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칭송하는 나의 악몽 - [한로로 - 0+0]
- 작성자 문휘
- 작성일 202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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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276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이기적이었을 수도 있다. 나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나에겐 참 안 좋은 기억이다.
중학교 3학년.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해온 환경동아리가 있다. 어쩌다 보니 동아리 선생님 앞에서 밴드부를 해볼 생각이 없냐는 권유를 받았고, 우리 지역 문화의 집에는 나로 인해 만들어진 중등 밴드부가 새로 생기었다. 12월에 생긴 동아리는 나의 1년 중 3분의 2를 전부 차지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 한 팀을 이루어 활동 한 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 이라 생각한다. 나는 모든 동아리 팀원들이 나와 맞지 않았다. 그냥 같은 밴드부로써 들어주는 말이었지. 남들을 욕하는 태도. 노력도 없이 참 많은 결과를 바라는 것과 책임감 없는 행동 그리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가치관 등. 나와 맞지 않는 점은 참 많았다. 사실 난 밴드부 생활을 하면서 나에겐 안 좋은 철칙이 있었다. "내가 불편하더라도 다수가 원하고 말한다면 최대한 들어주려 노력하자."라는 철칙. 하지만 나의 그런 철칙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연 1주일 전에 곡을 바꾸자 말한다던가. 다들 열심히 하는데 투정만 부린다던가. 자기들은 되고 나는 안 되는. 힘들고 재미도 없는 밴드부 활동이 계속되며 나는 그냥 체념했던 것 같다. 공연을 준비하며 이번에는 무슨 곡을 할까 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요새 유행하는 한로로의 노래를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입춘. 그 마저도 다른 밴드부가 한다고 일주일 전에 바꿨고. 최종 결정된 곡은 한로로의 비틀비틀 짝짜꿍. 참 나와 맞지 않은 노래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불렀다. 다음 공연에도 아이들은 한로로, 한로로 노래를 불렀다. 팀원에 절반이 한로로의 팬이었다. 난 그게 싫었다. 우리 수준에 맞는 곡을 선정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연을 망치는 것. 이번엔 또 어려운 곡을 선정하고 "이번곡 부르기 너무 힘들다"는 둥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그러니까 한로로 해줬잖아?" 몇 달 뒤. 쌓이고 쌓인 게 점점 진물이 나고. 나만 희생하는 밴드 생활에 지칠 무렵. 아이들은 동그라미인데 나만 세모라는 이유로. 싸움이 나고. 또 나만 사과하고. 사과받지 못한 채. 그대들 잘못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독박을 쓰고 밴드부를 나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로로 가 싫어졌다. 정확히는 한로로를 좋아하는 그대들을 싫어한다. 한로로 노래를 들으면 그대들이 생각났다. 그럼 또 상처 속에 소금이 뿌려지고 하루에 절반 이상을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한로로 노래를 듣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듣기만 하면 짜증이 막 올라왔다.
알고리즘에 가끔씩 뜨는 한로로 노래를 계속해 넘겼다. "노래 자체는 참 좋은데.." 사실 위에 사연이 없었다면 한로로를 정말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반복된 넘김 속에도 입에 맴도는 멜로디는 참 좋았다. 듣고는 싶은데 또 듣고 싶진 않고. 모순적인 나날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한로로의 '0+0'을 한번, 가능하다면 3번 이상. 듣고 밑에 글을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한로로의 '0+0'이란 노래를 처음 봤을 때, 가사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왜 이런 제목인지 이해가 안 갔다. 0+0은 그냥 0 아닌가. 0이 갑자기 왜 나오지?
"한로로의 노래 '0+0'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0)인 사람들끼리 만나더라도 함께라면 무한한 사랑과 영원을 꿈꿀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구글에서 제공하는 AI 정보 -
보통 노래 제목들은 가사에 나오는 문장이나 딱 보이는 이유가 서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한로로의 '0+0'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 가사를 보면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라는 가사가 나온다. 사실 어쩌면 이 문장은 정말 터무니없는 말 일지도 모른다. 이걸 듣는 상대는 참 난감할지도, 가사가 말하는 느낌과는 전혀 반대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인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참 무서울 것 같다. 나를 언제 버릴지. 갑자기 죽어서 내 곁을 떠날지. 내가 싫증이 나서 그를 버릴지 모르는데. 대체 무엇을 확신하고 저런 말을 나누는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래를 계속해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 거지?"
- 한로로의 '0+0'의 가사 중
처음에는 "대체 어떻게 안 떠날 거란 확신을 하고 저런 말을 나누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계속해 듣다 보니 그냥 가사는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변치 않는 사랑. 무한한 사랑. 우리의 영원. 가사는 그런 걸 원하는 것 같았다. 언제 떠날까 라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연인 관계가 아닌 무한한 영원을 꿈꾸는 연인 관계. 사실은 확신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 확신을 하기 위한 질문 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언제나 곁에 있는 것들이 영원할 거라 믿는다. 늙은 고목이 되어버린 우리 할아버지와 부모님 그리고 인생의 벗들. 언젠가 사라질 거란 걸 모른 채. 그들에게 모진 말들을 내뱉기 일쑤다. 언젠가 사과하면 그만이니. 내일은 더 잘하면 되겠지.라는 생각 하나로 그들이 점점 없어지는 줄 모른 채 살아간다. 영원이란 건 그런 것 같다. 사람을 착각하게 만드는 가장 찬란한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거라 착각한다. "우리는 영원하자."라는 말을 하는 중에도 우린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한로로의 '0+0'을 들으며 많이 반성했다.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항상 영원을 꿈꾸는 것이. 참 불쌍하고 미안하다.
반성을 느낀 만큼 많은 생각을 했다. "여름 코코아. 겨울 수박도."라는 가사에서 이 노래는 단순 연인과 내가 아닌 나와 나를 이야기하는 것도 같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정답을 좋아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날려야 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코코아를 먹으며 체온을 높이는 것. 그런 게 너무 정해진 삶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겨울에 수박을 먹는다고 하면 나도 엄마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여름에 코코아를 먹는다고 해도 다들 "그래? 맛있게 먹어!"라고 말할 이는 별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모습도 나인데. 왜 사람들은 그냥 정답만 좋아하는 걸까?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을 듣고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게 바로 나다. 남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변하려 노력하는 사람.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이실 거라 믿는다. 나라도 나를 믿고 나의 모습을 영영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똑같은 허수아비들이 걸어 다니지 않을 텐데.
"내가 조금이라도 나의 모습을 사랑하려 노력했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날 버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모습 이었을까?"
한로로의 '0+0'이란 노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영원이 없는 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남들과 똑같은 내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싫어하고 불편하던 한로로가 조금은 편해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단순 악몽이었던 노래가 나에게 반성과 성장의 기회를 낳아주어서 다행이다. 다들 나와 남을 비교하는 삶이 아닌 나 자체를 인정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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