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환상은,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불행을 받아들이기까지)
- 작성자 궁예
- 작성일 202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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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모기씨를 읽고)
누군가 이 작품을 읽고 어떤 감정이 들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하지 않고 ‘슬펐다’라고 답할 것이다. 황정은의 ‘모기씨’, 이 작품이 슬픈 소설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작가는 슬픔이라는 감정 이외의 것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부터 그런 작가의 노력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이, 알아보려 한다.
소설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She’s Not You라는 제목의 노래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노래의 가사는 이러하다.
그녀의 머리칼은 부드럽고 눈은 너무나 푸르고 아무튼 완벽한 여자인데, 결과적으로 그녀는 네가 아니어서 나는 마음이 아프네. (Her hair is soft and her eyes are oh so blue. She’s all the things a girl should be, but she’s not you.)
노래에서 그녀는 완벽한데, 너는 아니고, 그래서 나는 슬프다는 내용의 가사가 반복된다. 솔직히 가사가 긍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너’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왜 이런 내용의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를, 체셔의 아버지는 늘 집에서 틀어놓았을까? 체셔의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사이를 암시하는 내용은 아닐까? 체셔가 불길한 거품을 보고 난 사흘 뒤, 사고는 일어난다. 그러나 병원의 천장을 보며 정신을 차린 체셔는, 자신이 그날 오후의 옥상에 누워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이 두 마디를 내뱉는다.
엘비스다,
엘비스다.
‘엘비스’는 집 안에서 계속 반복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인 동시에 일어나버린 현실이다. 반면 ‘그녀’는 체셔의 아버지가, 체셔가 바라는 행복한 삶, 이상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두 마디로, 체셔는 결국 포기하다시피 불행을 인식한다.
체셔는 자책한다. 머릿속에 세 개의 점을 떠올리고,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작업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그 과정의 결과는 바로 ‘모기씨’이다. 왜냐하면 ‘너의 주민, 거대한 삼각형의 주민’이라고 모기씨 자신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처음 장면에서, 미오는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물속에 있고, 꼬리와 마디가 있으니, 장구벌레일 것이라고, 대충 말한다. 체셔는 수긍한다. 때문에, 어느 날 사라졌던 벌레가 다시 나타난 것을 보고, 체셔는 그때 그 장구벌레가 모기가 되어서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이 생물을 ‘모기’라고 수긍해버린다. 사실 모기씨는 모기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모기씨는 체셔의 내면적 인물일 것이다. 그러므로 체셔와 모기씨의 만남은 체셔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환각이다. 그러나 환상은 언제까지고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그 막이 드리워지며 세계의 비참함은 체셔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간병인 미오가 떠나고, 달걀에 구멍을 내서 빨아먹는 현실이. 이 관점으로만 보면 소설의 결말은 비극적이며 희망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 러, 나, 여기서 우리는 체셔가 너무 배가 고파서 몸을 굴리기 전에 한, 두 마디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체셔는 다시 그날과 같은 말을 한다.
엘비스다,
엘비스다.
이 ‘엘비스’는 전의 ‘엘비스’와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이 ‘엘비스’ 또한 불행을 의미한다. ‘아직도 레코드판이 거기 걸려있었다니’, 체셔는 그날의 불행을 상기한다. 그다음 체셔는 ‘엘비스다’를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 자신의 불행을 받아들여 버린다. 체셔가 몸을 굴려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자신의 ‘엘비스’를 인정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또한 모기씨, 환상을 만났기 때문이다. 환상을 경험하였기에 현실을 더욱 살갗으로 와닿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래의 한 구절로 감상을 마무리하겠다.
And it’s just breaking my heart (그리고 나는 마음이 아프네.)
‘cause she’s not you. (왜냐하면 그녀는 당신이 아니니까.)
마음이 아파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내 이상은 내 삶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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