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스스로 그린 파멸의 초상
- 작성자 푸른침대
- 작성일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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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은 일문학 중 국내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도서 중 하나로, 스스로를 '인간실격'이라 칭하게 될 만큼 밑바닥으로 떨어진 한 남자의 생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대체 어떤 인간이, 어째서 인간에서 실격될 만큼 망가지게 된 걸까? 지금부터 주인공의 내면과 과거를 분석하며, 그의 선택의 이유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들여다보려 한다.
작품은 주인공 요조의 수기를 통해 전개된다. 요조는 어릴 적부터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를 감추기 위해 익살을 떤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를 잊기 위해 그는 술과 여자에 빠져 퇴폐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파괴적인 여성 관계를 지속하고, 이 과정에서 동반자살 시도를 하나 홀로 살아남는다. 그러던 중 요조는 지극히 순수하고 타인을 신뢰하는 요시코를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곧 그는 요시코가 그 신뢰의 대가로 겁탈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절망에 빠진 그는 약물에 중독되고, 결국 가족들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소설은 폐인이 된 채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요조를 비추며 끝난다.
<인간실격>은 이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하고 절망적으로 전개된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후술할 한 가지를 논외로 하면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요조 자신이라는 것이다. 요조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외모와 두뇌가 뛰어나며 스스로 타인의 사랑을 받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자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늘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간다. 그렇다면 그의 어떤 면이 요조를 파멸로 이끌어갔을까?
우선 요조의 행동과 성격에서 드러나는 가장 명확한 특징은 문제 상황을 직면하길 거부하며 회피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요조의 인생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이유는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진지한 소통을 피하기 위해 익살을 떨고, 노력과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 시도를 하며, 요시코가 겁탈당했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선을 돌린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요조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모든 것에서 도피하려 드는가? 그 답은 작중에서 꾸준히 강조되는 ‘순수함’이라는 키워드로부터 얻을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사용된 순수함은 도덕적 선량함보다는 죄에 민감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때의 죄는 보편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요조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인간은 어째서 서로에게 태연히 거짓말을 하면서도 상처받지 않는가?’이다. ‘밝고 뒤끝 없는 불신’이란 게 가능한 것이냐는 이 의문에서 우리는 그의 순수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스스로가 광대 짓을 하는 것을 타인을 속인다 표현하고, 빈말과 겉치레 또한 거짓말로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 사회성을 가진 대부분의 인간이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는 일이다. 또한 그는 타인의 기분을 쉽게 알아차리고 비위를 맞출 수 있는 섬세하고 예민한 성정을 타고났다. 이러한 특성은 타고난 순수성과 결합하여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만들었고, 이 공포는 요조의 일생을 지배하며 영영 그가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면 그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공포에 맞서거나, 상황 자체에서 도피하거나. 요조는 후자를 택했고 이것은 그의 반복되는 회피를 설명해 준다.
그렇다고 요조가 어찌할 수 없는 순수성과 타고난 섬세함 탓에 파멸한 무결한 인물인 것은 아니다. 그의 자기애와 자기중심성이 그의 행동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요조는 스스로를 지독히도 혐오하는 인간이다. 제목인 '인간실격' 이란 단어 자체도 그의 자조적 발언이다 보니 그러한 면이 더욱 강조된다. 그러나 그의 서술에서는 일관적으로 일종의 나르시시즘이 드러난다. 우선 요조가 스스로에게 매몰된 인간이라는 부분부터 짚어 보자. 요조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우이든, 사랑을 나눈 상대이든.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철저히 자신뿐이다. 타자에 대한 서술은 그가 타인에 의해 무엇을 느꼈는지를 보충 설명하는 도구로서만 사용된다. 게다가 그는 인간 전체를 서술할 때는 두렵다 표현하길 반복하지만, 그와 직접적으로 소통한 개개인(자신을 좋아해 주던 하숙집 딸들 등)에게는 멍청하다는 평을 내리기를 서슴치 않는다. 요조의 자기연민 또한 특기할 점 중 하나다. 그는 자기혐오적인 발언을 지속하지만 이는 곧 자기연민으로 전환된다.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며 물건 값 계산도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비대한 자의식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이용했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도리어 여성들이 요조에게 이용당한 것 같아 보이는 등의 사례에서 피해의식의 단초를 찾아낼 수 있다. 이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강한 자기중심성을 품은, 전형적인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양상이다. 그렇다 해서 그의 자기혐오가 전부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스스로를 마냥 혐오하기만 한 것일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잉 해석되고 미화된 자기서사 속에 살았고 이것은 일종의 뒤틀린 자기애의 발현이라 여겨질 수 있다. 그는 스스로의 회피로 인한 문제들을 어딘가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이 겪을 수 있는 고뇌와 고통으로 포장하고 그 비극성에 취했다. 망가져 가는 인생을 수복하려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철저하고 완벽한 비극으로만 완성하려 한 것이다. 요조는 그러한 방식으로 자기서사를 완성해 냈다. 그의 이러한 성격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유년기이다. 요조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는 어딘가 어긋난 자신을 비정상인이라 여기고 이를 감추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다. 가족과 친우들은 꾸며낸 익살을 떠는 요조만을 알았고, 그는 정상적인 관계 형성을 하지 못한 채 거짓된 스스로로서 소통하는 방법만을 배웠다. 그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의 삶의 방식으로 굳어진 연기뿐이었으며 다른 방식은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사용인들에게 성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서구권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인간실격>을 아동 성폭력이 어떻게 피해자의 삶을 무너뜨리는가를 다루는 소설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해당 경험이 요조의 인간 불신과 무력감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환원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방향으로 작품을 조명할 시 요조 개인의 복합적 내면뿐이 아닌, 작품이 드러내는 보편적 인간의 심리를 깊이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드는 한 가지 궁금증이 있다. 요조는 정말로 인간실격인가? 그는 스스로가 타인에게 의심의 여지 없는 미치광이, 폐인으로 취급받기 시작했을 때 자신에게서부터 인간의 자격을 박탈했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가 끝까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그가 타인에게 ‘정상적이지 않다’라는 취급을 받기 시작했을 때 본인을 인간실격이라 규정했다. 그것은 끝까지 판단의 기준을 타인에게 놓는 행위이다. 스스로의 판단 기준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타인의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요조는 결국 인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요조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비판하였으나, 나는 요조의 사고방식을 나를 비추는 거울 격으로 바라보았다. 초반부의 유년기 파트를 읽을 때는 나의 생각을 그대로 써 놓은 듯한 서술에 경악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요조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요조는 굉장히 극단적인 사례이다. 요조가 그렇게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망가질 수 있었던 것에는 외부적 상황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대표적으로 그의 자살 시도들이 성공하여 그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그의 삶이 끊어졌다면, 그는 적어도 ‘인간실격’의 상태에 다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왜 요조라는 극단적 거울을 바라봐야 하는가? <인간실격>은 요조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투영해 낸다. 요조의 사고방식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행위는 곧 우리 안에 숨겨진 회피본능과 뒤틀린 자의식을 직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조가 인간에서 실격한 후 도달한 밑바닥은 모두가 품고 있는 최악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만일 이 작품을 읽고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요조라는 거울 속에 비친 우리 자신의 '요조다움'을 선명하게 목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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