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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여름을 베어물며문장청소년문학상
가습기와 에어컨을 모두 끈 채로, 맞이하는 여름은 생각보다 더 덥고, 꿉꿉하다. 습기가 가득 찬 여름의 공기, 나무와 바람이 만약 신이라면, 지금, 이 날씨를 견디는 우리를 보며 신이 날 것 같다. 축축한 벽지와 눅눅한 얼굴과 몸, 그들이 원하는 게 인간의 벌이라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그 벌을 모두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후 그들을 만난데도 나는 떳떳하다.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 더 한 것들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대에서, 사람 한 명 한 명 더 깊은 곳으로 추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방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생각보다 차갑다. 여름인데, 이런 바람은 여름과 어울리지 않지만, 바람은 바람이다.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수능 대비 대신, 글만 쓰는 것도 결국 나지만, 책임은 언제나 두렵다. 그러니까, 노트북을 들고 재빨리 거실로 나가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은 휴대폰을 넘기고 있다. 이 쇼츠 하나만 더 보고 공부하는 거다. 그래, 딱 하나만 더 보고. 더 더워지기 전에 공부를 해야지 하면서도, 공부를 끝없이 밀어냈다. 손에 땀이 고이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앞 골목에서 집 쪽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현재 시각 14시다. 동생 희열의 하교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그때부터 기침이 나도 모르게 갈비뼈를 짓누르고 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거부 반응. 오늘도 하루의 대다수를 휴대폰에 다 썼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언제나 빨리 학교를 나간다. 그러면서도 매일 학교를 빠지고 싶다고 희열이는 이야기한다. 물론, 내가 학교를 쉬기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그러나 그에게도 지금 상황이 나쁘지마는 아닐 거다. 엄마, 아빠 출근해도 집에서 항상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그래도, 내가 미워 보일 수도 있을까. 아직 어리니까, 그런 상황은 일단 내버려두고 옷이나 껴 입자. 언제부터 녹아갔는지 모르는 벽지 위에 걸린 옷을 꺼내 입으며, 인간이면서 인간 다워 보이려고 했다. 그게 방과 후가 끝난 희열과 본인의 자식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자 안심이기에.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홀스를 입에 물고 흰색 마스크를 입가에 걸쳤다. 이제, 날 그저 학부모 같은 청소년으로 봐 줄 수 있겠지. 오늘도, 작년 여름처럼 습기가 창문을 적셨고, 도로에는 물웅덩이가 깊게 파여 있다. 인공적으로 다시 타임 루프 한 것도 아니면서. 감기기가 아닌 기침이 작년 초 학교를 다닐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나를 잡을 수 있는 타인은 없지만, 유일한 내가 나를 잡을 수 있는 것.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원조 고등학교에서 열공을 하고 있을 나를 지지한 친구들과 나를 고교에서 내 쫓은 친구와 선생님의 얼굴에 대하여 올해는 어떻게 지낼지 생각한다. 그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자체가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좋은 추억을 꺼내 되새김질
작성자 송희찬 작성일 2025-12-23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캔버스의 밑색문장청소년문학상
강은 쓰이지 못한 색들이 칠해지는 팔레트여서 밤이 되면 더 많은 빛들이 눌어붙곤했다 어둠이 걷고 있는 산책로는 리넨 캔버스처럼 가로등 불빛으로 듬성듬성 박음질 되어 있었고 물결은 여러 번 덧칠한 임파스토 결처럼 표면 위로 투터운 표정을 숨겼다 주름지는 물결은 유화 물감이 덕지덕지 굳어버린 어느 화가의 지문을 닮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 어떤 시간대의 풍경인지 알 수 있었다 복층으로 포개어진 하늘 아래서 나는 낮보다 밤의 물결에 더 많은 색이 칠해지는 이유를 혼자 알고 옅어진 색들이 서로를 통과하는 시간대면 물감을 쌓아 올린 그림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강을 따라 걸었다 그 위에 어떤 색을 덧칠할지 고민하며 어둠과 손을 맞잡고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면 강을 깊이를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게 어쩐지 마음에 들었고 물살이 일 때마다 캔버스에서 지워낸 흔적들이 강의 바닥에서 살아나는 것 같아 중얼거렸다 물결에 덧씌워지는 글레이즈는 바닥을 다 덮지 못하고 발걸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이 곳이 어디쯤의 붓 자국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이 길의 테두리도 강의 깊이도 전부 윤곽 없이 그어진 연필선 같아서 그 지문 같은 물결이 어떤 색을 가리키는지 들어보기 위해 나는 수영 금지 푯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금지의 언어 너머에 있는 미완의 색을 알고 싶어서
작성자 현재이 작성일 2025-12-12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소설 고목과 파수꾼문장청소년문학상
잿빛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창문에 부딪친 빗물은 먼지를 씻겨내며 미끄러졌다. “큰일인걸.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아.” 운전석에 앉은 종석이 말했다. 와이퍼가 불쑥 나타나더니 창을 닦기 시작했다. 빗줄기와 와이퍼의 소리로 내부는 순식간에 산만해졌다. 그리고 나성은, 작은 점이 되는 기분이었다. 시끄러운 도시 한가운데서 홀로 옹송그리는 기분이었다. 비로 이루어진 대도시였다. 차는 안개로 둘러싸인 고속도로를 달렸다. 나성은 유리창에 머릴 기대 자동차의 떨림을 고스란히 느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두었다. 분위기를 환기할 겸 튼 라디오에선 게스트로 온 아이돌의 신간 홍보가 열심이었고 나성은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굴렸다. 아직도 한 시간을 더 달려야만 했다. 마침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제보자였다. 그 사람은 시내의 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말했고, 나성은 약간 늦어질 수 있음에 양해를 구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종석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가지 말자고 했잖아.” 종석은 나성의 매니저 겸 카메라맨이었다. 그보다 앞서,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유튜버로서 수입을 벌기 시작할 무렵의 나성은 그를 찾아온 종석을 동업자로 맞이해줬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라는 말이 지닌 효험은 강력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성은 종석의 제안을 재고할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종석의 성격은 퍽 껄끄러운 편이었다. 가령 지금의 상황과도 같이. “역시 백반집을 가는 게 맞았어.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비도 오고.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산에 가겠다는 거야? 당장 더 나은 선택지가 보이는데 굳이 이런 깡촌까지 기어 들어가야 되는 이유가 나는 납득이 안 되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평소에는 잘만 있다가도 한 번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폭발해버렸다.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듯한 성격은 어른이 된 종석이 버려야 할 부분이었다. 그의 마음은 정말이지 사춘기 소년의 그것과도 비슷해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혼자 안정을 되찾고는 했다. “방금은 미안했다, 야.” 종석 역시도 자신의 문제를 분명 인지하고 있을 테지만, 무릇 문제라는 건 인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은 나성이 감내해야만 할 부분이었다.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바닷가로 향했다. 약속시간을 30분가량 초과해서 그들은 겨우 카페에 도착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잇, 괜찮습니다, 팬입니다.” 따위의 대화들로 제보자는 두 사람을 맞았다. 제보자는 나성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어색하게 뒤따라온 종석과 악수를 나누었다. 종석은 언제까지나 카메라 뒤의 사람이었으므로 시청자들은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따라서 대화의 주도권은 언제나 나성이 쥐었다. 따뜻한 커피 세 잔을 테이블 위에 두고, 나성과 제보자는 마주앉았다. 종석은 나성의 옆에 앉았고, 나성을 올려다보는 각도의 카메라를 테이블에 설치했다. 녹화가 시작되자 대화가 시작되었다. “제가 메일을 보낸 까닭은 다름 아닌......산에서 집도 없이 홀로 거주하는 한 노인 때
작성자 구포대교 작성일 2025-11-28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수필 긁어 부스럼문장청소년문학상
나에게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생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될 무렵 아토피를 앓았던 언니와는 달리, 내 경우 한동안 피부에 아무런 이상 증세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런 날 보며, ‘얘는 괜찮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하셨다. 그러다 네 살 무렵 찾은 한 소아과에서 나에게 아토피 판정이 내려진 건, 부모님께 청천벽력 같았을 것이다. 언니는 아기 때 이후로 발현되는 일이 없었던 반면, 나는 성인을 앞두는 지금까지 줄곧 아토피에 시달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릴 적엔 붉게 달아오르고 피딱지가 앉은 피부를 거리낌 없이 내보이고 다녔다. 그로 인한 관심이 불쾌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가벼운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내보이지 않았고, 어른들은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며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곤 했는데, 그걸 받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아이들이었는지, 무지한 어른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내가 가진 피부염에 전염성은 없는지 물어왔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만성 질환에 전염성이 있었다면, 세상 모두와 거리를 두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식구들에게마저도…. 나에게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내 곁에 있길 꺼리는 눈치라면, 필시 피부 때문이리라 넘겨짚고는 묻기도 전에 해명하곤 했다. 옮기는 거 아니니까, 괜찮다고. 남이 오해를 하더라도 내가 풀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의 나는 무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그리 가볍게 넘기지는 못할 것 같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아토피가 일어나는 양상이 바뀌었다. 팔다리 접히는 부위나 목, 손목과 손등과 같은 부위에만 상처가 났던 이전과는 달리, 얼굴부터 시작해서 몸 곳곳으로 넓게 번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피부가 심하게 일어났다가 아물기 시작할 때면 하얀 가루 같은 각질이 떨어졌다. 그 무렵 밖에 나갔을 때, 특히 등교했을 때가 관건이었다. 긁지 않아도 온몸에서 각질이 눈이 오듯 쏟아져 내려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각질이 잘 보이는 어두운 옷을 피하기 시작했다. 교복 조끼와 치마가 군청색이라, 아무리 더워도 위에 흰 외투라도 덧대 입는 것이 최선이었다. 곱지 않은 눈길이 느껴져도 나로서는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는 그런 시선을 외면하지 못하는 계기가 생긴 일이 있었다.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종일 자습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작년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나는 그 와중 아토피가 악화되어, 공부에 집중하기는커녕 그냥 버티자는 심산으로 자습 내내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내 짝으로 앉은 아이가 그의 대각선 앞자리, 즉 내 앞자리에 앉은 자신의 친구에게 다가가선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사자를 가까이 두고 말할 리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들을수록 나를 향한 이야기
작성자 김희윤 작성일 2025-11-20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감상&비평 사회가 서술하는 ‘남성적 언어’: <꽃처럼>을 읽고문장청소년문학상
[여성혐오: 사회학자 앨런 G. 존슨(Allan G. Johnson)에 따르면, “여성혐오란 여성을 여성이란 이유로 혐오하는 문화적 태도”이다.]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하계에 내려온 일을 오오야마츠미는 기쁘게 여겼다. 대대로 미와 영속을 더불어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천손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는데, 나란히 니니기의 동반자를 자처한 이들은 꽃의 신 코노하나사쿠야히메와 바위의 신 이와나가히메였다.그러나 니니기는 둘을 모두 아내 삼는 대신 미모의 코노하나사쿠야히메만을 취하고, 이와나가히메는 추하다는 이유로 곧장 돌려보냈다.오오야마츠미는 진노하여 니니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었다.‘이와나가히메가 있어 바위와 같이 영원하고, 코노하나사쿠야히메가 있어 꽃과 같이 번영할 수 있기에 나는 여식을 나란히 바쳤다. 만일 둘을 함께 맞아들였다면 천손은 피고 지지 않는 영광에 싸이었을 것이다. 천손의 선택으로 후생은 눈부시게 피어나되 찰나에 쇠하여 질 운명이다.’이리하여 영원을 내친 천손 내리의 생은 그저 피고 지는 꽃을 닮게 되었다.이것을 인간의 삶이 꽃처럼 덧없는 세계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중 도입부일본 신화, 를 차용함1. ‘남성적 언어’일부다처제란 무엇인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하나의 제도로까지 자리 잡고 있었던 이 구도는, 단순히 부부간의 개인적인 권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다처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만연한 성별 권력 격차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 구도가 무너져있는 곳에서부터 이 기묘한 세계는 출발한다.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거느릴 수 있는 일부다처제는 단순히 이것을 행하는 한 부부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균형을 무너트린다. 결혼과 동시에 부부 사이의 관계는 전혀 동등한 형태를 띠지 못하고, 성적, 경제적, 권위적인 지배권이 모두 남편에게 속하게 된다. 이때 여성은 배우자가 아닌, 남성의 재산 혹은 번식 수단으로 종속되고, 정립된 여성의 권위는, 그 사회의 모든 여성에게로 이어진다.ㅡ에서 나오는 두 여성(꽃의 신, 바위의 신)은 천손의 동반자를 ”자처“했다고 서술된다. 하지만 오요야마츠미가 두 딸을 천손에게 “시집보”낸다는 표현과 “바친다”는 표현을 살펴보면 ”자처“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소설은 두 딸이 아버지-남편으로 넘어가는 자리에서 가부장제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한 남성의 두 배우자로 들어가기를 “자처”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의 고유한 신적 성질(꽃과 바위의 성질)은 ‘아버지가 남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친다”는 표현을 통해 아버지는 두 딸이 자신의 소유물임을 알고 있다. 천손 또한 두 여성을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할 사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꽃의 신은 천손의 배우자가 되지만, 그것은 천손과 같은 위치에서 생을 함께 살아갈 동반자적 관계가 아니다. 꽃의 신이 천손의 배우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취”했다고 서술되며, 이로 인해 부인은 그저 “취”해지는
작성자 방백 작성일 2025-10-31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감상&비평 같은 캐치볼에서 다른 궤적 만들기문장청소년문학상
가끔씩 시를 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제목이 정말 누구와도 겹치지 않을까? 며칠 전 그 궁금증을 타파할 수 있었다. 그때 난 안희연 시인의 과 황인찬 시인의 를 읽고 있었다. 각 시집에서 이라는 제목의 시가 각각 있었다.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다르게 쓰여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말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세계가 생기고 구축하고 그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오로지 자신이 되니까. 평소 시를 읽거나 쓰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만 최근 들어 ‘시란 뭘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 시들은 그런 생각을 조금이나마 잊히게 해줬다. 시를 잘 모르거나 조금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많고 많은 시 중에 이 시들을 고른 이유.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어 이런 흥미를 발견하고 또 같은 제목으로 쓰여 다른 내용인 시를 각각 분석해보면 어떨까?라고 느낀 종착점. 평소 캐치볼하면 ‘주고 받는다’, ‘손에 꽉 잡힌다’라는 특징이 떠오른다. 과연 이 시도 그런 내용만 가득할까?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또한,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건 각 시인의 시를 분석하고 이들의 시 세계와 마인드를 엮어 나타내기. 자, 이제 한 번 캐치볼을 던져보자! 캐치볼 / 안희연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불타는 공이었다 되돌려 보내려면 마음의 출처를 알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투수는 보이지 않고 언제부터 내 손엔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을까 벗을 수 없어 몸이 되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알 수 없겠지, 이 모든 순서와 이유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나에게 다정해지려는 노력을 멈춘 적 없었음에도 언제나 폐허가 되어야만 거기 집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왔을 것이다 불행을 막기 위해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뭐든 미리 불태우려고 내가 받으며 노는 시간 그래도 가끔은 지평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 불타는 공이 도착했다는 것은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다 -> 이 시는 화자가 예고없이 날아든 공을 받는 상황이다. 처음엔 공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더 커보인다. 전개될수록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다시 날아오는 것에 대한 준비를 마친다. 캐치볼은 순식간에 날아오는 특성이 있다. 단순히 불타는 공은 공 그자체가 아닌 예고 없이 우리에게 오는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 모두 그런 경험 한 번 즈음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기력해진 날, ‘인생노잼시기’, 우산이 없는데 소나기가 내림 etc. 이런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다. 시인을 화자가 대신해 이 시로 알려주고 싶은 건 ‘고난과 시련에 대한 의지하는 법’이다. 처음엔 마음의 출처도 몰랐지만 나중엔 또 다른 불행을 일부러 부르고, 고독을 이해하게
작성자 yerbi 작성일 2025-09-28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소설 초록 안락사문장청소년문학상
담쟁이덩굴이 된 소월을 시멘트벽 아래에 하나씩 심었다. 총 마흔네 개였다. 손이 금방 붉어졌다. 뼈마디에 찬바람이 스미는 듯했다. 벽 사이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씨앗 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소월은 오 년 전 남편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 년 동안 홀로 좁은 방에서 살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좁고 음습한 악취가 풍기는 방이었다. 소월이 그 방에서 초록 안락사법이 있어 다행이라고 할 때, 나는 미치도록 반박하고 싶었다. 일흔다섯이 되면 강제로 식물이 되어 죽어야 하는 법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월처럼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월은 예쁜 꽃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물을 붓자 담쟁이는 빠르게 자라났다. 담쟁이를 눈으로 쫒았다. 밑에서부터 파릇한 잎사귀가 돋았다. 금세 탐스럽게 되어 선명한 녹빛을 띄었다. 잎사귀를 잡아보았다. 보드랍고 면적이 넓었다. 서희의 손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떨렸다. 가슴에 화한 민트 사탕이 떨어진 것 같았다. 소월은 죽기 전에 자기가 어떤 식물이 되던 벽 아래에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으로 소월이 원망스러워졌다. 나는 소월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 또한 소월이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죽으면 날 심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낮달을 봤다.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를 따라가다 보니 낮달이 보였다. 지난밤 보았던 달보다 더 커다란 반달이었다. 마치 종이를 잘라 물 위에 버려둔 반투명한 종이달 같았다. 곧 녹아 없어질 듯 엷게 빛났다. 시멘트벽은 청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상태였다. 담쟁이덩굴은 페인트 벗겨진 자리를 덮었다. 담쟁이덩굴이 벽 끝에 다다랐다. 소월의 집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그동안 아스팔트 끝자락에 자라난 민들레가 시체인지 의심했다.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의 노인이 앉아있었다. 오른편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청색 가죽 시트에 등을 기댔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히터가 세게 틀어져 있던 탓에 공기가 건조했다. 창밖을 보다 보니 길가에 자란 들풀마저 신경 쓰이기 시작하였다. 소월의 집에 다녀온 뒤로 신경이 예민해졌구나 싶었다.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뒤에 사마귀가 있는 노파가 비니를 푹 눌러썼다. 비니를 쓴 노파는 볼이 파여있었고 자주 기침했다. 멀끔한 남색 양복을 차려입은 노인이 노파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머리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였다. 노파는 비니를 올리고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이 품에서 사탕을 꺼냈다. 호박엿이에요. 노파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호박엿을 받았다. 노인이 노파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군청으로 갑니다. 초록 안락사는 죽기 사흘 전부터 신청해야 블랙카드를 받으니까요. 노인은 짧게 탄식했다.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노인이 대답했다. 가족이 있습니까. 노파의 질문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손녀 한 명이 있습니다. 췌장암 말기인 저를 이 년 동안 살게 해준 고마운 아이입니다. 노파의 눈에는 안광
작성자 유성화 작성일 2025-08-01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UFO가 안 보이세요? - 등굣길 3문장청소년문학상
안양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횡단보도 없는 회전 교차로 한가운데 불시착한 UFO 하나가 박혀 있다 버스와 택시가 의식을 치르듯 그 주변을 돌고 의식에는 항상 제물이 필요하지 사람들은 홀린 듯 버스 정류장에 다가와 툭 고개를 떨어트린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반대쪽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없는 거야 나중에 친구와 같이 왔을 때서야 지하상가를 통해 건너야 한다는 걸 알았어 지방에는 지하상가가 별로 없거든 저 UFO의 주인은 어디 있는 걸까 그 주변 잡초가 항상 정리되어 있던데 크리스마스에 트리까지 세우는 걸 보면 벌써 이곳에 적응했나 봐 난 아직 인천행과 서동탄행이 헷갈리는데 며칠 전에도 관악역 방면에 서있던 걸 친구들이 끌고 와 데려다줬어 한 아이가 UFO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게 뭐냐고 묻고 있다 옆에 있는 엄마는 그저 조형물이라고 한다 아이는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표정으로 UFO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허, 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UFO의 주인인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다 하나 같이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그것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 저게 조형물이라면 달달 외워야 했던 지하철의 노선도 그 복잡함도 가짜여야 할 거야파릇파릇한 이파리가 UFO 주변에 자라나는 여름 나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작성자 카페라떼 작성일 2025-04-30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감상&비평 고다르(론): 고다르와의 대화문장청소년문학상
고다르의 죽음 : 늦었지만, 이른 늦-초가을의 추도문 그러니깐, 2022년 어느 늦여름이었다. 늦여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도보에 떨어진 낙엽이 가끔씩 눈에 들고는 하는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나로서는 이 시기를 무어라 단정 짓기 어려운 것이었다. 수요일이었고, 몸이 아파 학교를 조퇴한 상태에서 여느날과 다름없이 영화 한 편과(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영화는 아마 테렌스 멜릭의 였을거다) 도서 한 권을 곁에 두고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당신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누벨바그의 거장,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하다” 기사가 떴다. 당신의 이름은 고다르. 어디선가 스쳐가듯 들어본 적 있었으나, 당신은 내게 어색한 사람이었고, 난 어정쩡 그날 오후를 보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지나, 2023년의 겨울 끝자락 무렵, 당신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본 세 편의 영화. 와 , 그리고 . 당시에는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런 영화가 다 있지, 싶은 정도. 그랬던 나는, 어느새 장 피에르 멜빌을 존경하던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새뮤얼 퓰러와 프리츠 랑을 사랑하던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신이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풀어놓기에는 너무 늦은걸까. 당신은 이 세상에 없다. 이 글이 쓰여지기 불과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당신의 압도적인 지력으로 세계 영화사와 시네마의 의미를 탐구하는 걸작 과 를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당신에 대한 나의 마음은 싹 트는데, 내가 보지 못한 당신의 영화는 이제 과 단 두 편 뿐이다. 이제 그 마음마저 끝에 다다르고 있는 것일까.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나는 그 두 편 보기를 계속해서 미루고 당신의 작품들을 여러번 돌려보고 있다. 그러던 중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두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은 . 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건 이번이 두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첫번 째는 칸 영화제에서 였다. 그곳에서 를 상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에 가려고 애썼다. 물론 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상영일이 지났을 때, 나는 좌절했다. 미치도록 보고 싶은 영화가 바로 당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시네필로서 당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리고 반 년의 시간이 흘러 그 영화가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이 아니면 당신의 영화를 볼 기회는 정말 없을지도 모른다. 방학시기와 여행시기가 맞물려 운 좋게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갈 수 있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건, 당신의 유작이 상영되었던 상영일이 당신의 기일이었다는 것이다. 선선한 저녁이었고, 내가 당신의 부고를 들었던 날이기도 했다. 지금이 2024년이라는 것만 의식하지 않게 되어버리면, 나는 마치 당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경계에 우두커니 서있게 되었다. 알 수 없는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당신은 이 세상에 없
작성자 화자 작성일 2025-03-26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수필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시인이다문장청소년문학상
1. 선물은 증표이다. 지난 1월 20일 글틴 캠프 참여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날, 대전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나는 보았다, 성심당 앞에 죽 늘어선 대기 줄을. 역 안을 오가면서도 사람들 양손에 쥐어진 성심당 종이가방이 보였다. 대전인으로서 의문이었다. 성심당 빵이 값싸고 맛있긴 하다. 그래도 저렇게 한 시간 동안 줄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닌데. 그리고 이 의문은 뜻밖이게도 지지향에서의 경험으로 풀렸다. 지지향은 글틴 캠프가 열리는 장소다. 글틴이란 것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으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문학 작품을 올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글틴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 위원회는 매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학 캠프를 개최하는데 그것이 글틴 캠프다. 지지향에서 맞는 두 번째 밤, 나는 1층에서 다른 애들과 서로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누고 있었다. 글틴에 올린 내 글을 보여줄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이상했다. 어떤 애도 그랬는지 나보고 왜 그렇게 긴장했냐고 웃으며 물었다.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던 기억이다. 하지만 감상을 기다리면서 왜 긴장이 됐는지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었다. 그날 새벽, 침대에 누워 그것을 생각했다. 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나? 저녁에 괜히 커피를 마셔 잠이 안 온 턱에 온갖 기억이 떠올랐다. 예상외로 내겐 그런 경험이 많았다. 오래간 준비한 과제를 발표하거나, 기말고사가 끝나고 성적표를 받았을 때가 대표적이겠다. 그러나 저 두 경험보다 이 글과 화제에 더욱 알맞을 경험이 있다. 바로 사랑 편지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마음을 고백하는 사랑 편지 말이다. 재작년에 처음으로 사랑 편지를 쓰고 짝사랑했던 애한테 전해줬다. 전해주며 나는 바로 앞에 있던 그 아이의 눈을 마주 보지도 못했다. 그랬다면 아마 심장이 터졌을 것이다. 결과는 안 좋았다. 친구들은 모르는 사이서 냉큼 고백부터 하기보다는 말부터 걸고 친해지는 게 우선이 아니겠냐고, 뇌는 비상식량이냐고 놀려댔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 얘기를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그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들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연필로 편지를 썼던 시간뿐 아니라 어떻게 적어야 할까, 애타다가도 징그럽게 헤벌쭉 웃었던 시간이 그곳에 담겨있었다. 지지향서 다른 애들에게 보여줬던 글도 마찬가지다. 쓰기까지 고민했던 시간, 그리고 썼던 시간 그 정성의 시간이 글 하나하나에 담겨있었기에 보여주면서 나는 긴장했던 것이었다. 편지를 건네며 그리 떨었듯이 말이다. 다시 대전역으로 돌아왔던 날, 마찬가지로 성심당 앞은 긴 줄이 늘어섰고, 사람들 양손에는 빵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때도 잠깐 들었던 의문, 왜 저걸 사려고 한 시간씩이나 기다릴까?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나름의 해답을 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사가는 빵에는 마음과 함께 기다렸던 한 시간이 같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 한 시간이 사람에 따라서 가치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 선물을 받을 사람에게는 어떤 보석보다 귀하리라 믿는다. 또한 그렇기에 그 선물은 증표이기도 하다. 나는 너를 위해 내
작성자 금안백 작성일 2025-02-12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미신문장청소년문학상
손가락을 먹게 해줘 소년 A가 그린 바다. 실없게 발음 연습도 했다. 소년 A가 그린 바다 그림. 소년 A가 그린 기린 그림. 소년 A가 그린 기린 그림은 목이 긴가 짧은가. 소년 A가 그린 바다는 긴가 짧은가. 손바닥만 한 이젤인데, 수평선이 펼쳐진 기분. 이런 말은 하기 싫었어. 너도 알겠지만 난 부끄럼이 많으니까. 정말이지. 더웠다. 넌 너무 예쁘고. 나는 까맣게 칠한 손톱처럼 제멋대로야. 여름이 오면 까맣게 칠한 손톱은 태양을 흡수했다. 손끝에 열이 많았다. 자꾸 땀이 나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테레핀 냄새가 나는 미술실. 창문을 열고 붓을 씻으면 졸음이 쏟아졌다. 창문을 열어서 매미 소리가 더 크게 들렸지만 나는 내가 테레핀 냄새에 취해 매미를 씻고 있는 것 같았다. 손끝에서 부르르 몸을 떠는 매미의 몸에 묻은 물감을 닦으면서. 공을 차는 소리, 이리 오라는 호통, 가끔 부는 바람과 텁텁한 땀 냄새. 교복에 묻은 아크릴 물감. 새로 바뀐 쉬는 시간 종소리가 별로고 무섭다는 대화. 시시했다. 오래전에 그린 유화 그림이 굳어가고 있었다. 한 획씩 그리다 보면 소년 A가 곁에 와 어느 세월에 끝내냐며 혀를 찼다. 부끄러웠다. 상관없었다. 어느 순간 나도 소년 A가 본 바다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달하지 못한 세계, 네 옷깃에 묻은 물감 자국, 부풀어지던 눈, 질투, 부러움, 덧칠하다 보면 종국에는 네가 좋다는 말. 네 그림이 좋아. 좋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 놀리진 말아줘. 나 들었어. 프랑스로 유학간다고 했지? 그림을 그리는 게 그렇게나 힘이 들고 사랑스럽니. 그런데 난 아니야. 찬송하기 바쁜걸. 반 고흐와 니콜라 푸생.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도 아름답지만. 소년 A…. 나는 미술실 조각상을 전부 파랗게 칠하고 싶어졌다. 데생을 사랑한다는 화가의 말. 나도 그래. 전부 그리고 싶어져요. 병에 걸린 것 같아요. 매미가 온몸을 기어 다니고. 떨려요. 견딜 수 없어요. 그게 뭔진 몰라요, 그냥 다. 르네상스 시대. 종교가 점점 물러났고 사람들은 춤을 줬지. 그럼에도 주의 그림이 남아있었다. 방과후 견학, 미술관의 구석에서 나귀를 타고 걷던 주. 옷자락이라도 만지려는 여자와 나병 환자. 손가락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말에, 들풀에 숨어 손가락을 훔치던 나병 환자. 간절한 마음. 손이 없는 주. 그처럼 나는 내 손가락은 소년 A에게 주고 싶었어. 동시에 먹고 싶었어. 병명을 알려줘. 매미가 울고 테레핀 냄새는 빠지지 않고 공을 차는 아이들의 시큼한 땀 냄새가 불어오는 미술실. 복도 끝에서 나는 물기를 털면서, 네가 좋아. 좋아.
작성자 미우 작성일 2024-12-29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
시 콘크리트 작전문장청소년문학상
콘크리트로 만든 왼쪽 벽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오른쪽 벽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위쪽 벽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아랫쪽 벽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뒤쪽 벽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앞쪽 벽은 없다 그들은 고대 로마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름은 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다 그들은 원래 여럿이었다 차에 태워져 뱅뱅도는 가혹한 체벌 후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시멘트, 물, 모래, 자갈이 아니다 시멘트, 물, 모래, 자갈은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시멘트, 물, 모래, 자갈로 이루어졌다 시멘트, 물, 모래, 자갈은 그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한 달 전 공구리 쳐졌다 아니, 양생되었다 과거 그곳은 였다 이제는 빈 곳이다 한 달 전에, 그들은 지도에 없었다 지금 그들은 지도에 있다 그들은 하나의 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은 이제 생겼다 그래서 바비큐가 없다 배드민턴이 없다 산책이 없다 애정행각은 있다 오른쪽 벽은 매끈하다 그래서 손상이 심하다 왼쪽 벽은 약간 너덜너덜하다 그래서 손상정도가 덜하다 아랫쪽 벽은 희다 윗쪽 벽은 거칠다 뒷쪽 벽은 어둡다 그들은 단단하다 오른쪽 벽은 항상 오른쪽에 있을 것이다 왼쪽 벽은 항상 왼쪽에 있을 것이다 위쪽 벽은 항상 위쪽에 있을 것이다 아랫쪽 벽은 항상 아랫쪽에 있을 것이다 뒷쪽 벽은 항상 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엔 거미가 있다 거미는 왼쪽 벽에 없다 거미는 오른쪽 벽에 없다 거미는 위쪽 벽에 없다 거미는 아랫쪽 벽에 없다 거미는 뒤쪽 벽에 없다 거미는 앞쪽 벽에 없다 거미는 거미집에 있다 거미는 허공 어딘가에 아주 투명한 거미줄을 치고 곡예를 하며 살고 실을 뿜고 실을 잣고 실을 엮고 실로 집을 만든다 실은 벽과 벽의 사이에 있다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 위쪽의 아랫쪽 아랫쪽의 위쪽 거미는 벽에 없고 거미집에 있다
작성자 알레고리 작성일 2024-09-08 댓글수 0 좋아요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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