.’ 낯선 곳에서 각자 새로운 삶을 마주하는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합격이란 겉으론 꽤나 달콤한 보상이자,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추상적인 것. 합격만 하면, 진짜 모든 걸 가져가도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우리. 12년간 축적해온 희망이 우리를 절망의 굴레로 밀어버리는 줄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란 질문에 섣불리 답하진 못하겠다. 지금 이 기억을 잃은 채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니까. 입학 후엔, 전공 선택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현재, 나는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나름 학과에 대한 애정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평소, 언어에 대한 흥미를 느낀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종일 영어로 범벅된 시간표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울렁거림이 올라왔다. 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같은 언어의 테두리 안에 있어도 각자 품고 있는 내면성의 차이를 깊게 파악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대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학과부터 미스였지만, 이 선택 덕분에 얻은 것들도 많다. 첫 번째, 언어의 속성보단 그 언어로 이루어진 미디어나 문학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 두 번째, 감상으로 머무르기보다는 그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기회와 직접 문학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 이런 자아성찰 및 사색을 하며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했으면 좋았을련만, 대학 생활 초반에는 나이만 어른이지, 원하는 장난감을 안 사주면 떼쓰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했다. 3월에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새로운 환경이 버거워, 계단에서 눈물을 훔치거나, 그에 대한 열등감과 불만을 주변 이들에게 표현하는 행위가 잦았다. 요즘은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반수에 대한 용기와 이에 대한 성취를 위해 능동적인 삶을 시작했다. 스스로가 꽤나 어른의 요건을 갖추어 나간다고 느꼈다. 본격적으로 반수를 다짐한 후엔, 내 시간표에는 학교에서 짜준 전공 3개와 필수 교양 2개가 전부였다. 듣는 강의 중에선 필수 교양인 ‘사고와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은 수업이다. 교수님은 시를 매우 사랑하시는 분이다. 매 시간, 김춘수의 꽃을 읊으며 학생들에게 사랑과 애정 표현의 중요성을 알려주신다. 며칠 전, 첫 과제를 내주셨다. 과제가 마음에 들었고 드디어 나의 관심사를 대학에서 배울 수 있어 기뻤다. 내가 살아있음을 몸소 느끼게 해준 과제는 바로 ’포토에세이 쓰기‘였다. 에세이란
작성일 2026-04-21 작성자 yerbi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48상세보기 -
소설 여섯 번째 손가락월장원 선정
<안녕, 생쥐들> 먼 옛날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살아 있을 적의 이야기. 아틀라스는 그들의 손에 창조됐다. 그의 역할은 인간을 존속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었다만, 인간은 그가 손을 쓸 새도 없이 죽어버렸다. 꽥. 아틀라스는 어머니이자 신을 잃었고 목적을 잃었다. 유적처럼 남은 그는 재건을 위해 작동했다. 멸종을 되돌리고자.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아틀라스에 손에 창조됐다. 인류의 손자와도 같았다. 아틀라스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인간에 대해서. 아이들은 새 인간으로서 살아갈 존재였다. 아틀라스는 인간의 긍지를 심어주고 휘황찬란했던 역사를 알려주었다. 인간은 먼 전설 속의 존재였다. 어떻게 우리가 저런 업적의 종족을 이을 수 있는가, 의아했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면 이렇게 멍청해 보일 수가 없는데. 내겐 두 명의 선생이 있었다. 하나는 아틀라스이고, 다른 하나는 제이란 이름의 여자였다. 정확한 명칭은 J97이다만 다들 편의상 제이라 불렀다. 이곳에 제이는 한 명 뿐이기도 하고. 그녀는 아이들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존재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아는 것이 확연하게 많았으며 사람도 쾌활해서 많은 이들과 친했다. 나처럼 친구가 없는 아이에게도 잘 다가와 말을 걸어주곤 했다. 고마운 사람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녀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줄곧 혼자였으니까. 돌아다니다보면 혼자인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아이들이 온 것도 벌써 몇 달 전인만큼 많은 무리가 생기고 각자의 위치가 정해졌다. 혼자인 이들은 늘 혼자였다. 타인으로부터 의도적인 기피를 받는 이들. 아틀라스가 별 재재를 가하지 않는 것은 그것 또한 인간의 물성인 탓일까. 내가 혼자이던 시절에 자주 생각했었다. 소외의 이유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무의미하고도 투명한 것이었다. 혼자인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못생겼던 것이다. 재밌게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다들 못생긴 얼굴과 잘생긴 얼굴을 분간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른 위치까지도. 내가 그나마 몇몇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제이의 덕이었다. 그녀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어 함께 대화하며 근처의 아이들과도 자연스레 말을 섞었다. 내가 많이 못생긴 편은 아니긴 한 덕분이기도 했다. 혼자인 아이들 사이에도 투명한 벽이 있기 마련이다. 제이는 이후로 자주 내게 다가왔다. 다른 아이들과도 그랬지만 내게로 오는 빈도가 특히 높았다. 다른 아이들도 어떻게 그리 친하냐 물어볼 만큼. 난 그에 답해줄 요량이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다 보면 그녀가 다가와 말을 쏟아낸 후 돌아가 버리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오후 6시에 끝나는 일과 사이사이에, 그리고 일과가 모두 끝난 여가시간에 자주 제이는 얼굴을 비쳤다. 그녀는 수면욕이 적은지 대부분이 잠든 밤에 깨어 있는 상태로 야외풀밭에 앉아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구석이었다. 낮의 활달한 표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사라진 진중한 표정으로, 그녀는 울타리를 바라봤다. 아이들을 감싸 안은 아틀라스의 울타리. 2미터가
작성일 2026-04-16 작성자 구포대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79상세보기 -
시 광장월장원 선정
우리 동네에는 광장이 있다 광장에는 나무가 여섯 그루 있고 모두 하나같이 계절마다 각기 다른 색으로 시간을 알린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 광장에는 분명 나무가 있는데 광장을 떠올리면 나무는 사라진다 너 저 나무에 올라갈 수 있어? 아이들 몇이 킥보드를 타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형은 4학년 때 저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광장의 나무는 각기 다른 모양새다 어떤 나무는 마치 계단처럼 생겨 오르기 편한 모양새를 가졌으며 그 옆 나무는 너무 앙상한 가지를 지닌 탓에 차마 두려워 밟지 못할 것처럼 생겼다 있잖아, 우리 형은 저 나무 꼭대기에서 손 안 잡고 서있을 수 있어! 거짓말 치지 마! 너네 형이 했다는 증거 있어? 광장의 나무는 푸르고 또 푸르고 또다시 푸르고 또 푸르다 광장을 벗어나 조금 전 일을 환기한다 나무는 건물이 되고 푸르고 또 푸르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광장에는 왜 나무가 여섯 그루 있는지 왜 나무는 각기 다른 모양새를 지니는지 왜 그 애의 형은 나무에 올라갈 수 있었는지 왜 손을 잡지 않아도 나무에서 추락하지 않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광장에서 나는 가장 나약한 존재가 되곤 한다 고개를 돌려 광장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킥보드를 발판 삼아 나무에 오른다 계단을 오른다 푸른색이 거무죽죽한 회색으로 보이는 건 왜인지 우리는 난간이 있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광장을 떠올린다 광장에는 나무가 있던가
작성일 2026-03-22 작성자 양양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17상세보기 -
소설 흰들레월장원 선정1“저기 진주가 있어.”선희는 추상적인 말도 간단하게 했다. 희고 둥글다 해서 모두 진주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은혜의 논리도 소용없었다. “그럼, 눈송이라고 하자.”그렇게 그들은 오지도 않은 겨울을 맞았다. 새하얀 민들레밭을 지나 구 형상의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청결을 위해 꽃씨를 날리지 않는 노란 민들레만 들여놓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민들레 꽃씨를 보고 싶었던 은혜는 선희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에 진주 목걸이가 나부끼자, 선희는 목에 손을 짚었다.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은 은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다. 선희는 바람에 추위를 타는지 소매를 포갰다. 은혜가 그녀를 안아 주었다. 꽃씨를 흩뿌리고 초라해진 노란 꽃대를 흰민들레가 감싸는 것처럼 선희도 은혜를 안았다. 몸의 중심을 잃을 정도로 따스하게. 심장이 흔들렸다. 선희는 언젠가 함박눈을 따뜻한 존재로 조명했다. 이를 부정하는 은혜에게 그녀가 말했다. “온도는 상대적인 거야.”그녀는 함박눈이 온기를 품는다면, 누군가 그것을 믿는다면, 콘크리트 건축물 역시 무언가를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끈한 표면의 카페 외벽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손을 가져다 대니 먼저 느껴지는 것은 온기보다는 빛의 촉감. 산란하는 것은 적어도 제 열기에 녹을 일은 없었다. 둥근 경계 안에 얼마의 민들레가 피어 있고, 밖에서는 그보다 많은 꽃씨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두 형상은 언뜻 상이한 것 같다가도 때로는 사뭇 닮아 보였다.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기지 않아 산책을 마쳐야 했다. 앞서 걷던 은혜가 주저앉은 선희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선희는 꽃씨를 모두 잃고 이파리마저 내비친 민들레밭을 응시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그녀의 머릿결을 타고 흘러 콧잔등에 맺혔다. 물에 젖어 뭉쳐버린 머리카락처럼 어딘가 비어 있는 공간에는 무상감이 깃들어 있었다. 은혜는 언젠가 저 자리에 다른 꽃씨들이 날아들 것이라고 선희를 위로했다. 그들은 비에 젖어 수척해진 마음을 차로 녹였다. 은혜의 노란 민들레차와 선희의 흰 민들레차는 색감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은혜가 보기에 선희의 찻잔은 생기가 없었다. 노란 찻물이 깊게 우러나는 동안 모든 기력을 소진한 흰 꽃을 보는 듯했다. 주변을 물들이며 스스로 옅어지는 소멸의 과정이었다. 은혜는 화병에 담긴 꽃이 함박눈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녹지 않는 눈에 대해 말했다. “그건 눈이 아니야.”그러면 뭐냐는 은혜의 물음에 선희는 작은 목소리로, “흰들레.”했다. 2고등학생으로서 첫눈이 온 날, 교실에는 은혜뿐이었다. 보건실에 갔다는 선희가 돌아오지 않았다. 은혜는 걱정스레 선희를 기다리다 책상에 놓인 편지를 발견했다. 너무 늦은 것 같아. 선희의 목소리로 시작한 편지는 어느덧 그녀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처음 보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흰들레, 그것은 선희의 첫 소설이었다. 아이가 홀로 살던 섬에는 민들레가 우후죽순 피어있었다. 민들레를 불며 놀던 아이는 병에 걸린 이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작성일 2026-03-22 작성자 아기호랑이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11상세보기 -
시 귀머거리월장원 선정
형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형은 그래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형에게, 강아지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6개월의 강아지는 난잡한 작별처럼 부산스럽다. 이별은 깔끔한 개울가처럼 거북하다. 사람의 대화는 불확실한 수식에 언어라는 숫자를 욱여넣는 것만 같다. 늙은 개의 표정은 낡은 요철처럼 마모되어 있다. 형은 다시 말하게 됐다. 형이 말하길 강아지는 자라처럼 짖었다고 했다. 우리는 물가에 앉아 강아지가 뛰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개는 옥수수를 녹인 전분처럼 질척거린다. 형의 얼굴은 물줄기처럼 주름졌다.
작성일 2026-03-17 작성자 김케이크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464상세보기 -
수필 왕할아버지월장원 선정
어릴 때 엄마가 보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우연히 눈에 담게 된 적이 있었다. 밝은 머리에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배우가 우는 장면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우는거야?’ 하고 물었었다. 엄마가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또 한번 ‘어른도 울어?’라고 물었었다. 엄마는 '그럼 당연하지'라며 다시 드라마에 몰입했다. 배우의 눈에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러움이 가득 담긴 검은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는 어른들도 우는 대신 검은 눈물이 나는구나 생각했다. 사실 반은 맞는 말이었다. 그 눈물이 왜 검은지 고작 아이가 해아리진 못할 테니까.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자란 나는 아마도 고학년쯤 되었을 터였다. 추석을 맞아 찾아간 할머니 집엔 놀거리는 없어도 밖이 뻥 뚫려있어 시원하게 소리를 원없이 지를 수 있었다. 년년생 터울인 동생과 시골 진돗개 복돌이까지 합세해 며칠동안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설이었다. 그보다 더 어릴 땐 할머니 집에서 우리 온가족이 살았기에 명절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주 오는 이 영동집은 나도 얼굴 모를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을 몇 알 정도였다. 명절의 마지막 날. 익숙한 절차대로 시작이었다. 집에 가기 전에 차로 5분 거리에 사는 왕할아버지께 인사하러 가는 코스만 끝나면, 다시 집이었다. 다시 학교를 가야해서 아쉬운 마음, 차로 한참을 또 달려야 해서 답답한 마음,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 등이 복잡했다. 노래 한곡을 마음 속으로 완곡할 때 즈음 차는 두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흔살이 훌쩍 넘으신 왕할아버지는 왕년에 열정적인 분이셨다고는 하지만, 우리 앞에서는 화를 내시거나 언성을 높히신적 없는 자상한 분이셨다. 사탕을 좋아하시기에 몇개 골라갔던 기억이 있는 작은 왕할아버지의 거처는 둘 이상이 살기에는 어려운 좁고 말린 곶감 냄새가 나는 단칸방이었다. 비록 낡은 집이었지만, 할머니집에서 살았을 때의 추억이 하나 있았다. 저학년 때 산책겸 홀로 왕할아버지네를 찾아 걸어갔던 경험. 혼자 왔던 나를 매우 기뻐하시며 반겨주셨던 왕할아버지는 두말 않고 오랜지 두개를 꺼내오셨다. 조금은 미지근하고 단 맛이 많진 않았지만 할아버지와의 단 둘뿐인 추억은 단순하고도 의외로 가장 오랜 잔상이 되어 가장 큰 기억으로 그 장소감에 스며들었다. 아빠가 작은 철문을 두드리며 할아버지를 찾았고, 왠일이신지 할아버지는 바닥에 앉아서 눈빛으로만 우릴 맞하시며 앉아계셨다. 틀니 때문에, 방언 때문에 할아버지가 하는 말은 뉘양스는 짐작이 갔으나 정확한 문장구성은 항상 알아듣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이상했었다. 그냥 웅얼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아서 그때는 많이 충격이었다. 우리가 나가자 따라오시던 할아버지는 신발도 제대로 못 신으시고 바지 지퍼도 올리지 않으신 채 엉뚱한 곳을 쳐다보셨다. 우리는 차 안으로 도로 밀어 넣어졌고. 엄마 아빠가 그렇게 당황한 것도, 다시 집으로 올라가는데 차질이 생긴것도 처음이었다. 차창 너머에서도 알 수 있었다.
작성일 2026-03-17 작성자 연꽃담비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36상세보기 -
감상&비평 우리를 통과하는 삶-손미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를 읽고월장원 선정
일기를 쓰는 것과 수필을 쓰는 것 그리고 그 외 서정과 산문을 쓰는 일은 많이 다르다. 일기는 말 그대로 저자만이 글의 유일한 독자라는 점에서, 정제되지 않고 날것의 문장들이 나와도 상관없으며 자유롭게 쓰이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비슷한 수필 역시 정의대로 라면, 자유롭게 쓴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글을 수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필이란 독자가 글쓴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도 있다는 점에서 글에 대한 정제와 객관화가 필요한 문학 장르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항상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이나 자기 자신을 끝까지 응시하고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글로 써내야 하지만, 이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여 수필을 넘어 장르별 규격이나 필요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 타 문학 장르에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많은 작가가 자신에 경험을 가지고 소설, 수필, 시와 같은 문학 장르를 개척해 나간다. 이런 부분은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나의 문장 청소년 문학상 수상 작품들은 날 담으려고 했던, 공통점이 있다. 2024년 5월 시부분 월장원이자 20회 문장청소년 문학상 시부분 우수상인 와 2025년 12월 소설 부분 월장원이자 21회 문장청소년 문학상 소설 부분 장려상인 역시 출발점은 내 일상과 무뎌지지 않은 결핍들이 스스로 변주하면서 나온 응어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내 글을 읽는 글틴의 전현직 멘토들과 더불어 문장청소년 문학상 심사위원들도 똑같이 느꼈다. 21회 심사평을 맡은 양선형 소설가와 20회 심사평을 맡은 김이듬 시인의 심사평은 다음과 같았다. “무빙워크를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함께 투시하려는 긍정적인 의지와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제20회 문장청소년 문학상 시부분 심사위원 김이듬 심사평 中 “자신을 위로하는 ‘스노볼’이라는 은유가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픔과 상처와 정직하게 대면하려는 인물의 태도가 미더웠고, 세심하게 문장을 닦아내려는 노력 또한 소설의 큰 장점이었습니다”-제21회 문장청소년 문학상 소설 부분 심사위원 양선형 소설가 심사평 中 두 작품의 심사평에서 공통으로 언급된 부분은 ‘자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세는 상처와 결핍이 만들어낸 응어리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고 바라봤는지 이야기한다. 나는 이 두 글을 쓸 때만큼은 어쩌면, 살아가는 순간마다 기침과 자퇴했던, 나 자신에게 여러 번 눈물을 보이기도, 분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루만져진 자세가 그저 마주였다. 그 바라봄으로 쓴 작품은 늘 외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자인 나 자신만 알고, 나의 세계에서 해소되지 못한 응어리 같아서, 그저 일기로 보일 때가 그러지 않을 때보다 많다. 이처럼 자신을 마주하면, 객관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문학으로 표현하는 일과 그 문학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전파되는 갓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는 상처가
작성일 2026-03-09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67상세보기 -
감상&비평 여성에게 주어진 사랑, 그 이후의 삶 : 이디스 워튼의 [여름]을 읽고월장원 선정로맨스를 다룬 이디스 워튼의 소설, [여름]에 대한 가장 역사적(또한 현재까지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다. 여자 주인공인 채리티가 자신의 성적 욕망과 사랑을 마주하고 점점 성숙해지는 “성장 소설”. 1917년 미국, 아직 여성 참정권도 허용되지 않던 시기. 여성의 성적 욕망과 사랑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이 소설은 파격적이었고, “인습과 전통에 맞서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는 여성을 묘사하며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미묘한 불쾌함을 느꼈다. 채리티는 자신의 욕망을 직면했으나, 그 끝을 보지 못했다. 현실의 벽에 욕망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채리티는 결국 로열(이하 **후견인)과의 결혼에 만족해야 했다. 100년도 전에 발간된 소설이니, 물론 지금의 생각만큼 파격적인 전개는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현대에 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뒤표지는 이 결말을 “성장”이라고 소개한다. ‘채리티’는 기독교적 의미로 사랑을 상징한다. 이 소설을 읽은 뒤, 난 채리티가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주변 인물들과 상황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하여 후견인의 사랑을 거절했으며, 하니와 함께 정열적인 ’사랑‘을 했다. 몸과 마음이 취약해져 후견인과의 반강제적인 결혼을 진행하기 전까지는, 채리티가 늘 ‘자신의 마음’과 ‘선택’을 계기로 하여 움직였으니, 남자들의 사랑에만 휘둘리던 당대의 수동적인 여성상을 탈피한 성격은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여름]은 결말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한 소설이다. 채리티는 본인의 원래 꿈이었던 자립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후에서야, 후견인과 결혼하게 된다. 혼약의 진행마저도, 신부에게 주어지는 강제성을 묵인하는 목사와, 당사자인 후견인/채리티 단 셋뿐인 공간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몸과 정신이 취약해진 채리티가 제대로 거부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해치우듯 벌어진다. 자신이 결혼했고, 이제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한 뒤에야 후견인에게 안정을 느낀 채 끝나는 결말을 우리가 “성장”한 것이라고 읽을 수 있을까? 난 아닌 것 같다. 혹자는 후견인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채리티가 성숙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포기와 체념이었고, 그토록 갈망하던 자립이 사라진 최후의 선택지였으며, 남성의 보호 아래서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부장제 구조에 순응한 결말이다. 여성 참정권조차 없었을 당시에는, 단순히 여성의 성적 욕망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당당히 드러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겠지만, 이 소설을 현재의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결국 가부장제 안에서 사랑과 성적 욕망을 절제 당하고,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 여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여성에게 “성장”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데에 있어 나는 잘못됨을 느꼈다. 만약
작성일 2026-02-28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03상세보기 -
소설 황혼(퇴고)월장원 선정
사진을 찍는다는 건 단순히 어떤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의 감정과 향기, 이를테면 푹푹 내리쬐는 햇빛의 쓰린 온기같이, 살면서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그 빛을 작은 프레임에 맞춰 조각하는 일이다. 우리는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며 액자 속 세상을 때로는 연민하고 때로는 부러워하며 회상한다. 비록 다신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그러니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일종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세상을.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흔적 ( 2014 - 2024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나는 전시장 앞에 세워진 팻말을 흘깃 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평일 오전인 탓인지 그곳은 아직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있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작가의 사진전이라고 했다. 이름이 애쉬라고 했던가. 특이하게도 그는 본명이 아닌 가명을 쓰고 있었다. 때문에 처음부터 그를 인터뷰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대표작과 가명을 본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무릇 어떠한 신념이란 아무리 숨기려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전시장에서는 뉴욕이라는 타이틀과 상반되는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으나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울려댈 정도였다.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 입구 쪽에 붙여진 포스터 앞에 멈춰 섰다. 젊음을 나타내는 수수한 미소를 띤, 그러나 얇은 테 안경 뒤에 숨겨진 가라앉은 눈빛으로써 그의 나이를 약간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아래에 적힌 그의 소개란은 미리 확인했듯 텅 비어있었다. 적혀있는 건 오로지 Ash라는 단어뿐.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의 과거라던가 본명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마치 이전의 자신을 철저히 떨어트려 놓고 싶다는 듯, 혹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런 점이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첫 번째 작품의 배경은 도서관이었다. 사진 속 그곳은 소리하나 없이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초점이 잡히지 않아 명확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오직 비스듬히 스며든 햇빛만이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채였다. 다음으로 본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전보다 두꺼운 프레임에 담겨있었는데, 플래시를 터트려 빛이 여러 갈래로 번진 사진이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주로 어딘가 엇나간 듯 흔들리고 비틀려 있었다. 산란된 형형색색의 빛과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과 같이. 그러나 그것이 혼란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되려 가만히 멈춘 평범한 일상이 주를 이뤘고, 이따금 자유로운 뉴욕의 순간을 보여줄 때면 프레임 속 세상은 조금도 흔들려 있지 않았다. 천천히 감상했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전시의 막바지였다. 이 전시장은 특이하게도 감상을 하고 나면 반드시 뒤를 돌아 나와야 하는 구조였다. 때문에 마지막 작품은 가장 안쪽, 넓게 트인 창문 옆에 홀로 걸려있었다. 작품의 이름은 여명.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었다. 그곳에는 막 떠오르는 햇빛을 등진 채 창문에 걸터앉아 있는 소년이 있었다
작성일 2026-02-11 작성자 서벽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518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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