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집단, 개인과 통용되는 윤리에 관한 단상
- 작성자 강완
- 작성일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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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이를 가진 두 명의 청소년은 지적, 사회적 역량과 책임감, 윤리의식 등 사람에게 척도를 매길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같은 나이에 합법적으로 음주가 허용된다. 이는 분명 온당하지 않은 일이다.
다만 사회와 법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용납되는 이유는 집단적인 능률의 향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모든 개인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든다면 분쟁이 잦아질 것이고, 분쟁을 해소하는 방식을 찾아보려고 한다 하더라도 결국 각자 의견의 경중을 따지는 얄팍한 방식으로 결론내어질 것이기에, 궁극적인 사회의 절충안은 최소한의 주관만 개입할 수 있는 밑바탕, 즉 법을 깔아 두고,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윤리의식을 법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키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방식에서 비껴나가 고유한 윤리적인 잣대를 정립하는 기관 혹은 집단의 잣대에 대한 신뢰도는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개인에게 통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판가름하게 해주는 것은 법이다. 물론 법 이외에도 속한 집단, 주변 환경 등을 기반으로 쌓은 개인의 윤리의식은 이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다분하겠지만, 그런 개인의 윤리의식을 공공적인 장소에서 근거로 내미는 것은 비논리적인 행동으로 비추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집단이나 기관의 대표로서 그 집단 내부의 규격을 세우고자 할 때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법일 것이다.
또한, 현재 대두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처럼 선별되지 않은 개인이 별도의 인증 없이 출입할 수 있는 집단의 경우 이런 논지가 더욱 강화된다.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읽는 사람을 특정한 사상, 혹은 성숙도를 가진 인물로 규정지을 수 없으니 보수적인 잣대, 즉 법, 을 기준점으로 내세우는 것은 합당하게 느껴진다. 가령, 청소년 전용 글 커뮤니티의 경우 청소년 개개인의 성숙도와는 무관하게 법을 근거로 들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 또는 차별적으로 비치는 행위를 규제, 혹은 검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보다 현실적인 맥락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글이 선정적, 폭력적, 혹은 차별적으로 느껴지는지를, 또 어떤 글이 그렇지 않은지를, 무 자르듯 양분할 수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판단은 기관, 혹은 집단의 주관적인 의견에 의거한다.
어떤 글이 폭력을 재생산할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문학적으로 우수한 완성도를 지닌다고 치자. ('폭력을 재생산할 여지'가 있는지를 고려할 때는, 글의 줄거리가 어떠한가보다도, 글의 집필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글을 읽은 후에 드는 인상이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할 방법은 없고,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언급하겠다.) 이 글은 어떻게 대우받아야 할까?
윤리적으로 모든 관점에서 완벽한 글은 있을 수 없으므로, 글을 평가할 수 있는 윤리적인 잣대는 기술적, 심미적 완성도와 함께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혹자에게는 이 스펙트럼 위에서 매겨진 점수가 과연 온당한가,라는 생각이 분명 들 수 있다. 작품의 윤리성을 스펙트럼에 두고 평가하겠다는 말은 결국 작품으로 인해 미쳐진 피해의 경중을 따지겠다는 말과 같은데, 이때 염두에 두어지는 기준은 다수를 대변할 수는 있지만, 결코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안의 명쾌한 옳고 그름이 흐려진다는 말이다. 조악한 예시이지만, 어떤 사람이 세상의 모든 콩에 대한 배척을 주장한다고 하자. 그의 의견은 사회의 대다수에 의해 무시당할 것이지만 어쩌면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가 있을 수 있고, 그는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피해자인가? 사건에 의해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 꼭 적절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피해자라는 말과 동치이지는 않을 뿐더러, 만약 그가 피해자로 생각된다고 해도 그에 따라 받는 배상은 매우 주관적인 판단에 기댈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릴 때 앞선 두 가지의 경우를 명확하게 구분짓기는 어렵다.
또한, 경향에 의거해 생각해 보자면,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소수일수록 그들의 요구는 사회 대다수의 가치관과 거리가 멀 것이고, 따라서 타당하지 않은 요구로 비춰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논점에서 살짝 벗어나 진보층의 경우를 예시로 들자면, 진보 세력은 기득권층을 전복하고 약자의 처지를 대두시키는 데이 그 이념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가장 세력이 큰 진보 정당은 정의당이나 녹색당이 아닌 더불어민주당이다. 정의당과 녹색당은 더 소수인 사람, 더 배제되어 있는 사람을 염두에 두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조금 더 중도의 사상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같은 약자로 취급되더라도 조금 더 현재 사회의 분위기, 법의 분위기상 다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 개인이 글에 관련해 윤리적인 잣대를 내세울 때에도 이처럼 다수를 기반으로 한 주관성이 대두된다.
그 과정에서 주목될 수 있는 화두로는 문학이라는 매체의 특수성 (독자에게 이념이나 사상을 전파시키기가 쉽다는 점)이 고려되어, 모든 작가가 자칫 반론이 제기될 만한 소재의 사용을 엄금해야 하는지, 만약 폭력이 가해진 것이 맞다고 판단된다면 커뮤니티 내에서 검열을 가할 당위성이 부여되는지 등이 있다. 필자의 이번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이 글의 주제와 거리가 있다고 판단하기에 글의 말미에 따로 서술하겠다. (*표시의 댓글 참고)
여하간 이에 대해 여러 갑론을박이 오갈 수 있겠지만, 의견을 차치하고 보았을 때 이 과정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집단은 개인을 완벽하게 대변할 수 없기에 특정한 사상을 대변하는 집단 둘 싸이의 분쟁은 어느 정도 같은 격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상이 법의 변두리 이내에서 정의된다고 가정한다면 그렇다). 다만, 집단이 하나의 개인이 가진 사상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퍼붓는다면 이는 더 이상 분쟁이 아닌 일방적인 가해 상황처럼 비추어질 여지가 있다. 개인은 전적으로 집단의 아래에 있으므로, 집단의 결정이 불합리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고, 집단의 결정이 법을 근거로 들지 않는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위법한 행위가 아닌 이상 개인이 다시 법을 근거로 들어 반감을 표출하는 일은 어렵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완전히 배제한 집단과 집단 사이 공방의 경우, 앞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세력전을 연상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발언권이 어느 방향으로 치중되고 사안이 어떤 방향으로 결단이 날 지는 이미 어느 정도 자명할 지도 모른다.
이 글을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의 사회 수업 시간이었다. 그 학기, 사회 수업의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던 단원은 '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수업이 궁극적으로 말했던 바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문화 상대주의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화 상대주의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문화가 개인에게 이질적으로 다가오더라도, 그 문화가 어떤 도의적인 선을 넘지 않는 경우,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그 도의적인 선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교과서는 부연 설명하지 않았다. 만약 사회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모두에게 통용되는 윤리와 선을 정립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집단 혹은 개인의 모습을 조금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어쩌면 사회에 속해 있는 한 살아가는 가장 안전한 방안은 개인이 가진 소수의 의견을 다수와 일치시키도록 노력하고, 또 계속해서 개인을 다수가 속한 집단으로 편입시키려고 노력하므로써 잠정적인 타격을 줄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파동 속에서 유실될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과 더 많은 변혁의 실마리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9월의 글틴 소설 월장원 선정 건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 해당 글이 특정 잣대 아래에서 문제삼을 만한 여지가 있는 것은 맞지만, 글은 앞서 이야기했듯 메시지의 가치 이외에도 여러 복합적인 기준 아래에서 평가되기 때문에 완전히 위법적이지 않은 이상 다른 측면에서의 글의 완성도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러 가치들을 평가한 잣대의 공정성, 그리고 글틴의 이용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특정 성별에 가하는 폭력적인 행위'의 고려 기준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면 이를 심층적으로 문의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의가 묵살된다면 '문의에 대해 답변'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선행되는 문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따라서 글의 윤리성에 대한 문제가 충분히 대두되지 않고) 월장원 글에 대한 검열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처럼 비칠 위험이 있다. 다만, 해당 글의 댓글에서 작성자가 보인 언행은 글과 별개의 것이므로, 글의 월장원 수상과 별개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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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할 사항: 저는 패랭이콩에 대한 아주 개인적이고 격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