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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우리에게 천국어 변명-조성래 <천국어 사전>을 읽고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5-07-31
  • 조회수 1,481

변명이라는 단어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 친구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동생을 보면 훈수라고 불리는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그들은 뭐 때문에 늦었다고, 뭐 때문에 이것을 했다고 변명한다. 나 역시 변명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나는 위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명백한 잘못을 한 상황에서 변명하는 사람을 싫었다. 또한 위 생각은 나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그러나, 변명이 나오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경우가 많았다. 내 경험으로 이야기하면, 작년에 담임 선생님께서 "희찬이가 학교에 남아 있으면, 좋은데 기침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선생님은 네 담임이기도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담임이기도 하니까."라는 변명으로 내게 자퇴를 권했던 지난여름과 같은 상황이 있다. 처음에는 그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 역으로 화가 나고, 억울했다. 한 사람만 마음 편하게 지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변명이라는 행위 자체를 좋게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나아가던 중 조성래의 <천국어 사전>을 선물 받았다. 이렇게 나에게 온 그의 작품은 변명 덩어리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위 작품에서 말하는 변명은 밉지 않았다. 역으로 그의 말에 동요되었다.


안개를 걷으려고

칼을 휘두르며

{시인의 말}

시집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말이 있다. 시인이 위 시들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 즉 시인의 말이다. 그러나 위 시집의 시인의 말은 안개를 벗기 위해 칼을 휘두른다는 조금은 날이 선 문장이다. 안개를 걷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시인은, 안개 속을 걷는 존재처럼, 춥고 무서울 것이다. 그럼에도 안개를 걷기 위해, 칼을 휘두른다는 표현은 위 추위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읽힌다. 따라서, 위 시집은 시인이 자신에 고통을 잊게 하려고 쓴 시들이라는 것을 어림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차례를 보면 위 시집은 단순한 사회적 고통이 아닌, 시인이 살아오면서 느꼈을 고통에 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위 시집의 챕터는 총 여섯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인 <무인도>부터 2.3.4부인 <창원, 순천, 부천>, 5부인 <미지>와 6부인 <변명>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보면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왜 하필 6일까? 서양에서 6은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의 시집 <천국어 사전>은 시인의 삶에서 지금까지 느끼고 있는 것. 특히 죽음과 관련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을 암시 시켜준다.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흰 것들이

희구나


언젠가부턴가

착한 사람을 만나면

미안할 일이 닥쳐올 것만 같은


하얀 구름

하얀 파도


아무런 악의도 미움도 없었는데

심지어 사랑도 없었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시신을 끌고

해안선을 따라가네

<무인도>:전문


위 시는 시집을 열고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시이다. 제1부의 제목이자, 1부의 첫 글의 제목인 위 시는 무엇을 전달하고 있을까? 아마도, 처음 나오는 시이니, 시인이 하고픈 말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일단 <무인도>의 화자는 착한 사람을 보면 미안할 일이 닥쳐올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뒤 따르듯 하늘 위의 구름도, 바다 위의 파도도 전부 흰색이다. 시인은 흰 것을 순수의 상징, 착한 것들의 상징으로 말한다. 이처럼 무인도 위에서 화자가 바라 본 모든 것들은 참으로 순수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에서 이 착한 것들이 결국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시신을 끌고 해안선을 따라간다. 그러나, 여기서 한 사람이 화자인지, 지인인지, 독자인지, 혹은 다른 타인일지 명확하게 드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나온 사람은 다음 챕터 마지막 시에서 나오는 듯 보였다.


창원에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중략}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창원> 中


그가 창원에 간 이유는 어머니의 연명 치료를 거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기서 화자는 결국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현실을 살아간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시인이 <무인도>에서 말한 "한 사람"은 죽은 어머니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제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굴까? 시에서 나오는 동생? 죽어버린 어머니? 아니다. 여기서 제일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바로 시인 자신이다.


나는 나를 달래느라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는 날이다

내가 나를 응원할 힘이 없는 날이다 내가 나를

슬퍼하기를 뚝 그친 날이다 나는

나의 밖에 내놓아졌다


{중략}


해치우고도 아무렇지 않은 날이다


<기타노 블루>中


위 시는 제2부인 <창원> 뒤인 3부 <순천>에 나온 시다. 창원에서 있었던 일을 뒤로 하고 그는 쭉 살아 나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달래야 했고, 응원 힘도 없고, 슬퍼할 수도 없는 날들을 지내왔다. 시의 제목인 <기타노 블루>는 일본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다케시 영화 특유의 서늘하고 푸른 색감이라고 한다. 시인은 위 색감 같은 날들을 늘 보내왔다. 항상 미안해했고,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늘 변명하는 자신을 늘 봐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매일 죄책감을 해치우고도, 끝을 맺지 못한, 아무렇지 않은 날들만 보내왔다. 그렇기에 그는 늘 한쪽에 치우지 못한 상처를 매우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 시집을 쓴 이후, 그는 약간씩 회복하는 과정을 가졌을 것이다.


창밖에는

뒤척임만으로도 숲을 이루어 낸

침엽수들이 있다


<회복> 中


위 시는 제1부 <무인도>의 마지막 시다. 그는 많은 변명을 시를 통해 해왔다. 글자 하나, 하나의 무게가 모두 독자에게 와 닿았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시 <회복>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인은 변명이라는 뒤척임 속에서 하나의 숲을 만들어냈다. 이 숲은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고, 꾸준히 자신을 돌아보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속 죄책감을 덜어낸 것일 수도 있고. 나는 숲을 후자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의 뒤척임은 혼자만의 뒤척임이 아니라, 진심으로 구하는 용서, 용기 그리고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혼자 모래나, 메모지에 끄적일 수 있었던 문장들을, 시집으로 만듬으로, 그의 무인도에는 우리 독자가 오게 되었다. 이는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인가 동시에, 회복으로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이렇게 모든 시를 읽고 제목을 다시 보게 된다. 제목인 <천국어 사전> 은 천국의 언어가 모인 사전이라는 뜻과 달리, 시들의 내용은 한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죄책감, 변명, 용서, 위로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나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담임 선생님의 변명을 조금은 이해가 갔다. 나 또한, 기침 틱 때문에 자퇴를 선택했던 그날의 나에게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변명과 함께 나를 용서하고 싶다. 이는 담임 선생님도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나도, 조성래처럼 나의 죄책감과 변명 그리고 위로를 천국어 사전으로 써 본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위해 용서와 변명을 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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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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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6-07-30
대중 앞에 놓인 카타르시스성 폭력-드라마 '참교육'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한국 고전 산문들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띄고 있다. 당장 &lsquo;홍길동전&rsquo;과 &lsquo;장화홍련전&rsquo;의 결말을 두고 비교해봐도 그렇다. 두 작품 모두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복을 받는 결말이다. 이러한 구성 방식과 결말은 한국 근대 이전의 소설들 속에서 주를 이뤘다. 그러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한국 고전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도 상업 소설인 웹소설, 상업 드라마, 상업 영화 등 대중적인 이야기 플롯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일종의 모티프다. 이런 모티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중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라는 모티프는 전 세대에 걸쳐 과거에서 현재까지 매체와 서술 방식을 변주하며 계속 나타난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상업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권선징악과 관련된 모티프가 자주 나타난다. 상업 드라마에서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보여주는 드라마 중 일부는 복수라는 장르를 내세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김순옥의 &lsquo;아내의 유혹&rsquo;, &lsquo;펜트하우스&rsquo;, sbs 시리즈 드라마 &lsquo;모범택시&rsquo;, &lsquo;열혈사제&rsquo;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복수극도 개인에 이야기만을 하는 드라마와 개인을 넘어 사회까지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로 나눌 수 있다. 이로 볼 때 김순옥의 &lsquo;아내의 유혹&rsquo;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복수로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lsquo;모범택시&rsquo; 시리즈, &lsquo;열혈사제&rsquo; 시리즈는 개인과 개인을 넘어 현실 사회 문제도 건드리는 복수극이다. 따라서 &lsquo;열혈사제&rsquo;와 &lsquo;모범택시&rsquo; 시리즈는 각종 사회 문제를 시리즈별로 이야기하여 그려낸다. 반면, &lsquo;아내의 유혹&rsquo;은 구은재와 신애리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복수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차이점은 각각 드라마의 결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김순옥의 &lsquo;아내의 유혹&rsquo;은 악역인 신애리와 정교빈이 죽음으로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극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주인공인 구은재는 그들이 받은 벌을 보고도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구은재는 신애리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신애리는 친구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수의 성공이 결코 행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역으로 한때 악역이었던 애리를 용서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결말을 맺는다. 반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 실현으로 복수를 진행하는 &lsquo;모범택시&rsquo; 시리즈와 같은 드라마는 무지개 운수라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이 사회 문제를 대표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식으로 에피소드별 결말을 맺는다. 그 과정은 복수극과 복수 대행 서비스 안에 맞춰서 폭력적이고, 역지사지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해결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악인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벌하는 모습을 보며 고양된 감정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하지

  • 송희찬
  • 2026-06-29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한강 <<소년이 온다>>

2024년 12월 3일 밤.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친구들이 1학년 마지막 기말고사를 기다리고 있던, 그날 밤. 우리의 일상은 지워질 뻔했다. 평화를 깨트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로. 현재 내란 수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윤석열의 목소리로. 그날도 평소처럼 지냈던 날이다. 7살짜리 동생을 재우고, 그 옆에서 잠들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엄마의 모습만이 잠들기 전, 마지막 기억이다. 그리고 평소처럼 잠을 설치다가 23시쯤 저절로 깨어났다. 그때 엄마와 이모의 통화 소리를 통해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한 사회가 한 사람이자 어느 집단의 폭력으로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그의 계엄이자 내란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멈췄다. 국회의 신속한 대응과 잠을 자지 않고 국회의사당 앞으로 나갔던 수많은 시민 덕분에. 나 역시 새벽 4시까지 내란의 밤을 뉴스로 전달받고 바라봤다. 아침이 될 때까지 끝까지 마주했다. 그때 내 손에 들고 있었던 책은 그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한강의 <>였다. 한강의 <>는 2025년 12월 3일의 밤처럼 폭력의 혼란이 가득했던, 1980년대 광주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한 사람 한 사람. 5월 18일 전후 광주에 있던 사상자와 피해자 그리고 유가족의 시점이 알레고리 형식으로 쓰여 있다. 1부의 동호로부터 시작되어 2부 겹겹이 쌓인 시체 하나인 정대. 마지막 6장에는 죽은 동호 어머니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막을 내린다. 그날 직간접적으로 그곳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의 파트를 넘길 때마다 읽히게 하고 모으게 한다. 1장의 소제목은 ‘어린 새’다.화자는 동호다. 동호는 죽은 정대 혹은 살아 있을 정대를 찾고 있다. 그러면서 추도식이 열리는 성당에서 시체들 사이를 방황하고 있다. 이후 2부에서 정대의 사망 여부가 나타난다. 그는 시체로서 그리고 그 몸에서 튀어나온 혼으로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모습을 바라만 본다. 그런 그는 소설 전체에 있어 혼과 평범한 일상을 지키려던 여린 삶으로 작용한다. 혼은 위 책에서 어린 새이자 흰 새로 묘사된다. 맑고 순수하고 아무 잘못 없는 여린 존재로. 그러나 이런 여리고 순수한 존재들이 국가의 폭력 혹은 사회적으로의 폭력, 개인과 개인 사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폭력을 마주하게 될 때, 그들의 순수한 신체와 색은 변질된다. 이는 흰색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이다. 흰색은 흰색을 더하지 않으면, 색을 잃는다. 초록색과 결합되면 연두색이 되고, 노란색과 결합하면 연한 노란색이 되고, 검은색과 결합하면 연한 검은색이 된다. 심지어 흰색만 있을 때도 바람에 흩어져 오는 먼지로 인해 오염된다. 이런 특징은 소설의 혼과 시체에서도 드러난다. 순수하고 여린 것들이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던 순간들의 마지막이 이렇게 묘사된다.“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 송희찬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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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09
다정한 괴물의 투시-백은선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을 읽고

시집을 배달받은 뒤,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있다. 포장 상자를 열어 주문한 시집을 확인하는 일. 시인의 세상이 아무 문제 없이 시집으로 도착했는지 바라보게 된다. 그 세상이 설령 불안정하고, 생각과 달라 보여도. 도착한 순간만큼은 아끼고 끝까지 응시하게 된다. 포장지에 감싸진 이야기를 뜯어내기 전까지. 그 속에 다정이 들어 있는지, 아픔이 담겨 있는지 몰라서. 시집을 하나의 세상으로 바라본다면, 백은선의 시집 대다수는 삶의 다정함과 삶의 냉혹함을 함께 보여주는 견딤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녀의 시가 주로 들어내는 삶을 견디는 방식은 침묵과 미룸이다. 시집 <>, <> 이 두 삶과 세상에는 수록된 대부분의 시가 연작의 형태를 보인다. 특히 <>은 제목부터가 그녀가 말하는 침묵을 제목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中 그네 아래는 하얀 꽃이다 폴란드 폴란드 새가 날아가는 순간 새는무언가 놓고 가는 거 같고 하얀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불타는 나의 폴란드 아름다운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웃고아이들은 손과 손을 겹쳐 흔들리지 않는 탑을 만들지 소리 없이 날개를 접는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 너는 눈과 코와 입을 잃었고 그 뒤로 떠내려간 입이 부른 노래가 가장 긴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찌를 드리운 노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당신이 결국 갖게 될 미래라고, 그 말은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퍼져나갔지, 그것을 절망이라고 부르려 했지만 젖은 종이에 쓰인 말은 알아볼 수 없고 알아볼 수 없기에 완성되는 폴란드 폴란드계속 그네는 흔들리고 꽃은 하양을 무력한 것만이 유효하다는 믿음은 손쉽게 이루어지면서도 부서지기 때문에 너는 그럴듯한 기분으로 태도를 지키기 좋았지, 시 안에서 꽃이 다뤄지는 방식으로, 미래처럼, 절망하기 위해 태어난 포즈는 늘 호응받기에, 너는 줄곤 들여다보았지, 들여다보지 않는 순간에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그것이 바로 흔들림이라고 적었지 손과 손을 놓고 멀어지는 연인들처럼다리 위에 매달린 기쁜 숨처럼 -49~51p 위 시는 표제작이자, 연작시인 세 편 중, 여는 시의 일부다. 시는 놀이터에서 화자가 ‘그네 아래’를 흰 꽃이라 주장하며 ‘폴란드’라는 인물을 연속으로 호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놀이터라는 장소는 쉽게 말하는 유년과 어린이 상징이기 때문에, 화자가 놀이터에서 생각하는 폴란드는 아이이며, 그 아이는 삼 연에서부터 날아가는 새와 동일시된 존재로 묘사된다. 머물러 있지 않고, 화자 곁을 떠나는 존재로. 아이가 부모 혹은 어른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대체 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 번째는 아이가 성장하여 한 사람이라는 개별적인 사람으로 독립한다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요절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 연작 중 여는 시 부분은 후자의 의미가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불타는. 나의 폴란드”라 구절로. 이렇게 ‘폴란드’를 망자라는 이미지로 바라볼 때, 첫 연의 “그네 아래는 하얀 꽃이다”라는 구절과 뒤에 나오는 노인과의 대화와 물

  • 송희찬
  • 2026-02-28
어른으로 가는 길에 포개진 여러 겹의 어린 삶- <짱구는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을 보고

나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곁을 지켜준 친구 같은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의 짱구. 심심해서 텔레비전을 돌려 볼 때, 깊은 생각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쉰다는 의미로, 텔레비전 속에서 라는 이름으로 송출되는 짱구 가족의 삶을 들여다가 보았다.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비슷한 경험이 하나라도 있을 거다. 굳이 짱구가 아니더라도. 유년 시절에 본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웃으면서 봤을 때가. 그렇게 우리를 웃게 해 준 인물들을 어른이 되거나, 성장했을 때 텔레비전 속에서 마주하면 어떤 생각이 들지.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감각은 인물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짱구 같은 경우 보통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짱구는 여전히 다섯 살이라는 것을. 마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대로 있는 기분과 혼자만 자랐다는 자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가 다섯 살의 짱구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작품 외적으로 보면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성우의 교체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더빙 기준으로 볼 때. 2026년 현재 짱구의 부모인 짱구 엄마와 아빠 모두 성우가 바뀌었다. 짱구 아빠를 맡아준 오세홍 성우는 극장판 22기 부터 우린 그의 목소리를 짱구에서 들을 수 없게 됐다. 그는 2015년 5월에 사망하였기에. 짱구를 오랫동안 사랑해 왔던 사람들의 기억에 있는 짱구 아빠의 목소리는 극장판 21기 에 흔적으로만 남게 되었다.또한 오세홍 성우와 비슷한 사례로 짱구 엄마. 봉미선의 성우인 강희선도 건강상의 이유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결국 떠나게 됐다. 이는 짱구와 인물들의 나이는 멈춰있지만, 그들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은 한 명씩. 녹음했던 목소리로만 남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들이 남긴 캐릭터의 자리는, 후대 성우들이 대체하여 에피소드를 나아가고 있다. 하나의 캐릭터와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도, 떠난 그들의 자리를 후대들이 뒤로한 채, 캐릭터에게 그리고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숨을 놓는다. 짱구를 보며 웃고 떠들었던, 아이들이 10대가 되고,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어도 짱구와 함께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기쁠 수 있게. 그렇기에 는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극장판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특히 자연과 문명 그리고 보호의 관계를 주목한 8기 이나 시대와 계급을 초월하는 전국시대의 슬픈 로맨스를 보여준 10기 와 같은 극장판들이 그러하다. 이 두 극장판 역시 훌륭한 극장판이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가족애와 우정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 더불어 불평등과 차별 같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함축되어 담겨있다. 그러나 이 두 영화 같은 극장판 명작의 대다수는 ‘짱구’라는 캐릭터에서 오는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9기 은 다르게 다가온다. ‘짱구’와 함께 크는 시청자. 즉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은 흔히 말하는 ‘향수병’을 소재로 만들어진 극장판이다. 여기서 말하는 향수란 그리움이라는 감정에서부터 촉발된 잔

  • 송희찬
  • 2026-02-11
그래도 난 동료와 손 잡으며 동행하고-김이듬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를 읽고

작년 12월에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만났다. 그때, 여러 가지 근황을 이야기했다. 그는 12월 18일에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졸업하게 되고, 시험 성적도 원한 만큼, 그리고 딱 한 만큼 나왔다고 했다. 그의 물음과 대답에 축하와 함께 내 근황도 이야기했다. 여전히 글을 쓰고, 검정고시와 수능 그리고 대학까지. 만나지 못한 지난 반년 사이의 성장과 앞으로 어떻게 고등학교 3학년과 대학 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 이런 사소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비효율적이어도. 누가 볼 때는, 이런 우리의 모습이 과해 보일 거다.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다가온 것처럼 걱정하는 행동이 결코 생산적이거나 효율적인 일은 아니다. 역으로 가벼운 수다를 나눌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고, 생산적인 행동 하라고 지적할 것이다. 그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때때론 생산적이거나 완벽하지 않더라도 바라봐야 하는 것이 있다. 현재 내가 타인과 함께 있을 때의 기분, 혼자만 있을 때 몸의 상태나 버릇 등. 이런 것들은 시간이 많이 들더라도 바라봐야 한다. 특히 자신의 일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글쓰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하루, 하루 일기를 적고, 기분과 제 모습을 이미지로 치환하는 일이 결국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일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이기에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 친구에게 김이듬의 시 <후배에게>를 추천해 준 적이 있다. 그녀의 시는 결코 경제적이거나 단아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려한 수사나 특색 있는 은유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내가 추천해 준 <후배에게>는 다양한 일상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나열한다. 커피숍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화자 주변의 이야기. 어찌 보면 산문적이고, 다르게 많으면 꽤 일상의 디테일들이 잘 녹여져 있다. 그런 점 때문에 <후배에게>는 시치고는 분량이 많은 편이다. 분량이 많은 시를 읽을 때면, 독자는 특정 메시지를 기대하며 보게 된다. 그러나 결미와 메시지에 이르기 전에 모든 독서를 사용하면, 집중력을 잃어 길을 잃게 된다. 또한 거창한 분량 대비 메시지가 부족하거나, 힘이 빠지는 결미일 때 독자는 시에 대한 기대와 흥미도가 떨어지게 되며, 그런 시를 경제성이 부족한 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이듬의 <후배에게>라는 시는 경제성이 그다지 좋은 시는 아니다. 이미지가 꽤 많고, 어느 독자에게는 과잉으로 보이는 경우가 생긴다. 단지 결미에서 “어쩌면 삶에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사는 걸 꽤 좋아하면 좋겠어.”라는 구절만 기억 속에 남긴다. 이 말 하나를 하기 위해 “학부모 회의를 마치고 난 뒤의 학부모”, 그들의 자식 등의 이야기를 경유한, 껍데기만 요란한 시라고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마지막 결미의 문장은 결코 쉽게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꾸며 쓴 말도, 대단한 사유도 아니지만, 시 자체가 기억에 남은 것 같은 잔향을 만든다. 그러면서 <후배에게>를 다시 읽게 만들고 힘들 때마다 다시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 송희찬
  • 2026-01-19
발전의 뼈대-한국 전통 문화의 발전에 대한 단상

한류 즉 한국 문화는 근 몇 년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김치와 한국 김 같은 전통 음식과 질 좋은 식자재로부터 시작해서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퍼트린 케이팝과 2024년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넷플릭스 ,, 같은 한국 드라마와 예능 그리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계 감독이 만든 까지. 요 근래 우리 문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적어도, 한국이 세계 문화 시장에서 일본과 중국 더 나아가 서양 국가만큼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변 국인 중국과 일본은 각각 세계에서 중국은 쿵후, 일본은 사무라이와 닌자 같은 이미지로 연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치와 마늘, 분단국가라는 이미지로만 소비됐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 더 세련된 연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에 나온 사자 보이즈의 모티브인 저승사자가 있다. 이처럼 인식은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전통문화는 삶 속 어디에 있으며, 우린 얼마나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악은 얼마나 듣는지, 대중 한식을 제외하고 전통 한식을 얼마나 아는지에 대하여.1: 한식에서 변화란지금 당장 떠오르는 한식 아무거나 떠올려 보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떡볶이, 칼국수 등등 시장에서 자주 보거나,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집밥들이 떠오를 거다. 그러나, 더 나아가 고려와 조선, 더 나아가 고대 시대까지 왕가와 양반가 그리고 평민의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을 바라보면 우리가 아는 음식보다 더 많다. 대표적으로 신선로, 수구래 볶음, 승기 약탕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음식들은 그나마 고서에 남아 있어, 후대에게 쉽게 그 방법을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전으로만 전달되는 집안 내림 음식 같은 경우는 시대마다 만드는 법이 다르고 갑자기 그 조리법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식은 현대 춘장 떡볶이처럼 비교적 역사가 짧거나, 조리 방법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특히 그런 식품 중에 으뜸은 김치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자주 먹는 김치는 동치미와 백김치를 제외하고 모두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그러나 고추는 조선시대 때부터 들어오기 시작했기에, 고추가 들어간 비교적 역사가 짧아진다. 그러나, 김치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배추와 무 혹은 과일로 김치를 담그는 역사는 꽤 오래전부터 전수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김치의 형태는 현재에도 이어진다. 특히 물김치와 백김치는 고추라는 식자재를 받아들이며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좋아하는 김치 종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김치와 반대로 명성을 쭉 이어가지 못하고, 축소되고 있는 음식도 있다. 그중 대표하는 한식이 바로 떡갈비다.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떡갈비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자. 얇게 다진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떡치듯 여러 번 치대어 만든 고기반찬이 떠오를 거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양식이 존재한다. 위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고깃덩어리 하나가 생각났을 거다. 바로, 햄버그스테이크. 이런 모습을 증명하

  • 송희찬
  • 2025-12-25
유령이 말해주는 삶의 이야기-권누리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 >을 읽고

*:본문에 들어가기 전, 싱어게인3 1호(이바다).25호(강성희) 듀엣곡인 최백호의 의 가사와 멜로디를 듣고 본문을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FArnw42Z2NA?si=KEO65YTtYfJuUtk_ ㅡ 책을 덮고, 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린 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맺지 않은 가지에 눈꽃 같은 얼음꽃을 피웠다. 또한 주변에 있는 학교 근처 무덤과 논밭을 이루는 토지 역시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얼어 있었다. 위 모습은 2025년 12월에 본 필자의 동네 풍경인 동시에, 겨울마다 봤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12월은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등 추위와 관련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시기가 다가오면, 몇몇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과 졸업식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12월이 지난 1월부터 우리는 한 살씩 더 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12월은 추운 겨울인 동시에 이별에 달이기도 하다. 함께 1년을 보냈던, 친구들과 교실에 이별을 고해야 하기에.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새로움을 맞이하는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되기에. 이처럼 12월은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이별에 달이다. 이러한 시간의 성격은 권누리 시인이 쓴 시집 속 유령 같은 화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떠난 이에 대한 깊은 슬픔과 명랑한 기대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러 인간일 수도 있는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는 시집의 첫 시편 에서부터, 마치 윤회를 기억하는 존재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ㅡ 죽지 마 명령하면 안 되니 어제는 피아노를 샀어 가끔 치려고 명랑하게 창문 너머 비행기가 밥그릇은 언제나 비어 있고 천장에 달라붙은 열기가 깔깔 웃으면 이 이상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구르기 위한 언덕을 갖고 싶어 처박힐 우물도 자랑 없이 칭찬도 없이 청소기 헤드로 빨려들어가는 정오 함께 있을까 조금만 더 울어보고 ㅡ 전문-12~13p Beginner 한국어 해석으로는 초심자라는 뜻이다. 이 제목처럼 위 시의 화자는 이별의 초심자처럼 묘사된다. 떠난 이, 특히 죽은 사람에게 "죽지 마"라는 말로 붙잡아 명령하고 싶지만, 화자는 결코 명령하지 못한다. 역으로 떠난 이에게 "안 되니"라고 물어본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어제 피아노를 샀"고 창문 밖을 날고 있는 "비행기"와 자신의 빈 "밥그릇"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조심스럽게 타자를 붙잡고 싶은 화자의 욕망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는 "청소기 헤드"가 이물질을 빨아들이듯, 하루 중 제일 밝은 "정오" 즉 밝음과 관련된 것들을 빨아드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삶의 에너지, 웃음 같은 것들을. 그렇기에 타자와 화자는 함께 있으면, 서로 빛을 갉아먹을 것 같았기에, 초심자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타협한다. 이런 타협은 시에서 화자가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타자에게 "함께 있"기를 청한다. 동시에 화자가 우는 모습으로 마무리 맺어진다. 하

  • 송희찬
  •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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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의도한 것은 아닌데, 시집 추천사에 성현아 멘토님이 있으시네요.^^; 아무튼, 1월 이후 수필,비평 모두 오랜만에 쓰니까 좋네요.^^ 검정고시 끝난 후, 다시 2023년도처럼 1일 다작 하고 싶네요^^;

    • 2025-07-31 22:25:31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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