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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한강 <<소년이 온다>>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6-04-30
  • 조회수 305

2024년 12월 3일 밤.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친구들이 1학년 마지막 기말고사를 기다리고 있던, 그날 밤. 우리의 일상은 지워질 뻔했다. 평화를 깨트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로. 현재 내란 수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윤석열의 목소리로.

 

그날도 평소처럼 지냈던 날이다. 7살짜리 동생을 재우고, 그 옆에서 잠들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엄마의 모습만이 잠들기 전, 마지막 기억이다. 그리고 평소처럼 잠을 설치다가 23시쯤 저절로 깨어났다. 그때 엄마와 이모의 통화 소리를 통해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한 사회가 한 사람이자 어느 집단의 폭력으로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그의 계엄이자 내란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멈췄다. 국회의 신속한 대응과 잠을 자지 않고 국회의사당 앞으로 나갔던 수많은 시민 덕분에. 나 역시 새벽 4시까지 내란의 밤을 뉴스로 전달받고 바라봤다. 아침이 될 때까지 끝까지 마주했다. 그때 내 손에 들고 있었던 책은 그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한강의 <<소년이 온다>>였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2025년 12월 3일의 밤처럼 폭력의 혼란이 가득했던, 1980년대 광주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한 사람 한 사람. 5월 18일 전후 광주에 있던 사상자와 피해자 그리고 유가족의 시점이 알레고리 형식으로 쓰여 있다. 1부의 동호로부터 시작되어 2부 겹겹이 쌓인 시체 하나인 정대. 마지막 6장에는 죽은 동호 어머니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막을 내린다. 그날 직간접적으로 그곳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의 파트를 넘길 때마다 읽히게 하고 모으게 한다. 

 

1장의 소제목은 ‘어린 새’다.화자는 동호다. 동호는 죽은 정대 혹은 살아 있을 정대를 찾고 있다. 그러면서 추도식이 열리는 성당에서 시체들 사이를 방황하고 있다. 이후 2부에서 정대의 사망 여부가 나타난다. 그는 시체로서 그리고 그 몸에서 튀어나온 혼으로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모습을 바라만 본다. 그런 그는 소설 전체에 있어 혼과 평범한 일상을 지키려던 여린 삶으로 작용한다.

 

혼은 위 책에서 어린 새이자 흰 새로 묘사된다. 맑고 순수하고 아무 잘못 없는 여린 존재로. 그러나 이런 여리고 순수한 존재들이 국가의 폭력 혹은 사회적으로의 폭력, 개인과 개인 사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폭력을 마주하게 될 때, 그들의 순수한 신체와 색은 변질된다. 이는 흰색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이다. 흰색은 흰색을 더하지 않으면, 색을 잃는다. 초록색과 결합되면 연두색이 되고, 노란색과 결합하면 연한 노란색이 되고, 검은색과 결합하면 연한 검은색이 된다. 심지어 흰색만 있을 때도 바람에 흩어져 오는 먼지로 인해 오염된다. 이런 특징은 소설의 혼과 시체에서도 드러난다. 순수하고 여린 것들이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던 순간들의 마지막이 이렇게 묘사된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pp.11~12.}

시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한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위 소설에서도 죽은 인물들은 흙으로 돌아가며 사라져 간다. 신체의 흔적들이 지워져 간다. 그럼에도 혼은 흰색 빛을 띤다. 2장의 제목은 검은 숨이지만, 그들의 혼은 흰색 빛깔을 빚어낸다. 그리고 그런 혼들은 점차 손을 뻗으며 늘어난다. 정대를 찾으러 다니던 동호도, 김진수도 수많이 죽은 5.18과 관련된 민주화 영혼들로. 그렇게 모인 영혼들이 결국에는 꽃을 피우고 삶을 피운다. 삶 속, 어둠 속 우리의 일상 안에서 피워낸다. 아런 상징을 소설에서는 마지막 부 <꽃 피는 쪽으로>에서 모아낸다.

 

<꽃 피는 쪽으로>의 시점은 동호의 어머니다. 동호의 어머니가 말하는 시점. 독자는 그 시대 죽음들을 다 알고 있는 상태다. 또한 화자 역시 동호가 죽은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의 죽음을 기리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살아낸다. 그렇기에 동호의 어머니를 포함한 수많은 피해자 유족들은 다음과 같은 행위를 했다.

"소리를 맞춰서 구호를 외칠라고 했던 계획은 엉망이 됐다이. 다들 울부짖고, 졸도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소복은 찢어졌다이." {p.188.}

그런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삶에 베인 슬픔은 묻어져 갔다. 사라진 것은 아니고. 한 개인의 삶 속에서 굳어졌다. 일상에 깔린 아스팔트처럼 아이를 잃은 슬픔이 그저 일상으로 변해갔다.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화자인 동호의 어머니는 살아가긴 했다. 그러나 그 삶이 매 순간 빛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삶이었을까? 선 자식이 둘이나 있다고 한들 소중한 자를 잃은 사람이기에 매 순간 빛이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기에 동호의 어머니는 검은 아스팔트 위를 밟고 그늘을 밟으며 생활한다. 그러나 가슴속 한구석에 묻어져 있는 동호는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더 나아가 책을 읽고 있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폭력의 가해자인 우리 앞에서. 꽃을 보라고 빛을 보라고 순수함을 보며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다친 수많은 영혼을 보라고. 동호는 그리고 그 동호를 만든 작가 한강은 확장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의 혼으로 하나로 뭉쳐진 시체이자, 땅의 조각이 되어버린 수많은 영혼의 한에 뒤덮인 채로. 그리고 이는 1980년을 지나 2024년, 2025년 현재 2026년까지 유효한 이야기다. 그 시대도 다친 영혼들이 있었으며, 현재도 다치는 영혼들이 있고 다친 영혼들이 존재한다. 

 

한강은 이런 현실을 불쾌한 이미지들의 연쇄와 문체로 독자들에게 불쾌함과 불편함을 선사하며 폭력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과거든, 현재든. 그렇기에 호불호가 강하게 나타나는 한국 작가 한 명으로 뽑힌다. 그러나 나는 한강의 이런 면모가 사회와 문학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가치관이라 생각한다. 보지 못하는 곳. 어둠 속에 묻힌 상처 입은 영혼을 똑바로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도 그 자체가. 


이렇게 꾸준히 바라보는 태도가 있음에도 한국 사회는 폭력이 계속 대물림된다. 앞에서 말한 윤석열의 계엄과 2014년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포함한 국가와 국민에게 미치는 폭력도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개개인이 개인에게 미치는 폭력 역시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그런 반복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나 역시 특정 부분에서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내 기침으로 인한 모든 순간들을 들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신체의 결함으로 끝없는 기침을 했다. 담임은 이런 나에게 자퇴를 권유했고, 나는 그의 강요와 권유 사이의 언어로 원치 않는 자퇴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었다. 기침이라는 필연적인 신체적 증상으로 조용한 공간에서 수업을 들을 학생들의 개개인에 권리를 침해했다. 동시에 나는 이런 지병 때문에 학교 밖으로 내몰아지게 되었다.이는 구조적인 폭력 안에서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었다.또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아갈 때도, "청소년이 왜 학교를 가지 않는지."와 같은 사회적 시선으로서의 폭력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나를 계속 바라봤다. 상황을 끝까지 응시하며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수필을 써내려 갔다. 그러면서 점차 폭력을 폭력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됐다. 사회에 있는 폭력을 있는 그대로 내 비출 수 있게 됐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살아갈 내가 만나며.


2014년도 그리고 2024년도 광화문과 국회 앞에서 수없이 켜진 촛불들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민주화의 혼들을 기억하는가? 사회적이고 공통으로 느끼는 폭력이 세상을 덮칠 때마다 촛불은 계속 켜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영혼들을 만나고, 살아갈 영혼들과 살아내려고 하는 영혼들의 손을 잡으며 앞으로만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빛과 찾아올 미래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폭력이라는 행위만 집중한 나머지 개인이 당한 폭력은 묻은 채로 보지 않고 있다. 그저 불빛만 바라본다. 한 사람, 개개인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해소되지 않았다고 하면 과연 우리는 폭력이 멈췄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에게 남은 상처는 개인으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상처가 묻힌 어둠을 끝까지 응시하고 바라봐야 한다. 한강의 작품처럼. 그것이 험악하고 흉할지라도. 


우리는 묻어버린 과거와 살아가는 현재 그리고 살아갈 내일에 순간들을 마주하고 바라보며 글과 삶을 쓰며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한 개개인의 상처와 그 상처를 만든 폭력을 인식하고 촛불 앞에서 불을 켤 수 있다. 그렇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어둠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폭력을 멈추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맞닿아져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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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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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개월된 러시안블루

    그거 아시나요 저도 12.3 계엄 이후 있던 시위 참여자랍니다 그 때 지하철에서 내려서 국회의사당에 가는 길을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어요. 거리를 메운 거의 모든 사람들의 목적지가 거기여서 사람들만 따라가면 됐거든요 가서는 주변 분들이랑 귤이나 떡 같은 거 주고받아 먹기도 했어요 다들 열심히 구호 외치고 led촛불이고 아이돌 응원봉이고 뭐든 흔들었어요 (저희 가족은 led촛불 샀다가 뽀가져서 플레시 흔들었다능...) 다들 옳은 나라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깊게 감명받았어요

    • 2026-04-30 16:32:59
    6개월된 러시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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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6개월된 러시안블루 멋있어요^.^

      • 2026-04-30 18:07:43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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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위 글 같은 경우 각주를 달지 않아도 될 거 같지만, 중간고사 연습하면서 썼던 글이라 그런지 각주를 넣었습니다... 급하게 써지고 시험기간에 썼던 글이라 정리가 덜 된 거 같아 아쉽네요...{나중에 비평도 퇴고 해야 겠네요..{그 전에 이 소설을 바탕으로 독서 에세이{경험의 비중이 더 높은 감상문} 과제도 제출해야 하지만...}

    • 2026-04-30 10:04:18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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