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있는 검은 밀실(이승우의 <생의 이면>)
- 작성자 노스텔지아
- 작성일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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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은 소설가 박부길의 삶을 그의 작품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과 그의 삶을 묘사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가 어떤 경력이 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보다 그가 살면서 겪은 모순, 생각과 고찰들, 즉 생의 이면이 담겨져있다. 그의 고향과 어린 시절이 작품의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주로 큰아버지-박부길, 어머니-박부길, 김종단-박부길의 관계가 돋보인다. 그의 어린 시절에서 가장 큰 사건은 아버지의 자살이라 할 수 있다. 그것도 박부길이 건네준 손톱깎이로 자살을 했기에 그에겐 아버지를 죽였다는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 이후로는 아버지의 무덤을 불태운 사건, 고향을 떠난 사건, 그리고 예배장에서 첫사랑을 만난 사건, 첫사랑과 이별하고 신학 대학을 그만두는 사건들이 주요 사건이다.
이 작품은 액자식 구성이다. '나'라는 등장인물이 출판사의 제안으로 박부길의 생애를 탐구하는 글을 쓰는 것이 외화이고, 내화에는 박부길의 인터뷰, 소설 등이 녹아있다. 액자식 구성은 단조롭게 흘러가는, 어쩌면 박부길의 자서전이 될법한 글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내가 최근 쓴 소설 라흐마니노프 주제에 의한 광시곡도 이 형식을 참고했다.)
왜냐하면 '나'가 박부길의 삶을 알아내야하는 '노력'의 과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만약 박부길 본인이 자신의 일대기를 작성했다면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기에 흥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나'가 박부길의 인터뷰, 소설을 통해 그의 삶을 알아가는 방식은 더욱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또 내용적인 부분에서 작가가 성경에 나오는 내용(예시: 야훼, 에덴동산 등)과 같이 비유를 해서 표현하는 부분은 소설에서 고도의 비유를 사용하도록 돕고, 이 이야기를 쓴 작가(이승우작가)와 박부길이 신학대학을 나왔다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통해서 이승우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이 작품의 미적 기능 중 형식의 부분에 해당하는 액자식 구성은 독자에게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도록 하고, 내용의 부분에 해당하는 신학적 요소와의 비유는 문장 수준을 높이고, 작가와 박부길의 유사성을 통해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생의 이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이 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어린시절 겪었던 트라우마, 충격, 충족하지 못한 것을, 그 모든 것이 결핍으로 이어진다.
결핍은 해소되기 어렵다. 소설 속 박부길은 많은 결핍을 겪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결핍은 '부모'에 대한 결핍이다. 박부길이 김종단과의 연애마저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던 이유도 어쩌면 어릴적 부모로부터 받지 못 했던 애정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박부길에게 부모는 항상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정신이 나가버려 자살을 했고, 어머니는 식구들이 내쫓아버렸다. 큰 아버지가 그를 키우긴 했지만 큰아버지는 박부길의 부모가 되어주기엔 너무 부족한 인물이었다. 어릴적 누군가 그에게 부모의 역할을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해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작가는 누구나 사람에겐 생의 이면이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박부길의 생애를 보고, 나의 삶에도 분명히 그림자로 가득한 이면이 있었고, 그 이면을 통해 우리는 아직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 이면 속에 우리는 던져져있고, 그 어둠의 숲을 헤쳐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삶은 참 답답하다. 실타래는 완전히 풀릴 수 없는 것일까. 소설 내내 보이는 그 실타래의 엉킴은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를 우린 간과하고 있다. 그 실타래는 분명 우리의 내면을 더 강하게 키워나가고 있었다. 생의 이면, 과연 결핍이 있다고 우리는 인생을 살 수 없을까? 우리는 정말 그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작가는 그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박부길은 어쩌면 성장의 과정을 아직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첫 연애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질투, 집착은 되려 그 둘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녀를 힘들게 하였다. 그는 완전히 무너지고 실패했다. 어릴적 생긴 그의 결핍이 그를 또 다시 무너지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실패는 분명 그를 더 단단하게 할 것이었다. 그는 그녀와 헤어지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알아간다.
실패를 통해 성찰하며 결국 우리의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하나씩 밝게 비추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결핍이 완전히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극복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이면은 당연한 것들이다.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모순에 끊임없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나'를 찾아가는 그 과정, 이번에는 생의 이면에 잠식당하지 않겠다는 그 의지가 느껴졌다. 나도 나의 생의 이면을 극복해내고 싶었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생애를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다. 이승우라는 작가가 바라본 세계의 모순과, 또 자기 자신의 내면과 결핍, 그것으로 비롯된 부조리를 서술한다. 그러므로 생의 이면은 결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화자와 동일한 아픔과 감정을 느껴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 생의 이면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생의 이면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승옥의 [생명연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연습에서도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세계는 모두 다르다. 생명연습에 나오는 나의 세계, 누나의 세계, 선교사의 세계 등 다양하다. 각자의 세계는 독창적인 것이고, 고유한 것이지만 실은 그것들은 모두 비슷한 아픔과 결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생의 이면이 더욱 좋았다. 이 책은 결코 교훈적인 책이 아니다. 사람은 ~로 살아야 해!, 이런 사람은 나쁘고, 이런 사람은 좋아. 이런 소설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내면을 소설을 통해 탐구하고 보여주는 것. 그것만으로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고, 같은 슬픔과 감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놀라웠다.
생의 이면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부자건, 가난하건, 잘생겼던, 못생겼던 그것을 피해갈 순 없다. 그렇다고 그 이면이 무조건 나쁜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박부길은 그런 결핍과 고통이 없었다면 소설을 쓰지 못 했을 것이다. 어두운 방에서 보낸 그 세월이 없었다면 글을 잘 쓰진 못 했을 것이다. 물론 그 결핍과 고통이 결코 좋다곤 말할 순 없지만 그 고통들이 하나하나 쌓여,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세상은 아직 우리에게 수수께끼 같고, 도무지 앞날을 알 수 없다. 그런 세상 가운데서도, 그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 소설가가 된 박부길처럼. 유명한 소설가는 아닐지라도, 돈이 많지는 않을지라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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