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 소설『급류』와 『구의 증명』을 통해
- 작성자 매화
- 작성일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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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쉬운 대답을 내놓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 이후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나이는 통상 십 대이다. 이런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연애 소설은 풋풋할 것만 같고, 그들의 첫사랑은 청춘이란 단어에 적합한 성장을 담은 이야기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예스24 기준 2025년 10대 독자들이 가장 많이 구매한 도서 1위에 오른 도서 『급류』에서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58p) 또 교보문고의 발표에 따라 2024년도에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 10대 이하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으로 집계된 소설 『구의 증명』의 주인공이 정의하는 사랑도 일맥상통한다. “괴롭다는 것은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 (27p)
2024년, 2025년의 10대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두 도서는 사랑을 정의하는 방식 이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또렷한 공통점을 보인다. 두 도서의 주인공은 모두 유년기 시절 가정불화라는 환경 속에서 서로를 처음 만난다. 『급류』에서는 여주인공 도담의 아버지와 남주인공 해솔의 어머니가 불륜을 저지르다 적발되어 사망한다. 『구의 증명』에서 구는 가난으로 인해 빚에 시달리고 담은 부모님의 부재로 인해 이모와 살아간다. 두 작품 모두 혼란스럽던 유년기에 서로에게 의존하기 시작하여, 두 주인공은 원초적인 자아 상태에서 사회적인 페르소나 없이 서로를 마주하며 서로에게 더 극도로 의존하게 된다. 논문 “대상관계이론 관점으로 본 거짓, 거짓말”을 참고하며 이런 지점을 더 심화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유년기 시절 서로를 만나 깊이 의존하게 되는 현상은 참자기와 거짓자기의 충돌로 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거짓자기를 형성하기 전, 혹은 가혹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이러한 방어 체계가 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대상관계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성공과 생존을 위해 거짓자기를 형성하지만, 이는 곧바로 내면의 공허함과 고립감을 낳는다. 따라서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맹목적인 끌림은 세상의 기만적인 원리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참자기를 유일하게 긍정해 주는 대상을 만났을 때 느끼는 심리적인 해방감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청소년의 또래 애착, 사회적 위축, 우울, 학교생활 적응 간의 구조적 관계 분석”은 특히나 가정불화를 겪은 주인공들에게 또래 애착이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완충 작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사회적 가면 없이 서로를 마주한 두 인물 간의 관계는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써 일반적인 관계에 비해 서로에 대해 더 큰 대체 불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가난을 포함한 현실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모든 부분에서 효율과 가성비를 우선시하는 현대 세계의 원리를 인식한다. 그래서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이와 대척점에 있는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의 사랑에서 쾌감을 느끼고 강하게 매혹된다. 이러한 양상은 “청소년의 또래 애착, 사회적 위축, 우울, 학교생활 적응 간의 구조적 관계 분석”에서 설명하는 청소년 우울의 외재화 경향과도 연결된다. 청소년기의 우울은 대부분 무기력한 저항으로만 나타나지 않고, 교사에 대한 반항이나 가출, 범죄행위와 같은 행동장애나 외재화된 문제 행동으로 분출된다. 그러므로 오히려 자신을 소모하면서까지 상대에게 몰입하는 사랑은, 그런 세계의 논리에 대한 역행처럼 보인다. 따라서 가난과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 주인공들에게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상에 대한 가장 격렬한 저항이자 우울을 표출하는 방식인 것이다. 주인공들은 현실의 문제로 인하여 사회적 상황에서 긴장하고 움츠러드는 사회적 위축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축은 우울을 되풀이시키며, 점점 사회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결국 무한히 이러한 우울이 이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며 악순환을 반복해 이들을 사회적 적응이 어려운 상태로 내몰리게 한다. 결국 세상이 말하는 효율적인 삶이 아닌 서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지키는 비현실적 사랑에서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책의 주인공들은 당연하게도 세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외부 세계를 신뢰하지 못하는 듯한 표현이 다수 등장하며 새롭게 다가오는 관계를 꺼리며 회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각각의 작품에서 연인들은 헤어진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며 외로움을 달래지만, 기어코 그들에게 어떠한 인격적 사랑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서로 간의 사랑에는 저항 없이 몰입한다. 급류와 구의 증명 모두에서 가장 또렷하게 보인 특징은 자신들의 관계를 남들과 다른 무언가로 인식한다는 점에 있었다. 구의 증명에서는 “우린 헤어질 수 없어. 담이 말했다. 넌 정말 그걸 몰라? 그럴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담이 그것을 정답이라고, 그것은 너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동그라미를 쳐주었다.”(p197)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렇듯 두 책의 주인공은 모두 사랑에 대해 강력하게 회의하면서도 누구보다 사랑에 몰두한다. 급류의 주인공 도담은 “예지가 그렇게 사랑을 최고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아직 사랑에 충분히 당하지 않아서라고 믿었다.”라고 말하거나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의지한다는 건 함께 가라앉는 것 같았다”(p111)가 말하며 사랑에 대해 냉소 짓는다. 하지만 소설 내내 도담과 해솔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끝없이 몰입하며 결국 서로를 결말으로 맺는다. 삶 속 안전한 기반이 없는 주인공들은 사랑을 불안한 세계 속의 유일한 피난처로써 인식한다. 결국 현재 젊은 세대가 이런 소설에 몰두하는 것은 어릴 적 가족으로부터의 결핍이나 삶 속 불안감을 무조건적인 인연이나 사랑, 무슨 경우에도 이별하지 않는다는 절대성 앞에서 위로받기 때문이 아닐까.
또 두 책에서의 성행위도 아주 유사한 양상으로 묘사된다. 급류에서의 성행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입 안에 남은 술을 빼앗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이를 부딪히고 입술을 깨물었다. 도담이 가녀린 팔로 목을 감으면 해솔은 저항할 수 없었다. 둘의 몸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도담은 해솔의 등을 할퀴고 가슴팍을 멍이 들도록 깨물었다. 생채기를 내고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 싶었다.”(86p) 구의 증명에서는 핵심이 되는 소재 자체가 담이 죽은 구의 시체를 먹는 행위라는 점에서 특이성이 있고, 성행위에서도 이런 극단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서로에게 서로뿐임을 잘 알면서도, 느긋하게 섹스해도 될 만큼 넉넉한 시공간 속에서도 우린 자주 조급해했다. 곧 방해받고 갈라질 듯 급박해했다. (중략) 입술을 찾지 못해 코와 볼을 빨아먹고 자주 이를 부닥쳤다. 비명이 날만큼 서로를 몰아붙였고 짓눌렀다. 벽과 바닥의 경계도 없고 내 몸과 네 몸의 구분도 없었다.“ 이 외에도 작품 속 성행위는 서로에게 멍자국을 내거나 상처를 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구의 증명에서는 두 주인공의 첫키스조차 서로의 입술이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 것으로 묘사된다.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성행위와 애인의 시체를 먹는다는 구의 증명의 핵심 소재는 신체적 경계조차 해소하려는 열망처럼 보인다. 감정적인 연결로는 부족해서, 신체라는 경계조차 허물고 상대를 소유하려 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성적 욕망이라기보다, 분리된 개인으로 존재하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에 가깝다.
이들의 열망은 도저히 분리된 개인으로서는 버틸 수 없는 고통스런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서론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적어도 요즘 청소년들에게 사랑은 달콤하고 풋풋한 마음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최근 10대 유행 문학에서 사랑은 서로에게 기꺼이 괴로움이 되기를 자처하는 행위로 보인다. 상대를 모든 경계를 허물어 소유하고 나를 완전히 내어주면서 기꺼이 서로의 괴로움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이 자신들의 존재를 끝까지 증명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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