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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고메즈의 <그랜드 투어>

  • 작성자 검은눈
  • 작성일 2026-06-01
  • 조회수 56

미겔 고메즈의 <그랜드 투어>에는 여러 세계가 공존한다. 먼저 첫번째 세계는 에드워드와 몰리가 살아가고 있는 19세기이다. 두번째 세계는 현재의 풍경이다. 이 현재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목소리로 전개되고, 현실의 풍경을 보여주므로서 첫번째 세계의 물질성을 가려버리지만, 동시에 이야기를 서술하는 식의 유령적인 방식으로 그 물질계를 증언한다. 순간 영화는 허구적 세계와 실제적 세계의 경계에 종속된다. 영화는 그 경이로운 세계 사이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을 한다. 이때 관객은 그 초월적인 여행의 여행객이 되고, 증인이 된다. 

한편 우리는 첫번째 세계를 ‘몰리의 여행’과 ‘에드워드의 여행’으로 또다시 양분화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첫번째 세계는 두 개의 이야기를 가지게 되는데, 에드워드의 여행에서 우리는 이따금 여행객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몰리의 여행에서는 토착민의 시선으로 문화를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그림자 인형극을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에드워드의 세계에서 관계자의 시선마 냥 장벽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술사의 모습을 보게 되고, 이 후 몰리의 세계에서는 인형극의 구경꾼이 된 듯, 하얀 장벽 앞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게된다. 즉 앞과 뒤라는 양면적 공간을 그 두 세계를 관통하여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몰리와 에드워드라는 양면적인 두 세계는 19세기와 현재라는 세계가 맺고 있는 것과 비슷한 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는 영화 속에서 결코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 목소리는 과거의 서사를 기술하며 양자 사이에 느슨한 결속을 만든다. 몰리와 에드워드 역시 결코 만나지 못하고, 그 둘은 메모, 혹은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뿐이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에는 이 두 세계들을 통합시키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천장에서 몰리의 죽음을 촬영하던 영화 세트장이다. 그것은 지금껏 우리가 보아왔던 모든 것이 허구임을 고백하는 동시에, 몽환적이었던 과거와 현재, 몰리와 에드워드의 여행의 종착지가 허구임을 선언한다. 우리가 여지껏 있어온 세계는 그 냉철한 선언 앞에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결말이 부활하여 영화의 세트장을 헤메는 몰리로 끝난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세계가 만들어지는 장소로서 세트장 결말은 오히려 더 희망적이지는 않은가? 등장인물이 부활하기를 관객들이 간절히 원하게 되는 <오데트>의  관객들의 초심리학적 기적은 21세기에 들어서 이렇게 다시 재현되고 있다. <그랜드 투어>는 기적에 가까운 아름다운 공간적 구렁의 몽환에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오데트/몰리의 죽음)를 종착 삼아 끝을 맺는다.

검은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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