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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유한라신기

  • 작성자 르샤마지끄
  • 작성일 2007-10-31
  • 조회수 2,103

 

신 유한라신기



  한라 : 은하수를 끌어당기는 - 최익현 『유한라신기』


  남한의 최고봉이자 이번 수학여행의 최고봉은 단연 한라산 등반이다. 이틀째 되던 날 아침, 밥 먹던 숟가락의 움직임을 늦추고 잠시 한라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동요에서 반달곰이 산다는 그 산, 정지용시인의 시선집 제목이기도 한 『백록담』을 떠받치고 있는 바로 그 산……. 올라가기에 앞서 정말 치열하게 감상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버스에 탔다.


  여기는 해발고도 1000m, 벌써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내 생애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선 것이다. 그런데 산 중턱에 직접 들어와 있으니 이곳이 한라산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정상도 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버스를 타기전만 해도, 아니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이리구경오십시오라는 높이가 너무 커서 한라산이 제주도 내 어디에서나 보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정상 부분은 높이 구름을 뚫고 치솟아 다 보이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상속의 한라산에 비해 눈앞의 한라산은 그 높이가 아주 부드러웠다. 어깨를 넓게 제주도의 동에서 서까지 늘여놓은 장엄한 모습이 내 마음을 엄숙하게 만들긴 했지만, 제주도 내 어디에서나 너무나도 잘 보이는 낮은 꼭대기는 내 예상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속으로 열망하던 한라산에 대해 일말의 비웃음이나 심지어 친근감조차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한라산에게서 상상의 한라산은 무너졌지만, 실제의 한라산은 나에게 다시 전혀 새로운 느낌의 열망을 심어주었다. 그 또한 장엄한 그 무언가였다.


  우리는 해발 1000m에서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전진했다. 군대의 강행군만큼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아이들이 열 맞추어 한 손엔 빵 두 쪽, 다른 한 손엔 물병을 쥐고 등반하는 모습이 ‘아, 이제 간다.’라는 생각을 일으켜 주었다. 영실에서 출발해 윗세오름으로, 아쉽게 한라산의 정수리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이 또한 잘된 일이다. 만약 그날 한라산의 정수리까지 올라가 백록담도 보고 상봉도 보고 했으면 소위 말해 한라산을 정복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면 이제 한라산은 끝났다는 생각에 다음에는 제주도에 올 일이 거의 없게 되지 않겠는가? 현대의 고 정주영 회장도 북한에 소를 보낼 때 소원이라는 뜻으로 501마리만 보냈다. 1000마리면 1000마리, 500마리면 500마리일 것이지, 왜 501마리로 보냈겠는가? 그것은 여운이다. 다음에 다시 한 번 오고 갈 수 있다는 여운. 이번 수학여행 때 한라산을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다음에 다시 올 것이니까.


  땅에는 초록색 치어가 아무렇게나 풀어져 산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고, 하늘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신의 발자국이 지나가고 있었다. 곳곳에 ‘뱀 조심’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이정표삼아 오르는 윗세오름까지의 길은, 영실 가까이에서는 완만했다가 윗세오름으로 가까워지면서 점차 급격해졌다가 윗세오름에 다다르자 다시 완만해지는 것이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태어나 부모님 밑에서 편안하게 자라다가 험난한 중년을 겪고 다시 노년의 그늘에서 편히 쉬어가다 이윽고 하늘로 돌아가는 인생의 여로. 그렇다면 한라산의 하늘은 아마도 백록담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저마다 꽃잎을 활짝 펴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듯, 한라산은 자신의 넓은 어깨로 백록담을 떠받치고 있다. 백록담에서부터 갈라져 나와 곳곳에 솟는 샘들은 한라산의 미세하고 은밀한 부분까지 모두 어루만지려는 듯 넓게 퍼져있다. 그리고 샘마다 어루만진 그곳에서는 새로이 오름이 기생하듯 솟아올라 있었다.

  한라산에는 현무암의 구멍 난 심장 속으로 백록담의 정수가 들이찬다. 산 굽이굽이에 덧니처럼 튀어나온 오름은 상봉과 함께 은하수를 끌어당기는 한라산의 완강한 뼈다. 나는 치열하게 자리 잡은 뼈를 밟으며 계속해서 한라산의 정수리를 향해 걸었다. 뼈에서는 육즙이 새어나왔다. 한라산의 몸을 뚜벅뚜벅 밟을 때마다 짓이겨져 맡아지는 초록색 치어의 숨냄새와 절벽의 젖냄새가 나를 힘든 줄도 모르도록 매료시켰다. 발자국을 새길 때마다 한라산의 뼈와 나의 뼈가 부딪치고 겹쳐져 하나로 이어졌다. 결국 한라산의 정수가 나의 뼈를 타고 올라와 온몸 구석구석을 사무치게 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내 몸에 오름이 솟는 듯 닭살이 일어났다. 한라산의 감동이 점점 더 크게 밀려오다가 마침내 내 몸에 아예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이 떨리자 곧이어 날씨가 추워져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윗세오름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가는 길목에 노루샘에서 물을 마셨다. 역시나 한라산의 정수가 녹은 장엄한 맛이었다. 백록담의 기운을 받아 몸의 엔진을 식힌 다음 다시금 시동을 걸어 윗세오름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는 경사도 별로 높지 않았다. 이윽고 동쪽으로 백록담이 보였다. 왕관을 얹어놓은 것처럼 네모지게 솟은 백록담이 우리집 앞산만큼이나 가깝게 보였다. 윗세오름에서 백록담까지는 불과 250m 정도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휴식기라 영실코스에서는 올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윗세오름에 다다랐다. 나는 현무암을 베개삼고 하늘을 이불삼아 누웠다. 해발 1700m 상공의 공기를 마시며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서, 고단했던 생을 잠시 자연에 풀어놓고 진하게 말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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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기행문 한 편 올리겠다는 약속도 드렸고, 기행문이기보다는 견문인 것 같아서 비평&감상글 게시판에 올리긴 했는데, 글의 성격이 게시판의 특성과 맞을지 조금 걱정됩니다.

 

 

르샤마지끄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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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 2008-02-02
왼손을 타고난 사람, 왼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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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 2007-10-20
기여 입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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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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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아뇨~~ 어리목으로 내려왔습니당 영실 -> 윗세오름 -> 어리목

    • 2007-11-02 23:52:01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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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수학여행을 한라산엘 오시는군요 +__+ 영실코스!! 내려오실 때도 똑같은 길로 오셨어요?

    • 2007-11-02 01:33:4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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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감사합니다. ^ㅡ^

    • 2007-11-02 00:13:44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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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한라산을 오르기 전의 설레임과 올라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느낌들을 잘 느낄 수 있는 글이로군요. 새로운 사물을 보는 감흥도 잘 느껴집니다. 함께 한라산을 오르는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글의 마무리가 산 정상에서 그쳐 버린 것은 의도적인 마무리인지.... 귀로의 느낌을 살짝 덧붙여주면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완성후에 생활글로 올려야 타당할 듯 하군요. 부럽습니다. 멋진 한라산 유한라산가를 쓰는 그 열린 감성!

    • 2007-11-02 00:08:48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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