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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 입학제

  • 작성자 르샤마지끄
  • 작성일 2007-09-28
  • 조회수 4,927

 

기여 입학제



  요즘 대선하고 맞물려서 그런지 예전 문민정부 때 대학입시 과열을 막고자 내세웠던 3不정책(본고사 폐지, 기여 입학제 폐지, 고교등급제 폐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대학총장들이 수시로 모여 머리를 싸매고 폐지를 부르짖는 3不정책. 그런데 사실 많은 사람은 2不이 오히려 정확한 표현에 가깝다고 말한다. 바로 기여 입학제 때문인데, 기여 입학제는 아무래도 따로 떼어놓고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두 정책과는 다른 점이 많고 그만큼 대립각도 첨예하다. 본고사 폐지나 고교등급제 폐지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도 기여 입학제에 있어서만은 대학총장들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 꽤 있다. 아마 이 셋 중에서도 목소리가 가장 큰 부분이 기여 입학제고 그만큼 예민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무형으로 특정 대학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의 자녀에게 특별히 그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제도.” - 네이버 국어사전


  밑줄 친 발전이라는 부분을 보면 기여 입학제의 본뜻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기여 입학제는 대학의 발전에 기여한다.

  우리나라는 사회가 양극화되고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3不정책의 실시 이유도,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간의 차이를 적어도 교육에서만큼은 줄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잘못 짚었던 것은 하필 기여 입학제를 양극화와 결부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한다면 본고사나 고교등급제와 마찬가지로 기여 입학제 역시도 양극화의 원인 중 하나로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통화량과 경제지수 사이에 비례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이미 경제시간에 배워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갑부들은 실제로 돈을 쓸 데가 없다. 일반 서민들처럼 2,30평짜리 아파트에 경차 한 대 몰고 다니려면 자기 재산의 1/10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는 갑부가 태반이다. “뛰어난 천재 하나가 만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라는 말처럼 “돈 많은 갑부 하나가 만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지경이다. 만약 이 사람들이 돈을 쓰지 못하고 집안 금고 안에 몇십억씩 가둬 둔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어떻게 되겠는가? 정부가 신도시를 개발하고 거기다 타워팰리스나 전원주택을 지어서 분양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이들을 누가 사겠는가? 돈 없는 서민들은 절대 사지 못한다. 돈 많은 갑부에게 사라고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묵혔던 돈이 우리나라 경제의 강으로 한 줄기 시냇물이 되어서 공급될 있다. 기여 입학제도 마찬가지다. 집안 좋은 학생들이 자꾸만 대학이나 사회에 기부를 해야 우리나라 교육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말 그대로 사회에 대한 ‘기부’이다. 전원주택에 입주한 부유층에게는 깨끗한 자연이 따라가듯, 기부에 대한 작은 대가로써 명문대학 입학이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사립대학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이러한 재정난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정부 보조금, 등록금 인상, 기여 입학제 등이 있는데, 대부분 사립대학은 당연히 정부 보조금은 바랄 수 없는 상황인데다가 기여 입학제는 또 不가능한 상태라 등록금에 60%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 대학 총장들이 수시로 모여 머리를 싸매고 대학의 자율화를 외치며 기여 입학제를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재정난을 없애려는데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세계 속에서의 대학 간 경쟁은 아주 중요하다. 교육은 국가의 근간이며, 특히 사회활동과 바로 연결되는 대학은 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백년대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가의 큰 경쟁력이 되는 교육. 그런데도 세계 대학 순위에서 우리나라 대학이 100위를 밑도는 것은, 실상 거의 재정난 때문이다. 대학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재정은 튼튼해야 하며 그 방법으로 기여 입학제가 거론되는 것이다.


  위는 대학 경쟁력 확보를 위한 측면에서의 기여 입학제 필요성이었고, 나는 기여 입학제를 공리주의 관점에서도 찬성하는 견해다. 그러므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지킬 수 있는 선의 범위에서 정원 외인가 내인가? 어떤 형식의 기부인가 단순히 돈에 의한 기부인가? 기여 입학자의 최저학력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가? 등에서의 세밀한 검증과 사회적 빈곤층과 부유층 간의 합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전한 의의로서의 기여 입학제를 실시할 수 있다. 나는 정원 외, 극소수, 그리고 최저학력을 높여야 한다는 쪽의 입장이다.

  기여 입학제는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부의 재분배이고, 정치적 측면에서 민간 자발 복지다.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평등 고취이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기부 문화의 적립이다. 이 중에 기부 문화의 적립과 부의 재분배를 연관시켜서 설명하자면, 쉽게 말해서 부유층의 돈을 빈곤층에게 돌린다는 뜻이고 이는 평등 고취와 연결이 된다. 그리고 대학의 기여금을 정부의 복지기금에 비유한다면, 장학금을 받는 자들, 즉 가난한 지방 출신 재학생들을 수혜자에 빗댈 수 있다는 점에서 복지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결국에는 다 같은 의미다.

  기여 입학제 중에서도 기부 입학제(기부 입학제는 기여 입학제에 포함되는 제도로서 기부금 입학제를 말한다.)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은 쇠 빠지게 공부해서 대학 가는데, 부자들은 돈 턱 내고 대학에 들어가는 게 말이 되느냐.”인데, 이는 기여 입학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돈에 관련되는 문제가 나오면 많은 사람이 민감해져서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기여 입학제 긍정적인 측면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오해인데, 기여 입학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

  많은 사람을 대표해서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내 주변에는 명문 사립대에 갈 능력이 되는데도 돈이 모자라서 지방 국립대로 빠지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부의 양극화가 심해져 그것이 교육에까지 미쳐서 낭중지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가난한 우수학생들이 제 능력을 온전히 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이 대부분 재정난을 겪고 있고 그것을 거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렇게 학비가 비싼 것인데, 기여 입학제를 실시하면 등록금의 부담이 대폭 줄어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명문 사립대를 갈 수 있게 된다. 대학은 인재 육성의 공간이지 않은가? 숨은 인재를 아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학벌사회라서 대학만 잘 가면 되니깐, 기여 입학자들은 부를 세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일단 기여 입학제라는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학벌중심주의 사회, 졸업장을 너무 쉽게 떼주는 학사 과정에서의 문제다. 일단 문제가 되는 주체가 다른 것이고, 게다가 반대로, 기여 입학제를 하게 되면 사회에서 신입을 채용할 때 출신대학에 눈이 좀 덜 가게 되는 효과를 걷어 들일 수 있다. 말인즉, 기여 입학제를 함으로서 사회는 같은 대학의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못하는지를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결국에는 더 나은 인재를 뽑으려고 각 단체 내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보게 되고, 이로써 학벌주의가 사그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수능과 내신이란 단순히 대학 공부 기회를 얻기 위한 장치로써 존재할 뿐이고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학생 개개인의 잠재능력은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기여 입학자가 대학 수석 졸업을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부금을 받는 대학에 달렸다. 기부금을 다룰 때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 관계자, 국민 감시단, 대학생 대표, 대학 총장, 재단 위원장 등의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재단이 필요할 것이고 법적으로도 뇌물 입학이 아닌 기여 입학이 될 수 있도록 기여금의 몇 퍼센트를 등록금과 장학금에 보태야 한다. 더불어 인원은 얼마로 해야 한다, 최저 학력은 이러해야 한다는 등의 기준도 필요하다. 이는 물론 정부와 대학 등 간의 많은 대화로 대학도 수긍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된 상태에서 정해져야 하며, 이 모든 것이 이뤄질 때에야 비로소 기여 입학제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학만 잘 나오면 된다.”라는 인식이 뿌리박힌 것 같다. 그래서 기여 입학제 같은 좋은 정책에도 순전히 대학 때문에 열을 올리고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위화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여 입학제를 사회에 어떤 기준으로 적용할 것인지를 논하는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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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 200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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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 20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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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 200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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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아닙니다. 편하게 대해주셔서 기뻤습니다 ^~

    • 2007-10-03 00:04:43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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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쓰다가 조금 주의력이 떨어져 말투가 달라졌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 2007-10-02 23:20:17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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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갑자기 낮춤말을 쓰셔서 놀랬습니다 ^^; 감사합니다. 적절한 제목 짓기 꼭 명심하겠습니다.

    • 2007-10-02 23:17:31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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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무엇보다 이 글은 제목부터 독자가 확 눈이 들어오게 달아야 한다. '기여입학제를 적극 찬성한다.' 따위로 명확히 제 주장을 내세워야 논점과 할 말이 분명해 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2007-10-02 23:07:32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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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이 글에서는 주로 이 제도의 장점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려는 다각적인 노력이 잘 느껴지는 글이다. 하지만 이 글은 중간부분에서 논점의 명료성이 뒤섞인 상황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래에서 세번째 문단은 기여입학을 한 학생과 다른 학생의 구별이 안됨으로써 명문대 학력선호 현상이 많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고 하나 구체적인 논지에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도 발생한다 . 논증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는 뜻이다.

    • 2007-10-02 23:04:24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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