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의 뼈대-한국 전통 문화의 발전에 대한 단상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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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즉 한국 문화는 근 몇 년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김치와 한국 김 같은 전통 음식과 질 좋은 식자재로부터 시작해서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퍼트린 케이팝과 2024년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더 글로리>, <오징어 게임> 같은 한국 드라마와 예능 그리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계 감독이 만든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요 근래 우리 문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적어도, 한국이 세계 문화 시장에서 일본과 중국 더 나아가 서양 국가만큼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변 국인 중국과 일본은 각각 세계에서 중국은 쿵후, 일본은 사무라이와 닌자 같은 이미지로 연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치와 마늘, 분단국가라는 이미지로만 소비됐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 더 세련된 연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사자 보이즈의 모티브인 저승사자가 있다. 이처럼 인식은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전통문화는 삶 속 어디에 있으며, 우린 얼마나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악은 얼마나 듣는지, 대중 한식을 제외하고 전통 한식을 얼마나 아는지에 대하여.
1: 한식에서 변화란
지금 당장 떠오르는 한식 아무거나 떠올려 보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떡볶이, 칼국수 등등 시장에서 자주 보거나,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집밥들이 떠오를 거다. 그러나, 더 나아가 고려와 조선, 더 나아가 고대 시대까지 왕가와 양반가 그리고 평민의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을 바라보면 우리가 아는 음식보다 더 많다. 대표적으로 신선로, 수구래 볶음, 승기 약탕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음식들은 그나마 고서에 남아 있어, 후대에게 쉽게 그 방법을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전으로만 전달되는 집안 내림 음식 같은 경우는 시대마다 만드는 법이 다르고 갑자기 그 조리법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식은 현대 춘장 떡볶이처럼 비교적 역사가 짧거나, 조리 방법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 그런 식품 중에 으뜸은 김치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자주 먹는 김치는 동치미와 백김치를 제외하고 모두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그러나 고추는 조선시대 때부터 들어오기 시작했기에, 고추가 들어간 비교적 역사가 짧아진다. 그러나, 김치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배추와 무 혹은 과일로 김치를 담그는 역사는 꽤 오래전부터 전수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김치의 형태는 현재에도 이어진다. 특히 물김치와 백김치는 고추라는 식자재를 받아들이며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좋아하는 김치 종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김치와 반대로 명성을 쭉 이어가지 못하고, 축소되고 있는 음식도 있다. 그중 대표하는 한식이 바로 떡갈비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떡갈비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자. 얇게 다진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떡치듯 여러 번 치대어 만든 고기반찬이 떠오를 거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양식이 존재한다. 위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고깃덩어리 하나가 생각났을 거다. 바로, 햄버그스테이크. 이런 모습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일부 대형 마트에서는 떡갈비와 햄버그스테이크를 스테이크 소스 유무에 따라 같은 고깃덩어리를 다른 이름으로 판다. 이는 곧 우리나라 떡갈비가 햄버그스테이크와 다른 것이 소스뿐이라고 소비에게 인지 시키게 된다.
하지만, 떡갈비는 결코 서양에서 쓰는 소나 돼지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기와 장소 그리고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에 따라 꿩, 은어, 기러기, 토끼 등 다양한 육류와 어류로 만들어진다. 물론, 일부 한식 명인들과 지방에서는 이 식자재로 떡갈비를 만들어 먹지만, 결코 대중적이게 변화하지 못했다. 역으로 어류와 육고기를 섞어 만든 음식은 동그랑땡으로 획일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만드는 과정이 손이 많이 가며 햄버그스테이크 같은 메리트를 느끼지 못해서다.
이처럼 자신만의 색이 있던 음식이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여 그 자리를 외국 음식에게 내주거나,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시대에 발을 잘 맞추어 유지되고 있는 김치와 같은 음식들 역시 존재한다. 이런 발 맞춤은 음식에만 속하지 않는다. 이는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그런 것들 중에는 시대에 더 나아가지 못한 음악 장르. 우리의 소리도 있다.
2: 한국 국악의 특징
우리의 소리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창극과 여성 국극, 8도 모두 다른 민요와 판소리, 가곡, 사물놀이 등이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소리의 질감과 기교 그리고 장단을 가진다. 특히 전라도에서부터 시작된 민요는 구성진 음색과 수많은 기교를 바탕으로 판소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정의되며. 이와 반대로 경기 민요는 깔끔한 꺾어와 맑은 음색이 특징으로 규격 된다. 이는 클래식한 장르로 배우게 된다. 그렇기에 경기민요는 이곳에서 꺾고, 또 다른 곳에서 비틀어야 한다고 배우며, 판소리는 이런 기교를 넣어 관객의 흥을 불러야 하며, 눈물을 쓰게 해야 한다고 창을 배우는 사람에게 말한다고 국악인 송소희는 말한다. 그녀의 인터뷰에 따르면, "국악을 배울 땐 최대한 완벽히 소화해 내야 한다."라고 본인이 창을 시작할 때 이렇게 배웠다고 한다. 이는 곧 국악의 한계였다.
완벽한 창, 그리고 똑같은 기교, 특색이 적어진 국악인들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국악을 하는 명창들과 새싹 그리고 이를 듣는 우리 관객들에게도 멀어지는 이유가 됐다. 신선함이 없어졌다. 그렇기에 국악을 사랑했던 신동들과 국악인들 하나, 둘 다른 가요계로 빠져나가게 된다. 특히 그 주 장르는 비슷한 기교가 있는 트로트라는 장르다.
국악계에서 트로트로 전향한 사람들을 말하면,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을 이야기하면, 송가인, 양지은, 강태관과 국악을 벗어나 트롯 장르에 도전했던 국립창극단 단원인 김준수. 그리고 미래의 국악 뿌리가 될 수 있는 신동인, 김태연, 김다현 역시 국악에서 트롯으로 전향하게 됐다. 이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클래식인 국악 대신 일반 대중음악에 치중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 없다. 그들의 현실을 알기 때문에. 이를 고발하는 현대식 국악이 있다. 바로 최예림의 "Lose Yourself"
이 노래는 국악인 최예림이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인 <풍류 대장>에서 에미넴 곡을 커버한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장단과 리듬을 바꾸지 않고 해외 팝 비트에 국악의 기교와 판소리의 굵고 진한 소리를 내뱉으며 본인의 이야기를 했다. 마치 현대 판소리처럼. 특히 가사 중엔 이런 가사가 있다.
"국악 하며 먹고살기 힘들고... 국악 하다 갈 길 잃어 트로트로 갈 뻔했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왔다 갔다. 나 완전히 새가 날아든다."
이런 표현을 통해, 현재 국악의 형태로는 대중과 함께 소통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심청가를 부를 땐, 현대의 심청이가 아닌, 과거의 심청이가 돼야 하며, 춘향전 역시 현대의 춘향과 목룡이 아닌, 과거의 그들을 소리로만 연기해야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국악을 대중적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하다. 특히 오디션 <풍류 대장>에서 그녀의 무대는 기존 국악 대비, 대중들에게 쉽게 와닿았다는 평이 많았으며 그와 동시에 화제가 국악인 최재구의 무대 역시 그녀와 비슷한 대중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최재구의 무대는 광대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가 크로스오버한 장기하의 <달이 차오른다>는 대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다이어트 실패담에 있다. "왔어요. 왔어요. 요요가 왔어요."라는 가사라든지 "살이 차오른다. 가자."라는 식으로 본인의 경험과 국악의 기교 그리고 대중음악의 익숙한 접근성 덕분에 그의 무대는 청중으로 하여금 좋은 평으로 받았다. "나도 저런 적 있어."라는 식의 공감과 풍자 그리고 웃음으로.
이런 식으로 국악의 발전을 위해 발버둥을 쳤던, 사람들은 늘 존재했고 존재한다. 앞에서 소개한 <풍류 대장>을 제외하고도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2024년도에 방영된 드라마 <정년이>의 소재가 된 여성 국극과 최근 활동하는 육각수, 이날치, 송소희 등 젊은 국악인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 자리에서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활동했던 수많은 여성 국극단의 국극 무대는 현시대 국악과 예술이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가 되었다
3: 한국형 뮤지컬 여성 국극 그리고 한국 전통문화의 쇠퇴
<방자전>, <콩쥐팥쥐>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고전 문학들이다. 이런, 한국의 문학. 특히 판소리계 소설로 이루어진 한국형 뮤지컬이 있었으니 바로 여성 국극이다. 여성 국극은 연기, 창, 무애, 연주 모든 예술이 가능해야 할 수 있던 한국형 종합 예술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토리, 과하지 않은 기쁨과 슬픔이 모두 한 작품에서 한국인 정서를 건든 예술이다. 이로 볼 때 국극의 국악풍 창은, 그 당시로서 대게 반가웠다. 그 이유는 195.60년대는 금시향과 이미자 등을 필두로, 트로트가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과 함께 클래식 국악도 대중들의 인기에서 쉽게 지지 않았다. 이는 한국 문화. 특히 음악계의 긍정적인 발전이었다. 그러나 한국 대중음악 예술 시장의 빛이었던 국극은 명성만큼 빠르게 쇠퇴했다. 그들의 전성기는 딱 10년. 그 이유는 후대를 만들지 못한 것과 국가의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들이 후배를 만들지 못한 이유를 이야기하면, 국극을 하는 모든 국극 단원은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어 산후조리를 해야만 했다. 이런 점이 문제가 된 이유는 드라마 <정년이>에서 나온 '매란 국극단'처럼 획일화된 *리바이{주연}와 일정한 매력의 *가다 키{악역}일 경우 그들이 떠난 자리를 매울 사람이 없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획일화된 네임드 리바이와 가다 키가 아닐 경우 국극의 매출은 급격히 떨어진다. 이를 의식하고, 과거 한국 정부가 '전통문화 진흥 사업'에서 그들을 지원했으면, 국극이 빠르게 쇠퇴하는 일은 없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과거 한국 정부는 국극 사업을 '전통문화 진흥 사업'에서 배제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창극과 판소리와 비슷하여 그들의 변형이라고 봤기에.
이런 점이 그들의 쇠퇴를 앞당겼다. 특히 서양의 뮤지컬이 들어온 이후, 그들은 독립 뮤지컬 <서편제>같은 국악 베이스의 음악들로 재탄생 된다. 그렇게 그들은 진정한 정통이 되지 못하고 전통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과 정통은 무엇이며, 국악의 성장은 전통과 정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4: 한국 국악 발전의 문제점
전통과 정통을 그대로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쪽은 여러 사례를 통해 대중과 멀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반대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보면, 발전한 것이 완벽한 한국 전통의 것이라는 주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21년도 만들어진, 텔레비전 국악 오디션을 들 수 있다.
그 당시 국악 오디션은 두 프로그램에서 다른 이름으로 방영됐다. 하나는 <조선 판 스타>이며 또 다른 하나는 앞서 말한 <풍류 대장>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의 소리로 만들어진 경연이라는 공통적인 장점은 있지만, 단점도 분명 존재했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국악 전공자 혹은 국악 명창 대비 현저히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풍류 대장>은 심사위원 7명 중 국악에 조예 깊은 사람은 국악인이었던 송가인뿐이다. 이는 국악 전통성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적어서 국악의 전통성을 기반으로 성장하기 어렵고 정통과 전통은 흔들린다는 증거가 되어 버린다.
이는 고장 난 배를 한 부분씩 수리하다가 결국 모든 부분을 고쳤을 때, 이는 기존의 배인지 논하는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와 유사성을 띤다. 즉 발전하고 있는 국악이 진정 한국 전통이자 정통이 맞는가는 역설이라는 소리다. 그러나, 우린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의 문화가 완벽히 외국 문화에 완전히 수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 전통과 정통 우리의 뼈대
아티스트 이날치와 안예은과 송소희를 보자. 이 둘의 공통점은 한국의 전통을 현대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가수라는 점이다. 안예은은 한국의 전통 괴담인 창귀 괴담과 현대식 반주를 통합한 <창귀>라는 음악을 발매했으며 송소희는 본인의 국악을 현대식으로 부른 <Not a Dream>이 있으며 이날치 밴드는 한국 고전 판소리계 소설 <수궁가>를 바탕으로 <범 내려온다>와 민요를 현대식으로 해석한 <새타령> 등이 있다. 이들의 음악은 국악과 한국 전통에 뼈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 있다. 이런 사례들로 엄연히 말할 수 있다. 국악과 전통의 중심은 기교 같은 것이 아닌, 뼈대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이야기했던, 김치가 시대에 맞춰 변해갔을 뿐 변하지 않은 것처럼.
전통성을 후대에게 전수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뼈대를 두고 그 시대에 맞게 변주하여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뒷세대도 한국의 전통을 본인 시대만의 방식대로 보존하고 후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지금 세계는 한류의 파워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린의 우리의 문화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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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들어가기 전, 싱어게인3 1호(이바다).25호(강성희) 듀엣곡인 최백호의 의 가사와 멜로디를 듣고 본문을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FArnw42Z2NA?si=KEO65YTtYfJuUtk_ ㅡ 책을 덮고, 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린 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맺지 않은 가지에 눈꽃 같은 얼음꽃을 피웠다. 또한 주변에 있는 학교 근처 무덤과 논밭을 이루는 토지 역시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얼어 있었다. 위 모습은 2025년 12월에 본 필자의 동네 풍경인 동시에, 겨울마다 봤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12월은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등 추위와 관련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시기가 다가오면, 몇몇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과 졸업식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12월이 지난 1월부터 우리는 한 살씩 더 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12월은 추운 겨울인 동시에 이별에 달이기도 하다. 함께 1년을 보냈던, 친구들과 교실에 이별을 고해야 하기에.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새로움을 맞이하는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되기에. 이처럼 12월은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이별에 달이다. 이러한 시간의 성격은 권누리 시인이 쓴 시집 속 유령 같은 화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떠난 이에 대한 깊은 슬픔과 명랑한 기대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러 인간일 수도 있는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는 시집의 첫 시편 에서부터, 마치 윤회를 기억하는 존재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ㅡ 죽지 마 명령하면 안 되니 어제는 피아노를 샀어 가끔 치려고 명랑하게 창문 너머 비행기가 밥그릇은 언제나 비어 있고 천장에 달라붙은 열기가 깔깔 웃으면 이 이상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구르기 위한 언덕을 갖고 싶어 처박힐 우물도 자랑 없이 칭찬도 없이 청소기 헤드로 빨려들어가는 정오 함께 있을까 조금만 더 울어보고 ㅡ 전문-12~13p Beginner 한국어 해석으로는 초심자라는 뜻이다. 이 제목처럼 위 시의 화자는 이별의 초심자처럼 묘사된다. 떠난 이, 특히 죽은 사람에게 "죽지 마"라는 말로 붙잡아 명령하고 싶지만, 화자는 결코 명령하지 못한다. 역으로 떠난 이에게 "안 되니"라고 물어본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어제 피아노를 샀"고 창문 밖을 날고 있는 "비행기"와 자신의 빈 "밥그릇"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조심스럽게 타자를 붙잡고 싶은 화자의 욕망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는 "청소기 헤드"가 이물질을 빨아들이듯, 하루 중 제일 밝은 "정오" 즉 밝음과 관련된 것들을 빨아드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삶의 에너지, 웃음 같은 것들을. 그렇기에 타자와 화자는 함께 있으면, 서로 빛을 갉아먹을 것 같았기에, 초심자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타협한다. 이런 타협은 시에서 화자가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타자에게 "함께 있"기를 청한다. 동시에 화자가 우는 모습으로 마무리 맺어진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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