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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비평 대중 앞에 놓인 카타르시스성 폭력-드라마 '참교육'을 중심으로월장원 선정
대부분의 한국 고전 산문들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띄고 있다. 당장 ‘홍길동전’과 ‘장화홍련전’의 결말을 두고 비교해봐도 그렇다. 두 작품 모두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복을 받는 결말이다. 이러한 구성 방식과 결말은 한국 근대 이전의 소설들 속에서 주를 이뤘다. 그러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한국 고전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도 상업 소설인 웹소설, 상업 드라마, 상업 영화 등 대중적인 이야기 플롯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일종의 모티프다. 이런 모티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중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라는 모티프는 전 세대에 걸쳐 과거에서 현재까지 매체와 서술 방식을 변주하며 계속 나타난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상업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권선징악과 관련된 모티프가 자주 나타난다. 상업 드라마에서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보여주는 드라마 중 일부는 복수라는 장르를 내세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 ‘펜트하우스’, sbs 시리즈 드라마 ‘모범택시’, ‘열혈사제’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복수극도 개인에 이야기만을 하는 드라마와 개인을 넘어 사회까지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로 나눌 수 있다. 이로 볼 때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복수로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모범택시’ 시리즈, ‘열혈사제’ 시리즈는 개인과 개인을 넘어 현실 사회 문제도 건드리는 복수극이다. 따라서 ‘열혈사제’와 ‘모범택시’ 시리즈는 각종 사회 문제를 시리즈별로 이야기하여 그려낸다. 반면, ‘아내의 유혹’은 구은재와 신애리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복수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차이점은 각각 드라마의 결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은 악역인 신애리와 정교빈이 죽음으로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극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주인공인 구은재는 그들이 받은 벌을 보고도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구은재는 신애리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신애리는 친구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수의 성공이 결코 행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역으로 한때 악역이었던 애리를 용서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결말을 맺는다. 반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 실현으로 복수를 진행하는 ‘모범택시’ 시리즈와 같은 드라마는 무지개 운수라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이 사회 문제를 대표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식으로 에피소드별 결말을 맺는다. 그 과정은 복수극과 복수 대행 서비스 안에 맞춰서 폭력적이고, 역지사지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해결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악인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벌하는 모습을 보며 고양된 감정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하지
작성자 송희찬 작성일 2026-06-29 댓글수 1 좋아요 0상세보기 -
소설 수면 아래월장원 선정육지에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되돌아갈 수 없다. -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화> 육지에 터를 내리고 사는 인간으로서는 바다로 발을 내딛는 순간은 언제나 낯섦과 동시에 닿은 적 없는 세계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바다는 제 품에 안은 이들은 한없이 부드러이 끌어안아 주지만 그 밖의 이방인에겐 자비롭지 않다. 수면 아래서 아가미를 펄럭이며 유유히 살아가는 생물들과 달리, 인간에게는 약하게 부풀고 가라앉는 폐뿐이기에 그곳으로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거로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선 제 몸의 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딱 달라붙는 웻슈트를 걸치는 것은 복잡한 관문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그 다음으로 애석한 몸이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가라앉기 위한 무게추를 몸에 매달아야만 한다. 현실에서도 바닷속에서도 떠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가라앉아야만 하는 것이다. 부력조절기를 등에 메다는 순간 휘청이는 몸을 가누는 것 또한 온전히 인간의 몫이며, 동시에 육지의 공기를 끌어 담은 공기통을 매달고 부들거리는 다리를 치켜세우는 것 또한 바다를 향한 처절한 인간의 몸부림 중 하나이다. 그 모든 관문을 뚫고선 인간은 마치 하나의 돌덩이가 된 듯한 기분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어쩌면 정말로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일 텐데도, 그들은 해맑은 웃음과 함께 레귤레이터를 입에 문다. 이내 서로의 버디를 향해 일종의 사인을 주고받은 그들은 기어코 바다를 향해 뛰어든다. 철썩이는 파도를 뒤로하고는, 단지 크게 부푼 심장과 어떠한 맹목적인 갈망만을 지닌 채로. 그러니 육지에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 바닷물에 잠기는 순간은 해선에게는 썩 유쾌하지 않다. 차디찬 물기가 제 몸에 한껏 달라붙는 감각이며 새파란 빛으로 가득한 아래를 바라보면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가 스쿠버 다이빙에 빠져든 것 또한 그 이유에 있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 그 괴리감에는 어딘가 모든 걸 잊게 해주는 마법이 담겨있는 듯했기에. 핀을 가볍게 흔든 해선은 제 앞에 선 버디를 향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준은 조금씩 아래를 향해 두 발을 걷어찼다. 그의 등 위를 커다란 만타 가오리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해선은 옅게 웃으며 그를 따라 아래로 가라앉았다. 닿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과 달리 바닥은 몇 번의 발짓만으로도 도달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빛이 가려진 바닥을 화려하게 밝히는 그곳에는, 곳곳에 숨어든 작은 생물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청 푸른 빛에 은은한 어둠이 내리깔린 그곳, 그러니 즉 바다의 작은 심연인 그곳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다. 공중을 향해 가벼이 몸을 뉜 준은 그녀에게 검지를 들어 올려 손짓했다. 해선은 가벼이 몸을 돌려 새로운 바다의 내면을 바라보았다. 햇빛을 머금은 채 일렁이는
작성자 서벽 작성일 2026-06-15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수필 일자로의 회귀월장원 선정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편 44: 23-26- 나는 본래 모태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이미 교회를 다녔었고,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교회를 빠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또한 모태 신앙이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나처럼 뱃 속에서부터 모태 신앙이었던 것은 아니고, 친할아버지가 큰 병을 치유하신 이후로 개신교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믿었던 초등학생이었다. 진실로 천국을 믿기도 했고, 성경이라는 이야기도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소설을 쓰거나 역사를 좋아했던 이유도 나는 근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것에서부터 모든 흥미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경 속 이야기 만큼 재밌는 것이 없었다. 그때는 배웠던 부분이 겨우 출애굽기 정도였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그 서사는 나에게 정말 큰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모든 것이 순진했고, 신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신을 믿었다. 기도를 하면 내 소원을 이루어주도록 돕는 것이 신이었고, 만약 내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 믿었다. 사실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신을 수단화했던 것이다. 학교 아이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신을 믿기만 한다면, 진실로 믿기만 한다면 죽어서도 천국에 간다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이렇게 단순히 생각했다. 모태 신앙이란게 참 무섭다. 왜냐하면 모태 신앙은 워낙 태어날 때부터 개신교적 사고관을 주입하면서 자라다 보니 천국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천국이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신의 음성을 들은 적도,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신앙심이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부목사를 그만두셨을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부목사를 그만두셨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역했던 사람이었다. 대학도 신학대학, 대학원도 신학대학원 그 외의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또 다른 직업은 구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나이도, 경력도 아버지를 이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땡볕이 기다리는 그 넓고 넓은 사막으로 가야만 했다. 계단을 여러 칸 올라가서 택배 상자를 내려놓으면 겨우 몇 백원을 번다. 그것을 몇 백개를 하루에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일에 적응을 잘했다. 평
작성자 노스텔지아 작성일 2026-06-07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십이월월장원 선정
어린이집 앞이야 엄마 어디, 어디 엄마를 찾는 그에게 담배를 물리자 울음소리가 잦아 들었다 그가 생긋 웃으며 눈가의 주름을 하나로 모았다 빠져버린 잇새로 내게 고맙습니다, 했다 나는 그의 백발을 쓰다듬었다 옷장 냄새가 나는 그의 손목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는 가장 달콤한 부분을 먹으려는 듯 가만가만 담배를 바라보며 힐힐거렸다 함박눈을 가지고 나는 천사를 그려 놓았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이런 식으로 흘리고 있었다 어린이집 유리문에 꼬마들이 모여 있었다 커다란 눈들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어깨를 쳐다보았다 엄마,엄마, 왜 아빠는 찾지 않아. 그는 담뱃대를 내게 권했지만 내가 사양하자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이 좋은 건 나누랬는데, 눈발을 머금던 유리문이 열렸고 선생님이 나왔다, 여기서 담배 피시면 안 돼요.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시내를 걸었다, 그가 겉종이를 씹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거리의 조명들이 검게 칠해진 내 각막 내피에 은은한 빛을 쏘아대는 것을 느껴 차라리 눈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 순수한 이미지만이 오늘을 벗어날 방법이었다 그는 사탕 가게에 들어가려고 고개를 연이어 돌리고 뒤꿈치를 무겁게 했다 그러다 놓쳐 버렸다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나는 까마귀 떼가 되었고 그는 멀리서 마, 마 중얼거렸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알지 못했다 그런 그는 없어도 되었다 없어도 돼, 볼이 아렸다 등을 돌려 걸었다 눈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눈송이들이 박혔다 아프지 않았다 나는 쓰러지고 싶었다
작성자 드시코 작성일 2026-06-02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주먹밥월장원 선정
차가움이 손 안에서 차츰차츰 풀어져가는 게 하얀 밥알 진득하게 달라붙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강바닥 무안한 얼굴의 조약돌처럼 나는 설익은 눈을 손 안에 감춘 기분 턱끝까지 차오른 여름 노을까지는 한참이 남았지 어릴 적 싫어하는 악기를 켜다 집에 돌아가는 네 시에는 붉은색이 복잡하게 펼쳐져 있어서 무서움이 들었었는데 낮은 층으로 이사와서 그런가 하늘이랑 멀어져서 그런가 집의 면적이야 더 커졌겠지만 그만큼 바글거리는 것도 사람 무서움을 기대 세워둘 곳이 사라지고 말았어 삐죽 나온 편의점 그 코앞이 버스 정류장 버스는 어차피 잦게 오는데 뭣하러 이 주먹을 채웠나 노을이 없어서 시계가 막막할 즈음이면 나는 버스가 그리워서 어디쯤 와 있는지 보기엔 버스가 지겨워서 어디 기댈 곳 없는 외로움에 주먹밥을 담았네 한가로이 걸으며 입 안에서 밥알을 센다면 양 백 마리 눈 아래에 반짝이는 풀씨들 그리움도 운치로 두고 가라앉지 않고 여유를 말할 수 있으려나하고 혹여나 덜컥 찾아올 기다림의 시간이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기다림을 위한 안절부절을 샀네 풀피리도 입속이 그리워서 불었던 걸 테야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을 샀네 버스에 덜컹이는 동안 나는 날 위해 마련된 기다림이 잊혀질까 그도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기다림을 위로하고 아이를 달래 조금만 더 뭉쳐져있지 않을래 하나하나가 다 뭉개질 지경까지는 말고 노을이 잘게 달라붙은 하늘처럼만
작성자 다만 작성일 2026-06-01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소설 괜찮은 죽음월장원 선정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작성자 송희찬 작성일 2026-05-31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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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도 그 빛을 알아월장원 선정
언제나, 너는 그렇게 말했다.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마음은 메마른 귤 껍질 같이 벗겨진 안쪽이 갈라지는 것이라고. 연노랑빛 사막에 누가 바닷물을 실어보내줄까. 누가 모래를 위한 눈물을 흘려줄까. 네 신발장 속 편지지는 아직 열리지 않았고, 우리가 함께 앉은 피아노와 적막한 음악실이 기억난다.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축축한 손을 반바지에, 그리고 또 한 계단 올라가면 얼굴을 훔치고 반바지에, 올라갈 때마다 땀에 물든 우리의 이마. 입안에 넣었다가 도로 뱉은 사탕처럼 반질거렸지. 번뜩이는 철문이 열리고 강가가 보이던 우리 학교 옥상, 또 다시 바람이 긴 호흡으로 철새 무리를 기다린다. 온순한 폭풍처럼 우수수 날아오르던 새의 떼, 그 아래를 지날 땐 뒷산에 누워 있던 붉은 얼굴의 거인이 옷자락을 털며 일어설 것처럼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착찹하게 마른 목, 한 손을 얹은 채 가다듬으면 새 소리가 났고 겨울이 겨울처럼 부풀고 있던 날 우리의 투명한 몸을 한 줄기 가로지르던 눈부신 섬광
작성자 방백 작성일 2026-05-31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수필 노력의 퇴적월장원 선정
대회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누군가는 쇼팽을 쳤고 누군가는 리스트를 쳤다. 검은 정장과 색색의 드레스를 입은 학생들의 손끝은 지나치게 매끄러워 보였다. 나는 그 사이에 부자연스럽게 앉아 핫 팩만 쥐고 있었다.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 틈에 섞인 중학교 1학년의 취미생.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손가락 끝이 둔해질 때까지 같은 소절을 반복했고, 틀린 부분은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며 다시 눌렀다. 하지만 어떤 노력은 처음부터 방향이 달랐다는 사실을 어린 나는 끝까지 인정하지 못했다. 그 무렵부터 왼손 약지 아래 안쪽 관절에 이상한 것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연습 도중 손바닥 안쪽이 약간 부풀어 오른 것 같다가도 금세 잊어버릴 정도의 감각. 말랑했을 때는 존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손가락을 굽힐 때 아주 잠깐 이물감이 스치는 정도였고,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찾아보지도 않았다. 몸이라는 것은 원래 여기저기 이유 없이 아픈 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혹시라도 손을 쓰지 말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 며칠 동안의 연습량이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방치했다. 정확히는 외면했다. 매일같이 건반을 누르며 같은 부위를 접고 펴는 동안 그 작은 덩어리는 손 안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결절종은 물렁한 침묵으로 시작해 결국 뼈처럼 굳어 갔다. 손가락을 쥐었다 펼 때마다 안쪽에서 작은 구슬 하나가 관절 사이를 밀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건반을 누르는 도중 유난히 이질적인 압박감이 느껴져 손을 뒤집어 보았고, 그제야 나는 거기에 무엇인가 자라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오래 방치한 감정이 어느 순간 형태를 얻듯이. 몸 안에서 자라는 것들은 대개 소리 없이 커진다. 통증조차 늦게 도착한다. 대회는 예상대로 끝났다. 아니, 어쩌면 예상보다도 더 조용하게 지나갔다. 그 대회에서는 모두가 상을 받았다. 상의 이름만 다를 뿐이었다. 중고등부가 한데 묶여 있었고,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높은 상은 입시생들이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생각했다. 그들은 매일 몇 시간씩 인생을 저울 위에 올려두는 사람들이었고, 또 누구보다도 절박했으며······ 나는 그저 좋아해서 피아노를 치는 애였으니까. 억울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쩌면 억울하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는 일 자체가 이미 가장 필사적인 자기방어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정말 괜찮을 때는 굳이 괜찮다고 되뇌지 않으니까. 집으로 돌아온 뒤 이상하게도 손부터 보게 되었다. 트로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왼손의 딱딱한 돌기였다. 대회를 위해 미뤄둔 것. 끝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끝나고 남은 것은 성적표 같은 상장과 더 단단해진 결절종뿐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노력이라는 건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군가는 그
작성자 미빈 작성일 2026-05-25 댓글수 0 좋아요 1상세보기 -
시 타향살이의 어려움월장원 선정
아파트 재건축을 다지는 콘크리트는 폐건물처럼 쌓여 있다 나무의 헐거워진 부분 따라 흘러가는 빛을 바라보며 서있다 기차가 지나가며 만드는 구름이 구름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미술관 한가운데에서 을 본 뒤 손짓을 멈출 수 없는데 기꺼이 눈을 감으면 감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는 곳은 도로의 한가운데 브이 알 기기를 쓰는 사람들이 고깃집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번쩍이는 화면의 바깥을 바라보며 한숨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빛은 전시회의 매인 디시처럼 빛난다 눈물 나라의 모국어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작성자 양현서 작성일 2026-05-15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감상&비평 김멜라에 대한 단상 - 형용될 수 없는 것을 형용하기, 음악의 희망성에 대하여월장원 선정
텍스트가 감각을 대체할 수 있을까? 또는, 감각이 텍스트를 대체할 수 있을까? 텍스트는 가시적이지만, 음악은 비가시적이라는 사실은 두 매체 사이의 물질성을 고발한다. 인간은 가시적인 것을 완전한 것으로 인식하지만, 비가시적인 것은 불완전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텍스트는 기호의 영역에 종속되어 견고한 체계 시스템을 이룰 수 있지만, 비가시적인 음악은 언제 어디서든 흘러내릴 수 있는 불완전하고 액체적인 매체가 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 음악의 불완전성은 텍스트가 체계화/언어화 시켜내지 못한 것들, 다시 말해 체계화될 수 없는 세계의 풍경을 비가시적인 감각으로 구성하고 독자가 그것을 감지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음악성을 문학에 차용한 사람이 바로 김멜라다. 김멜라의 최근작「리듬 난바다」속 한 문장을 예시로 들어보면 그녀의 음악성을 더욱 쉽게 이해 가능하다.“욕받이가 엉거주춤 일어나 버너의 불길을 조절한다. 젓가락으로 라면을 휘젓다가 뜨거운 김에 이맛살을 찌푸린다. 파에 손을 땠다가 달걀을 건드렸다가 버너의 불길을 다시 조절하며 허둥지둥한다.” - 김멜라,「리듬 난바다」 작가는 이곳에서 여러 추임새(‘엉거주춤’과 ‘허둥지둥’)를 사용하며 운문성을 강조하고, ‘손을 떼고 달걀을 건드렸다’는 문장에선, ‘가’라는 격조사를 연쇄적으로 덧붙이므로서 ‘ 땠다가 건드렸다가’라는 식으로 리듬감을 조성하고 있다. 소설 전문은 이러한 추임새와 격조사의 연쇄가 반복되며 텍스트를 감각적인 음율로 합화 한다.「리듬 난바다」뿐 아니라 대부분의 김멜라 소설은 이런 방식으로, 혹은 음악의 가사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음악적인 물질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문득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김멜라의 작품은 왜 음악적인 형태를 띠는 것일까? 김멜라가 음악의 도움을 받아 이루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그녀의 창작경향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김멜라의 소설에는 항상 사회로부터 버려지거나 유리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세계와 인물의 단절이라 함은 얼마간 인물을 구성한 작가와 세상의 단절을 뜻하기도 한다. 인물은 작가의 역사적 기억 데이터를 통해 구성된 허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멜라의 작품에서는 젠더 및 퀴어 문제가 인식될 수 있지만, 그 문제에 대한 작가의 체계화된 담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그녀의 인물들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억압을 받지 않는다. 김멜라의 인물들은 저마다 사회적 문제(이 표현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으나, 본문에서는 '사회적 논의', '담론'의 영역으로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 퀴어, 동성애, 여성주의, 돌봄 - 를 지니고 있지만, 그 문제를 파고 드려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그 문제를 바탕 삼아 세계를 살아가려고 한다. 「제 꿈 꾸세요」속 화자는 뜬금없이 찾아온 자신의 죽음(정확히는 원치 않는 질식사)을 문제없이 받아들이며 사랑했던 이들을 찾아 떠나고,「나뭇잎이 마르고」속 체는 자신의 다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꿋꿋이 살아나간다. 이 외 김멜라 소설의
작성자 화자 작성일 2026-05-02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감상&비평 하나의 얼굴과 다섯 개의 이름 (드라마『레이디 두아』 비평문) 월장원 선정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레이디 두아』의 주인공은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될 수 없는 인물이다. 수차례의 신분 세탁을 거치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는 매 순간 다른 이름, 다른 나이로 존재했고, 그 이름들은 단순한 가명이 아니라 주인공의 각 시기의 생존 방식이었다. 따라서 본 비평에서는 인물을 하나의 통합된 호칭으로 부르기보다, 그녀가 당시 사용하던 이름으로 지칭할 것이다. 이는 정체성이 끊임없이 변형되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이다. 『레이디 두아』의 중심에는 사라 킴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녀를 처음부터 하나의 명확한 인물로 제시하지 않는다. 사라 킴은 서로 다른 이름과 나이, 신분을 거치며 끊임없이 자신을 바꿔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였고, 또 다른 이에게는 가해자였으며, 어떤 기억 속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남아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관객은 하나의 완성된 인물을 만나는 대신, 타인의 기억 속에 흩어진 조각들을 통해 서서히 사라 킴이라는 존재를 조립해나가게 된다. 『레이디 두아』는 일반적인 드라마가 따르는 연대기적 서사 나열 방식이 아닌 강한 몰입감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파편적 서사 구성 방식의 작품이다. 드라마의 전개 방식은 이렇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형사 무경이 그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다니고, 그들 각자가 기억하는 과거의 기억들이 뒤섞이며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관객은 인물의 삶을 순서대로 이해하는 대신 단절된 기억들을 추적한다.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연결되지 않은 채 제시되다 보니 관객은 이러한 드라마의 구조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건의 맥락이 잡히기 전에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시간대가 계속해서 밀려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혼란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이다. 여러 이름과 신분을 거치며 살아온 사라 킴의 인생은 애초에 하나의 직선적인 시간으로 정리될 수 없는 것이고, 그녀의 기억 역시 단절되고 왜곡된 형태로 남아 있다. 드라마는 그녀 삶의 파편성을 설명하는 대신 구조 안으로 그대로 끌어들였다. 그때 관객은 형사와 동일한 위치에 놓여 제한된 정보만으로 인물을 판단하게 되고, 이후 밝혀지는 과거를 통해 자신의 이해가 끊임없이 수정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 그것이 이 드라마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때 형사는 사건의 진실을 즉각 밝혀내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통해 서사를 정리하고, 서로 다른 기억들을 하나의 맥락 속에 놓이게 만든다. 형사의 시선을 따라가는 과정은 곧 관객이 인물을 배워가는 과정과 겹쳐지며 드라마는 설명 대신 이해의 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이처럼 『레이디 두아』는 하나의 인물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이름과 삶을 통해 분열된 존재로 살아간다. 동일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 인물은, 이름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관계와 서사 속으로 편입되며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특히 신혜선이 연기한 인
작성자 시유레 작성일 2026-04-29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행간월장원 선정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어, 누군가가 말한다. 당신이 그 말을 듣고 있다. 떨어지고 있어, 떨어지고 있다. 당신은 길을 걸으며, 그 말을 곱씹는다. 떨어지다는 탱탱볼이 문방구 뽑기 기계의 사면을 따라 둔탁하게 튕기는 모습이 아니다. 떨어지다는 빗방울이 가속도를 더해 가며 낙하하다가 결국 터지는 모습이 아니다. 나뭇잎은 벽돌처럼 투박하게 땅을 만나지 않는다. 꽝ㅡ 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없다. 아래로 떨어진다. 누군가는 나뭇잎이 듣는다, 고 말한다. 빗방울이 듣듯이. 살점처럼 떨어지는 수도꼭지의 마지막 물방울은 나뭇잎과 조금도 닮은 게 없는데도요. 집요하게 굴면 큰 차이가 보인다고 당신은 느끼지만 말하지 않는다. 나도 침묵한다. 나뭇잎은 사방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계절은 봄이다. 동그란 호수를 따라 난 둥그런 산책로를 걷고 있다. 공원의 빨간 트랙에는 비눗방울을 부는 어린 아이들이 있다. 여자애가 머리를 땋고 있다. 앞머리가 아주 적고 얇아서 이마가 비친다. 비친다? 당신은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비친다는 오래 전 어느 순간이 아니다. 세로로 박음질된 하얀 여름 이불을 처음으로 농에서 꺼내 세탁하고, 아파트 난간 너머로 빗겨 털었을 때 이불에 여과되고 있던 반투명한 크림색이 아니다. 난간이 빛을 막아서서 횡단보도를 만들고 있었는데. 비친다... 바람이 불었고. 빨래 냄새가 났다. 둥그런 비눗방울을 만진다면 터져 버릴 것 같았지. 그러나 어디로든 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친다? 당신은 다시 묻는다. 이번에는 당신이 고개를 젓는다. 아이의 이마는 번진다. 해가 지고 있다. 당신이 걷고 있다. 그래서 나도 걷고 있다. 나뭇잎이 바닥에 있다. 해는 지고 있다.
작성자 강완 작성일 2026-04-27 댓글수 1 좋아요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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