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의 사건들에 대하여 Op.31
- 작성자 기능사
- 작성일 202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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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님은 끝부분 부터 보십쇼)
최근들어 벌어진 일련의 사건(분리해서 이해될 것도 아니지만 2개의 비슷한 현상이 간격을 두고 일어났으므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은 글티너들에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당장 뒹글귕굴은 이 사안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제시되고 있고, 개중에는 다소 공격적인 것도, 또 그 반대의 성격을 띄는 것들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정치적으로 실존하는 문제들과 비교될 수 있다는 점이다(그중 다수를 필자가 직접 제시한 바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 현존하는, 그리고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고자 짧은 글을 남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파고들어보자. 2025년 6월 12일과 20일, 하루 최대 3-4개의 글이 올라오던 수필게시판에 10-20개 정도의 글이 올라왔다. 대체로 1000자 이하의 짦은 글이었으며 주제가 비슷했기 떄문에 조직적으로 올렸으리라 짐작이 되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정중 일부가 소속 학교를 명시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추적한 결과 글틴을 교육과정중에서 활용했다는 것을 찾을 수 있었기 떄문이었다. 몇몇 글티너들은 분개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항의의사를 표했다. 글티너들이 이를 불쾌하게 여긴 수많은 이유중 하나는 (화자님의 논지를 인용하자면) 글틴을 학생들에게 강제했다는 것이었고, 이 외에도 멘토님에 대한 부담이나, 월장원에 대한 저평가등 중요한 이유들은 더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사건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글틴에는 분명히 글틴의 홍보 차원에서 이 사건이 비단 부정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고도 주장한다. 문학의 보급 차원에서 이는 어쩌면 문학이 더 대중화되고 있고, 또 이를 통해 더 대중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멘토님에 대한 부담이나 문예위에서 멘토 인력을 확충하면 될 일이다. 역사적으로 가능했었음은 여러 군데에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서 한가지 짧게 짚을 점은, 문학가로서 평범한 한 인간에게 문학에 참여하는 것을 권하기란 꽤나 난감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은 잉여적 노동이고, 항상 그래왔으며, 또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소모적인 동시에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진부한 공격이긴 하지만 필자는 예술의 본질이 아마추어리즘에 있다는 데에서 한치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 이에 대해선 후에 다루도록 하고, 문학을 권함에 있어 문학적 창작이 대중화 되는 것에 대하여서도 그것이 마냥 좋기만 한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문학은 문학가의 수가 아니라 문학가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이해에 인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더이상 글틴이 ‘우리’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생각해보자. 이번 건은 큰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다른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타났음에도 그에 대해 분석할만한 다른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개인적 수준의 단순 도배가 여러 형태로 제지되고 있듯이 조직적인 형태의 단순도배도 제지될 수단이 있기야 할 것이다. 하다못해 관리자가 직접 지우는 식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 올라온 글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단순 도배가 아님을 넘어 심지어 몇몇은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조직적인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또 어떤 논지로 규탄할 것인가? 일부가 말한 것처럼 멘토 인력 확충과 함께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전환은 애초에 시스템의 성격상 어렵기도 하고(학교에서 글틴을 활용하는게 확산되면 글틴 이용양이 폭증함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월별 이용량 차이도 커지게 되고, 애초에 학교만 이용하란 법도 없다), 현재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지게 된다(일회성 글티너가 대다수가 된다면 멘토와 글티너, 그리고 글티너와 글티너간의 소통은 굉장히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문제 해결에 앞서(애초에 필자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가지 질문에 도달한다. 글티너는 도대체 무엇인가? 정의상으론 글틴을 이용하는 모든 이용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익명성으로 엄격하게 보호받으며, 오로지 글과 기타 제한된 창구만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이번 수필게시판 사건과 같은 일들이 일상화된 글틴을 가정했을 때, 상술한 정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고 지금 당장 만나며 소통하고 있는 글티너들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카톡과 디코와 캠프와 뒹글뒹굴에서, 그리고 당연히 글속에서 만나고 대화하며, 서로 문학에 대해 토론하는 이들과 가끔 글을 클릭하지 않는 이상에야 평생 볼일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는 평소 필자가 열렬히 비판하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독자는 스스로 글티너임에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끼는가? 이러한 질문에 필자는 스스로도 아니라고 대답하겠고 또 그 대답을 강권하겠으나 당연히 독자가 가질 각자의 대답을 존중하겠다. 글티너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각자 어떤 비슷한 감정과 함께 여러가지 형태로 의사표시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방금 질문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뒹글뒹굴에서 볼 수 있는 글들에서 또 공통적으로 집히는 점이 있는데, 어떤 점이 우리 스스로가 글틴을 대변하게 하냐는 것이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규탄이든 지지든 하여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권리로 이해되는게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 권리는 또 어떻게 생기거나 배분 돼야 하고, 또 어떻게 집행되어야 하는가? 물론 민주적으로 하는 것이 제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복잡한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애초에 글티너는 글틴의 이용자다. 우리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상을 주는게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뿐이다. 권리니 뭐니 운운하기에는 그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이상한 글 던져서 미안하다. 애초에 쓸 건 많은데 여기다 쓰기는 싫어서 다 짧게만 언급하고 끝난 것 같다. 고칠 것도 아닌데 못난 글 써서 다시한번 미안하고, 읽어주어 고맙다.
(성현아 평론가님께는 무한한 감사와 멘토링 스킵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가 뭘 하든 항상 멘토님께서 고생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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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긴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그간 혹자, 혹은 독자라 부르던 사람들에 대한 나의 애정과 존중은 너무 깊이 파묻은 탓인지 잠시 옆에 치워두고 싶다. 한국어에 대한 오랜 고민이 있었다. 내가 읽어온 한국어는, 특히나 문학에 있어서 의지의 표출이었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본질이라기 보다도, 더 큰 맥락을 대표하기 위해 존재했다. 상록수와 수난이대를 읽던 내게 아몬드나 그 엇비슷한 표지들의 요즘 책들, 그러니까 말 그대로의 픽션들은 내게는 너무도 난해한 것들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외계의 스토리들, 그리고 낯선, 그러니까 엉뚱하리만치 이상한 단어들을 가져와다 쓰는 서평들을 읽다보면 그 소설들은, 또 문학은 현실의 프라모델이라기보단 또봇이라거나 카봇이라거나 하는 대중적인 메카물의 피규어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즐기거나 즐기지 않건간에, 사유라거나 깊이라거나 하는 단어들, 그러니까 해설하자면 적어도 500쪽은 되는 책들에서나 기대하고 찾던 작가들 본연의 누적된 생각들은 뜨고 지는 사조들의 저편으로 이미 사라졌다고밖에는 내게 남아있는 결론이 없다. 예수가 말했듯 비판받기 싫다면 비판하지 말아야하므로 나는 나의 주장을 만듦에 있어 어느정도는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어는 단지 문학의 필요가 전혀 없는 맥락이다. 한국 문학의 세련된 학풍, 그리고 여러 비평, 발문, 서평등으로 지껄여지는 공명은 한국어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또 괴이하게 스스로 발전하며 작동한다. 한국 문학의 고요하고 정제된, 말하자면 연구된 문장으로서의 문학은 어쩌면 고도의 완곡한 풍자극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한국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텍스트는 작가들의 불평불만은 고결하게 풀어낸 보여주기식의 자기고백이나 오덕들의 엔터테인먼트라고밖에 할 수 없는 픽션들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다. 우리 백치들은 우리가 마치 이전 사조들보다 위대한 걸 건축해 낸 것 마냥 떠든다. 무슨 소설집이 넷플릭스보다 재밌다느니 토마토가 심장보다 단단하다느니 하는 모든 것, 또, 굳이 꺼낼 필요는 없겠으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다는 등의 모든 너무 자기의식적인 나머지 병신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비아냥으로까지 들리는 개소리들말이다. 말해왔던 바지만, 엔터테이너로서의 길을 갈 사람들을 응원한다. 열심히 해라. 사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선 차라리 작가 기획사를 차려서 사업을 하는게 훨씬 낫지 않을까도 싶지만 우리 백치들은 그럴 염치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말이다. 나는 문학의 구성요소로서의 메세지라는 개념을 싫어한다.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없지만서도, 은연중에 문학은 근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지만 중심적이며 추상적인 메세지가 있어야 여운이 남는다거나 더 완결적인 작품이 된다거나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쓴다면 쓰는 거다. 쓰는 것에 대해 연역적으로 선행하는 목적같은 건 있을 수 없으며 쓰는 것은, 그리하여 적히는 것 그 자체로 온전한 목적이며 메세지다. 기껏해봐야 로맨스물, 단순성장물 쓸거면서 페미니즘, 기후변화같은 것들을 찍먹하는 걸 나는 순수히
- 기능사
- 2025-11-20
우리 문학이 점점 짧아진다. 오랫동안의 사견이었으나, 단지 사견으로 끝날 주장이 아니다. 실제로도 그렇다. 당장 어느 서점에 가더라도, 대하소설은커녕 엄지손가락보다 두꺼운 소설들도 곧장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하소설은 대가 끊겼다. 2000년대 초에 나온 것 역작들만 옛 독자들이 알아볼 뿐이고, 등단 수십 년을 바라보는 옛 작가들의 추억 이야기가 이제는 정말로 대하소설의 일몰이라고 밖엔 볼 수 없다. 실제로 교보문고에서도 그러한 장편 중에선 (당연히 경장편들은 제하고) 조정래와 김진명, 무라카미 하루키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전부다하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현대의 트렌드는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라거나 대중의 테이스트가 너무 스낵컬처에만 맞게 퇴화했다거나 하는 분석은 차치하고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대하소설, 더 나아가, (대하소설은 그 자체로는 그냥 플롯 구조가 완만한 거대한 소설이라는 뜻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총체 소설의 필요성을 알아야만 한다. 총체 소설은 사학이다. 역사를 재구함에 있어 기타 사료와 수량화된 자료들만큼이나 그 맥락을 증언하는 것은 문학의 존재다. 토지가 그러했고, 한강의 여러 작품이 그러했으며, 한국 문학의 원초를 거슬러가 본다면 역시나 같은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이므로 그것이 실체적인 진실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실체적인 진실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작가는 집필의 의지와 과거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사투하고 공부하고 또 갈등해 나가야 한다. 또 그렇게 작품이 발표된다면 그것은 다시 공격받고 다른 매체, 어쩌면 다른 소설로서 반박될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야말로 역사에 기여하는 올바른 방법이다.총체 소설은 그러한 이유로 맥락을 충분히, 그리고 최대한 완전히 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 혹은 필요했다. 그러나 요즘의 사조는 그러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굳이 역사 소설이라 표현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굳이 과거사만을 위한 총체소설일 필요는 없으므로) 소설의 필요성은 다양한 의미에서 무시된다. 짧은 가방끈으로 뭐라 할 말이 있겠냐마는 현대의 도그마는 역시나 개인이다. 더 나아가 사회의 대비로서의 개인이다. 집단의 안티로서의 개인, 수량화된 전체 속에서 억눌리어 살아가는 개인, 무채색의 수많은 ‘개체’들 간에서 억눌리어 살아가는 개인이다. 비단 캐릭터가 여러 명 등장하는 소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는 오로지 개체에서 개인으로 정체화되어야만이 성립한다. 그런 과정에서 개인이 얕아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클리셰를 그대로 쓰는 작가가 어딨겠냐마는 독자들이 원하는 건 이해 가능한, 또 그렇기에 정상적인 형태로 감정적인 주인공이지 까발려진 타자가 아니다. 그러나 사학이기보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길을 문학이 택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남을 것이냐하는 걸 생각해야 한다. 우리 인간군(군체로서의 개체들, 나는 사회라는 개념을 싫어한다)이 고민해야 할 것을 고민하지 않은 세대로 남아도 되느냐고, 정말 그래도 되느냐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혹자는 사회가 정말 필요한 것
- 기능사
- 2025-11-10
요즘 시 게시판에서 멘토링으로 배우고 느는 바가 적은 것 같아 이참에 스스로의 시론을 되돌아보고 미학을 정리해보려구 합니다. 멘토링욕을 돋우기 위해 극히 자아도취적인 표현을 썼으니 이점 참고 바랍니다. 기능사는 글틴에서 단연 가장 개성있는 글을 쓰는 작가 중 하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글은 천방지축이고, 대부분의 경우에선 그 난해함이 그 불규칙성, 그리고 의미의 발산을 더욱 확신케 한다. 그는 언젠가 스스로 유치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글을 더욱 어렵게 쓰는 것 같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난해한 시들이 그런 다다이즘으로만 비치진 않는다. 그것들은 더욱 높은 층위에서 시의 가능성을 질문하는데, 그 중엔 특별히 예로 들어 설명할 것이 있다. Ignorabimus Op.64저쪽 굴 끝엔 이그노라비무스*들이 삽니다 산다고 하긴 좀 뭐 하죠 아인슈타인**과 힐베르트***의 시체나 처리하는 게 전부인 한량들이니 토막 내어서 묻어버리지 않으면 아마 그들도 버티기 힘든가 봅니다 그들의 시체는 그러기보다도 단단한 번뜩이던 그들의 눈빛은 대단한가 봅니다 중절모를 썼을 땐 몰랐겠지만 백 년씩이나 그들을 잘라내고 있으니 그들은 굴밖을 나와서 은하수를 볼 자격 따윈 없습니다 그들은 울어야 합니다 그들은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신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그들의 우울증은 하이젠베르크****는 나치였고 괴델은 병신*****처럼 죽었다죠 YHWH는 금세 숨어버렸습니다 뿌옇게 떠버린 먼지 속으로... 칸토어******와 플랑크*******는 아무래도 몰랐을 겁니다 YHWH는 분명 그들이 신이라 불렀던 것을 두려워했겠죠 --- 아주 재밌는 꿈이 있습니다 제 신실한 아내에겐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야겠군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걸 질색할 테니 말입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세상이 마인크래프트같이 그저 물리엔진 속 세계이고 우리가 그저 컴퓨터라면 우리 머릿속에 또 다른 세계를 만들면 그 속의 인간은 우리를 인지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두렵습니다 YHWH의 상상일 뿐이라면 어쩌냔 말입니다 난 그를 비웃습니다 그가 인간이거나 아니기 전에...*19, 20세기에 존재했던 철학사조. 진리따위는 알 수 없을 거란 입장이 특징적이다.**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알것이다.****독일의 물리학자 불확정성 원리의 주창자다.*****오스트리아, 미국의 수학, 수리철학자. 불완전성 정리로 유명하다.******우리를 위해 칸토어가 만들어준 이 낙원에서 그 누구도 우리를 내쫓을 수는 없으리라*******새로운 과학적 사실은 설득을 통해 패러다임이 되기보다는 반대자들이 죽고 그에 친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며 기존의 원리를 대체한다.Ignorabimus는 그의 난해시 중에서 특기할만한 한쪽 끝에 있다. 특별히 이 시에 있어선 전에 기능사가 Ted에게 부탁한 설명문이 있다. 저는 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해서 감히 뭐라 말할 권리가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그냥 몇가지 와닿은 부분과 글을 읽으며 든 생각이라도 몇가지 써보고자 합니다. 여기서는 수학
- 기능사
- 2025-11-03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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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안녕하세요, 글틴지기입니다. 항상 글틴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열심히 활동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이번에 게시물이 폭증하게 된 건, (저 또한 추정입니다만) 최근에 학교로 글틴 홍보를 했고, 이에 글틴을 알게 된(혹은 이미 알고 계시는) 선생님께서 글틴을 더 많은 학생들이 활용했으면 하는 마음에 글틴에 글을 올리는 것을 학생들에게 권유 혹은 과제로 준 것 때문인 듯합니다.글틴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더 많은 청소년들이 글틴을 알게 되고, 관심 갖고 글틴을 활용하게 되는 것은 좋은 상황이긴 합니다.하지만 기능사 님이 우려하듯 저 또한 단순히 과제 수행만을 위해, 창작품이라 할 수 없는 글에 복사 붙여넣기 형식으로 올라오는 것에 대해서는 막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다만 현 시스템 상에서는 기능사 님을 비롯 기존 글틴 회원들이 걱정하는, '단순 과제만을 위한 글'을 정확하게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그리고 실제로 과제만을 위한 글이었다고 할지언정 그게 잘못된 것인가?라는 질문도 이어집니다. 이 공간을 기존 글틴 회원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면서도새롭게 문학에 관심있는 신규회원이 언제든 유입될 수 있는, 그렇게 되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현재로서는 사회 통념상 공개될 수 없는 글, 게시판의 성격이 맞지 않는 글이라고 판단되는 게 아닌 이상 청소년들의 창작품에 대해서 관리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블락처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존 회원으로서 답답한 마음도 있으시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저희도 방안을 더 고민해 보려고 하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안
@화자 댓글 잘 읽었습니다. 화자님의 주장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강조하는 바가 달랐다는 점은 알겠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 번 사건의 본질 자체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우려한 바는 어디까지나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잠재적인 문제들이고, 그에 대해 생각할 바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지 단지 지금 까지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소개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 글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올리는게 의미가 있냐는 따질 수 있겠지만, 글틴 또한 비평의 대상이 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잘 써서 올리는 좋은 기능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화자님 너무 매섭자나... 그냥 실험적이고 바보같은 비평으로 생각하자구)
기능사님의 글에 너무 공감이 됩니다...근래 너무 수행평가를 목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저도 안좋게 생각하고 있었기도 했고 아무런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능사님께서 글을 올려주시니 정말 묵었던 것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기능사님 이런 글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역사 좋앙 아니 화자님이 아래에 왜 올렸냐고 하셨는데 여기서 칭찬을 하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무튼 간에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뭔가 생각은 많지만 정리하는 게 쉽지 않네요. 왜, 나만 알았으면 하는 맛집 있잖아요. 글틴이 우리에게 그런 느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만 알았으면 해. 여긴 너무 좋거든······ 그럼에도 좀 더 광범위하게, 미래를 본다면 이 글틴이라는 곳도 문을 활짝 여는 것이 맞겠죠. 우리가 겪어온 이 분위기가 사라진다고 할지라도요······ 분명 글틴의 활동이 늘어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다만, 갑작스럽게 찾아와 많은 혼란과 갈등(저도 이 갈등에 의견 제시하고 나름 적극적인 사람으로서 할 말은 없습니다······.)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의 글틴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두서 없네요. 쓰신 글과 얼마나 연관 있는 댓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니 받아들이세요.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이해 나쁜글이 뭘 바라겠습니까 에휴... 제가 글을 잘써야지요... 도발적인만큼 글도 잘써야되는데...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저는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러셔요······ 잘 읽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말을 좀 조리 있게 하지 못해요. 그래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