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악인을 사랑하는가?
- 작성자 양양
- 작성일 2026-02-28
- 좋아요 0
- 댓글수 2
- 조회수 259
왜 우리는 악인을 사랑하는가?
소설과 드라마, 영화를 보면 사건의 전개를 위해 악역이 등장하는 경우가 부단하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그 악역을 신랄하게 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 악역도 존재한다. 그들의 악행에서 정당성을 찾기도, 칭송할 부분을 찾기도 한다. 동시에 그들을 사랑하는, 흔히 말해 그들을 ‘최애’로 삼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왜 우리는 이들을 사랑하는가?
왜 이들을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되는가?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은 어째서 존재하는가?
심지어 이러한 ‘악역’에 대한 사랑은 현실 속 ‘악인’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대에 범죄자를 사랑하고 그들의 팬클럽이 만들어지는 기묘한 현상이 종종 발견된 것과 같은 사례들이 그 예시이다.
이에 나는 의문을 가져 그 답을 창작물 속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통해 찾아보고자 했다. 또한, 악인에 대한 사랑은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하는지, 이 글을 통해 고찰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들을 사랑하는가?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개연성’이 존재하는 악역, 즉 필연적으로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인 ‘필연적 악인’에게 특히나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필연적 악인’은 모두 사연을 지닌다. 이러한 악인은 과거의 어떠한 사건 또는 환경이 악행을 촉발하는 형태를 자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 과거 사연이 인물의 악행에 대한 충분한 개연성을 부여한다면 우리는 그 악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여주인공 ‘트리사’가 그 대표적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총 3편으로 구성된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결합한 영화이다.
1편인 <메이즈 러너>에서 ‘트리사’는 공간 내 인물 모두가 과거 기억이 사라진 채 존재하는 곳인 ‘글레이드’에 마찬가지로 기억을 잃은 채 떨어진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토마스’와 깊은 유대를 다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트리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트리사는 선한 역으로 묘사된다.
1편 후반부에서는 트리사가 일종의 치료제를 투여받는데, 그것이 2편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에서 그녀의 기억을 복구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하여, 2편의 극이 전개되며 조금씩 기억을 되찾은 트리사의 내적 갈등이 나타난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계관에서는 인권을 탄압하지만,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살아남을 기술을 가진 ‘최후의’ 문명을 가진 ‘위키드’라는 단체가 존재한다. 극에서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명분으로 주인공 일행의 인권을 무시한 채 주인공을 비롯한 사람들을 그저 조직의 이익을 위한 바이러스의 ‘치료제’로만 여긴다. 이는 주인공 토마스 일행과 위키드가 극 속에서 대립하는 원인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과거 자신이 위키드의 백신 연구원으로 일하던 기억을 되찾은 트리사는 자신과 유대를 다지던 친구들을 배신하고 위키드로부터 도망친 동료들의 위치를 알린다. 그 결과 토마스 일행의 주 구성원이었던 ‘민호’가 위키드에 잡혀가게 되며, 이는 3편 <메이즈 러너 : 데스 큐어>의 전반적 줄거리인 ‘민호 구하기’의 시발점이 된다.
3편인 <메이즈 러너 : 데스 큐어> 시리즈에서 트리사는 위키드의 촉망받는 연구원으로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한때 동료이자 친구였던 ‘민호’가 위키드로부터 고문받고, 그저 치료제로만 치부되는 모습을 방관하며, 연구원으로서 행위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한다’라는 말로써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이는 트리사가 토마스의 적이 되며 위키드의 사람이 된 모습을 보인다. 동시에 트리사가 극 속에서 악역임을 보인다.
트리사는 극 속에서 분명한 악역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트리사를 마냥 싫어하지 않는다. 그녀를 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를 욕하는 사람의 비율은 낮다.
왜일까?
그녀의 행동에는 원인, 즉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위키드에 속해 그들의 일원으로서 연구에 종사하며 살아왔다. 기억을 잃고 글레이드에 들어갔으나 점차 기억을 되찾고, 바이러스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를 잃은 어린 시절의 슬픔을 기억했다. 그녀는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위키드에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다른 인물도 그러겠지만, 그녀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이러한 그녀의 사연은 그녀가 자신의 친구들을 배신한 것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한다. 또한 3편 <메이즈 러너 : 데스 큐어>에서는 토마스 일행에 대한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는 결국 결말에서 트리사가 위기에 빠진 토마스를 돕는 과정까지 이어지며, 트리사가 극 후반부에서 자결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녀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 그러나 그 행동을 할 때 묻어나는 깊은 내적 갈등, 양심의 가책 같은 모습이 드러나며 최종적으로 토마스를 돕길 원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모습에서 평면적이지 않은, 입체적 인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과거와 현재의 감정을 아우르며 그녀의 선택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선택으로 만든다. 즉 그녀의 사연으로 인해 관객은 그녀의 행동에서 필연성을 느끼며, 이어진 그녀의 내적 갈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이전 행동에 대한 분노를 사그라뜨리게 만든다.
한 마디로, 트리사의 사연과 감정을 통해 관객은 그녀를 ‘이해’한다.
사연이 존재하는 또 다른 필연적 악인으로는 <귀멸의 칼날>의 ‘아카자’가 있다.
<귀멸의 칼날>은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본의 가상 역사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극 중에는 ‘혈귀’라는 인간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존재와 그런 혈귀를 몰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인 ‘귀살대’가 존재한다. 혈귀들은 최초의 혈귀인 ‘키부츠지 무잔’에 의해 혈귀가 되었고, 조직처럼 통솔된다. 키부츠지 무잔에게는 12명의 심복이 존재하는데, 이를 십이귀월이라 부르며, 그중 싸움 실력이 뛰어난 6명을 상현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1부터 6까지 실력이 좋을수록 낮은 숫자를 매겨 등급을 나눈다.
귀살대도 마찬가지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들을 귀살대의 ‘기둥’으로 임명하며, 이들은 ‘주’라는 칭호로 불린다.
아카자는 상현 3의 혈귀로,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은 채 무잔에 의해 혈귀가 된 인물이다. 그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에서 귀살대의 ‘주’ 중 하나였던 ‘렌고쿠 쿄주로’라는 인물을 죽인다. 렌고쿠는 주인공 ‘탄지로’에게 용기를 준 인물이자 탄지로가 혈귀를 죽이는 임무를 수행할 때 있어서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아카자는 그런 렌고쿠를 죽임으로써 탄지로의 원수와 마찬가지인 인물이 되었고, 동시에 악인이자 악당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는 시청자들의 분노를 이끌었고, 끝까지 탄지로를 지키고 타인을 위하는 렌고쿠의 태도에 시청자의 시선을 집중시켜 렌고쿠의 선한 심성을 부각한다. 그와 동시에 악한 모습을 보이는 아카자의 모습을 나타냈다. 이로 인해 아카자에 대한 대중의 민심은 그다지 좋지 못한 채로 유지됐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서 그 민심이 뒤집히게 된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이름 그대로 무한한 공간인 ‘무한성’을 배경으로 하여 귀살대원들이 키부츠지 무잔을 죽일 목표를 가진 채 혈귀들과 혈투를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잔을 죽이기 위해 귀살대원들은 무잔의 심복인 십이귀월과 혈투를 벌이며, 그 과정에서 아카자와 탄지로의 싸움이 진행된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서는 그 둘의 싸움이 비중 있게 드러나는데, 이는 박진감을 부여하며 동시에 ‘아카자’라는 인물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가 상영되며 그 둘의 싸움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비로소 아카자는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다.
그는 아픈 아버지의 약값을 대기 위해 도둑질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며 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와중,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가 자신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결하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케이조’라는 무도를 가르치는 이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아카자를 제자로 받고 아카자가 개과천선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스승이자 은인이 되었다. 이후 아카자는 케이조의 딸 ‘코유키’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케이조를 질투한 인근 무도장 사람들이 무도장 우물에 독을 타, 아카자가 손쓸 새도 없이 케이조와 코유키는 죽음을 맞이한다. 아카자는 이로 인해 다시 삶의 의미를 잃고 자신의 스승과 사랑하는 사람의 복수를 위해 근처 도장 사람을 모두 죽인다. 그 과정에서 키부츠지 무잔을 만나고, 혈귀가 되어 수많은 인간을 죽이게 된다.
그러한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아카자는 인간성을 되찾고, 삶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며, 비로소 자결한다. 자신이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어 강해지려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카자의 과거 사연은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을 끌어냈고, 그를 이해하는 사람이 생겨나게 했다.
아카자 또한 극 속에서 분명한 악역이다. 그가 렌고쿠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카자를 동정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를 이전처럼 그저 싫어하지 않는다.
아카자에 대한 여론에 반전이 생긴 건 그가 가진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가슴 아픈 사연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또한 그가 혈귀가 된 것은 ‘기억을 잃고 혈귀가 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며 정당성을 찾기도 한다.
즉 관객들은 그의 사연을 접하고,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그를 이해한다.
트리사와 아카자의 사례로 판단할 수 있듯, 사람들은 악인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존재한다면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사연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연은 단지 관객을 이해시키지 않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을 비롯한 복합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캐릭터의 분위기를 만들며 그들을 후술할 ‘매력 있는 캐릭터’로 만든다.
사연은 악인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악인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악인은 매력적이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흥미로운 내용의 영상을 접했다.
‘겨울왕국의 한스는 사실 악당이 아니다.’
<겨울왕국> 1편에 등장하는 ‘안나’의 약혼자 ‘한스’는 안나와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는, 안나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를 배신하고, 그녀에게 접근한 것이 오로지 돈과 권력을 위해서였다는 검은 속내를 내비치는 흔히 말하는 ‘빌런’ 캐릭터이다.
한스의 검은 속내와 안나를 죽이려고 한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한스 그는 악당임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그저 악당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유튜브 영상에서는 한스가 극 중 등장하는 ‘트롤’에 의해 세뇌되어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스는 그저 트롤들에게 세뇌당한 피해자이지, 안나를 배신한 악당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영상의 댓글들은 한스의 ‘수려한 외모’를 칭찬하며 나름의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트롤 세뇌설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그 가설이 실제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한스의 수려한 외모와, 매너 있는 행동, 이후 안나의 약혼자가 된 ‘크리스토퍼’와 비교되는 배경 등을 바탕으로 그를 좋아한다. 그가 안나를 배신했음에도.
그는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이며, 수려한 외모와 왕족이라는 지위, 매너 등 ‘남자 주인공’의 면모를 갖추었다. 다시 말해, 그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관객들은 그의 매력을 느꼈고, 이는 결론적으로 ‘한스가 사실은 빌런이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매력적인 특성을 지닌 또 다른 악인으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드레이코 말포이’를 예로 들 수 있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국이 배경인 판타지 영화이다. 주인공 ‘해리 포터’와 그와 대립하는 악역인 ‘볼드모트’,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 사이 벌어지는 다양한 국면이 내용의 주가 된다.
말포이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라는 해리가 마법사 세계에 발을 들이게 한 시발점과도 다름없는 학교의 동급생이다. 그는 입학 초기부터 해리를 비롯해 그와 가까운 친구들을 괴롭히며, 순수 혈통 마법사와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분하여 배척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극이 거듭할수록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어둠의 마법에 발을 들이고, 볼드모트의 편에 서게 된다. 또한 볼드모트에게 살인을 할 것을 명받고, 호그와트의 교장 ‘덤블도어’를 죽이기 위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학생들을 죽일 뻔하기도 하는 등 악역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물론 말포이는 단순한 ‘악역’으로 비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판단했을 때는 그는 볼드모트의 편에 선 악역이 맞다. 그러나 볼드모트와 대립하는 마법사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죽여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갈등하는 모습, 일그러지는 표정 등으로 그가 복합적 감정과 함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는 마냥 ‘악역’이 되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그를 바라볼 때 거시적 측면을 통해 그의 행동의 결과를 중점적으로 바라보며 그를 ‘악역’으로 판단했다.
그런 말포이는 해리 포터 시리즈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인물 중 하나이다. 시리즈 속 등장인물을 향한 인기투표에서는 그는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또한 그를 향한 스핀오프 창작물이 오늘날도 생성되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악역’인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매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실사 영화 속 말포이를 연기한 배우 톰 펠턴은 매우 잘생긴 외모를 가졌기에 ‘드레이코 말포이’라는 캐릭터는 큰 외모적 매력을 지녔다. 동시에 순수혈통 마법사 가문의 인물로서 막대한 부를 가지고, ‘귀족’과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렇듯 말포이는 그의 외모적 매력과 배경적 매력을 모두 지닌 캐릭터이며, 그것이 그를 향한 인기와 사랑의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스와 말포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악역이 매력적이라면 우리는 그 매력에 영향을 받아 그들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으레 그렇듯 인간은 매력적인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고, 악역들은 그 인간이 좋아할 요소들을 갖추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매력적인 악역’을 좋아한다.
우리는 왜 악인을 사랑하는가?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만화 등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태의 창작물 속 악역은 극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갈등의 원활한 전개를 이끌며, 때로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남기기도 한다. 또한 전형적 인물로서 풍자 또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입체적 인물로서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를 나타내기도 하는 복합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관객과 독자가 고찰할 부분을 전달하며,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악인은 이야기를 지닌 창작물에서 극 자체에 좋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특성에 따라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하등 이상한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창작물 속 악인이 아닌 현실의 악인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있다. 범죄자의 머그샷을 보고 그들이 잘생기거나 예쁘다는 이유로 그들의 ‘팬’이 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보석금을 대신 내주기도 한다. 또한, 어떤 미모의 범죄자의 재판 중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그를 감형해달라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총기 난사, 살인,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그들이 그저 잘생기고 예쁘다는, ‘매력 있다’라는 이유로 그들의 팬클럽이 형성되고,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누군가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으니,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 그 타인이 범죄자가 되어도 마찬가지로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의 이유가 우리가 창작물 속 악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이해하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그들의 사연으로부터 비롯하여 그들을 사랑하거나 그들의 외모와 배경 등에 매력을 느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범죄자에게 사연이 있다면 그 사연을 이해하고 그들이 행동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함을 마땅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인류애의 마음으로, 그리고 인간애와 같은 사랑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결국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악인을 인간애와 인류애의 마음으로, 또는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 같이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나 그들이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레 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가 장 발장을 사랑한 것처럼 말이다. 그가 장 발장의 조건을 보지 않고,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하며 그의 회복을 바라는 사랑을 장 발장을 향해 보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창작물 속 악인을 사랑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창작물 속 악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현실 속 악인을 사랑하면 문제가 된다. 오히려 피해자를 향한 이차적 가해이며,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악인을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조건 없는 사랑이어야 한다.
우리가 악인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째서 악인을 사랑하는가?
우리는 어떤 이유로 악인을 사랑하는가?
우리는 왜 악인을 사랑하는가?
우리는 오늘날 현실에서 사랑받는 악인을 어떤 이유로, 왜 그를 사랑하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트리사는 한국어 번역 도서에서는 ‘테리사’라고 언급되나, 본 글에서는 영화에서 사용되는 표기인 ‘트리사’를 사용함.
*<레 미제라블>의 등장인물 미리엘 주교: 범죄자 ‘장 발장’을 향해 조건 없이, 그리고 회복을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는 사랑을 보인 인물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메이즈러너 초등학생 때 정말정말정말 재밌게 읽었었죠..전 테리사를 악역으로 생각지 않았는데 따지고보면 그쪽 진영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하네요. 저도 썩 그녀를 안 좋아했어서. 아무렴 사연있는 악역은 미워할 수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전 사연있는 악역은 적대세력이지 악이라고 치부를 안 하는 편입니다. 글 잘 읽었어요. 그리고 메이즈러너는 최고의 소설! (특히 스코치트라이얼~)
@구포대교 우와 메이즈러너를 좋아하신다니 너무너무 반갑네요!! 저는 데스큐어를 정말 좋아했어요 ㅎㅎㅎ 테리사는 정말,, 좋아하진 않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죠,,적대세력도 좋은 표현인 것 같아요! 결국은 사연이 있는 거니까 마냥 악인으로 여긴다면 괜히 미안해지는 느낌이 있으니까용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