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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죽었다 - 영화 『슈퍼

  • 작성자 르샤마지끄
  • 작성일 2008-02-02
  • 조회수 2,166

 

슈퍼맨은 죽었다

-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보고 나서


  [간략한 줄거리]

  나는 오늘 슈퍼맨을 보았습니다

  3년째 방송프로덕션에서 신파 ‘휴먼다큐’를 찍고 있는 송수정PD. 억지 눈물과 감동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프로그램에 신물이 난 그녀는 차라리 ‘동정심 없는 아프리카 사자’를 찍겠다며 밀린 월급 대신 회사 카메라를 챙겨 나온다. 그러나, 난데없이 아프리카 촬영은 취소가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메라까지 날치기 당한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하와이언 셔츠의 남자가 도둑을 쫓아 카메라를 되찾아준다. 그는 악당이 머리 속에 넣은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현재는 초능력을 쓸 수 없다는, 자칭 슈퍼맨이라고 주장하는 사나이.

  슈퍼맨은 여학교 앞 바바리맨 혼내주기, 잃어버린 개 찾아주기 등 하찮고 사소한 선행에 열중하는가 하면, 북극이 녹는다며 지구를 태양에서 밀어내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는 등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다. 수정은 제정신이 아닌 듯 하지만 눈길을 끄는 그를 휴먼다큐 소재로 이용하기로 하고 새로운 이야기 꺼리에 동료들은 열광한다. 숙취에 시달리며 집에 누워있던 송피디의 눈앞에 다시 슈퍼맨이 나타난다. 슈퍼맨은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괴물이 나온다는 골목 맨홀로 수정을 데려가지만, 괴물은 커녕 하수구 냄새만 진동할 뿐이다. 수정은 그 곳에서 머리를 다친 슈퍼맨을 병원으로 데려가게 된다. 거기서, 엑스레이 사진 속 슈퍼맨의 머릿속에 진짜 무언가가 박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송피디는 그를 집중 취재하기로 결심하는데… 그리고, 슈퍼맨의 진짜 이야기가 냉철한 그녀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말아톤』을 연출했던 정윤철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통해 세상을 무한 풍자한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인 정신병자 이현석. 감독은 실존인물이었던 이현석을 자기 영화를 위해 극도로 희화화했다.

  자신이 초능력을 잃어버린 슈퍼맨이라고 착각하고 거리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선행을 베푸는 이현석.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능이 딸리는 슈퍼맨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목숨을 건다. 예를 들면, 북극이 녹는다며 지구를 태양에서 밀어내려고 물구나무를 서거나, 하수구에서 괴물냄새가 난다며 맨홀 구멍을 꼬챙이로 마구 쑤셔대는 행동 등을 한다. 실제로 어렸을 적에 봤던 만화영화에서 슈퍼맨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언제나 지구에 큰 위험이 생길 때만 공중전화 박스에서 멋있게 변신을 하고 악당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간다. 그런데 지금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슈퍼맨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어리석긴 하지만, 슈퍼맨의 모습을 통해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의도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모자란 사람도 남을 생각하는데, 우리는 뭐냐, 각성 좀 해서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자. 이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도 아닌 것 같다. 영화에서 슈퍼맨을 지켜보는 거리의 수많은 사람은 모두 슈퍼맨을 불쌍하게만 바라보고 비웃는다. 착한 일을 하는 슈퍼맨이 무슨 잘못이 있겠으랴. 그러나 영화 속에서 슈퍼맨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놓은 것뿐이라고? 그런데 영화에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엑스트라들이 슈퍼맨에게 무심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슈퍼맨이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건물 3층에 갇힌 아이를 안고 뛰어내려서 구출해줬는데, 어머니는 자기 아이만 얼른 슈퍼맨의 팔에서 떼어가고, 슈퍼맨은 그대로 버려진다. 사람들은 미처 다가갈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 그런 사람과 손을 섞으면 나도 더러워질 거라는 생각일 것이다.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처참하고 과장된 장면이다. 결국, 연출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슈퍼맨처럼 살지 말라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이기적이라는 것, 현실은 이 모양 이 꼴이다. 이 정도? 꼭 현실이 그런 것만은 아닌데 말이다. 아직도 남을 위해 배려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연출가는 과장되리만큼 영화 속 세상을 그렇게 그려놓음으로써 세상을 풍자했다. 실컷 슈퍼맨을 희화화시켜놓고, 차갑게 웃는다. 웃기만 하는 것이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선 애초부터 두 인물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휴먼다큐PD와 슈퍼맨. 사실, 첫 단락에서도 슈퍼맨 얘기만 죽 나열했듯이 이 영화에선 거의 슈퍼맨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췬다. 스토리의 빈틈도 문제다. 의미 있는 대사는 거진 황정민이 다하고, 전지현은 사실상 들러리 역할이다. 가끔 몽골에 가 있는 남자 친구 얘기도 나오고 슈퍼맨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점점 교감을 나누게 되는 장면도 나오긴 하는데, 그 두 부분은 도대체 뭘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 영화 후반에 가서는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사라진다. (아무래도 이 둘은 무삭제판에선 뭔가 연관이 있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아마 감독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러닝타임을 맞추려고 비교적 덜 중요하다고 생각한 전지현의 씬을 다량 잘라버린 모양이다. 이렇게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감독이 편집까지 미숙하게 하다 보니 의미 없는 부분도 군데군데 나타나서 스토리 구조가 탄탄하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다.


  처음 부분에 송수정 PD가 이렇게 말한다. “이런 게 진짜 다큐멘터리일까요?” 억지 눈물과 감동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프로그램에 신물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특성상 자기 눈앞에서 사자에게 잡혀버리는 노루를 보고도 도와줄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게 운명이라고. 다큐멘터리 제작이 그렇게 아름다운 일은 아니라고 말이다. 예전에 읽었던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한비야가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난민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기사와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잔인하지만 아이들이 죽어가는 강렬한 모습을 담아야 많은 사람이 보고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고 감동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정윤철 감독이 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은 지금 이현석이라는 한 실존인물을 내세워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연민으로 바라보면서도 욕심과 집착으로 끝까지 찍어내고야 만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프리카로 떠난 사진작가와 정윤철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의 그 목표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아프리카 어린이 난민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가슴이 착잡해지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내지는 조금씩 돈을 저축해서 성금에 보태야겠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연출가도 그런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군데군데 쓸데없는 코믹한 요소, 실존인물이었던 이현석을 그렇게까지 희화화하고 깎아내린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보고 나서는 그런 감동을 할 수가 없었다. 슈퍼맨을 비웃은 도시의 많은 사람이 더 낫다, 또는 그래도 끝까지 남을 위해 끝까지 봉사한 슈퍼맨이 낫다, 아니면 둘 다 어느 부분은 잘났고, 어느 부분은 못났다는 그런 연출가의 의견이 없는 영화. 단지 중도적인 입장에서 현상만을 보여준 영화. 질색이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이 영화는 전체 관람가임에도 어린이에게는 정서적으로 별로 보기에 좋지 않은 영화라고 하고 싶다. 이 영화에선 상상과 실제가 매번 교차해서 나오는데, 항상 상상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 실제가 나온다. 그리고 상상과 실제는 항상 엇갈린다.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다가도 이후에 곧바로 그 기쁨을 깨뜨려버린다. 첫 문장에서 어린이에게는 정서적으로 별로 보기에 좋지 않은 영화라고 말한 이유는 어린이들의 동심과 환상을 깨 버린다는 염려에서다. 예를 들면, 나는 과거에 슈퍼맨이었다고 줄곧 주장하는 슈퍼맨은 결국 정신병원의 환자였고 나중에는 자기 이름이 이현석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또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를 안고 뛰어내리는 슈퍼맨의 모습에서 잠시 슈퍼맨의 상상 장면이 개입되는데, 슈퍼맨이 왼쪽 팔로 아이를 감싸고 오른쪽 팔은 하늘로 추켜올려 하늘을 날면서 천천히 멋있게 땅에 착지한다. 이제 열아홉인 나도 그 장면에서만큼은 ‘아, 진짜 슈퍼맨이었구나!’ 했는데, 또다시 장면이 바뀌더니 뒤통수에 피를 흘리고 누워있는 슈퍼맨의 모습,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이 꿈쩍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는 처참한 광경을 보게 된다. 감독은 끝까지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주지 않고 우리를 놀렸는데, 어린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마 이 영화를 본 어린이는 한동안 실망과 공포에 둘러싸여 상상력이 감퇴하여버릴 수도 있을 거란 우려가 든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영화가 탄탄한 구성, 치밀한 감정곡선, 명확한 주제의식, 영화의 사회적 파장 등을 모두 고려해서 수준을 끌어올려 정말 멋진 영화를 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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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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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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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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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보았군요. 재빨리 흘러지나가는 영화장면을 되새기며 그 의미를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줄거리 요약도 힘들지만, 그 영화에서 말하는 메시지를 읽어내기란 더욱 힘들기만 한 일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재미있었던 부분도 소개했지만, 다음 관객을 위해 약간의 무대설명과 등장인물의 소개를 해 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읽는 사람이 관점을 갖고 읽어가는 가는 과정을 점검하고, 자신의 해석의 잘잘못을 확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라 볼 수 있어 반갑습니다.

    • 2008-02-12 20:27:43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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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오, 동시간대 접속! 댓글 고마워요~^^

    • 2008-02-02 22:24:12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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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코쏭이

    오늘 이 영화 봐서 그런지 무지 반가운 글이었어요! 저도 몽골에 있는 남자친구 이야기는 왜 넣은 걸까 무지 궁금했어요; 잘 읽었어요^^

    • 2008-02-02 22:23:47
    초코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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