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덮이는 사람들과 함께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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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현대문학감상 시간의 일이다. 나와 친구들은 수능 특강 교재에서 임철우의 <눈이 오면>을 읽었다. 딸린 문제를 다 푼 뒤 선생님께서는 주인공의 고향 마을인 꼬두메의 어원을 추측해 말씀해 주셨는데, 꽃이 많아 ‘꽃동네’라 하던 것을 점점 편히 부른 것 같다 하셨다. 그 말을 듣고 꽃동네, 꽃동네, 연달아 발음하자 정말 꼬두메가 되었다. 사실, 실제로 ’두메‘는 깊은 산골을 의미한다. 꼭꼭 숨은 두메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 바로 ‘꼬두메’다. 그렇지만 눈 내리는 결말의 풍경과 대비되는 꽃의 이미지가 마음에 깊이 남았던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인 ‘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했던 추억과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고향 마을 꼬두메로 향한다. 그러나 도착한 곳에는 도시 개발이 다 되어, 잣고개라는 언덕 이외의 옛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아버지의 무덤이 있던 공동묘지 지부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을 깨달은 뒤 부끄러움을 느낀다. 정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향이 사라졌음을 받아들인 그가, 잠시 혼자 두었던 어머니에게 돌아가는데, 어머니가 잣고개로 향하셨다는 소식만 듣는다. 그는 내리는 눈을 맞으며 어머니를 찾아 잣고개로 간다. 그러나 한순간, 어머니를 다신 보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고도 생각하며, 열린 결말로서 끝나게 된다. 독자는 삶을 사는 데에 지쳐 분묘 이장 광고를 확인하지 못한 그의 안타까운 상황, 정서적 기둥이 되어 주는 고향 마을을 잃어버린 상황에 깊이 공감하며 7080년대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인식한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국어 시간에 가장 많이 접한 키워드를 떠올려보면 아마 산업화/도시화가 아닐까? 동시에 그 과정에서 ‘소외된 인간’을 다루던 현대 문학 작품들이 줄줄이 생각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여태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7080년대란, 내게 너무 먼 과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이 오면> 수업 이후, 학습지에 적힌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적는 과정에서 이 키워드를 지금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질문지에는 두 가지 해석이 적혀 있었다. <눈이 오면>의 결말을 어머니를 찾지 못하는 쪽으로 봤을 때, 어머니의 입장에서 좋게 해석하는 경우와, 그의 입장에서 불행하게 인식하는 경우였다. “여러분은 이 둘 중, 어느 쪽으로 바라보았나요?” 선생님이 물어보셨고, 각각의 결말에 손 드는 비율은 거의 반반이었다. 그 중 대표로 한 친구가 발표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꼬두메의 환상을 그리며 기쁘게 잠드셨다면 좋은 결말이라고 봅니다.” 정답이 없는 길이지만, 난 불행한 결말로 해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앞선 해석은 독자로 하여금 무책임한 사회에 안주하도록 할 수 있고, ‘왜 이들은 불행하게 끝났을까?’하는 질문을 던질 수 없어 더 깊은 시사점을 갖는 데 방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며, 농사를 짓고 살던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를 잃었다.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 공장에 가야 했으며, (1)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주택/교통/실업/교육/빈민/공해 등 여러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더불어 그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에 처하기도 했다. (2)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임동의 한 방적공장에서만 7080년대 전국 각지의 농촌에서 온 3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 고노동에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다. 산업 성장에만 치중한 개발 속에서 사람들은 기계 부품처럼 일했다. 목숨이 위독해져도 쉽게 쉴 수 없었고, 사랑이 사치였으며,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마음의 여유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 속 ‘눈’이 산업화/도시화를 비유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옛 마을을 지우며 들어선 도심처럼, 눈이 내리며 소외된 사람들(어머니)이 잘 보이지 않도록 세상을 덮어버리니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눈’은 자연스러운 기상 현상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과학 발전에 따른 기술의 개발은 어쩔 수 없는 ‘순리’와 같다고. 그러나 그 ‘순리’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순리대로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추위에 덮이는 존재가 과거에,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앞서 말한 산업화/도시화 시대로부터 40년이 넘게 지난 현재는 어떠한가? 인공지능이 개발되어 각종 분야에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기업들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광고 등에 적극 활용하여 이익을 남기고 있으며, 현재 무엇보다 위기를 맞은 분야가 IT계열이다.
(3)"나는 IDE(통합개발환경)를 지웠다.“ AI 서비스 ‘클로드’를 운영 중인 앤트로픽 엔지니어 보리스 처니의 말로, IDE란, 개발자가 코드를 작성하고 실행/디버깅(오류 원인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며, 개발자의 작업 공간과도 같은 도구다. 과거에는 개발자가 코드를 한 줄씩 쓰고 에러를 추적해야했지만, 이제는 AI가 기능을 통째로 구현하고 개발자는 요구사항을 던진 뒤 결과를 검수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처니는 ”코딩은 거의 해결된 문제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앞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함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4)인공지능 도입 확산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군 위주로 이미 기업의 신규 채용 축소가 진행되고 있다. 3월 29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과 ‘정보통신업’ 등 두 산업의 전체 취업자는 작년 동월 대비 약 14만 7000명 줄었다. 특히 중장년층만큼 경력을 갖지 못 한 세대에서 실업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IT/전문직 계열 20대, 30대 취업자 감소가 확연히 증가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 발전은 인간의 삶을 이롭게 만든다고들 한다.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발전한다면 지금 사라지는 일자리만큼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고, 돈을 벌지 못해 근근히 가정을 유지하거나 생계를 이어가게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기술 개발에 따른 문제를 예방하는 일보다 당장의 발전에 급급하다면, 이는 국가와 기업이 나서 노동자들을 유기하는 것과 같다. 더 나은 미래로 향한다며 인공지능 개발을 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기업들의 주장 속에, 실제로 일자리를 빼앗기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일은 미래 지향적 가치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는 듯이 묵인된다. 미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CNN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5)"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조스, 피터 틸......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죠. 그들은 수천억 달러를 AI 개발과 상용화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들의 동기가 뭘까요? 그들이 밤새워 노동자들의 삶이나 미래를 걱정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중략) 일론 머스크는 말했습니다. ‘AI와 로봇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일하는 것은 선택이 될 것이다.‘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죠. ’대부분의 일에는 인간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간단한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간이 필요 없어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소득을 얻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의료비를 마련하며 집세를 냅니까? 의회는 이런 현실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진지한 논의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사회‘는 당장이 아니다. 몇 십년은 예상한 발언일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주장은 인공지능 발전을 서두르는(인공지능 발전에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많은 실업을 예측함에도 마땅한 대책 없이 개발만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기술 개발이 ‘순리’라는 말로 돌아가보자. 우리 곁의 사람들이 아닌 속도에만 치중된 개발, 즉 ’순리‘는 소수의 부자들과 일부 기업들의 배를 불리기 위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순리와 같은 표현은 그들의 책임을 지워내는 표현이 아닌가?
과학 발전이 인간의 삶을 정말 이롭게 한다면, 과학은 우리 현실 속 수많은 일자리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들을 무작정 밀어내고, 사람을 경제적 가치로만 따진 채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그 속도가 특히 7080년대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학 작품들 속에서 얼마나 슬프게 그려지는지 잘 알지 않는가.
시기상조라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떠오르고 있는 (6)인공지능 사용세, 인공지능 개발 속도를 늦추는 법안 등에 관한 논의를 지금보다 훨씬 확장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이미 우리가 ’시기상조‘라 치부하는 세상을 염두에 두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학습지의 질문에 따라<눈이 오면> 소설을 어머니 입장에서 좋은 결말로 읽는다면, 마음에 작은 위안은 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쓰던 작가의 의도는 어떠했을까? 영영 찾지 못할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이들은 ’왜‘ 비극적으로 끝나야 했나를 떠올리도록 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그 ‘왜’에 강렬히 집중하여, 독자가 이 사회의 문제점을 논하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결말의 가능성을 남겨 두었을지언정, 작가는 소설을 열린 형태로 남겨 두었다. 어머니를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눈을 헤치고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를 향한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생각할 지점은 더 있다. 인생이란 이성적으로 다 논박할 수 없는 찌질함이라든지, 감정적인 확신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감동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감동이 이론을 이기기도 하면서 세상은 굴러간다. 마치, 현대문학감상수업 시간에 ‘어머니’가 행복하게 돌아가셨으면 한다고 발표하던 학생처럼 말이다.
눈앞의 문제를 조금 덮더라도 감정적인 위로를 원하는 그 마음은, 나쁜 측면도 있지만 우리 인간이 모두 가지고 있는 한 부분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이유 없이 사랑하고, 가끔 남탓하고 싶어하고, 너무 미운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기도 하는 법이다. 내게 해가 되는 사람을 위하여 인생을 바치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하도록 돕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하여 다른 이에게 배려를 실천하도록 하고, 삶을 꽃 피우듯이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법이다.
도심 속에서 아름답기만 한 꽃을 원하는, 때론 그 꽃을 미워하고 싶기도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정서를 기계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은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 사회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비효율적이고 감정 위주인 행위로만 보완할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게 앞으로 사회가 인간을 소외하며 발전해선 안 되는 이유다.
우리가 문학을 배우는 이유는 재미뿐만이 아니다. 사회와 작가의 시선을 비추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과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이다. 7080년대 한국의 산업화 시대와, 인공지능 발전의 과도기에 속한 우리는 어떤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이전의 ‘소외됨’이 사람을 기계와 같이 대하는 과한 노동으로 표출되었다면, 현대의 ‘소외됨’은 인간을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로서 대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부가 기본소득제를 실현하면, 사람 사는 문제가 해결될까? 그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는 미래는 최소한 인공지능이 사회 전반에 정착하고, 그로 인한 부가 각 국가에 어느 정도 쌓였을 때일 텐데. 그동안 돈을 벌지 못해 굶고 병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늘 사후 대처에 급급할 것인가?
또한 자아 실현의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자신의 효용성을 느끼지 못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단지 놀고 먹는 것만으론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인간이란 오래전부터 왜 태어났는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고민해오는 존재였다. 삶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효용을 느낄 수 없을 때, 우울이나 폭력적인 형태로 반출될 수 있지 않을까?사회에서 존재할 뿐, 필요 없는 이로 바뀌어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어떤 문제가 도래할지 알 수 없다.
거기다 인간은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속해 살아가는 존재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 많은 타인들에게 높은 성취를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존재한다. 그 어떤 노동도, 직업도 인공지능보다 못한 사회가 오면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해 실의에 빠질 수도 있다.
대응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인공지능 개발/상용화를 가속화하는 건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과거가 무작정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이란 거울에 투시되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현명히 해소할지 부단히 노력해야 마땅할 것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희생되는 삶을 단지 숫자로, 퍼센트로만 축소하지 않고, 수백 수천만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으로 들여다본다면, 사회에 주어지는 윤리/책임의 무게는 달라진다.
현대문학감상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작가가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정치적인 행위’라고 말씀하셨다. 현실에 기반하여 한 명의 삶을 써내리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인 행위일까?
정치는 좁은 의미로 국가 기관에 관련된 공적인 활동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서 공동체를 조정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고 묻히는, 우리 사회의 사람들이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갔나를 기록하고 남기는 행위가, 미래의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를 반면교사 삼을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갈등을 해결하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눈이 오면>은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인가 고민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설이었다.
기술의 발전 속, 눈이 오면 덮이는 사람들과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그 어떤 발전보다, 힘 없는 사람들을 보듬으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더 큰 가치임을 떠올려 보며. 임철우의 <눈이 오면> 감상문을 현대 사회로 확장하여 작성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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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사편찬위원회, 산업화와 도시화-우리역사넷
(2) 한겨레 신문, 2021-02-22 정대하 기자, “여성 노동자 눈물과 꿈이 교차하는 옛 방직공장... 공공성 담보 중요“
(3) 중앙일보, 2026-03-05 권유진 기자, AI에 일자리 뺏긴 AI 개발자... 인문학보다 실업률 높았다 [알파고 쇼크 10년]
(4) 조선일보, 2026-03-30 유준호 기자, IT/전문직 2030대 취업자 13.1만명 급감... AI발 청년일자리 충격 현실화하나
(5) KBS News 유튜브 공식 계정, [이런뉴스] “AI 멈춰야 한다, 그들 목적은 하나” ...샌더스 CNN 인터뷰 화제 / KBS 2025. 12. 29.
(6) 조선일보, 2026-01-05 김성민 기자, AI가 사람 대체하면... 세금은 어디서 걷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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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네가 08방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때 시 쓰면서 흥미롭게 봤거든. 암튼 인상적이게 잘 읽었어~^.^~(으악, 근데 말 존대하다가 놓으려니까 진짜 어색하다...)
@송희찬 좋게 읽었다니 다행이다! 그 비평은 4월에나 5월 중에 올리려고 ㅎㅎ 손미 시인님 시집 감상문도 써야 하는데 할 일이 많네 ㅎㅎ;; ㅋㅋㅋ너도어색하지
암튼, 손미 시인 비평도 기대하고 있을게^^ ㅎㅎ ㅋㅋ
최근 미국 정부가 클로드를 군사적/민간인 감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기술을 전면 개방하라 밝히자 엔트로픽이 이를 거부했죠. 그 자리를 챗GPT가 꿰차며 미국 시민들의 큰 반발을 얻었습니다. 이에 챗 GPT 불매 선언, 반대 시위가 발생하면서 미국 시민을 감시하는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긴 걸로 압니다. 이 사례를 찾아 넣고 싶었지만 이번 감상문과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아 제외했어요. 인공지능이라는 큰 기술력이 불러일으키는 윤리적 문제는 이제 막 신호탄을 터트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을 더 지지하면서 소비자로서, 국민으로서, 세계 시민으로서의 올바른 길을 계속 고민해야 마땅하겠죠. 전 아무리 기술력이 발전해도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의 빈 부분은 채울 수 없을 거라 생각해요. 감정이라든가... 아니면 조금 찌질하게 보일 수 있는 여러 가지. 그것도 다 인간이 가진 한 부분이잖아요? 경제적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미래 지향적 가치를 추구하는 속도가 늦춰지더라도, 계속해서 윤리적 문제를 고려해야겠죠. 왜냐면 이건 인공지능의 삶이 아닌 인간들의 삶이니까요. 과거 급격한 산업화의 반동으로, 환경 문제가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도 같은 이와 경우인 것 같아요. 당장 보여지는 좋은 측면보다 더 큰, 부정적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 미래를 다 알 수 없지만, 과거를 통해 살짝 엿볼 수는 있겠죠.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포용하는 속도로 함께 나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