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의 밑색
- 작성자 현재이
- 작성일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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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쓰이지 못한 색들이 칠해지는 팔레트여서
밤이 되면 더 많은 빛들이 눌어붙곤했다
어둠이 걷고 있는 산책로는 리넨 캔버스처럼
가로등 불빛으로 듬성듬성
박음질 되어 있었고
물결은 여러 번 덧칠한 임파스토 결처럼
표면 위로 투터운 표정을 숨겼다
주름지는 물결은
유화 물감이 덕지덕지 굳어버린
어느 화가의 지문을 닮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
어떤 시간대의 풍경인지 알 수 있었다
복층으로 포개어진 하늘 아래서
나는 낮보다 밤의 물결에 더 많은 색이 칠해지는 이유를
혼자 알고
옅어진 색들이 서로를 통과하는 시간대면
물감을 쌓아 올린 그림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강을 따라 걸었다
그 위에 어떤 색을 덧칠할지 고민하며
어둠과 손을 맞잡고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면
강을 깊이를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게
어쩐지 마음에 들었고
물살이 일 때마다 캔버스에서 지워낸 흔적들이
강의 바닥에서 살아나는 것 같아
중얼거렸다
물결에 덧씌워지는 글레이즈는
바닥을 다 덮지 못하고
발걸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이 곳이 어디쯤의 붓 자국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이 길의 테두리도
강의 깊이도
전부 윤곽 없이 그어진 연필선 같아서
그 지문 같은 물결이
어떤 색을 가리키는지 들어보기 위해
나는 수영 금지 푯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금지의 언어 너머에 있는 미완의 색을 알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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