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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안녕」의 가사 중심 감상

  • 작성자 아이오딘
  • 작성일 2025-11-07
  • 조회수 747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안녕. 」은 일본의 밴드 '츠유'의 곡으로, 정규 1집 〈역시나 비는 내리네〉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곡의 소재는 죽음, 그중에서도 자살이다. 뮤직비디오의 배경과 캐릭터에 탁한 진분홍색, 청람색, 회색에 가까운 보라색 등 칙칙한 색조가 사용되었고, 가사는 매우 비관적이다. 


어릴 적부터 죽여 왔던 생명들은 셀 수 없이 많고

자그마한 생명들을 매장하곤 태연히 웃으며 귀로에 올랐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제일 먼저 죽는 건

아아 나여서 다행이구나


곡의 초반, 화자는 이미 '죽음'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부터 생명들을 셀 수 없이 죽였다고? 살인마?' 하고 의아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 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화자가 죽인 '생명'은 우리가 평소에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캐릭터(양갈래를 한 소녀)가 손가락을 바닥에 대고 흙장난을 하는 듯한 일러스트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자그마한 생명들'이란, 평소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것들, 예컨대 개미나 공벌레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을 포함해서 현재까지도 우리는 셀 수 없는 '살생'을 해 왔다. 길을 걸음으로써. '제일 먼저 죽는 건 나여서 다행'이라는 부분은 화자의 (아마도 위의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의미한다. 이미 자그마한 생명들은 죽었지만, 내가 더 살아 있으면 더 많이 죽기만 할 테니 (내 세대에서는) 내가 제일 먼저 죽게 되어서 다행이다. 그런 식의 자기 비하와 우울감, 자기혐오가 나타나 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대목에서 이미 자신의 죽음을 결심해서 마음이 편해진 듯한 모습도 보인다. 


화창한 주변의 공기가 짙어서

존재 가치를 빼앗는 거야


주변이 화창하고 공기가 짙다고 해석하면 어렵다. '주변의 화창한 공기가 짙다'라고 해석하면 조금 쉬워진다. 주변의 공기는 화창하고, 그 분위기가 짙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고 쓸모있어 보인다. 나만 빼고. 그래서 화자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주변의 화창한 공기, 즉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생명선 같은 건 쓸데없이 길 뿐이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그저 주름이야

속마음이 시시한 인생관을 한탄하고 있어

귀를 찌르는 이상(理想), 뱉어내 버리고


화자의 생명선은 길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길하다고 받아들여지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정도에 그치는 일이다. 그런데 화자의 소망은 '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쓸데없이 길기만 한 생명선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뮤직 비디오에서 소녀는 자신의 손, 또는 그 위의 손금(생명선)을 바라보고 있다. 더 자세히 보려는 듯이 반대쪽 손으로 손께를 짚으면서. 어째선지 그 끝에서는 꽃(잎)이 피어나고 있다. 생명선을 잘라내는 데 성공한 걸까? 

속마음이 '시시한 인생관'을 한탄하고 있다. 자기의 인생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소녀의 인생관이 어떻길래 그럴까? 위키백과에 의하면, 인생관이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또는 '인생은 무엇인가'등에 관한 사고나 자세를 뜻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볼 때, 소녀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몰라, 일단 나처럼은 아냐. 인생은 무엇이지? 쓸데없이 긴 것. 몰라, 몰라, 몰라. 누가 물어보면 답은 하는데, 자기 귀에 찔린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말하든 세상의 '이상'을 말하든 불쾌한 건 매한가지다. 자신의 이상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이상은 가식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어쨌든 그게 자신의 이상이 아니기에). 


사라져 버리고 싶은 인생이란 것에 무슨 값어치가 매겨질까

자기중심적이라고? 내 마음은 조금도 알지 못하면서

어차피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거북하게 여겨질 뿐이니

그렇다면 나를 찌르고 죽이고 빼앗고 떠나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안녕. 


화자는 인생이 사라져 버렸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또는 사라지길 바라며 인생을 살고 있다. 어느 쪽이든 우울함과 소멸욕구 같은 것이 드러난다. 이에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자기만 생각해서 하는 소리라고.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생각해서 버텨보라고. 그래서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힘들다고. 다 모르고 하는 말이야. 

그리고 화자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고. 어차피 죽을 거, 지금 죽는 게 낫지 않나? 먼 미래에는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르니까. 이왕이면 내가 원할 때 죽는 게 좋지. 완전 럭키비키잖아? 그래서인지 소녀의 모습은 '저승행 버스'를 타러 가는(즉, 저승길에 오르는) 이에게 기대하곤 하는, 슬프거나 울적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코끼리 열차를 타러 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더 닮았다. 소녀는 양팔을 쫙 벌리고 들뜬 듯 다리를 한껏 접어 뒤도 안 돌아보고 신나게 달려간다. 저승행 버스를 저렇게 타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참고로, 이승의 버스도 저따구로 타지는 않는다. (아무쪼록 망령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버스를 저따구로 타면 안 된다. )

경쾌한 기타 간주가 끝나고 2절이 시작된다. 


어릴 적에 바보 취급 당했던 것도 잊지 않은 채로

몸에 배우지도 않은 불합리함이 머리에서 떠나주질 않는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째서 담아두었던 걸까

아아 맟섰다면 좋았겠지


왜 담아뒀는지 모르겠다면서 계속 담아두고 있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니 후회되는 일이 많은가 보다. 


개운치 않은 인파 사이로 기어서

존재 가치를 나타내는 거야

행복론 같은 건 쓸데없이 복잡할 뿐이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저 글자일 뿐


이제 화자는 딱히 행복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행복이란 고작 '인파 사이로 기어서 존재 가치를 어거지로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게다가 행복론은 복잡하기만 하다. 행복론을 이해하면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얕은 마음이 딱 와닿지 않는 초조감에 쫓기고 있는걸

시간만 지나서 더는 돌아갈 수 없어


화자는 초조하지만, 잘 와닿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는 것에 대한 와닿지 않는 초조감이다. 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우리의 미래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진행이 꽤 느리게 진행되는 탓에 대부분에게는 와닿지 않는 것이다. 


(중략)

사라져 버리고 싶은 인생 같은 것에 의미는 있나요? 

사라져 버리고 싶은 인생 같은 것에 꿈은 있나요? 


뮤직비디오를 보면 배경에 토끼, 알약, X자 아이콘이 꾸물거린다. 이 노이즈가 사라지는 장면은 영상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이게 바로 그중 하나이다. 이 글에서는 생략되었지만 바로 직전의 간주 구간은 난잡하기 이를 데 없다. 화면에서 책가방, 솜인형, 우산이 지나가는데, 자기들끼리 자리를 바꿔가면서 계속 왼쪽으로 움직이고, 그 노이즈도 사라지지 않는다. 간주가 끝날 때쯤에는 화면이 X자로 뒤덮이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깔끔하게 치워진다. 조금 전까지 죽여 달라며 악을 써대던 소녀는 차갑게 미소 지으며 앞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얼굴이 작게 나와서 전체적으로 매우 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기타도 기교가 줄어들어 리듬만 나타내는 수준으로 변한다. 

가사를 보면 지금까지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몇 번이고 물어본 것과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한다. 사라지고 싶은 삶에 뭐가 있냐고. 그리고 답이 없자 소녀는 혼자 결론을 내린다. 


없잖아. 


여기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모션이 적었던 것을 보상하듯 화면에는 다시 노이즈가 끼고, 곡은 클라이맥스에 돌입한다. 


사라져 버리고 싶은 인생 같은 것에 무슨 값어치가 매겨질까

"힘들지? 이해해. "하고 이해한 듯이 말하지 말라고

어차피 수십 년이 지날 때까지 한탄할 뿐이야

그렇다면 나를 찌르고 죽이고 빼앗고 떠나


일러스트는 소녀가 칼로 자신의 목을 겨눈 모습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의 모습 중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다. 아까의 질문이 마지막으로 물어본 것이라면, 지금의 질문은 이미 답을 확신한 후에 한탄하는 것이다. 주변의 위로도 그저 아는 척으로 들릴 뿐이다. 


그것이-- 

나에게 가능한

처음이자 마지막 발버둥이야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안녕. 


안 봐도 상상이 가지만 뮤직 비디오를 보면 거의 대놓고 자살을 암시하고 있다. 소녀가 (그 와중에 매우 편안한 미소를 띄고) 식칼을 자기 목에 갖다 대고 있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고 울부짖고 비가 내리고


하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소녀는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영상은 우산 모양의 로고가 뜨며 쓸쓸하게 마무리된다. 

저승버스는 츠유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참고로 이 소녀(한국에서는 '저승이', 영미권에서는 'bus girl'이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린다)는 생존 가능성이 0에 가깝다. 밴드에서 후속곡을 냈는데, 그 가사가 저승에서 후회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후속곡을 그렇게 낸 것으로 보아 저승이는 그대로 저승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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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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