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 작성자 미우
- 작성일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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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먹게 해줘
소년 A가 그린 바다. 실없게 발음 연습도 했다. 소년 A가 그린 바다 그림. 소년 A가 그린 기린 그림. 소년 A가 그린 기린 그림은 목이 긴가 짧은가. 소년 A가 그린 바다는 긴가 짧은가. 손바닥만 한 이젤인데, 수평선이 펼쳐진 기분. 이런 말은 하기 싫었어. 너도 알겠지만 난 부끄럼이 많으니까. 정말이지. 더웠다. 넌 너무 예쁘고. 나는 까맣게 칠한 손톱처럼 제멋대로야. 여름이 오면 까맣게 칠한 손톱은 태양을 흡수했다. 손끝에 열이 많았다. 자꾸 땀이 나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테레핀 냄새가 나는 미술실. 창문을 열고 붓을 씻으면 졸음이 쏟아졌다. 창문을 열어서 매미 소리가 더 크게 들렸지만 나는 내가 테레핀 냄새에 취해 매미를 씻고 있는 것 같았다. 손끝에서 부르르 몸을 떠는 매미의 몸에 묻은 물감을 닦으면서. 공을 차는 소리, 이리 오라는 호통, 가끔 부는 바람과 텁텁한 땀 냄새. 교복에 묻은 아크릴 물감. 새로 바뀐 쉬는 시간 종소리가 별로고 무섭다는 대화. 시시했다.
오래전에 그린 유화 그림이 굳어가고 있었다. 한 획씩 그리다 보면 소년 A가 곁에 와 어느 세월에 끝내냐며 혀를 찼다. 부끄러웠다. 상관없었다. 어느 순간 나도 소년 A가 본 바다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달하지 못한 세계, 네 옷깃에 묻은 물감 자국, 부풀어지던 눈, 질투, 부러움, 덧칠하다 보면 종국에는 네가 좋다는 말. 네 그림이 좋아. 좋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 놀리진 말아줘. 나 들었어. 프랑스로 유학간다고 했지? 그림을 그리는 게 그렇게나 힘이 들고 사랑스럽니. 그런데 난 아니야. 찬송하기 바쁜걸.
반 고흐와 니콜라 푸생.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도 아름답지만. 소년 A…. 나는 미술실 조각상을 전부 파랗게 칠하고 싶어졌다. 데생을 사랑한다는 화가의 말. 나도 그래. 전부 그리고 싶어져요. 병에 걸린 것 같아요. 매미가 온몸을 기어 다니고. 떨려요. 견딜 수 없어요. 그게 뭔진 몰라요, 그냥 다.
르네상스 시대. 종교가 점점 물러났고 사람들은 춤을 줬지. 그럼에도 주의 그림이 남아있었다. 방과후 견학, 미술관의 구석에서 나귀를 타고 걷던 주. 옷자락이라도 만지려는 여자와 나병 환자. 손가락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말에, 들풀에 숨어 손가락을 훔치던 나병 환자. 간절한 마음. 손이 없는 주. 그처럼 나는 내 손가락은 소년 A에게 주고 싶었어. 동시에 먹고 싶었어. 병명을 알려줘. 매미가 울고 테레핀 냄새는 빠지지 않고 공을 차는 아이들의 시큼한 땀 냄새가 불어오는 미술실. 복도 끝에서 나는 물기를 털면서, 네가 좋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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