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의 목소리로 비주류를 말한다 – 히피쿤다 <Tundra>를 듣고
- 작성자 구포대교
- 작성일 202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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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쿤다가 대중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작년 겨울,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랩:퍼블릭>을 통해서다. 그녀는 99' Nasty Kidz를 이루는 멤버 드레인케이와 함께 출연하여 극한의 협동랩을 선보인 바 있다. 한국 힙합씬에 여성래퍼는 비주류이며 혼성듀오는 없다시피 하다. 히피쿤다의 등장은 그런 메마른 바닥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방송에서 재치 있는 가사와 유려한 플로우로 청자들에게 이름을 각인해뒀던 그녀가 정규 1집 <Tundra>를 들고 찾아왔다.
전술했듯 한국 힙합씬에 여성은 분명한 비주류다. 스월비나 재키와이 등의 래퍼들이 고평가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히피쿤다는 자신의 성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앨범을 특별화했다. 5번 트랙 <채식주의>는 남성성을 고추에 은유하며 살아남기 위해 절대 채식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유쾌한 곡이며, 3번 트랙 <pluto>와 7번 트랙 <너랑 하는 게 내 소원>에선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성적 대상화를 고발한다.
택시 아저씨가 담배 끊으래서
달리는 중간에 문을 걍 열어재껴
입덧처럼 토하고 20을 던져줘 근데
내 뱃속엔 애가 설자리 없어
박아줘 빨아 내 신음 소리에만 귀가 다 밝아
진저리 나니 더해봐 더
빡통가사 싫대 내 말은 이해도 못 하면서
<Pluto> 中
히피 너도 남자나 좀 만나러 가 화도 식혀
일만 하다 시간 다 놓치고 젊은 처자 실격
건물주 아들이래 27살 미용실에서 일해
압구정이 직장이고 키는 oh 꽤 훤칠해
<너랑 하는 게 내 소원> 中
이 대목에서 히피쿤다의 랩스킬에 관한 칭찬을 빼놓을 수가 없다. 위와 같은 가사를 내뱉으며 그녀는 빠르지 않게, 소위 말해 귀에 박아 넣는 식의 쫀득한 플로우와 발음을 구사한다. <Alaska Running>, <WESTERN BOOTS>에서 귀에 때려 박는 속사포를 구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플로우 변화를 통해 히피쿤다는 앨범 내 호흡을 조절하는 동시에 전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녀는 힙합씬의 비주류인 여성의 목소리로 비주류를 말한다. 1번 트랙 <파수꾼>에서도 자신을 몇 안 되는 파수꾼이라 칭하며 비주류를 자처했다.
저 아래서도 난 살아
<Tindrum> 中
아마추어들 내가 괴물 되기를 강조
그건 되는 게 아냐 오래전부터 여기 차 있어
<Guillotine> 中
앨범 대부분의 노래에서 히피쿤다는 비주류를 노래한다. 그것이 여성이든, 힙합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곳은 척박한 황무지다. 타이틀곡 <WESTERN BOOTS>에서는 그녀가 지나왔던 벅찬 삶을, 웨스턴부츠를 신고 설원을 걷는 발자국으로 묘사한다. 가사를 강조하는 플로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가사전달력이 발휘된다.
이렇듯, 전체적으로 훌륭한 앨범이지만 아쉬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피처링의 부조화를 얘기할 수 있다. 루시갱은 그나마 같은 여성래퍼로서 노래 속에 잘 녹아든 편이지만 다른 피처링들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타이틀곡 <WESTER BOOTS>의 후렴구를 부르는 서울부인의 김경호는 안 그래도 갑작스런 컨트리풍 사운드에 매력적으로 녹아들지 못했다.
감안하고 봐도, 결론은 앨범은 훌륭하다, 로 귀결된다. 그러나 완성도에 비해 해당 앨범을 향한 주목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유튜브 조회수가 700인 노래도 존재한다. 힙합 자체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주류로 분류되긴 하나 그렇다 해서 납득할 퀄리티가 아니다. 힙합은 비주류이며 힙합 속에서도 여성은 비주류다. 히피쿤다는 비주류로서 비주류를 말한다. 비주류만이 할 수 있는 목소리가 주류에 닿을 때, 그 가치는 대폭상승 한다. 히피쿤다의 <Tundra>는 그러한 가능성을 지닌 앨범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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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까 한다.난 중학교를 재학하는 3년 간 국문학이랄까, 순문이랄까, 이제는 그 경계마저 희미해진 분법 속에서 특히 웹소설과 가까이 지냈다. 비록 지금은 순문학 – 웹소설과의 대척하는 문학의 종류로써 이하 순문이란 표현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그 단어 사용의 정확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국문학의 긴 역사를 온전히 이해해야만 하고, 내게는 벅찬 일이다. 미리 양해 구한다, -을 지향하고 쓰는 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웹소설에 관해 오해하고 있는 지점들에 대하여 몇 가지 의견을 남기고자 한다. 아마 몇 가지 작품들을 중점으로 얘기하게 될 것이다.‘모든 웹소설들은 형편없는 수준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활자 조합물일 뿐이다.’약간은 극단적인 말이지만 동의하는 이들도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아마 웹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자들은, 혹 인기 작품 몇 화만 읽다가 때려치운 자들은 그 수준을 얕잡아볼 것이다.웹소설의 구조에 대해 말해보자. 그것들은 편당 연재다. 순문 쪽에서도 장편소설이 신문 등을 통해 연재되고는 했었지만 약간은 결이 다르다. 독자들은 1화에서 재미가 없으면 1화에서 읽기를 포기한다. 5화에서 재미가 없으면 5화에서 읽기를 포기한다. 웹소설 작가들에게는 한 화 한 화 독자들을 재미의 올가미로 붙잡아야만 하는 숙명이 존재한다. 웹소설 한 화의 평균적인 분량은 5500자다. 작가들은 나름의 재미요소들을 그 5500자 내에 필수적으로 심어놔야만 한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웹소설들이 아주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 어쩌면 웹소설만의 특징이다. 웹소설을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할 터다.또 다른 특징으로는 문장의 간결성을 말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웹소설은 스마트폰, 혹은 데스크탑 등으로 읽히는데, 웹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가독성이다. 한 문단 내에 많은 문장들이 몰려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른바 벽돌체는 웹소설 작가들이 특히 기피하곤 한다. 오히려 한 두 문장 마다 행갈이를 하며 화면 내에 여백을 늘여 문장에 집중시키는 스타일이 대유행이다. 웹소설에겐 그것이 정도다.가벼운 이야기, 가벼운 문장들, 쾌락에만 치중하는 작품들. 웹소설에 대한 인식이 이러한 이유는 대부분의 인기작들이 이러하기 때문이다. 전술한 특징들을 구사하지 못한 작품들은 태반의 독자들에게 외면 받는다. 옳고 그름이 아닌, 독자들의 성향이 그렇다.이제부터는 이 웹소설의 문법들을 약간씩 벗어나며, 가벼움을 탈피하고, 혹 가벼우면서도 울림을 주는, 감명 깊게 읽은 작품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그것들은 일종의, 진흙 속에 파묻힌 진주들이다. 후술할 글들은 일종의 추천사들이라 보아도 무방하다.로드워리어 작가의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은 보통의 규율을 무시한 명작이다. 명작이란 표현이 남용되는 시장이라곤 하지만 난 단정할 수 있다. 보통의 웹소설들이 화마다의 내용을 연결 지으며 서사를 만드는데, 로드워리어의 일명 <아집숨>은 한 화 한 화가 개별적인 서사를 그려내고 있는 옴니버스식 구조의 소설이다. 이야기가 중후반부로 갈수록 이 차별화
- 구포대교
-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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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포대교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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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듣고 너무 좋아서 처음으로 음악에 관한 이러쿵저러쿵...을 써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