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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사랑법 - 허진호의 <봄날은 간다>

  • 작성자 화자
  • 작성일 2026-04-29
  • 조회수 184

나는 지금까지 소위 멜로나 로맨스라고 불리는 것들을 최대한 피해왔다. 그것은 사랑에 관한 창작물들이 대게 어색함과 민망함으로부터 파생된 억지스러운 산물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특히 인물들이 서로 사랑하는 과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졌던 적이 적지 않다. 남녀가 사랑하는 순간이 과장되거나 정적으로 묘사되면 그것이 사랑적/사실적이다라고 느껴지기보단, 극적이라는 인상이 더욱 크게 남았다. 그 때문에 사랑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항상 유보적이었다. 물론 특정한 창작물에서 사랑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 작품의 주요한 부분들이 종종 무시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내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적어도 허진호 감독의 2001년작 <봄날은 간다>를 보기 전 까지는 말이다. 

가장 사랑적인 방식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는 사랑에 대해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멜로라는 장르로 프레임이 씌워진 이 영화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영화는 주인공 상우와 은수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성장 뿐 아니라, 상우와 그의 아버지, 아버지와 할머니, 백종학과 은수의 관계를 포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장들 또한 담아낸다. 


상우는 영화의 초반에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고 어림짐작하며 무심하게 묻는다. “도대체 누구를 기다리는 거야?”. 상우는 기다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우가 기다림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은수를 만나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면서부터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상우는 어느 순간부터 은수를 기다리게 된다. 이를 통해 상우는 기다림을 스스로 이해하게 된다. 즉,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기다림은 곧 사랑으로 변모해서 타자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상우가 은수를 기다리는 만큼, 은수 또한 이른 새벽부터 고속도로에 나와 상우가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린다.


요컨대 사랑이란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연대하는 행위를 뜻한다. 대나무를 흔드는 상우를 따라 대나무를 흔드는 은수, 라면을 끓여준 은수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상우, 밥을 먹는 상우에게 밥을 덜어주는 은수의 형상은 서로가 연대해가는 과정을 훌륭하게 포착해 낸다. 영화의 중반부에 이르면, 상우와 은수 서로 하나가 된 것 마냥, 비가 흐르는 은수의 집을 따라 상우의 집에도 비가 내리게 된다. 특히 늦은 새벽 고속도로에 쭈구려 앉아 상우를 기다리던 은수가 먼 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온 상우를 보고 그에게 달려가 안기는 영화 속 한 장면은, 멀리 떨어져 있던 것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수한 사랑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에서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간결하고 단조로운 카메라 앵글은 영화를 더욱 세련되게 만든다. 특히 이 영화에는 타 멜로 영화에 으레 있을법한 주인공을 향한 클로즈업이 있지 않다. 오히려 롱 쇼트를 사용해서 인물과 배경을 함께 보여주는 식이다. 이런 연출은 인물을 둘러싼 공간성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서, 사랑하는 대상의 육체 뿐 아니라, 대상을 둘러싼 환경과 시간 역시 사랑의 일부분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사랑은 ‘특정한 대상’ 자체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그 대상의 흔적이 묻어난 모든 것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감정이다. 사람을 공간과 함께 담아내려는 영화의 시도는 그 무엇보다 근본적인 사랑의 감정을 조장하며 매우 깊은 여운과 향수를 만들어 낸다. 

한편 자신이 날라리였다고 고백하는 은수가 그 시절을 떨쳐내지 못해서 날라리 차림의 백종학에게 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복선적으로 타당했고, 일종의 대물림적인 인물구조( 상우-아버지의 관계 / 상우 아버지-할머니의 관계 )도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또한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이별을 겪게 된 상우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장면은 성장하는 인물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타자를 이해하게 되는 것.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물질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 상우는 사랑한다. 이 사랑은 은수와의 사랑이 아니라, 할머니와의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이야말로 일종의 성장이기도 한 셈이다. 나는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 영화를 벗어나기 두려웠다.


미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훌륭한 이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문득 사랑 없이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벌새>나 <남매의 여름밤>처럼 내가 어린 시절 이별한 것들을 떠올릴 때 찾아오는 향수와는 많이 다른 여운이었다. 향수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것을 향한 일방적인 애정의 감정이다. 반면 사랑은 타자와 내가 서로를 포옹하는 동시다발적인 감정이다. 나는 사랑이란 것이 특정한 대상을 향한 맹목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로 합쳐지는 행위를 일컫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합쳐지는 과정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합쳐졌던 것이 다시 개별적으로 쪼개져 버릴 때이다. 은수와 잠시간 동일한 세상을 살았던 상우는 이별을 겪으며 큰 상심을 겪는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상우의 할머니는 홀로 남겨진 채 쓸쓸히 누군가를 기다린다. 진정한 아픔은 한때는 나였던 것이 나를 떠나버릴 때 찾아온다. 이 아픔은 그리움이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젠가 찾아올 아픔을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그리움마저 사랑의 한 부분이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은 특정 대상만을 향해 뻗어 난 감정이 아니라, 대상의 흔적이 묻어있는 모든 것들을 향해 뻗어 있는 것이니깐. 진정한 사랑은 타자가 조금이라도 연루되어 있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시작되는 법이다.


2023년 4월, 어느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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