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 내맘대로 감상하기
- 작성자 dreamspop
- 작성일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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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낙관 편향이 존재한다. 이는 현실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마치 서사 중심에 놓인 인물처럼 상정하게 만드는 인식의 방식이다. 이것은 어떤 시련 앞에서도 결국에는 도달점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직감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개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서사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80억 개의 삶 중 하나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가치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삶에 희귀성(Rarity)은 부재하지만, 희소성(Scarcity)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은 세계에서 단 하나로 선택된 예외가 아니며, 얼마든지 다른 삶으로 대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요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의 공급은 단 하나뿐이다. 그 관계 안에서 나는 다른 누구로도 완전히 대체될 수 없다. 바로 이 희소성이 살아감을 지속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동력이 된다.
그런데 희소성마저 소거된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가장 보통의 존재’가 아닐까?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의 주인공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자신이 보통의 존재임을 깨닫곤 몸서리친다. 그것은 섬뜩하리만치 무서운 자각이었으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자신이 보통의 재능과 운명을 타고난 그야말로 보통의 존재라는 것도 알았고, 세월이 갈수록 나를 가려주던 백열등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도 직시하게 된 지금.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나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나'는 현실에 투항하게 될까?
누구든 위험한 희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자유가 있다. 따라서 그는 얼마든지 안락과 정착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일찍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여건에 수긍하거나, 운명을 거역하기 위한 노력을 쉽사리 포기한다면... 하여 보통의 존재는 역시나 보통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된다면...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은 허무하지 않을까. 주인공의 미래가 몹시도 궁금해진다."
이석원(언니네 이발관), 산문집 <보통의 존재>에서 발췌
이 앨범의 핵심 서사는 보통의 존재가 된 ‘나’가 이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이 지점을 유념하며 <가장 보통의 존재>를 감상해보자.
1번 트랙 <가장 보통의 존재>
음반은 동명의 곡으로 시작한다. 이 트랙에서 화자는 자신이 이미 오래전부터 ‘보통의 존재’로 살아왔음을 토로한다. 가사 전반에 ‘나’와 ‘너’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화자가 ‘너’를 향해 저주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
나는 니가 웃은 만큼의 웃음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 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
나에게 넌 허무한 별빛
너에게 난 잊혀진 길
이곳에서 우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지.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
여기서 ‘허무한 별빛’은 이후 8번과 10번 트랙에서 반복되는 핵심 키워드로 기능한다.
3번 트랙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계속 남아야 되는데 버려져요. 그러니까..... 아름답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굉장히 소중한 존재로 있다가 어느 순간에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순간을 이야기로 담은 노래예요. 그래서 제목이 '아름다운 것' 입니다."
이석원,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출연 당시 인터뷰
이석원은 이 곡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로 머물다 어느 날 갑자기 ‘가장 보통의 존재’로 전락하는 순간을 담은 노래라고 설명한다.
설명을 따른다면, 〈아름다운 것〉은 상실의 결과가 아니라 상실을 선언하는 장면에 가깝다. 따라서 이 트랙을 앨범 속 ‘나’의 시점이 아니라, ‘너’의 시점에서 발화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아름다운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은 감정의 진술이 아니라 선택의 논리이며, 그 선택의 순간에 주인공은 특별한 존재에서 보통의 존재로 밀려난다.
5번 트랙 <의외의 사실>
화자는 보통의 존재가 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처음으로 구체화한다.
알 수 없어 왜 너는 나에게
이제 아무도 아니라고
믿을 수 없는 말이 나에게
사무쳐 오네
아름다운 세상이 나에게
너는 아무도 아니라고
믿을 수 없는 말이 나에게
사무쳐 오네
이 대목에서 ‘너’의 발화는 ‘나’를 더 이상 특별한 존재로 호명하지 않으며, 그 순간 ‘나’의 삶을 지탱하던 희소성은 급격히 붕괴된다. 희소성의 소멸을 인식하는 동시에, 화자는 자신에게 애초부터 희귀성이 부재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세상이 나에게
너는 아무도 아니라고.
믿을 수 없는 말을 나에게 해봐도
난 절대로 믿을 수 없어
인정할 수가 없네.
난 더는 여기에 있을 수가 없어.
어디든지 뛰쳐가야만 하지.
누군가와 만나 밤을 지새워도
초라한 기분이 가시질 않네.
그러나 화자는 이 자각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을 보통의 존재로 환원시키는 타자의 규정을 끝내 수용하지 못한다. 여기서의 부정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감정적 거부에 해당한다.
그 결과 화자는 현재의 자리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느낀다. 어디든지 뛰쳐나가고, 누군가와 밤을 지새워 보지만, 그 모든 시도는 초라함을 지우지 못한다. 이는 희소성을 상실한 이후의 방황이며, 관계를 통해 다시 특별해지려는 시도가 이미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부정은 곧 도피로 이어지고, 도피는 다시 공허로 귀결된다.
8번 트랙 <인생은 금물>
씁쓸한 가사와 스카 리듬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별이 되어가는 것이라네
이전 트랙들은 자신이 보통의 존재가 된 이유, 그리고 그렇게 됨에서의 고통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인생은 금물>에서는 삶 그 자체에 대한 태도로 시선을 옮긴다. 제목이 암시하듯, 화자는 인생과 사랑 모두를 경계의 대상으로 제시하며 근본적인 회의감을 드러낸다.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
먼저 나온 사람의 말이 사랑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네
사랑도 금물 함부로 빠져들지는 마
먼저 해본 사람의 말이 자유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죽을 만큼 괴로울지도 몰라
사랑도 금물 함부로 빠져들지는 마
그러나 너는 결국 말을 듣지 않고 어느 누군가를 향해서
별이 되어 주러 떠나게 될 걸
화자에게 인생은 결국 ‘별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사랑 없는 삶은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않은 채 수많은 별 중 하나로 사라지는 상태에 가깝다. 가사의 표면만 놓고 보면 오히려 사랑을 권유하는 발화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사랑마저 ‘금물’로 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은 누군가의 별이 되어 주는 행위이다. 화자는 무턱대고 사랑할 경우 자유를 상실하고 깊은 괴로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함께 드러낸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이별, 곧 ‘별’의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곡에서 화자는 인생의 무게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사랑하는 삶과 사랑하지 않는 삶 모두를 비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만약 ‘별이 되어가는 과정’이 곧 인생이라면, 그 귀결이 슬픔으로 수렴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9번 트랙 <나는>
그러나 화자는 비관 이후에도 끝내 새로운 가치를 찾지는 못한 듯 보인다.
여기 남은건 허망한 말뿐이네
나는 외로이 큰소리로 소리쳐
나도 변하지 않는건 아닐거야
그저 용기를 낼 수가 없었을 뿐
화자에게는 허망한 말밖엔 남지 않았다. 변화에 대한 다짐은 외침으로만 남고, 그 대상인 ‘너’는 끝내 부재한 채다. 변화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자각만이 남아 있다.
오 말없이 나는 눈물을 흘리며
어딘가에 있을 너를 느끼고 싶어
내게 남은 건 허망한 말뿐이네
나는 외로이 큰소리로 소리쳐
나는 언제나 이곳에 이 자리에
그저 머무르고 싶었을 뿐인데
참 더럽게 이상한 세상이야
멈추라고 할 때까지 걸어야 해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
그저 이렇게 하루를 살아갈 뿐
화자는 ‘너’를 향해 머물던 감정을 거두고, 마침내 그 화살을 세상으로 겨눈다. 그러나 그리움과 후회에 잠긴 ‘보통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세상은 바쁘게 그를 끌고 나아간다.
10번 트랙 <산들산들>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화자는 자신이 보통의 존재임을 인정하며 말문을 연다.
사랑 또한 언젠가 변하고 별(이별)의 순간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다가올 시간 속의 너는 나를 잊은 채로 살겠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게 조금은 남아 있을 거야
새로운 세상으로 가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맘처럼 쉽진 않겠지만 꼭 한번 떠나보고 싶어
화자는 자신을 잊고 보통의 존재로 전락시킨 ‘너’를 더 이상 저주하지도,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잊을 수 없는 게 어딘가 남아 있을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는 태도를 보인다.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화자는 자신이 ‘보통의 존재’이며 더 이상 누군가의 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특별한 존재가 될 필요도, 타인의 삶을 지탱하는 별이 될 필요도 없다는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화자는 자신의 가치를 희귀성이나 희소성에 종속시키지 않겠다는 태도를 선택한다. 그것은 비교와 관계의 질서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초인의 결단에 가깝다. 그렇게 그는 산들산들 구름 위를 날아간다.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화자는 인생은 금물이라 말하며, 삶과 사랑이 필연적으로 괴로움으로 수렴함을 주장한다.
사랑에는 언제나 별, 곧 이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누군가의 별이 되기 위해서도,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라,
그저 삶이 계속되기 때문에.
사랑은 인생을 구원하거나 완성하지 않지만, 잊히지 않는 몇 개의 순간을 남긴다. 어쩌면 그 정도만으로도, 보통의 존재가 삶을 이어가기에는 충분한 이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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