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시인이다
- 작성자 금안백
- 작성일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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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물은 증표이다.
지난 1월 20일 글틴 캠프 참여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날, 대전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나는 보았다, 성심당 앞에 죽 늘어선 대기 줄을. 역 안을 오가면서도 사람들 양손에 쥐어진 성심당 종이가방이 보였다. 대전인으로서 의문이었다. 성심당 빵이 값싸고 맛있긴 하다. 그래도 저렇게 한 시간 동안 줄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닌데. 그리고 이 의문은 뜻밖이게도 지지향에서의 경험으로 풀렸다.
지지향은 글틴 캠프가 열리는 장소다. 글틴이란 것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으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문학 작품을 올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글틴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 위원회는 매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학 캠프를 개최하는데 그것이 글틴 캠프다.
지지향에서 맞는 두 번째 밤, 나는 1층에서 다른 애들과 서로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누고 있었다. 글틴에 올린 내 글을 보여줄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이상했다. 어떤 애도 그랬는지 나보고 왜 그렇게 긴장했냐고 웃으며 물었다.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던 기억이다. 하지만 감상을 기다리면서 왜 긴장이 됐는지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었다. 그날 새벽, 침대에 누워 그것을 생각했다. 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나? 저녁에 괜히 커피를 마셔 잠이 안 온 턱에 온갖 기억이 떠올랐다. 예상외로 내겐 그런 경험이 많았다. 오래간 준비한 과제를 발표하거나, 기말고사가 끝나고 성적표를 받았을 때가 대표적이겠다. 그러나 저 두 경험보다 이 글과 화제에 더욱 알맞을 경험이 있다. 바로 사랑 편지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마음을 고백하는 사랑 편지 말이다.
재작년에 처음으로 사랑 편지를 쓰고 짝사랑했던 애한테 전해줬다. 전해주며 나는 바로 앞에 있던 그 아이의 눈을 마주 보지도 못했다. 그랬다면 아마 심장이 터졌을 것이다. 결과는 안 좋았다. 친구들은 모르는 사이서 냉큼 고백부터 하기보다는 말부터 걸고 친해지는 게 우선이 아니겠냐고, 뇌는 비상식량이냐고 놀려댔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 얘기를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그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들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연필로 편지를 썼던 시간뿐 아니라 어떻게 적어야 할까, 애타다가도 징그럽게 헤벌쭉 웃었던 시간이 그곳에 담겨있었다. 지지향서 다른 애들에게 보여줬던 글도 마찬가지다. 쓰기까지 고민했던 시간, 그리고 썼던 시간 그 정성의 시간이 글 하나하나에 담겨있었기에 보여주면서 나는 긴장했던 것이었다. 편지를 건네며 그리 떨었듯이 말이다.
다시 대전역으로 돌아왔던 날, 마찬가지로 성심당 앞은 긴 줄이 늘어섰고, 사람들 양손에는 빵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때도 잠깐 들었던 의문, 왜 저걸 사려고 한 시간씩이나 기다릴까?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나름의 해답을 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사가는 빵에는 마음과 함께 기다렸던 한 시간이 같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 한 시간이 사람에 따라서 가치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 선물을 받을 사람에게는 어떤 보석보다 귀하리라 믿는다. 또한 그렇기에 그 선물은 증표이기도 하다. 나는 너를 위해 내 한 시간쯤은 희생할 수 있어. 그것을 보여주는 증표. 이는 물론 다른 선물에도 적용된다. 다만 시간의 희생만이 아니라, 이 정도의 돈쯤은, 정성쯤은 기꺼이 바칠 수 있어, 라는 것들로 그 메시지가 바뀌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물은 증표이다.
2. 덕후는 아기다.
글틴 캠프에서 있었던 일화다. 주최 측이 준비한 일과 중에는 작가들이 참여할 공개 방송을 방청하는 활동이 있었다. 방송이 시작하길 기다리며 나는 그곳에서 친해진 동생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눴다. 대화 중 고선경 시인의 얘기가 나왔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 애는 고선경 시인의 열혈 팬이었다. 왜 그 시인이 좋냐고 물었는데 숨도 쉬지 않고 이유를 설명해 줬다. 이유는 크게 시가 좋은 것과 용모가 아리따우신 걸로 구분됐다. 그러나 설명은 언제나 ‘아 몰라 그냥 그분이 좋아’라는 말로 귀결됐다. 그걸 두 번은 더 그 자리서 얘기했다. 귀여웠다.
내가 알기론 귀엽다는 느낌은 보통 그 대상이 아기와 비슷하다고 느낄 때 드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적으로 그렇다고 한다. 가만 보면 소위 덕후란 것은 아기와 유사하다. 서양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 따르면, 보편적으로 아기는 엄마를 그 존재 자체를 이유만으로 사랑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덕후는 어떤 대상을 ‘그저’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기에 아기와 비슷하다. 다만, 덕후는 그 대상에 빠져들 때 특정한 이유로 그 대상을 좋아하게 된 다음에 조건 없는 사랑으로 향한다면, 보편적으로 아기와 엄마의 사이는 태초부터 조건 없고 본질적인 사랑이 오간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를 이유로 내세운다면 내가 그 애를 귀엽다고 느낀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덕후는 아기 같고, 그 애는 덕후 같았으니 되려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덕후라는 것이 나쁜 뜻인 건 절대 아니다. 어느 분야에 열정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일이나 취미, 학업 등에 올바른 열정을 쏟는 사람들을 보면 좋은 자극을 받곤 한다. 또한 경외감이나 존경심이 들기도 하며 아주 가끔은 귀엽다고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이번 캠프로 알게 됐다.
비슷한 나이인 사람에게 귀여움을 가진 경험은 난생처음이다. 그래서 이 일화가 기억에 남는 것일 수도 있겠다. 또한 단순히 좋아하는, 일종의 팬심뿐만 아니라 다른 열정 또한 순수하다면 보기만 해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곤 한다. 그런 것 역시 내가 이 일화를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 여자애가 부럽다고. 내 열정은 아직 세상에, 혹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적이 없지 않은가. 나는 인터넷을 켜 고선경 시인의 시집을 찾아봤다. 그 뒤엔 노트 앱을 켜고 예전 고1 때 썼던 시를 훑어보다 짧은 시를 끄적였다. 그러나 오랜만에 써봐서 그런가, 스스로 보기에 형편없는 시가 나왔다. 그러므로 이 글에 싣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름의 수확도 있었다. 그 시를 쓰고 나서 올해에도 글을 써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수능 공부를 하는 동안엔 글을 안 쓸 계획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남을 때마다라도 한 문단, 혹은 한 문장씩 쓰려고 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도 생겼고 말이다.
3. 걱정은 사랑이다.
대전역에서, 나는 위에 두 생각(선물과 덕후)을 정리하며 간단하게 수필 작성 계획을 짜고 있었다. 점심을 못 먹었지만, 용돈을 아껴야 하니 집에 가 먹을 작정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김에 대전역을 구경했다. 떠나기 전, 그래도 배는 고프니 군것질거리 삼아 약국에서 박카스 맛 젤리를 집었다. 계산하려 지갑을 찾았다. 주머니에 손을 쑥 하니 영수증만 만져졌다. 반대쪽 주머니엔 그것조차 없었다. 가방을 찾아봐도 나오질 않고 캐리어까지 열어 샅샅이 살폈으나 헛일이었다. 아무래도 기차에 두고 내린 듯했다.
나는 삼성페이도 뭣도 쓰지 않았기에 집에 갈 수도(걸어서 한 시간 반, 교통카드가 지갑에 있었기에 버스도 못 탔다) 없었다. 일단 분실물 보관소에 신고를 넣었다. 얼마 안 가 동대구역쯤에서 지갑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화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전역으로 전송될 때까지 빨라야 오늘 안이라는 것이었다. 자세한 도착 시각은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언제 올지도 모를 지갑을 기다릴 바에야 일단 집으로 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지갑도 없고 설상가상 계좌 이체도 안 돼서 택시를 잡기가 막막했다. 분실한 사실을 안 직후 지레 겁을 먹어 카드 정지를 시켰기 때문이다. 정지를 풀려면 카드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택시 승차장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어느 기사님이 말을 걸어주셨다. 여기서 왜 똥 매려운 강아지마냥 그러고 있냐고. 나는 거의 울면서 사정을 설명했다.
택시 안에서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채였다. 택시비는 냈다. 내 아버지께 기사님 계좌번호를 보낸 다음 만 원 정도 이체하기로 얘기됐다. 다만 기사님의 쓴소리 때문이었다. 기사님이 날 자식같이 보셨는지 정말 집으로 향하는 내내 쓴소리하셨다. “이럴 땐 성급하지 말고 차분히 마음가짐을 해야 하는 겨.”, “그르게 왜 카드를 정지시켰어. 쉽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걸로 갖다.”, “요즘은 카드 주워도 절대 안 써. 그거 뭐, 갖다 써서 우뜨케 안 걸리게.” 하시면서 말이다. 그러면 나는 순순히 “아이구, 제가 성급했죠.”, “담부턴 안 그럴라 구유.”, “생각해 보니 그릏네요.”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고 저녁상에서도 가시방석인 건 매한가지. 캠프 가기 전 걱정하시던 엄마에게 곧 고3 올라가는데 뭘 걱정하시냐고 아버지랑 누나랑 잘 계시라고 말했던 게 무색했다. 심하게 꾸중을 듣진 않았지만, 그날은 눈치껏 엄마 말씀을 잘 들어야 했다.
사실 주변 어른들 말씀이 걱정에서 나오고 그런 걱정이 곧 사랑이라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위 일화에서도 기사님과 부모님은 사랑으로 나를 꾸중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평소에 나는 부모님 말씀을 경청해서 듣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헤아려봐도 부모님 말씀 중에는 그리 타당하지 않은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촌 형이 말하길 나이 먹으면 달라진다는데 과연 정말 그럴까 궁금하다. 다만, 감사할 뿐이다. 앞서 말했듯 기사님이나 부모님이나 다들 나를 걱정해서 굳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걱정은 각자의 사랑이 작용한 형태겠다. 그것이 가까운 사랑이든 먼 사랑이든 간에 나는 감사해야 함을 안다. 알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낯부끄럽지 않게 표현하고 보답하고 할지는 글을 아무리 써봐도 모르겠다.
그나마 생각나는 게 있다면 이 글을 나중에라도 보여드리는 것이다. 내가 등단하고 독립까지 했을 때, 이 글의 링크를 가족 단톡방에다가 딱 올리는 것이다. 아마 좋아하실 것이다. 엄마가 특히 좋아하실 것이다.
4.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시인이다.
캠프에 다녀오고 내가 얻은 수확 중 하나는 두 명의 시인을 알게 된 것이었다. 고선경 시인과 양안다 시인이었다.
나는 시집을 살 때는 늘 서점에서 산다.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게 좋은 이유는 그 전엔 알지도 못했던 글들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책을 산다는 목적이 아니라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서점에 들르곤 한다.
서점서 소설을 고를 때는 첫 페이지를 읽고 다음에는 아무 페이지나 펴 읽는다. 그러면서 그 글에 잠시나마 몰입이 됐다 싶으면 구매 후보 목록에 넣는다. 소설은 대개 이러한 방식으로 고르는데 이따금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골라 사기도 한다. 반면 시집은 사실 여러 시인의 작품이 묶인 걸 더 선호한다. 하지만 막상 서점에서는 문학상 당선 시집 말고는 잘 보이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단일 시인의 시집을 구매할 때가 많다.
시집을 고르는 일에는 힘이 꽤 든다. 소설과 비슷한 방법으로, 시인의 말을 읽고 아무 페이지를 펴 읽어보는 방법으로, 고르는데도 그렇다. 시를 읽는다는 건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더 어렵다고 느낀다. 특히 수능을 공부할 때 시를 문제의 지문으로써 마주할 때가 더욱 그렇다. 수능식 문학 감상에서는 작품 외적 요소(작가, 독자, 시가 쓰인 배경 등)들을 일반적으론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내가 그런 절대론적인 관점으로 자주 시를 읽지는 않는다. 그래서 평소 시를 감상할 때보다 더욱 많은 힘이 든다.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지도 감상법을 의식하지도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효용론적으로(시가 내게 어떤 울림 혹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느냐, 시의 언어들도 시인의 의도는 배제한 채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를 중심으로) 읽는 편이다. 그러나 내게 맞지 않는 시들은 울림도 변화도 주지를 못한다. 그러면 아무리 효용론적으로 읽으려 해도 수능식으로 읽는 것처럼 표현과 문장을 분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를 읽으면 딱히 즐겁지도, 보람차지도 않고 힘들기만 하다. 물론 그 시들이 안 좋다기보다는 단지 내게 맞지 않을 뿐이다. 왜, 생활하다 보면 성향 자체가 안 맞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던가.
시는 삶과 삶을 연결해 준다. 꼭 시인과 독자만이 아니라 화자와 독자, 시 속 대상과 독자가 연결될 수 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를 읽는 이유이다. 애초에 인간은 이야기를 사랑할뿐더러 시로써의, 삶이란 이야기끼리의 연결은 소설에서의, 이야기로의 몰입보다 더 큰 울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독자는 마치 실제 사람과 교류하듯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영혼과 삶에 영양분을 쌓게 된다. 그리고 이는 개인에 따라 맞지 않는 시와 시인이 있음이 당연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각자가 살아온 삶이 달라서 생기는,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생기는 불가피한 일 중 하나일 뿐이다.
다행히 양안다 시인과 고선경 시인의 언어는 나와 잘 맞았다. 양안다 시인의 시집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는 책의 첫 번째 시를 읽자마자 간직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저글링’이라는 이 시집의 첫 시는 나를 반성하게끔 하는 계기가 됐다. 나도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 준 적이 있었나. 그 뒤에 용서를 구한 적이 있었나 하고. 고선경 시인의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도 인상 깊게 읽고 있다. 양안다 시인의 시집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시를 읽으면서 매번 고선경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잠깐이지만 또한 극히 일부분이지만 엿볼 수 있었다. 엿본 감상을 말하자면, 왜 고선경 시인의 덕후가 생기는지 알게 됐다. 수능 공부하느라 1부도 다 못 읽었지만, 아마 한동안은 이 시집이 내 수험 생활을 위로해 주지 않을까 싶다.
양안다 시인과 고선경 시인의 시집은 캠프에서 돌아오고 그다음 날에 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도 지금도 그 두 시집을 보면 글틴 캠프에서 즐겁게 보냈던 시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곳에서 만났던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다 떠오른다. 시집을 사고 서점을 나선 뒤, 카페에서 수능 공부를 하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문제집 글씨가 눈에 읽히지를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그 자리서 한동안 캠프에서 있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애들과 밤새워 놀았던 일, 밤새워 촌극 대본을 썼던 일, 밤새워 문학 얘기를 했던 일 등을. 회상하면서 참 수면 부족한 시간이었구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내 안에 작은 구슬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생겨나 있던. 그것들을 이리저리 굴리고 만져보다가 문득 이 문장이 생각났다. “모든 사람은 시인이다.” 아마 기억 한구석에 있던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라는 시의 문구에서 변형됐지 않았나 싶다. (저작권 문제로 이 글에 그 시를 실을 순 없으니 채널문장에서 검색해 찾아보기 바란다) 생각해 보니 말이 됐다. 삶과 삶을 연결해 주는 게 시고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라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시인인 셈이다. 선물로써, 걱정으로써, 글로써, 행동과 말로써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는 삶을 공유하고 감정을 주고받고 어떨 땐 더 큰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가는 이유에서이다. 빵을 사 가던 사람들, 캠프에서 만난 아이들, 가족들, 모자란 내 친구들, 택시 기사님, 학교 선생님들, 심지어 미장원 선생님까지 생각해 보면 모두 내게 크고 작은 보물들을 줘왔고 나 또한 사람들에게 그래왔을 것이다. 계속 생각해 보면 볼수록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시인이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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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희찬
- 2026-07-30
나에게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생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될 무렵 아토피를 앓았던 언니와는 달리, 내 경우 한동안 피부에 아무런 이상 증세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런 날 보며, ‘얘는 괜찮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하셨다. 그러다 네 살 무렵 찾은 한 소아과에서 나에게 아토피 판정이 내려진 건, 부모님께 청천벽력 같았을 것이다. 언니는 아기 때 이후로 발현되는 일이 없었던 반면, 나는 성인을 앞두는 지금까지 줄곧 아토피에 시달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릴 적엔 붉게 달아오르고 피딱지가 앉은 피부를 거리낌 없이 내보이고 다녔다. 그로 인한 관심이 불쾌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가벼운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내보이지 않았고, 어른들은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며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곤 했는데, 그걸 받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아이들이었는지, 무지한 어른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내가 가진 피부염에 전염성은 없는지 물어왔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만성 질환에 전염성이 있었다면, 세상 모두와 거리를 두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식구들에게마저도…. 나에게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내 곁에 있길 꺼리는 눈치라면, 필시 피부 때문이리라 넘겨짚고는 묻기도 전에 해명하곤 했다. 옮기는 거 아니니까, 괜찮다고. 남이 오해를 하더라도 내가 풀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의 나는 무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그리 가볍게 넘기지는 못할 것 같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아토피가 일어나는 양상이 바뀌었다. 팔다리 접히는 부위나 목, 손목과 손등과 같은 부위에만 상처가 났던 이전과는 달리, 얼굴부터 시작해서 몸 곳곳으로 넓게 번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피부가 심하게 일어났다가 아물기 시작할 때면 하얀 가루 같은 각질이 떨어졌다. 그 무렵 밖에 나갔을 때, 특히 등교했을 때가 관건이었다. 긁지 않아도 온몸에서 각질이 눈이 오듯 쏟아져 내려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각질이 잘 보이는 어두운 옷을 피하기 시작했다. 교복 조끼와 치마가 군청색이라, 아무리 더워도 위에 흰 외투라도 덧대 입는 것이 최선이었다. 곱지 않은 눈길이 느껴져도 나로서는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는 그런 시선을 외면하지 못하는 계기가 생긴 일이 있었다.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종일 자습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작년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나는 그 와중 아토피가 악화되어, 공부에 집중하기는커녕 그냥 버티자는 심산으로 자습 내내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내 짝으로 앉은 아이가 그의 대각선 앞자리, 즉 내 앞자리에 앉은 자신의 친구에게 다가가선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사자를 가까이 두고 말할 리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들을수록 나를 향한 이야기
- 김희윤
- 2026-07-30
[여성혐오: 사회학자 앨런 G. 존슨(Allan G. Johnson)에 따르면, “여성혐오란 여성을 여성이란 이유로 혐오하는 문화적 태도”이다.]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하계에 내려온 일을 오오야마츠미는 기쁘게 여겼다. 대대로 미와 영속을 더불어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천손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는데, 나란히 니니기의 동반자를 자처한 이들은 꽃의 신 코노하나사쿠야히메와 바위의 신 이와나가히메였다.그러나 니니기는 둘을 모두 아내 삼는 대신 미모의 코노하나사쿠야히메만을 취하고, 이와나가히메는 추하다는 이유로 곧장 돌려보냈다.오오야마츠미는 진노하여 니니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었다.‘이와나가히메가 있어 바위와 같이 영원하고, 코노하나사쿠야히메가 있어 꽃과 같이 번영할 수 있기에 나는 여식을 나란히 바쳤다. 만일 둘을 함께 맞아들였다면 천손은 피고 지지 않는 영광에 싸이었을 것이다. 천손의 선택으로 후생은 눈부시게 피어나되 찰나에 쇠하여 질 운명이다.’이리하여 영원을 내친 천손 내리의 생은 그저 피고 지는 꽃을 닮게 되었다.이것을 인간의 삶이 꽃처럼 덧없는 세계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중 도입부일본 신화, 를 차용함1. ‘남성적 언어’일부다처제란 무엇인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하나의 제도로까지 자리 잡고 있었던 이 구도는, 단순히 부부간의 개인적인 권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다처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만연한 성별 권력 격차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 구도가 무너져있는 곳에서부터 이 기묘한 세계는 출발한다.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거느릴 수 있는 일부다처제는 단순히 이것을 행하는 한 부부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균형을 무너트린다. 결혼과 동시에 부부 사이의 관계는 전혀 동등한 형태를 띠지 못하고, 성적, 경제적, 권위적인 지배권이 모두 남편에게 속하게 된다. 이때 여성은 배우자가 아닌, 남성의 재산 혹은 번식 수단으로 종속되고, 정립된 여성의 권위는, 그 사회의 모든 여성에게로 이어진다.ㅡ에서 나오는 두 여성(꽃의 신, 바위의 신)은 천손의 동반자를 ”자처“했다고 서술된다. 하지만 오요야마츠미가 두 딸을 천손에게 “시집보”낸다는 표현과 “바친다”는 표현을 살펴보면 ”자처“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소설은 두 딸이 아버지-남편으로 넘어가는 자리에서 가부장제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한 남성의 두 배우자로 들어가기를 “자처”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의 고유한 신적 성질(꽃과 바위의 성질)은 ‘아버지가 남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친다”는 표현을 통해 아버지는 두 딸이 자신의 소유물임을 알고 있다. 천손 또한 두 여성을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할 사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꽃의 신은 천손의 배우자가 되지만, 그것은 천손과 같은 위치에서 생을 함께 살아갈 동반자적 관계가 아니다. 꽃의 신이 천손의 배우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취”했다고 서술되며, 이로 인해 부인은 그저 “취”해지는
- 방백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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