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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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여름을 베어물며월장원 선정
가습기와 에어컨을 모두 끈 채로, 맞이하는 여름은 생각보다 더 덥고, 꿉꿉하다. 습기가 가득 찬 여름의 공기, 나무와 바람이 만약 신이라면, 지금, 이 날씨를 견디는 우리를 보며 신이 날 것 같다. 축축한 벽지와 눅눅한 얼굴과 몸, 그들이 원하는 게 인간의 벌이라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그 벌을 모두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후 그들을 만난데도 나는 떳떳하다.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 더 한 것들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대에서, 사람 한 명 한 명 더 깊은 곳으로 추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방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생각보다 차갑다. 여름인데, 이런 바람은 여름과 어울리지 않지만, 바람은 바람이다.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수능 대비 대신, 글만 쓰는 것도 결국 나지만, 책임은 언제나 두렵다. 그러니까, 노트북을 들고 재빨리 거실로 나가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은 휴대폰을 넘기고 있다. 이 쇼츠 하나만 더 보고 공부하는 거다. 그래, 딱 하나만 더 보고. 더 더워지기 전에 공부를 해야지 하면서도, 공부를 끝없이 밀어냈다. 손에 땀이 고이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앞 골목에서 집 쪽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현재 시각 14시다. 동생 희열의 하교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그때부터 기침이 나도 모르게 갈비뼈를 짓누르고 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거부 반응. 오늘도 하루의 대다수를 휴대폰에 다 썼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언제나 빨리 학교를 나간다. 그러면서도 매일 학교를 빠지고 싶다고 희열이는 이야기한다. 물론, 내가 학교를 쉬기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그러나 그에게도 지금 상황이 나쁘지마는 아닐 거다. 엄마, 아빠 출근해도 집에서 항상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그래도, 내가 미워 보일 수도 있을까. 아직 어리니까, 그런 상황은 일단 내버려두고 옷이나 껴 입자. 언제부터 녹아갔는지 모르는 벽지 위에 걸린 옷을 꺼내 입으며, 인간이면서 인간 다워 보이려고 했다. 그게 방과 후가 끝난 희열과 본인의 자식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자 안심이기에.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홀스를 입에 물고 흰색 마스크를 입가에 걸쳤다. 이제, 날 그저 학부모 같은 청소년으로 봐 줄 수 있겠지. 오늘도, 작년 여름처럼 습기가 창문을 적셨고, 도로에는 물웅덩이가 깊게 파여 있다. 인공적으로 다시 타임 루프 한 것도 아니면서. 감기기가 아닌 기침이 작년 초 학교를 다닐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나를 잡을 수 있는 타인은 없지만, 유일한 내가 나를 잡을 수 있는 것.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원조 고등학교에서 열공을 하고 있을 나를 지지한 친구들과 나를 고교에서 내 쫓은 친구와 선생님의 얼굴에 대하여 올해는 어떻게 지낼지 생각한다. 그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자체가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좋은 추억을 꺼내 되새김질
작성일 2025-12-23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747상세보기 -
감상&비평 문학과 영화가 나아가야 할 곳(포크너, 이창동, 하루키의 작품 중심으로)월장원 선정
1) 이번 글의 동기 및 목적 1958년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Barn Burning](헛간, 불태우다)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그리고 1983년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納屋を焼く](헛간을 태우다)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마지막으로 2018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개봉했다. 이 세 개의 작품은 같은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문화적으로, 형식적으로, 서사적으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첫 작품인 포크너가 담고 있는 주제, 무라카미 하루키가 담고 있는 주제, 이창동이 담고 있는 주제가 모두 다르며, 이 소설의 공통점인 ‘불태우는 행위’라는 것도 모두 다른 것에서 파생되고 있다. 이 세 가지 작품은 로컬라이제이션, 트랜스 미디어 등으로 그 효과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처음 ‘헛간을 태우다’라는 하나의 행위가 버닝이라는 거대한 서사까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이어짐의 효과를 탐구해 보고자 했다. [버닝]은 트랜스 미디어의 최종적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관객은 단 52만명이 그쳤다. 실제로 작품성을 크게 인정받았음에도 말이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버닝]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현지 분위기는 열광적이었다. 는 역대 최고 평점(3.8)을 주었고, 다른 매체들도 폭발적인 리뷰를 쏟아내며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중의 벽은 여전히 높다. 대중들은 여전히 오락적인 영화,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를 찾고 있다. 그것은 대중의 문제가 아니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현재도 그런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애당초 독립, 예술 영화는 특정한 매니아들이 주로 관람했다. 그러나 이젠 그 매니아들도 이젠 사라지고 있다. 작품성의 이유도 있겠지만, 극장이 적자로 인해서 독립, 예술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독립, 예술 영화 전용관이 줄어들수록 영화를 볼 기회를 잃고 있다. 이 글에서는 트랜스 미디어를 통한 분석, 더 나아가 영화계, 문학계의 수요가 하락하고 있는 2025년,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시 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지 탐구할 것이다. 2) 소설 줄거리 및 정보 2)-1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헛간, 불태우다] 윌리엄 포크너는 [Barn Burning]이라는 제목으로 1958년 단편작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미국 남부에 만연하던 대지주와 소작농의 계급 갈등을 다룬다. 주인공 사티의 아버지 애브너는 소작농인데, 늘 욱하는 성미를 참지 못하여 지주와 다투거나 송사에 휘말린다. 일말의 분노가 차오를 때마다 지주의 헛간(대규모 농장의 헛간은 저택만큼 크고, 값비싼 농기구와 수확물, 가축 등을 보관한다.)에 불을 지르는 애브너는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가부장에 짓눌린 가족들 역시 떠돌이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이렇듯 매사 무모하고 무자비하고 무법적으로 생활하는 아버지를 보며 아들 사티는 혼란(두려움과 수치심, 존경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마침내 결단을 내리게 된다. 아들 사티가 지주에게 아버지의 범죄를 예고해 주고, 도
작성일 2025-12-20 작성자 노스텔지아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41상세보기 -
수필 안녕, 어른이월장원 선정*주의: 본문에는 이물 표현이 있습니다. 식사하시면서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며칠 전,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만났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6개월 전이었지. 못 본 지 반년 동안 그와 나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는 2학년 1.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모두 마쳐 고3을 마주해 있고, 나는 검정고시와 수시 합격 그리고 수능을 치르는 등의 경험과 성취를 이루어 냈다. 그래, 우리 모두 올 한 해 수고했지. 또한 내년에도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온 힘을 다해 뒤척이겠지. 그런 뒤척임이 한 해 한 해 쌓이며, 우린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다 보니, 금세 열아홉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청소년이 유효한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일 년, 일 년 지날 때마다 몸은 매해 바뀌었다. 키와 몸무게가 늘기도 하지만, 어릴 때 좋아했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등 체질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작년에는 그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평소에 즐겨 먹던 얼큰한 찌개와 매콤한 닭발을 몇 입 먹지 않았는데, 먹은 뒤에 속이 끓거나, 변을 자주 보는 등의 행위가 심해졌고, 매운 음식을 거부하게 됐다. 그렇기에 옛날에 바라보지도 않았던, 사리곰탕과 튀김우동이 제일 좋아하는 라면으로 변했다. 계속 이러다가, 이들조차 맵다고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매운 것도 못 먹는 맵질이 어른이 되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음식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하지만, 매운 음식과 반대로 어릴 적 못 먹었던 비빔밥은 한 해가 지날수록 고추장, 다시 먹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지금 껏 비빔밥을 먹지 못한 이유는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트라우마. 평범했던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급식으로 비빔밥을 먹었던 그날 급식이 속에서 얹혀 기절했다. 나는 태권도에 들어가자마자 출입문에서 토를 내뱉고, 나도 모르게 쓰러져 버렸다. 일종의 침묵, 어쩌면 소란스러운 환경에서의 고요만이 내 몸을 짓눌렀다. 그런 짓누름에 눈은 점점 감겼다. 어둠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어둠을 참 무서워했는데, 그 당시에는 어둠이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휴식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어둠 속에서 쉬었을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구급 대원들이 있었고, 태권도 학원 원장이었던, 위층의 미술 선생님과 태권도 사범님 등 학원 관계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중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미술 선생님의 질문. "희찬아, 100까지 세어볼까?" 그녀의 질문에 몇 까지 세었을까? 한 사십까지는 말했던 것 같지만, 결국 100까지 세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모르겠어요." 사실, 내가 숫자 100까지 셀 수 있는지 궁금해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내가 다시 정신을 잃지 못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거겠지.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받은 뒤, 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태권도 사범님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러나, 이는 그 상황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이후, 각종 검사를 받았다. 뇌파와 CT 등 뇌에 문
작성일 2025-12-19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61상세보기 -
감상&비평 유령이 말해주는 삶의 이야기-권누리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 >을 읽고월장원 선정
*:본문에 들어가기 전, 싱어게인3 1호(이바다).25호(강성희) 듀엣곡인 최백호의 의 가사와 멜로디를 듣고 본문을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FArnw42Z2NA?si=KEO65YTtYfJuUtk_ ㅡ 책을 덮고, 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린 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맺지 않은 가지에 눈꽃 같은 얼음꽃을 피웠다. 또한 주변에 있는 학교 근처 무덤과 논밭을 이루는 토지 역시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얼어 있었다. 위 모습은 2025년 12월에 본 필자의 동네 풍경인 동시에, 겨울마다 봤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12월은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등 추위와 관련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시기가 다가오면, 몇몇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과 졸업식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12월이 지난 1월부터 우리는 한 살씩 더 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12월은 추운 겨울인 동시에 이별에 달이기도 하다. 함께 1년을 보냈던, 친구들과 교실에 이별을 고해야 하기에.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새로움을 맞이하는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되기에. 이처럼 12월은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이별에 달이다. 이러한 시간의 성격은 권누리 시인이 쓴 시집 속 유령 같은 화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떠난 이에 대한 깊은 슬픔과 명랑한 기대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러 인간일 수도 있는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는 시집의 첫 시편 에서부터, 마치 윤회를 기억하는 존재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ㅡ 죽지 마 명령하면 안 되니 어제는 피아노를 샀어 가끔 치려고 명랑하게 창문 너머 비행기가 밥그릇은 언제나 비어 있고 천장에 달라붙은 열기가 깔깔 웃으면 이 이상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구르기 위한 언덕을 갖고 싶어 처박힐 우물도 자랑 없이 칭찬도 없이 청소기 헤드로 빨려들어가는 정오 함께 있을까 조금만 더 울어보고 ㅡ 전문-12~13p Beginner 한국어 해석으로는 초심자라는 뜻이다. 이 제목처럼 위 시의 화자는 이별의 초심자처럼 묘사된다. 떠난 이, 특히 죽은 사람에게 "죽지 마"라는 말로 붙잡아 명령하고 싶지만, 화자는 결코 명령하지 못한다. 역으로 떠난 이에게 "안 되니"라고 물어본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어제 피아노를 샀"고 창문 밖을 날고 있는 "비행기"와 자신의 빈 "밥그릇"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조심스럽게 타자를 붙잡고 싶은 화자의 욕망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는 "청소기 헤드"가 이물질을 빨아들이듯, 하루 중 제일 밝은 "정오" 즉 밝음과 관련된 것들을 빨아드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삶의 에너지, 웃음 같은 것들을. 그렇기에 타자와 화자는 함께 있으면, 서로 빛을 갉아먹을 것 같았기에, 초심자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타협한다. 이런 타협은 시에서 화자가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타자에게 "함께 있"기를 청한다. 동시에 화자가 우는 모습으로 마무리 맺어진다. 하
작성일 2025-12-16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93상세보기 -
시 캔버스의 밑색월장원 선정
강은 쓰이지 못한 색들이 칠해지는 팔레트여서 밤이 되면 더 많은 빛들이 눌어붙곤했다 어둠이 걷고 있는 산책로는 리넨 캔버스처럼 가로등 불빛으로 듬성듬성 박음질 되어 있었고 물결은 여러 번 덧칠한 임파스토 결처럼 표면 위로 투터운 표정을 숨겼다 주름지는 물결은 유화 물감이 덕지덕지 굳어버린 어느 화가의 지문을 닮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 어떤 시간대의 풍경인지 알 수 있었다 복층으로 포개어진 하늘 아래서 나는 낮보다 밤의 물결에 더 많은 색이 칠해지는 이유를 혼자 알고 옅어진 색들이 서로를 통과하는 시간대면 물감을 쌓아 올린 그림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강을 따라 걸었다 그 위에 어떤 색을 덧칠할지 고민하며 어둠과 손을 맞잡고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면 강을 깊이를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게 어쩐지 마음에 들었고 물살이 일 때마다 캔버스에서 지워낸 흔적들이 강의 바닥에서 살아나는 것 같아 중얼거렸다 물결에 덧씌워지는 글레이즈는 바닥을 다 덮지 못하고 발걸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이 곳이 어디쯤의 붓 자국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이 길의 테두리도 강의 깊이도 전부 윤곽 없이 그어진 연필선 같아서 그 지문 같은 물결이 어떤 색을 가리키는지 들어보기 위해 나는 수영 금지 푯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금지의 언어 너머에 있는 미완의 색을 알고 싶어서
작성일 2025-12-12 작성자 현재이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72상세보기 -
시 걷는 연습*월장원 선정
언젠가 완벽한 진검승부를 벌이자. 그런 순간은 없다는 것처럼 꾹 눌러 말하면서 친구는 운다. 강가를 걷는다 운동장을 한 발짝 벗어난다 강의 표면은 툭툭 빛이 흘리고 간 알갱이처럼 쉽게 반사하고 흔들 수 있는 것 언제든지 우리가 떠났다가 되돌아올 수 있는 것 물가에 손을 비추면 강에는 여러 동물의 발이 함께 비쳤다 강을 거쳐간 동물들 작은 물새의 발부터 들개의 발, 길 잃은 사람의 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발까지 이대로 손을 넣어 건져올리고 싶은 꿈속의 뒤섞인 발들 친구는 아직 저녁이 바람처럼 들어오는 석식 시간 빈 교실에 남아 있다 누군가 구멍도 내고 낙서도 한 책상 위에 뺨을 대면 듬성듬성 엮인 마음으로 무언가 잡는 꿈을 꾼다고 횡설수설하던 친구 강가를 걷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좀 더 빠르게 지나치는 방법은 없을까 물어봤을 뿐인데 수를 쓴다는 양 우리를 아프게 지나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그래도 만약 이대로 화면의 속도를 손쉽게 조절할 수 있다면 손을 강물에 비추고 오거나 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뒤섞인 하나의 풍경을 타고 달콤한 잠을 자는 꿈을 꿨어 버스가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친구 1시간에 2만원이라는 검정 포스터를 그냥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지 검 없이도 검을 맞대는 것처럼 싸울 수 있을까 우리가 빈 교실에 남아 세상에 남은 마지막 사람인 것처럼 많은 잠을 잔다 손등에 그린 의미 없는 낙서를 귓가에 베고 잠을 잔다 책의 모든 페이지를 접는다 종이를 접을 때 과거와 미래가 한 번에 겹쳐지는 곳에서 마치 모든 길을 동시에 걷는 것처럼 ㅡ *놓는 연습-모모코(글틴)
작성일 2025-12-03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19상세보기 -
소설 고목과 파수꾼월장원 선정
잿빛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창문에 부딪친 빗물은 먼지를 씻겨내며 미끄러졌다. “큰일인걸.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아.” 운전석에 앉은 종석이 말했다. 와이퍼가 불쑥 나타나더니 창을 닦기 시작했다. 빗줄기와 와이퍼의 소리로 내부는 순식간에 산만해졌다. 그리고 나성은, 작은 점이 되는 기분이었다. 시끄러운 도시 한가운데서 홀로 옹송그리는 기분이었다. 비로 이루어진 대도시였다. 차는 안개로 둘러싸인 고속도로를 달렸다. 나성은 유리창에 머릴 기대 자동차의 떨림을 고스란히 느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두었다. 분위기를 환기할 겸 튼 라디오에선 게스트로 온 아이돌의 신간 홍보가 열심이었고 나성은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굴렸다. 아직도 한 시간을 더 달려야만 했다. 마침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제보자였다. 그 사람은 시내의 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말했고, 나성은 약간 늦어질 수 있음에 양해를 구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종석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가지 말자고 했잖아.” 종석은 나성의 매니저 겸 카메라맨이었다. 그보다 앞서,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유튜버로서 수입을 벌기 시작할 무렵의 나성은 그를 찾아온 종석을 동업자로 맞이해줬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라는 말이 지닌 효험은 강력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성은 종석의 제안을 재고할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종석의 성격은 퍽 껄끄러운 편이었다. 가령 지금의 상황과도 같이. “역시 백반집을 가는 게 맞았어.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비도 오고.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산에 가겠다는 거야? 당장 더 나은 선택지가 보이는데 굳이 이런 깡촌까지 기어 들어가야 되는 이유가 나는 납득이 안 되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평소에는 잘만 있다가도 한 번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폭발해버렸다.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듯한 성격은 어른이 된 종석이 버려야 할 부분이었다. 그의 마음은 정말이지 사춘기 소년의 그것과도 비슷해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혼자 안정을 되찾고는 했다. “방금은 미안했다, 야.” 종석 역시도 자신의 문제를 분명 인지하고 있을 테지만, 무릇 문제라는 건 인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은 나성이 감내해야만 할 부분이었다.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바닷가로 향했다. 약속시간을 30분가량 초과해서 그들은 겨우 카페에 도착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잇, 괜찮습니다, 팬입니다.” 따위의 대화들로 제보자는 두 사람을 맞았다. 제보자는 나성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어색하게 뒤따라온 종석과 악수를 나누었다. 종석은 언제까지나 카메라 뒤의 사람이었으므로 시청자들은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따라서 대화의 주도권은 언제나 나성이 쥐었다. 따뜻한 커피 세 잔을 테이블 위에 두고, 나성과 제보자는 마주앉았다. 종석은 나성의 옆에 앉았고, 나성을 올려다보는 각도의 카메라를 테이블에 설치했다. 녹화가 시작되자 대화가 시작되었다. “제가 메일을 보낸 까닭은 다름 아닌......산에서 집도 없이 홀로 거주하는 한 노인 때
작성일 2025-11-28 작성자 구포대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669상세보기 -
시 유리창 문월장원 선정
지하철은 돌아옵니다. 다음 열차에는 자리가 비어있을지 몰라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내리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예요. 정 못 믿으시겠다면, 좋아요. 저기 구석의 김노인이 보이시나요? 그도 한때는 지하철을 타고 세상을 돌던 사람이었죠. 그러나 지금의 처지를 보세요. 할 줄 아는 거라곤 두 손을 모으고 엎드리는 것밖에 없죠. 아, 지하철이 돌아오는군요. 문이 열립니다. 이런, 이번에도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군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지하철은 돌아옵니다. 역사가 속삭인다 스크린도어 너머의 통로는 깜깜하다. 철도는 회색으로 남아있다. 유리 너머를 들여다볼 때면 끝없는 선로에 아득해지고, 또, 새어 들어오는 시취. 윽! 어제는 몇 명이 떨어졌을까, 세는 사람이 없어 아는 사람이 없다. 역사의 위대한 헌장을 새기는 사람만 있다. 반복되는 속삭임은 날카롭게 인간을 음각한다, 한땐 새하얬던 살갗을 파먹으며, 지하철은 돌아옵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는 형은 기어코 지하철에 올라타 떠났다. 빼빼마른 아저씨를 끄집어낸 후 사람들 사이에 꽉꽉 눌려지며, 형은 잠시나마 기뻐보였다. 문이 닫힙니다. 문이 닫힙니다. 더 이상 형은 날 보지 못했다. 밝은 세계의 유리창은 스스로만을 비추고, 어두운 세계의 유리창은 밝은 면을 여과없이 투과한다. 시선은 일방적이다. 열차 안은 정말, 따뜻해 보이지. 찬 몸을 끌어안고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행동한다. 역사는 속삭인다. 아기의 소리가 들려온다. 산모의 소리가 들려온다. 자주. 이 사람들은 이 어두운 곳에서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낳는 걸까. 그래도 아기의 울음소리는 잠시나마 역사의 속삭임을 덮는다. 사람들은 잠시나마 기쁘다. 축복한다. 태어난 한 사람의 부피만큼 누군가는 땅을 잃는다. 누군가는 벼랑으로 몰려난다. 스크린도어는 쉽게 열린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체온은 공기로까지 번지지 않고,
작성일 2025-11-25 작성자 구포대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18상세보기 -
수필 긁어 부스럼월장원 선정
나에게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생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될 무렵 아토피를 앓았던 언니와는 달리, 내 경우 한동안 피부에 아무런 이상 증세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런 날 보며, ‘얘는 괜찮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하셨다. 그러다 네 살 무렵 찾은 한 소아과에서 나에게 아토피 판정이 내려진 건, 부모님께 청천벽력 같았을 것이다. 언니는 아기 때 이후로 발현되는 일이 없었던 반면, 나는 성인을 앞두는 지금까지 줄곧 아토피에 시달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릴 적엔 붉게 달아오르고 피딱지가 앉은 피부를 거리낌 없이 내보이고 다녔다. 그로 인한 관심이 불쾌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가벼운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내보이지 않았고, 어른들은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며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곤 했는데, 그걸 받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아이들이었는지, 무지한 어른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내가 가진 피부염에 전염성은 없는지 물어왔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만성 질환에 전염성이 있었다면, 세상 모두와 거리를 두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식구들에게마저도…. 나에게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내 곁에 있길 꺼리는 눈치라면, 필시 피부 때문이리라 넘겨짚고는 묻기도 전에 해명하곤 했다. 옮기는 거 아니니까, 괜찮다고. 남이 오해를 하더라도 내가 풀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의 나는 무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그리 가볍게 넘기지는 못할 것 같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아토피가 일어나는 양상이 바뀌었다. 팔다리 접히는 부위나 목, 손목과 손등과 같은 부위에만 상처가 났던 이전과는 달리, 얼굴부터 시작해서 몸 곳곳으로 넓게 번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피부가 심하게 일어났다가 아물기 시작할 때면 하얀 가루 같은 각질이 떨어졌다. 그 무렵 밖에 나갔을 때, 특히 등교했을 때가 관건이었다. 긁지 않아도 온몸에서 각질이 눈이 오듯 쏟아져 내려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각질이 잘 보이는 어두운 옷을 피하기 시작했다. 교복 조끼와 치마가 군청색이라, 아무리 더워도 위에 흰 외투라도 덧대 입는 것이 최선이었다. 곱지 않은 눈길이 느껴져도 나로서는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는 그런 시선을 외면하지 못하는 계기가 생긴 일이 있었다.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종일 자습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작년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나는 그 와중 아토피가 악화되어, 공부에 집중하기는커녕 그냥 버티자는 심산으로 자습 내내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내 짝으로 앉은 아이가 그의 대각선 앞자리, 즉 내 앞자리에 앉은 자신의 친구에게 다가가선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사자를 가까이 두고 말할 리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들을수록 나를 향한 이야기
작성일 2025-11-20 작성자 김희윤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23상세보기 -
시 실추월장원 선정
구름과 함께 날며 제 몸을 숨기던 한마리 늙은 새 구름에서 새를 발견한 눈 좋은 아이 고기가 필요해서라기보다 새를 잡기 위해 잡는 아이들의 새총 위 작은 돌 돌을 비껴맞고 살짝 내려온 새 다른 아이들도 새를 볼 수 있게 된 후 돌이 늘어난다 저들이나 늙은 새나 삶의 길이는 비슷하건만 어째 돌은 새만을 향한다 도망가는 새를 쫒는 수십명의 아이들 새는 명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만큼은 살지 못했다 종잇장이 팔락이듯 사체로 땅과 마주한다
작성일 2025-11-02 작성자 6개월된 러시안블루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49상세보기 -
감상&비평 사회가 서술하는 ‘남성적 언어’: <꽃처럼>을 읽고월장원 선정
[여성혐오: 사회학자 앨런 G. 존슨(Allan G. Johnson)에 따르면, “여성혐오란 여성을 여성이란 이유로 혐오하는 문화적 태도”이다.] 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하계에 내려온 일을 오오야마츠미는 기쁘게 여겼다. 대대로 미와 영속을 더불어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천손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는데, 나란히 니니기의 동반자를 자처한 이들은 꽃의 신 코노하나사쿠야히메와 바위의 신 이와나가히메였다. 그러나 니니기는 둘을 모두 아내 삼는 대신 미모의 코노하나사쿠야히메만을 취하고, 이와나가히메는 추하다는 이유로 곧장 돌려보냈다. 오오야마츠미는 진노하여 니니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었다. ‘이와나가히메가 있어 바위와 같이 영원하고, 코노하나사쿠야히메가 있어 꽃과 같이 번영할 수 있기에 나는 여식을 나란히 바쳤다. 만일 둘을 함께 맞아들였다면 천손은 피고 지지 않는 영광에 싸이었을 것이다. 천손의 선택으로 후생은 눈부시게 피어나되 찰나에 쇠하여 질 운명이다.’ 이리하여 영원을 내친 천손 내리의 생은 그저 피고 지는 꽃을 닮게 되었다. 이것을 인간의 삶이 꽃처럼 덧없는 세계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 중 도입부 일본 신화, 를 차용함 1. ’남성적 언어‘ 일부다처제란 무엇인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하나의 제도로까지 자리 잡고 있었던 이 구도는, 단순히 부부간의 개인적인 권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다처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만연한 성별 권력 격차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 구도가 무너져있는 곳에서부터 이 기묘한 세계는 출발한다. 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거느릴 수 있는 일부다처제는 단순히 이것을 행하는 한 부부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균형을 무너트린다. 결혼과 동시에 부부 사이의 관계는 전혀 동등한 형태를 띠지 못하고, 성적, 경제적, 권위적인 지배권이 모두 남편에게 속하게 된다. 이때 여성은 배우자가 아닌, 남성의 재산 혹은 번식 수단으로 종속되고, 정립된 여성의 권위는, 그 사회의 모든 여성에게로 이어진다. ㅡ 에서 나오는 두 여성(꽃의 신, 바위의 신)은 천손의 동반자를 ”자처“했다고 서술된다. 하지만 오요야마츠미가 두 딸을 천손에게 “시집보“낸다는 표현과 “바친다”는 표현을 살펴보면 ”자처“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소설은 두 딸이 아버지-남편으로 넘어가는 자리에서 가부장제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한 남성의 두 배우자로 들어가기를 ”자처“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의 고유한 신적 성질(꽃과 바위의 성질)은 ‘아버지가 남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친다”는 표현을 통해 아버지는 두 딸
작성일 2025-10-31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58상세보기 -
시 스노우볼 속 스노우맨의 사념월장원 선정
이곳의 눈은 내린다기보다는 솟아오르는 편이라 썩 즐겁지 만은 않다. 다만 유리막 바깥의 세상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약간의 위안이 되기는 했다. 다만 여전히 즐겁지 만은 않다. 그들이 나를 관찰할 때 나는 손을 흔든다. 그들이 나를 흔들면 나는 조금 어지롭고 이 세상마저도 어지럽다. 지구본을 닮은 유리는 겨울을 흉내 낸다 박제된 겨울은 흔들릴수록 촘촘해진다 그리고 저 너머의 서랍 위에는 가을이 박제되어 있다. 붉은 단풍보다는 샛노란 은행 한 닢 유리는 부자유를 포장하여 애정을 듬뿍 받고 이따금씩은 스스로마저 가둬두게 한다. 유리공예공은 만물을 박탈한다. 또 어떤 유리는 그 투명도가 너무도 높아서 인지할 수조차 없다. 그 어떤 인간이라도 인지할 수 없어서 다룰 수조차 없다. 실은 그들의 손가락에서 비롯된 것이면서도 누구도 자각하지 못하며 지금의 영화를 방부한다 말하지만 하릴없는 유리막 속에서는 늙은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다. 박제의 끝은 방치이고 둥근 세상도 언젠가 방치된 채 우주의 한구석을 구르겠지
작성일 2025-10-26 작성자 구포대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825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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